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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 아버지가 믿었던 카발라 종교

힐링&바이블센터 2007. 4. 28. 21:04
카발라라고 알려진 신비주의 운동은 1200년대에 프랑스의
프로방스에서 출현했습니다. 14세기까지 카발리스트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가르침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러왓
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신들의 가르침을 '내면의 지혜', 자
신들을 '이해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14세
기에 와서야 카발라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됩니다.

카발라의 문자적 의미는 '전통'입니다. 이는 "받음" 또는
"전달된 가르침"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는데, 그것은 유대
신비가들이 자신들의 교리는 수천년 동안 세대에서 세대
로 구전으로 전해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카발라가 시작되었는가는 학자들에 의하면 "유대 종
교사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합니다. 유대 신
비가들은 그 기원이 아담에게까지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을 때, 그 율법의 비
밀교의적인 부분이 바로 카발라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그런 생각에 반대합니다. 그들은 카
발라가 12-13세기 경에 유대철학의 합리주의(이성주의)에
반발하여 새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학
자는 카발라가 그리스-로마 시대 초기 생겨나 구전으로
전해오다가 중세에 와서야 유대교 문헌으로 표면에 떠오
른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카발라는 유대 신비주의 사상과 다른 계통의 신비주의 위
에 세워진 것이지만, 그런 전통과는 전혀 색다른 요소들
도 있습니다.

카발리스트들은 토라를 비밀교의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토라의 단어들을 통해서 신은 그 자신과 우주의 진리를
드러낸다고 믿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을 앎으로써 오는 커다란빛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신성은 토라 안에서 숨겨진 형태로
계시된다. 성서는 "높은 곳에 있는 것"의 진정한 본성과
이 세계의 창조에 이른 신성의 비밀한 과정에 관한
힌트들이 흩어져있다. 현교적이고 대중적 의미에서
계시는 주로 신성의 의지, 선한 삶을 살기 위해 사람이
따라야할 계명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계시는
신성의 진리에 관한 것이고, 우주의 내밀한 작용에
관한 비밀의 네트웍인 것이다."

정통 랍비들은 신과 인간의 관계와 어떡하면
사람이 성경에 제시된 계명들을 완수할 수
있는 지에 집중하고 신의 본성이 신적인 영역
에 대해서는 탐색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반면
카발리스트들은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신비주의
를 통해 바로 그 신비들을 추구하였습니다.

카발리스트들은 이 세계에 살아있는 영혼의
목표는 그 영혼이 천국의 높은 곳에서 누리던
최고의 지각을 깨닫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카발리스트들에게 있어서 신비주의 과학의
지식은 영혼이 신에게 붙도록 인도하는 다리
였습니다.

카발리스트 중에 가장 탁월한 두명의 대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모세 데 레옹'
입니다. 그는 스페인의 레옹에 살았는데
바로 조하르를 쓴 사람입니다. 조하르는
광약서(The Book of Splendor)라고도 하는데
카발라적인 사상을 묘사한 최초의 책입니다.

"조하르는 그 전부터 있어온 모든 카발라 사상의
위대한 요약집으로 저자 자신의 시적 상상력에
의해 재작업되고 통합된 작품이다. 앞선 세대에서
희미한 암시나 애매한 표현 속에 담겨있던
개념들은 고대 지혜의 일부로서 완전히 만개
하기에 이르렀다."

전통적으로 조하르는 2세기의 신비가인 랍비
시메온 벤 요하이의 것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철저한 조사결과 13세기에
모세 데 레옹에 의해 쓰여진 것임이 판명되었
습니다. 학자들은 조하르가 모세 데 레옹에
의해 쓰여진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더 상위
의 , 더 오래된 소스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소스는 바로 시메온 벤 요하이일 것이라고
봅니다. 즉 그의 영이 모세 데 레옹에게 조하르
를 불러줬거나 아니면 모세 자신인 시메온 벤
요하이의 환생일 수도 있을 겁니다. 조하르의
어떤 부분은 자동필사에 의해 쓰여진게 분명하다
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조하르는 1500부터
1800년의300년간 성경이나 탈무드와 같은
권위를 지닌 정경으로 취급되어 왔었습니다.

또 다른 카발라의 대가는 이삭 루리아입니다.
그는 1534년 예루살렘에 태어났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엘리야 예언자가 루리아의 아버지에게
나타나 카발라의 가르침을 드러낼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루리아가
여덟살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소년은 어머니
와 더불어 카이로로 이사갑니다. 그는 금새
탈무드의 천재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어린 나이에 그는 8년간의 조하르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는 조하르의 신비에 더깊이
파고들기 위해 나일 강가의 조그만 오두막에
서 홀로 거하며 고행의 생활을 합니다.
거기서 그는 일주일에 오일씩 명상하고
조하르를 공부합니다. 공부와 기도와 금식으로
2년이 흘렀을 때 엘리야가 나타나 그에게
비전을 전수해주었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그에게 팔레스타인으로 가라고
지시했고, 그는 1570년에 팔레스타인의
사페드에 옵니다. 당시 사페드는 아주
번성하던 영적 공동체였습니다. 그야말로
유대인의 샹그릴라였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금새 그가 선생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가르쳤으나
2년도 못되어 죽게 됩니다. 그는 스스로
지은 저서는 별로 없으나 그의 제자들은
그가 가르친 가르침을 수천 페이지나
기록했습니다.

루리아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가르침
말고도 실천적인 가르침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추종자들에게 어떤 특정한 영적 자질, 특히
기쁨(joy)을 함양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또한 분노의 죄를 피하도록
학생들에게 충고했습니다. 다른 죄들은 영혼의
"손발들"을 다치게 하지만 분노의 죄를 영혼 전체를
다치게 한다고 루리아는 말했습니다. 루리아는
말하길 분노는 지극 높은 영혼으로 하여금 그 사람
에게서 떠나게 만들고, 성내는 사람은 "낯선 신"
에 의해 채워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분노의 결과는 그 누구에게 있어도 정말로 심각
합니다. 억제되지 않은 분노를 발산하는 자는
실제로 그 자리에 자기 영혼의 일부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내면으로부터 분노가 솟아나 자신의
존재를 점령해 버리지 못하게 할 때 당신은
신성한 사랑의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서 자신의 카르마나 심리적 문제들
과의 만남을 헤쳐나갈 수 있을 때 당신은 최종적
만남을 위한 준비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신비가들이 추구하는 한가지 만남, 즉
당신의 참자아와의 만남입니다



카발라는 분명 성경에 근거를 둔 유대교의 한 갈래이지만, 신을 대하는 방식은 정통 유대교나 기독교와는 분명 다르다.  카발라에서는 단지 신을 절대자로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진정한 합일을 추구한다고 한다. 이는 불교, 동양사상, 힌두교와 통한다. 특히 신을 어떠한 실존으로 보고 그 신과의 합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힌두교와 많이 유사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