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공간/칼럼

"깨어있는 영성"

힐링&바이블센터 2007. 2. 15. 10:40



 

 

 

 

 

 

 

 

 

 

 

 

 

 


  




광산에서 금을 찾으려면, 광맥을 뚫어야 하고..

지하에서 온천을 찾으려면, 수맥을 찾아야 하고..

히말라야를 등반하려면, 등산 루트를 알아야 한다.

열심과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며, 영의 세계도 동일하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받는다.

그러나 축복은, 반드시 행함으로 받는다.

다시말하면, '심어야 거둔다'는 진리이다.

그것이, 축복의 맥이며, 기적의 대로이다.


나는, 목회 하면서..

기도 많이하고 열정으로 헌신한다고, 자화자찬 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런데, 그분들의 삶속에서, 한가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신기하리만큼 무기력하고, 믿음이 장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그럴까?'를 묵상하던 중에, 한가지 발견한 것은..

그런 분들의, 동일한 현상이..

심는것에 약하고, 행함과 적용에 더디고 인색하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배고픈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불쌍히 여기고는 기도해 준다고 말한다.

(사실은, 진짜 기도를 해주는지도 확인되지는 않는다)

한 겨울에, 헐벗은 사람을 만났다고 하자.

그러면 상당수의 성도들은 얼마나 춥겠는가?.. 등을 두드리며, 기도해 준다고 위로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 사람을 위하여, 아무것도 심지 않는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성경은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먼저 슈퍼로 달려가서 '빵 하나라도 사주며..

위로하고, 기도해 주라'는 것이다.

헐벗은 사람이 있으면, 얼른 겉옷을 벗어주든지 아니면,

옷가게에 가서 '옷을 사 입히며 격려하며, 기도해 주라'는 것이, 하나님의 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대부분 심은 것이, 인색한 레위인과 제사장 같다.

우리도, 사랑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계산적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도, 개운치 않은 것이다.

우리도, 긍휼을 베푼다.

그러나 우리의 긍휼에는, 희생이 없다.

그래서 긍휼을 베풀고도, 갈등이 많은 것이다.

사실은 이것이 얼마나 영적인 맥을 놓치고, 사는 것인지도 알지를 못한다.

영적센스의, 고장 때문이다.

보이는 사람에게 베풀고 심지 못하면서, 어떻게 안 보이는 하나님께 심고 드리겠는가?


곤고함에, 이유있다.

성장치 못함에, 이유있다.

영계가 열리지 않음에, 이유있다.

심지 않고, 거두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자녀를 위하여는, 몇만원 수십만원씩도 갈등없이 심으면서..

남을 위하여는..

그리고 교회와 복음을 위하여는, 얼마나 계산적이며 이기적인가?

그렇다고..

무조건 없는 형편에도 '빚을 내서, 이웃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심으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엄청난 사업을 하시는 분이, 주일 헌금을 오천원 하는 것을 보았다.

고궁에 입장료 내듯이..하나님이 거지이신가?

그것도, 벌벌 떨면서...

그후에 그 사람의 사업은, 내리막 길을 달렸다.

나는 한 달 수입이, 천만원 정도인 분이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한푼(한번도)도, 심지 않는 것을 보았다.

물론, 십일조도 안하고..

그리고 그분은 그후에 어려운 일을 당하여, 하루 아침에 재산을 몽땅 잃게 되었다.


우리의 믿음은, 무엇으로 표현되는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그것은, 물질로 심는 것이다.

어떻게, 심을까?

쓰고 남은 것으로 심는 것은, 성경의 식이 아니다.

쓰기전에 먼저, 자원하는 마음으로 심는 것이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현대인들이 어디 있을까?

내 시간을 희생하고 쪼개서, 하나님께 드림이 헌신이 아닐까?

당장은,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 안보일수가 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어떻게 금방 열매를 기대하겠는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야 거두는 것이다.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퍼주고, 나누고, 베풀고 없는 중에도, 힘껏 하나님께 심는 사람들이..

기도만 하고, 말만 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큰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눈으로 목격하고, 귀로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심으라고 하심은,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돈(?) 달라 하시겠는가?

우리를, 위해서이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고, 우리의 보물이 있는 만큼 사랑도 있기에 그렇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위하여 아까울 것이 없다.

만날때마다 선물을 준비하고, 맛난 음식을 아깝지 않게 사주곤 한다.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펑펑 쓴다.

왜? 사랑하니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사랑하시는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입술로는, 누가 구제와 긍휼사역을 못할까?

마음으로는, 누가 선한 사마라아인이 안될까?

우리의 문제는,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쟤를 보내소서" 에 있다.

주님은, 나에게 요구하시는 양이 있으시다.

그것을 안 채우고서는, 하늘이 열리지 않는다.


'심어야 거두고 심는대로 거둔다'는 진리는, 진리중에 진리이다.

정말, 돈벌어서 남 주어야 하고..

돈 벌어서 교회를 섬겨야 하고, 돈벌어서 하나님께 심어야 한다.

그것이, 참 영성이다.


존 캘빈의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지갑이 은혜를 받아야, 진짜 은혜 받은 것이고..

지갑이 열려야, 하늘문도 열린다"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맥을 못잡고 헤매인다.

그리고는, 기도실에서 울고 불고 난리이다.

심지도 않으면서 금식하고, 베풀지 않으면서 철야한다고 법썩이다.

심는것은, 어렵고 없을때.. 심어야 한다.

심는것은,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며, 믿음이며, 깨어있는 영성으로 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중에 하나는, 남의 필요를 알게 하는 통찰력을 주시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옆에서, 누가 굶어 죽어가도 모르고 못느낄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임재 가운데 있으면, 남의 필요가 보이고, 남의 고통을 느끼게 하신다.

그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증거였다.


'물질의 복주시면, 헌금하겠나이다'

'건강주시면, 주의 일 하겠나이다'

'시간주시면, 봉사하겠나이다'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식이다.

하나님의 식은, 없을때 심으면 복을 더하신다.

아플때 전도하고, 봉사하면, 젖과 꿀을 거두게 하신다.



하나님 앞에 나올때, 빈손으로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도 그냥, 빈손으로 돌려 보내시지 않으신다.

어려운 교회나 이웃을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빈손으로 살게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때나, 어려운 이웃을 찾을때 빈손으로 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생을, 빈손으로 궁핍하게 하신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부자를 통해서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신령한 사람을 통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기 먹을 양식 전부를, 주님께 심었던 어린아이를 통해서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축복과 기적을, 기대하고 은근히 사모한다.

그러면서도, 심지는 않는다.


비움의 영성이 있어야, 채우시지 않을까?

심음의 영성이 있어야, 거두게 하시지 않을까?

내것을 꼭 움켜쥐고 있으면서, 주여! 채워 주세요. 복을 주세요.

그러나, 어디다 채워주나?



비움과 베풂의 영성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분들로 인하여, 한국교회와 주의 나라가 해같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되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드리고 베풀고 섬김의 스티그마 없는, 기도와 예배를 중단하라.

그리고 이제라도, 궤도를 수정하라.

그래야 축복과 기적의 맥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심어야, 거둔다.

심은만큼, 거둔다.

심는대로, 거둔다.

내가 못 거두면, 자식대에서라도 거두게 하신다.

행함없이, 주여! 하지 말라.

행함없는 기도소리가 클수록, 하나님은 멀리 숨어 계실 것이다.

심지 않고, 섬기지 못하는 모든 신앙행위는, 가증한 것이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문제이며, 믿음이 문제이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면, 충분하다.

하나님은 그것만으로도, 어쩔줄을 몰라하시며 기뻐하신다.

우리 주변에는 은혜 받은 자들과, 하나님께 '만복을 받았다'고 펄펄 뛰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 은혜를 갚는 자들은 휘귀하다.

마치 열명의 문등병자들이 다 고침 받았으나, 아홉명은 다 제 갈길로 가고

한명만이, 주 앞에와 감사의 표현을 함으로, 받은 은혜를 보답하였다.

지금도 하나님은 "아홉명은 어디갔느냐?"고 찾고 계신다.

어떻게 보면 물질의 복은, 성화나 자아의 깨어짐과도 상관없고 은사와도 무관하다.

물질축복의 맥은, 심으면 거두고 심는대로 거두게 하신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며

안 심으면 못 거두는 것이 아니라, 있던 것도 거두어 가신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교회들을 향하여..

"염전이다. 쫀쫀하다"고 비아냥 거릴때, 할말이 없다.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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