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영성훈련

[스크랩] 관상기도에 대한 오해

힐링&바이블센터 2006. 5. 6. 12:56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 : 부정적 견해에 대하여

 

 수도생활은 그리스도인의 부차적인 영성 훈련이 아니라, 구원생명의 요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에 대하여 부정적이거나 무지한 경우가 많다. 또한 이것은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영성을 추구해나가는 특별한 수련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수도생활이 되지 못하고, 하기도 어렵고 하지도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근래 개신교에서도 수도원과 수도적 영성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음은 구원의 완전과 풍요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합일을 위한 관상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하는 기도이다. 그리고 한영의 합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관상기도에 대한 부정적 견해 또는 수도하지 못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면,

 

①값싼 구원론이 영성의 깊은 추구를 가로막고 있다. 영접기도의 진정성은 구원받은 삶이 드러남을 통하여 확인된다. 그런데도, 영접의 진정성은 고려하지 않고 일회적 영접이 곧 천국행의 확정을 말하는 값싼 구원론이 그리스도인의 깊은 영성추구를 가로막고 있다.

 

②이성적, 정신적 기도위주로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대교회가 이성적이고 정신적인 기도위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이 입술로, 또는 마음으로 하는 구체적이고 이성적인 기도 위주로 해오기 때문이다. 방언기도 역시 이성적인 표현은 아니라 하더라도 기도하는 행위와 응답에 주목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③관상기도 자체를 신비적이고 추상적으로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관상기도나 합일을 소개할 때, 신비적 체험으로 표현되어지거나 소개됨으로써, 이성적 접근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신비주의나 신비적 체험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④그리스도인의 부차적인 영성수련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관상기도나 합일에 대한 구원론적 토대가 빈약하다. 따라서 구원생명의 진리가 빈약한 채로 부차적인 영성수련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⑤한국이나 동양의 경우를 보면, 단전호흡이나 선도 등 전통적인 수행이 있는데, 이것과 관상기도의 호흡이나 자세, 수행법이 혼동을 일으켜, 관상기도 자체를 종교의 혼합으로 이단시하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전호흡 수도나 선도 등은 인간에서 출발하여 도를 얻고자 하는 수단이라면, 관상기도의 호흡법이나 자세는 몸과 혼을 깊은 안정에 두고, 영이 성령합일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다. 오신 성령에 합하는 것이지 호흡이나 자세가 초월을 추구하는 수단이나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자연스런 깊은 호흡과 자세는 기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의 몸과 정서에 유익한 것이다.

 

⑥종교개혁 이후 현대까지도 관상이나 합일 등을 신비적 추구로만 여기고 금기시하기까지 한 점이다. 종교개혁이 중세교회의 단절을 추구하면서, 중세교회의 수도원 전통도 단절시켰다. 또한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신학과 신앙방법이 주류가 됨으로써, 이성과 분석을 넘어서는 신앙적 행위를 모두 금기시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오해와 무지를 떠나서, 수도의 구원관을 가지고 이미 한영의 합일로 오신 성령님께 한영으로 합하여 가는 수도의 삶을 걸어가야 한다. 합일의 영성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참된 자아이다.

                                                    - 오네시모수도원 ---

출처 : 주님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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