사색공간/칼럼

광야의 비밀

힐링&바이블센터 2007. 2. 27. 18:29


신앙생활은 감성적인(체험)면이 포함되지만, 궁극적으로는 관계에 근거한다.

다시말하면..

신앙생활의 클라이막스는, 기막힌 현실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며..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최선의 삶을 살며, 최고의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체험이나 응답이나 고난이나 축복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방편일뿐이다.

체험이나, 환상이나, 응답이나, 축복이,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나라에서 영생복락 누리는 것이다.

당신없이는 죽고 못살겠다던 커플들이, 신혼여행 다녀와서는.. 티격태격 다투고 싸운다.

그리고는, '내가 속아 결혼했다'고 분통을 터트린다.

아니다.

'속은 것이 아니라, 이제야 제 정신이 드는 것'이다.


펄펄 끓는 신혼의 단꿈은, 길어야 몇달 아니면, 1-2년이다.

깨소금 냄새가 오랫동안 진동하는 곳은, 방앗간뿐이다.

애정의 힘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시적이다.

그후에는, 신뢰와 이해 그리고 희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후에..

덩실 덩실 춤을 추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여 말하되..

'이제는,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겠다'고..

호언장담했으며, 이대로 죽어도 좋을만큼, 자족하다고 합창으로 고백을 했다.

저들의 주를 향한 기쁨의 합창은, 천상의 하모니였다.

그러나 그 기쁨은,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원망과 슬픔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마실물이 없는, 현실을 만났기 때문이다.

감정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이다.

감정보다 현실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의 갈등이며. 아픔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금방 부자가 되고 천사가 되는줄 안다.

뿐만아니라, 기도하면.. 금방 응답이 떨어지고, 기적이 일어날줄 안다.

그러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은 헷깔리기 시작한다.

'내가 잘못 믿었나?'

'내가 괜히 믿었나?'

마치, 신혼여행 다녀와서..

대판 싸우고 난후에, 홀로 조용히 훌쩍거리며..

연애시절의 사진첩과 신혼여행때 찍은 사진첩을 훔쳐 볼때의..

참담한 심정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사진속에 모습과, 현실앞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친정 엄마가, 그렇게 말리던 이유를 회상하며..

친정 어머니가 못 견디게 그리워, 가슴으로 흐느낀다.


"정녕, 저렇게도 왕자(공주)같이, 아름답고 고왔던 사람이..

내가 원수같이 생각하는 이 사람이란 말인가?"

그래서 결혼생활은..

'사랑(외모) 뜯어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라 말하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나고, 기도하면 즉각 응답이 떨어지고..

환상이 열리고, 병이 낫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더 잘 믿을터인데..'

그러나 현실은, 그럴때도 있지만, 전혀 반대로 나타날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후에..

마실물이 없었고, 먹을 양식이 없었고,

아말렉과 불레셋과 싸워야 했고, 낮에는 더웠고 밤에는 추웠다.

이런 혹독한 광야의 현실과, 가나안의 환상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마치 '하늘과 땅'사이에, 인간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예수믿으면, 금방 천당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였다 해서, 금방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십년을, 광야에서 지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살아야 한다.

세상은, 광야이다.

광야에는, '있는것 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곳'이다.

그러므로, 신앙샐활하다가 문제를 만나고, 쌀이 떨어지고, 옷이 헤어지고..

목이 마르고, 외롭고, 춥고, 자녀들이 속을 썩이고, 부부가 갈등하고..

질병을 만나거든, 이상히 여기면 안된다.

'왜?..'

'여기는, 천당이 아니라 광야니까..'


그러므로.. 만사형통한 삶은, '신령이 아니라 산신령'이다.


성경이 말하는, 건강한 신앙생활이란?

가나안을 바라보며, 고생으로 충만한 광야에서..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말씀을 먹는 삶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속에, '머무는 삶'이다.

'머무는 삶'이 '안주하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광야가 가나안으로 바꾸어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잘 믿어도, 현실은 답답하고 어려울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수도 있지만..

그러므로 '예수를 잘 믿는데, 왜 고난이 많냐'고 다그치거나 묻지 말라.

예수를 잘 믿었기에, 애굽에 있지 않고.. 광야에 나와 고생하는 것이다.

그리므로 예수안에서.. 예수 이름으로 당하는 고난은, 특권이며 영광이며 축복이다.


우리는 당장 기도하고 나면, 도깨비 램프에서 응답이 튀어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일수 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앞길은 막막하고..

미래는 불안하고..

문제는 태산같고..

내 자신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죽을 지경이다.

이와같은 때에 우리의 할일은,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고..

죽어도, 주님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광야의 비밀은, 주님만 계시면..

절대로 죽거나, 망하거나, 넘어지거나, 잘못되지 않는다는, 진리이다.

광야생활은, 죽을만큼 힘들지만..

주님이 모든 것을 공급하시기 때문에, 충분히 살만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광야의 또 다른 비밀은, 광야에서는 내 힘으로 살면,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기둥과 구름기둥되신 성령님을 의지하면..

얼마든지 광야에서도, 가나안을 '누릴수 있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렵다 하여..

기도를 중단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께 섭섭해 하거나..

애굽을, 돌아보지 마라.

그것은, 우매하고 바보같은 일이다.


지금..

형벌같고, 허리가 부러지는것 같은, 현실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만 만나면, 길이 있다.

살수 있다.

답이 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

가시밭길은 평지로 되고, 골짜기는 메워지며, 높은 산은 시온의 대로가 될수 있다.

이것이 가슴벅찬, 광야의 비밀이다.


문제는, 내가 광야에서 고난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지 못함으로, 영력이 소진되는 것이다.

그로인한 탈진과 기진과 고단함이, 무력함과 허무와 방황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빛가운데서 만났듯이..

모세가 호렙산에서, 주님을 불꽃 가운데 만났듯이..

우리도 하루가 천년같은 광야에 살지라도, 이곳에서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곳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라, 궁궐이 된다.


우리에게 광야를 허락하신, 제일되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이고 개인적으로 만나라'는, 거룩한 싸인(sign)이다.

광야 한복판에.. 서 있을지라도, 주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광야는 더 이상..

'척박한 광야'가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기름진 평야'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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