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없는 독서는 헛되고, 독서 없는 묵상은 잘못되기 쉽다. 또 묵상 없는 기도는 열의가 없고, 기도 없는 묵상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기도가 열렬하면 관상에 이르지만 기도하지 않고 관상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오히려 그 같은 경우는 기적적일 수 있다”
12세기 카루투시안회 원장이었던 Guigo 2세가 그의 저서 “The ladder of monk 4"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서, Lectio divina의 관상적 목적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단계는 "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이다. 이것을 천국에 이르는 하나의 사다리로 보았다. 이 네 단계를 중심으로 귀고의 설명과 함께 부연하여 각 단계를 살펴본다.
1.독서(Lectio)
성경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여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단계이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는 환경이 아니라면, 눈으로 보고 입술로 읽으며,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도록 읽는다. 소리내어 읽는 것이 기본 독서법이다.
2.묵상(Meditatio)
말씀 안에 숨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이성과 정신을 사용하여 말씀의 진리를 깨닫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묵상과정에 이성과 정신만 요청했던 것은 아니다. 성령을 의지함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되는 과정도 포함된다. 묵상의 이런 수행은 개신교회의 묵상훈련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런 묵상방법 이전의 전통적인 Meditatio는 단순하게 말씀을 반복적으로 암송하는 것이었다. 하루의 일상생활 동안, 마음에 감동이 있었던 구절들과 암송한 성경본분을 끊임없이 암송하고 되뇌이면서, 말씀의 내면화 또는 말씀과 일치를 추구했던 것이 Meditatio의 원래적 성격이었다. 이런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는 말이 “Ruminatio(반추, 되새기)”이다. 이것이 점차 말씀에 대한 해석과 탐구를 통해 깨닫는 것에 주안점을 둔 Meditatio로 변모되었다. 끊임없이 성경본문을 반복적으로 음송하고 되씹음으로써, 헛된 생각과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하게 머무는 것은 “끊임없는 반복과 되새김”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Meditatio의 이런 두 가지 성격이 함께 있어야 한다. 후대의 Meditatio는 새롭게 깨닫고 적용하는 동기부여가 있으나, 말씀의 철저한 내면화는 약하다 할 것이다. 그래서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암송하고 되새기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3.기도(Oratio)
묵상은 그리스도인을 기도로 이끌어 간다. 이 기도는 말씀이신 하나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향하도록 하는 과정으로서, 정형화된 기도라기보다는 말씀에 대한 감동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응답이다. 이 기도는 뒤이은 관상으로 그리스도인을 인도한다. 기도와 관상으로 인도하는 영감이 사라지거나 흐려지면 다시 읽던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 천천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말씀을 읽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
4.관상(Contemplatio)
하나님과 일치 또는 합일의 단계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단계에서 세상에 속한 자의식의 모든 끈이 놓여진 채로, 오직 하나님과 일치하는 경험 속으로 들어간다. 비록 이 과정이 세상에서는 짧게 경험된다 하더라도, 수도자들은 천국의 현현과도 같은 이 참된 나를 바라보며 평생의 영적 노정을 걸어가야 한다. 이런 삶은 비단 수도자에게 속한 특별한 은혜와 특별한 체험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구원생명의 완전이 완전의 확장과 실현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관상이라는 일치의 영성을 참된 “나”로 알고, 이 나의 확장과 풍요를 위한 평생의 영적 노정을 걸어가는 존재이다.
- 오네시모수도원에서 옮김-
'치유 > 영성훈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관상기도에 대한 오해 (0) | 2006.05.06 |
---|---|
[스크랩] Lectio divina(성독)이란 (0) | 2006.05.06 |
[스크랩] Lectio divina(성독) 수행 원칙 (0) | 2006.05.06 |
[스크랩] 영성이란 (0) | 2006.05.06 |
[스크랩] 영성훈련의 의미 (0) | 2006.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