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공간/칼럼

염려를 맡기라

힐링&바이블센터 2007. 12. 10. 13:51


찬양 : -여의도순복음교회-


 

 

어느 교회 여집사님이, 늘 범사에 '염려로 충만'하시기에..

하나님께서, 그 집사님의 '염려꺼리'를, 모두 다 없애 주셨다.

그랬더니, 그 여집사님이 하는 말

'염려거리가 없어, 큰 걱정이라고' 또 염려 하더란다.

아마, 염려도 은사(?)인가 보다.

염려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기에 말이다.


염려라는 영어의 단어는, worry 인데.. 이 말은 그리스어 '메림나오'로써..

염려의 어근은, 영어의 care 와 흡사한 의미를 갖고 있다.

원래 '메림나오'는, '분열되다' '나뉘다'의 메리조와..

마음, 이해력을 의미하는, 누스의 합성어 이다.

그러므로 염려란, '마음을 나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야고보서에 보면, 염려하는 자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염려한다'는 말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하여..

분열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염려란 말은, '목을 조르다'는, 뜻이 있다.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염려하게 함으로, 목을 조르는 것이다.

그래서 무능화, 무력화 시켜.. 결국 무장해제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실로 염려꺼리로 충만해 있다.

하루 한날, 그냥 지나 가는 날이 별로 없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고, 부요하면 부요한대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취하면 성취할수록,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염려의 수위는, 더 높게 마련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우리의 염려 중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않을) 염려...

그러니까, 미래의 염려가 85% 나, 된다고 한다.

주님은, '내일일도 염려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1년후, 10년후의 일까지.. 미리 가불하여 염려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타고난, '염려선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구 하시고 계신다.

'염려하지 않는 것이, 좋다'가 아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건강과 풍성한 삶을 위함이다.

왜냐하면 염려는, 만병의 근원이며, 불행의 쓴뿌리이며..

스트레스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염려를 안할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건강하고 풍성하게.. 장수할수 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염려를 안하고 살수 있을까?


주님은 불가능한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좀 어렵기는 하지만, 얼마든지 길이 있다.

염려하지 않게 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심히 큰 능력이, 주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믿음이 무엇일까?

믿음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믿음은 '맡기는 것'이다.

이러므로, 믿음 좋다는 말은, '잘 맡긴다'는 말이다.

반대로, 못 맡기는 것은, 지독한 불신앙 때문이다.

맡김의 대하여, 이야기 할때면..

나의 은사 목사님이, 못 견디게 생각이 난다.

이 목사님께서는,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집에 불이 나도, 한숨 자고 끄라"


나는 예수를 믿은지가 수십년이 되었어도, 아직 그 말씀에 흉내도 못낸다.

그래서, 또 걱정(?)이다.

대체적으로 어른들은, 염려꺼리가 크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끄덕도 않고 잘도 잔다.

이유는, 아이들은 부모를 100 퍼센트 믿고, 맡겼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예배를 드려도, 염려가 맡김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몇날 며칠을 금식 하며 기도 했어도, 염려가 평안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불철주야 주를 위하여 뛰고 달렸어도, 마음에 수심이 여전하다면..

아무리, 유명한 교회 큰 교회를 출석해도, 얼굴이 그늘이 가득하다면..

우리의 '믿음좋음'을, 무엇으로 설명 할수 있을까?


어떤면에서 보면, 염려는 병의 일종인듯 싶다.

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맡기고 싶을때 맡겨지고, 염려하지 않아야 될때..

염려가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노력으로, 결심으로, 의지로, 안되는 것이 염려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이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어떡하든지, 염려꺼리를 줄뿐 아니라..

힘도 실력도 없으면서. 맡기지 못하게 한다.

이러므로, 큰 은혜 중에 은혜는. '잘 맡기는 은혜'이다.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데, 염려가 안되는 것은,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하나님께, 이 은혜를 구하자.

'문제해결'을 위하여도 힘써야 하지만, 걱정이 안되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도..

몸부림쳐야 한다.


갑짜기, 옛 어른들의 말씀이 기억이 난다.

염려를, 붙들어 매라.

그런데, 어디에다 붙들어 매야 하는지는, 명확치가 않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네 모든 염려를, 주께 다 맡겨 버리라"

그렇다.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붙들어 매야 한다.

단순히 염려를 하지 말라거나, 문제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염려를, '주님께 맡겨 버리라' 하심이다.

그것도 몇가지의 염려가 아니라, '모든 염려'이다.


믿음의 정의는, 염려를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것이다.

나는 쓰레기를 버리고 올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집 쓰레기는 거의.. 내가 버린다.

그런데, 한번도 이미 버린 쓰레기를 아쉬워하거나..

다시 가져온, 경우가 없다.

맡겨버리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주님께 맡겨 버린 염려들로 인하여..

마음에 평안이 흘러야, 진짜 맡긴 것이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걱정꺼리가 있어도, '걱정이 안되는 은혜' 말이다.

문제가 있어도, 잠을 푹~ 잘수 있는 은혜 말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염려하는 체질에서..

잘 맡기는 체질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루 아침에는, 어렵겠지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으면, 홀연히 변화 될수가 있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맡겨지는 은혜, 버리는 축복..

더 나아가 걱정은 많은데 '걱정이 안되는 은혜'가, 더했으면 얼마나 좋으랴!


대중탕에 가보면, 카운터 뒤편에 이런글이 씌여져 있다.

"귀중품은 주인에게 맡기십시요. 맡긴 것만 책임 집니다."

그렇다.

우리의 염려와 귀중한 것들을, 우리 삶의 주인되시는 주님께 맡기자.

주님은, 맡긴 것만.. 책임져 주신다.

집에 불이 나도 한숨자고 끌 정도의, '절대 믿음'으로 살아봤으면..

얼마나, 좋으랴!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런 때에도, 나를 신뢰하느냐?'이다.

당신은, '걱정이 안 되는 은혜'를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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