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공간/칼럼

풍랑의(자살) 배후 세력을 대적하라

힐링&바이블센터 2007. 2. 15. 10:28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고사성어가 있듯이..

우리가, 풍랑의 실체를 바로 알고 이해하면, 어떤 풍랑도 능히 이기는 일에..

큰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어렵다.

그래서, 고해(苦海)라 말한다.

이전에도 어려웠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도 어렵고, 저기서도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미풍이든, 역풍이든, 광풍이든, 불게 마련이다.

이러므로, 풍랑이 없는 인생을 바람 자체가 모순이며..

잘못된 기대이다.

그 어딘가에는, 순풍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폭풍전야'일뿐이다.


요즈음에는, 개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적인 모순과 혼란..

그리고, 기상이변와 지구온난화의 풍랑도, 광풍에 가깝다.

서민은 서민대로, 부요층은 부요층대로, 광풍에 견디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쓰나미 앞에선 부평초와 같다고 할수 있다.

하루를 살아냄이, 기적이며 축복이다.

온통 지뢰밭같고, 얇은 얼음위를 걷는 듯 하다.

이와같은 때에, 누구를 의지하며.. 어디가 안전할까?

누구도 믿을수 없고, 어디에도 안전보장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달라진 양상이 있다면, 예전에는 풍랑이 미풍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풍랑의 수준이 광풍수준이다.


광풍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하나는, 예고없이 갑자기 분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광풍을 제어할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광풍 앞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누구나(신자든 불신자든),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타고 가시던 배도 풍랑을 만나지 않던가?

그렇다면, 우리 같은 사람이랴!

그러면, 우리가 풍랑을 만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가 풍랑을 만날 때, 인본적인 시각을 가지고 풍랑을 주목하면 안된다.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풍랑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뿐만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풍랑과 부딪히거나 싸우면, 백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풍랑의 배후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기때문이다.


요즈음 자살이, 사회적인 이슈(issue)로 등장하고 있으며..

도미도(domino)현상까지, 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평균 39명이 자살을 한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숫자이다.

물론, 자살하시는 분들에게는..

나름대로 고충과 이유가 있는 것은, 우리가 동정하고 공감할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요즈음의 자살 도미도 현상은, 심상치가 않다.

예전에는, 어렵지 않았나?

예전에는, 우울증이 없었나?

예전에는, 그만한 스트레스가 없었나?

아니다.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양태가 달라서이지.. 고난과 스트레스는 동일하다.

어쩌면 예전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요즈음.. 자살하는 분들이 많은가?

그만큼 살기가 힘들고, 어려워서라는 말에 공감도 하지만..

자살의 배후에는, 사단의 역사, 즉 자살의 영이 꿈틀거리고 있기때문이다.

예전에는, 숨어서 공격하던 사단이..

지금은 그 실체를 드러내고, 정면에서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공격루트와 양상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자살하는 분들의 자살하는 이유가, 그런것이라면..

세상에, 살아 남을자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보다 백배나 힘들면서도, 악착같이 생명을 이어가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보기에, 어떻게 저런 광풍속에, 생존이 가능할까? 하시는 분들도..

잘 살고, 계신다.

이런것을 보더라도, 자살의 배후에는..

자살을 충동하고 부추기는, 자살의 영이 역사함이, 성경적인 시각이라 할수 있다.

그 근거로..

마귀는 '죽이고, 빼앗는 영이라'고, 요한복음 10장에서 증거하고 있기때문이다.

반대로 성령은, '살리시는 영'이시다.

이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죽어도 산다.

죽어도, 못 죽는다.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요즈음 자살하는 분들이, 대부분 교회 다니는 분들이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될때마다, 마음이 아리고 시리다.


자살외에도 풍랑은, 사람과 교회와 가정을 가리지 않고 휘몰아 친다.

인간의 힘으로 제어가 안되며, 통제불능한 것은 모두가 광풍인데..

그 배후에는, 반드시 사단이 역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가정해체, 부부싸움, 이혼, 혈기, 범죄, 나쁜습관, 살인, 폭력, 무정함..등

상식적으로 어긋나고..

기본에서 벗어나는 모든 일 뒤에는, 마귀의 조종과 충동이 있음을 통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로.. 이성으로.. 상식으로.. 풀리지 않는 것이며..

풍랑이, 좀처럼 가라 앉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광풍을 만나셨을때, 예수님은 돛대를 높이라거나..

노를 더 열심히 저으라고, 제자들을 다그치지 않으셨다.

광풍은, 상식과 과학으로 통하지 않기때문이다.

예수님은 풍랑을 향하여, '꾸짖으시며 잠잠하라' 명령하셨다.

다시말하면, 말씀으로 대적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풍랑의 실체와,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계셨다.

풍랑이 무슨 귀가 있다고, 말씀하시겠는가?

예수님은, 풍랑을 일으키는 주범을 마귀로 보신 것이고..

그 마귀를 향하여, 꾸짖으신 것이다.

그러자 곧, 바람이 잔잔해 졌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

죽음의 바람, 미움의 바람, 가난의 바람, 허무의 바람, 다툼의 바람, 분열의 바람..

질병의 바람..등과 직접적으로 부딪히거나 싸우면, 백전백패한다.

사단이 일으킨 바람보다, 더 강한 바람을 소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바람..

즉 성령의 바람으로, 악한 바람을 대적하여 멈추게 해야 한다.

광풍이 무서워 하는 것은, 과학도 열심도 의로움도 공로도 지식도 아니다.

오직 우주를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예수 이름의 권세뿐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온갖 바람을 일으켜, 우리를 죽이고 망하고 빼앗으려는..

사단의 궤궤를 향하여, 말씀과 권세로 명하여 대적함으로, 풍랑을 잔잔케 해야 한다.

예수님이 타신 배가, 광풍을 만났지마는..

예수님은 결국, 목적하시던 곳에 도착하게 되신다.

우리 또한, 우리의 가는 길에, 시시각각으로 광풍이 불어..

우리를 방해하고 죽을 만큼 힘들게 할지라도, 순간순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여..

풍랑뒤에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함으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며.. 소망의 항구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육안으로 광풍을 보면, 엄청나지만..

믿음의 눈으로, 풍랑을 바라보면, 허상에 불과하다.

이러므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어떤 일이나..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직접 부딪히거나 싸우거나 상대하지 말고..

그 배후에서, 도사리고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하라.


풍랑이 없는 순풍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이 아니라..

풍랑을 잔잔케 하며, 뚫고 나가는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삶이며, 복음의 야성이다.


우리는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에 촛점을 맞추면 안된다.

세상에 어떤 풍랑과, 마귀의 어떤 궤궤도..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멈추게 할수 없음에, 복음의 핵심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말해, 풍랑이 거세게 일든, 잠잠하든..

우리는, 풍랑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풍랑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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