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영성훈련

[스크랩] 관상생활

힐링&바이블센터 2006. 5. 6. 12:56
관상생활 : 침묵과 일치, 사랑

 

한 농부가 자주 성당에 와서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혹은 걸터앉아 있었는데 그 때 비안네는 그에게, “도대체 성당에 와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감실을 가리키며, “나는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은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 성 비안네의 전기 중에서 -

 

1.침묵

1)외적 침묵

외적 침묵은 내적인 마음의 평정과 일치의 집중을 위한 기본조건이다. 이 침묵은 단순한 무언(無言)이나 무행(無行)을 말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덜 말하고 덜 행하는 데 있다. “나” 자신을 덜 말하고 덜 행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정과 수용이 있어야 한다.

 

2)내적 침묵

내적 침묵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순화시키고 정화시켜서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비움은 성령의 사역이요 선물이다. 성령세례와 충만의 본질적인 사역의 결과가 “한영의 합일에서 나오는 완전죽음의 능력(성령세례의 일곱능력 참조)”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죽음의 위치로 내려갈 때, 참된 내적 침묵이 시작된다.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치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관상기도의 시작은 내적 고요이다. 내적 고요란 옛 사람의 자아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전적 부인이다.

 

2.일치의 삶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1786-1859)의 전기 중 한 농부의 이야기는 관상생활을 잘 표현하고 있는 일화이다. 그 농부는 자주 성당에 와서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혹은 걸터앉아 있었는데 그 때 비안네는 그에게, “도대체 성당에 와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감실을 가리키며, “나는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은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관상의 자세로 살아가는 관상생활은 비단 기도의 몰입에만 있지 않다. 관상이라는 하나님께 일치는 성령을 통하여 내 안에서, 사람에게서 그리고 자연 만물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사람과 자연만물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바로 관상생활이다. 따라서 신앙과 관상은 “하나님과 일치, 사람과 일치, 자연과 일치”의 삶이다.

 

3.사랑

고요와 침묵으로 시작된 일치의 관상은 사랑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자연 만물에 대한 사랑의 삶이다. 자신과 타인, 만물 안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면서, 그리스도인은 계속 하나님과 접촉하고 만나게 된다. 나도 예수이며 내가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도 예수이다. 결국 한 분의 예수가 또 한 분의 예수를 대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의 근본적 실현이며 관상의 삶이다. 또한 이것은 자연 만물에 대한 태도로 이어진다.

 

관상기도의 유익

 

1.몸의 유익

  ①온 몸이 시원해지면서, 호흡을 통한 생기의 축적이 일어난다.

  ②몸의 피로와 긴장이 풀린다.

  ③병든 부위가 건강하게 회복된다.

2.혼(마음)의 유익

  ①영의 깊은 기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혼이 깊은 안정을 갖게 된다.

  ②죄와 육신을 의식하던 혼의 경향에서 점점 자유로워진다.

  ③혼이 담력을 얻는다. 조급함과 불안정, 걱정에서 놓여지기 시작한다.

  ④비움과 일치를 통해 내적 고요와 평안, 그리고 기쁨과 사랑의 마음으로 성장하여 간다.

3.영의 유익

①몸과 혼이 깊은 안정으로 준비됨으로, 영이 성령의 합일을 위한 기도를 위해 준비된다.

  ②영이 성령의 깊은 합일 안에 들어감으로, “영으로 옮겨진 나(롬 8:9)”의 실제 안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관상의 상태이다.

③성령합일로 말미암아 영혼의 성장이 일어나서, "영에 속한 자(고전 2:15)"의 삶을 살아간다.

  ④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선명한 영적 대화와 은사, 체험이 일어난다.  

                        - 오네시모수도원....

                

출처 : 주님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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