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리더십

[스크랩]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

힐링&바이블센터 2006. 9. 11. 16:59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

진 립먼-블루먼 지음

부글북스 / 2005년 12월 / 463쪽 / 15,000원


▣ 저자  진 립먼-블루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 교수이며 이 대학원의 리더십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사회심리학자이며,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에는 카네기-멜론 대학과 스탠포드 대학에서 수학과 통계학, 컴퓨터 과학 등을 공부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에는 백악관에서 특별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1979년부터 1984년 사이에는 워싱턴에 있는 경영컨설팅 회사인 LBS 인터내셔널의 사장을 지냈다.


▣ 역자  정명진

195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섹스의 영혼』, 『세월』, 『제1의 성』,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리더십 연구는 전통적으로 리더에 맞춰져왔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지지자들도 리더십의 형성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리더십은 리더와 지지자의 상호관계 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특히 리더가 독성을 강하게 뿜는 사람일 경우, 그들의 행동은 지지자들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온 리더십 관련 책들은 리더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반쪽을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은 그 초점을 지지자에게로 옮겼다. 우리 사회에는 리더십이라면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지금 당장 리더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둘러봐도 양질의 리더보다는 나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왜 그럴까. 나쁜 리더들이 그 자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의 지은이 진 립먼-블루먼 교수는 지지자들이 독성 강한 리더를 참아내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더 좋아하고, 그런 존재가 옆에 없을 때에는 굳이 창조해내기도 하는 배경을 분석한다. 심리적 접근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리더십 문제의 일부분을 지지자의 자질부족으로 돌리는 시각이 참신하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우리 모두 리더인 한편으로 지지자이다. 이 책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리더십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우리의 독성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게 하고 그 독성을 뺄 수 있도록 돕는다. “리더십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관찰되었으면서도 막상 이해된 부분은 가장 적은 분야 중 하나다.”라는 어느 저술가의 말을 명심하도록 하자.


▣ 차례

- 저자 서문


1부 큰 그림을 그리다

1장 독성 강한 리더: 그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2부 우리는 왜 리더를 그토록 원할까?

2장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리더를 찾게 하는 심리적 욕구

3장 우리의 내면 저 깊은 곳: 삶과 죽음 그리고 불멸에 대한 환상과 공포

4장 불확실성과 변화의 세상: 확실성과 안정의 세상

5장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은 어떻게 되나: 신을 창조할 위험이 있다

6장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세상: 자존, 성취 도덕률, 영웅적 자질의 요구


3부 독성 강한 리더와 그를 따르는 지지자는 왜 나오는 걸까?

7장 합리화와 통제 신화: 독성 강한 리더에게 권좌를 계속 허용한다

8장 온화한 지지자, 리더의 측근, 악의에 찬 지지자: 독성이 없는 리더를 경계선 너머로 밀어넣다

9장 이상야릇한 짝: 언론과 이사회


4부 독성 강한 리더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10장 거기에도 한 줄기 희망은 있는가: 독성 강한 리더를 참는 일에도 뭔가 이점이 있는가

11장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독성 강한 리더를 다룰 수 있는가

12장 독성을 피하거나 저항할 기회를 갖다: 고귀한 이상과 독성의 신호를 탐지하다

13장 독성 강한 리더에게서 벗어나라: 숨은 리더를 찾고 우리의 리더십 잠재력을 발견하다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

진 립먼-블루먼 지음

부글북스 / 2005년 12월 / 463쪽 / 15,000원


1부  큰 그림을 그리다


독성 강한 리더: 그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우리는 치명적인 리더들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그들을 참고 견디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너무나 놀랍게도 아주 오랜 시간 그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참아낸다. 사실 ‘참아낸다’는 단어는 너무 약한 표현이어서 치명적인 리더들과 그들의 지지자 사이에 형성되는 복잡한 관계를 온전하게 묘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런 리더들은 처음에는 매력을 발산하다가도 조금 세월이 지나면 지지자들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학대하며, 음흉한 수단으로 상처를 입히다가 끝내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열악한 상태로 빠뜨려버린다. 그런데도 많은 지지자들은 그에게 계속 매달린다. 독성 강한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리더를 참아내는 일 이상의 짓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리더들보다 치명적인 리더들에게 더 아첨하고, 더 부추기며, 실제로 더 좋아한다. 그런 놀라운 선택은 리더들이 자신의 자질을 떠벌리며 자랑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정계 및 경제계를 불문하고 지지자들의 인품을 갉아먹고, 추종자들을 교묘하게 조종하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파괴하고, 점점 작아지게 만들며, 급기야는 제거하기까지 하는 치명적인 리더의 출현에는 지리적인 국경선이 따로 없다. 눈길을 주는 곳 어디서나 독성이 강한 지도부의 증거가 풍부하게 눈에 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정말 놀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지지자와 전기 작가들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는, 인정하고 싶은 정도보다 훨씬 더 자주, 다양한 수준의 독성을 드러내는 리더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찬양하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우리는 그런 리더들이 조직이나 제도를 혼란 속에 빠뜨리고, 불운한 지지자들을 절망의 구덩이로 처박아 넣은 뒤에야 그들의 독성을 알아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 더더욱 나쁜 것은, 우리가 치명적인 리더들의 무능을 그때그때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도 그들을 막기 위한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부 고발자들이 자신의 이름과 경력에 닥칠지도 모르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 전면에 나설 때조차도,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그로 인해 가면을 벗게 된 사악한 지도자들의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일반 대중과 언론 매체들은 종종 내부 고발자들을 진정으로 환호하며 반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고발자들은 자기 조직 안에서는 갖가지 형태의 반발에 시달려야 한다.


사전을 보면 ‘toxic'은 ’하나의 독소로 행동하는, 혹은 독의 효과를 지닌‘으로 정의되어 있다. 정말이지 독이 되는 리더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매우 심각한 해를 입히는 경향을 지녔다. 지지자들이 리더의 해로운 영향으로 고통 받는 때는 리더들이 자신의 안녕과 권력을 지지자들의 요구 사항보다 우위에 둘 때다. 리더들이 시치미를 뚝 떼면서 다양한 형태의 불명예스런 행동에 빠질 때도 지지자들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은 엄청난 피해를 견뎌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치명적인 리더들이 우리를 잘못 대접하다가 그들 마음대로 우리 곁을 떠나도 언제나 우리가 참고 가만 내버려두는 이유에 천착하며 한번 명확히 밝혀볼 때가 아닐까? 최근 들어 기업의 치명적인 경영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폭로되면서 우리의 인내심도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나의 취지는 희생자를 탓하자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산업계와 정부, 학교, 공동체, 사회, 그리고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리더들을 받아들이도록 유혹하는 그 힘들이 얽혀 만들어낸 덫을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덫에 걸린 지지자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그러면 우리는 더 훌륭한 리더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자신에게 내재한 리더로서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부  우리는 왜 리더를 그토록 원할까?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리더를 찾게 하는 심리적 욕구


우선 리더를 찾게 하는 유력한 심리적 요인 여섯 가지부터 살펴보자.


1) 권위적인 인물이 부모의 역할을 충실히 대신해주리라고 믿고 싶은 욕구

우리 모두는 너나없이 유년기라는 가마 안에 넣어져 구워진다. 우리의 부모, 선생, 그리고 아주 폭넓은 범위의 다른 보호자에 의해 형상이 만들어지고, 조각되며, 비틀어지고, 색깔이 넣어지고, 구워지는 것이다. 삶의 초기에 보살핌을 주는 사람들에게 의존했던 경험은 권위를 갈망함과 동시에 혐오하는 모순을 우리 내면에 뿌리 깊이 심는다. 그 영향은 매우 커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 모순을 상사나 배우자, 목사, 치료사, 대통령과 왕 같은 다른 막강한 인물로 옮기는 것 같다.


2) 안전과 확실성에 대한 욕구. 이 욕구의 자극을 받아 안전과 확실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유까지 기꺼이 포기한다.

하나의 독립된 어른으로서 가족이라는 고치를 빠져나와 마침내 자유로워졌는데도 우리의 행복감은 금방 사라지고 말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이 새로운 자유를 ‘참을 수 없는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방향 감각을 잃고, 무의미한 바다에 빠지기도 한다. 자유가 우리를 낙담시킬 때면, 우리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며, 자신에게 잘 해주고 있다고 느껴지는 지도자 누구에게나 끌리는 경향을 보인다.


3) 선택되었거나 특별하다고 느끼고 싶은 욕구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환상은 영향력이 크고 위안을 주는 한편으로 리더들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교조(敎條)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많은 독성 강한 리더들도 선택된 사람들이 저들끼리 똘똘 뭉치게 만들고, 그들을 다른 존재로부터 멀리 떼어놓기 위해 이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믿음을 동원해왔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보내는 조롱도 선택된 사람들의 자기 믿음 혹은 제품에 대한 믿음을 꺾지는 못한다. 실제로 보면 아웃사이더들의 경멸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때가 더러 있다. 그들을 서로서로 더 단단하게 단결하도록 묶어줄 뿐 아니라 그들의 리더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든다.


4) 공동체의 구성원이고 싶은 욕구

비록 특별한 존재인 양 느끼기를 좋아하지만, 우리는 또한 어딘가에 소속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따지고 보면 선택된 존재로 느끼는 것 자체가 엘리트 그룹의 회원 자격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 대목에서는 두 개의 다른 심리적 힘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심리적 힘은 유독성 리더를 참고 견뎌내고 심지어 찾아 나서겠다는 마음의 자세와도 걸려 있다. 여기서 또 분명히 밝혀두자. 육체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이 불안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제로 사회적 죽음 앞에서 느끼는 걱정이 육체적 죽음에 대한 공포 못지않게 크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사회적 소속감이야말로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기꺼이 많은 것을 희생하려 들 수 있는 막강한 동인이 된다. 사회적 소속감을 얻지 못할 경우 많은 개인들은 인생 자체에서 의미란 의미는 모두 다 빠져나간 느낌을 받을 것이다.


5) 추방, 고립, 그리고 사회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

조직에 불만을 품는 사람은 자기뿐이며 다른 어떤 영혼도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침묵의 반대자들은 대체로 동료로부터의 추방을 두려워한다. 그들이 불만과 분통을 꾹꾹 누르면서 나쁜 리더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물결에 섞여 들어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6) 나쁜 지도자에게 도전할 수 없다는 개인적 무력함에 대한 두려움

독성 강한 리더들에게 쉽게 넘어가도록 만드는 또 다른 심리적 동인 하나는, 그처럼 막강한 인물과 마주할 때면 개인은 너무나 무능하다는 판단이다. 다른 사람도 그 리더를 뒤엎어버리고 싶다는 희망을 공유하고 있고, 적당한 격려나 안전장치만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지자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의 의견에 다른 사람도 동의한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어도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독성 강한 리더들은 ‘반역자’와 ‘말썽꾼’, 그리고 팀플레이어가 되지 못하는 개인들을 고립시키고 그들에게 이목이 집중되도록 함으로써 집단의 역학관계를 악용하는 것 같다. 그들은 그 ‘나쁜 녀석들’을 다른 사람이 지원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협박을 동원할 수도 있다. 또한 반역자로 돌아설 위험의 소지가 많은 구성원들에게는 다양한 보상으로 회유하는 전략이 종종 쓰인다. 독성 강한 리더들은 종종 교묘한 전력을 동원하여 반대자들을 고립시킨다. 그들은 반대자 집단의 각 구성원에게 다른 구성원들은 리더의 입장에 완전히 동의하고 있다는 점을 주입시킴으로써 반대자 모두에게서 묵종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치명적인 리더들은 잠재적인 도전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교훈으로 힘을 극적으로 과시할 때도 종종 있다. 어떤 때는 반대자들을 그 자리에서 해고하기도 한다. 이렇듯 협박의 수단은 무수히 많다.


요약하면, 부모나 다른 보호자들과의 경험에서 비롯된 개인의 심리적 욕구 때문에 우리가 독성 강한 리더들에게 쉽게 홀리게 된다는 말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부모가 되었든 아니면 다른 보호자가 되었든 관계없이, 초창기 부정적인 역할 모델과의 경험이 우리에게 학대를 참거나 우리 자신이 학대하는 존재가 되라고, 그리고 기만과 조종, 파괴를 참고 견디거나 그것들을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싶은 욕구 또한 우리가 치명적인 리더에게 도전장을 던지기 전에 조심스럽게 재삼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 리더의 화만이 아니라 그 집단의 비난과 추방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부 고발자들이 걷게 되는 믿지 못할 운명만으로도, 너무나 영웅적이거나 지나치게 소견머리 없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는 치명적인 리더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일이 결코 얕볼 게 아니라는 뜻의 경고가 되기에 충분하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은 어떻게 되나: 신을 창조할 위험이 있다


위기에 빠진 사람들은 누구나 리더들에게 자신을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모범적인 리더들이 마치 신처럼 행동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다가 보통 사람들의 의탁 성향이 결합되면, 적어도 네 가지 심각한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 중 몇 가지는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리더들에게 해로운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까지 양보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들에게 추가로 부담을 지운다. 그 인간들 역시 실망시킬 때가 종종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독성 강한 리더들에게 자신을 속박시켜버릴 위험이 있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모범적인 리더로 남았을 사람까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하여 치명적인 리더로 전락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우리는 권위주의에게 잠시 자신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장을 보낸다. 그런데 그 손님이 뒷방 침실에 편하게 자리를 잡으면 쫓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위기의 초기 단계에서는, 당시 권좌에 올라 있던 지도자의 지지도가 극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대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 지도자가 위기를 신속히 풀지 못할 경우, 사람들은 금방 그를 대체할 인물을 찾기 시작한다. 위기는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그 지표면을 뒤흔들어버린다. 그런 순간에 맞닥뜨리면 기존의 리더는 번창 아니면 실패 둘 중 하나를 경험하게 된다. 비틀거리던 리더라면 다시 생생하게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신출내기 리더들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 상황은 리더로는 어울리지 않을 듯했던 모든 부류의 사람에게 리더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리더까지도 영웅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비전만 훌륭하게 제시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존재로 부각될 수 있다.


역경이 밀어닥칠 때에는 능력보다 매력이 더 큰,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앞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경고했다. 그들은 특별히 호소력을 지니는 급진적인 구제책을 내놓는데, 그 대책이 지지자들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실패로 몰아넣었던 그것과는 180도 다른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 분석이 옳다. 정의상으로 보아도 위기란 것은 그때까지 실행되어 오던 대처 메커니즘이나 자원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면 진기한 해결책을 지닌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들이 뜨거운 환영을 받는다. 따라서 리더가 특별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고 큰 소리로 선언할 경우, 그 사람의 말은 지지자들을 아주 솜씨 있게 설득하며 그들에게서 믿을 수 있다는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러면 상황은 더욱 무르익어 이제는 그 리더가 “지지자들이 자신을 투영하고 의탁해도 좋은 매개물”이 된다.


물론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해서 반드시 독성이 실리는 것은 아니다. 위기는 종종 거친 조치들을 요구한다. 전쟁 같은 심각한 위기 상황이 벌어질 경우에는 리더가 등화관제와 배급제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또 적절할 것이다. 그렇지만 위기는 일부 리더, 심지어 민주 사회의 리더들조차도 강력한 리더십의 경계를 넘어서서 바람직하지 않은 권위주의로 넘어가게 하는 독특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리더들은 전통적인 시민의 가치에 제한을 부과할 수 있고, 다른 민주적 규범들을 침범할 수도 있다. 위기로 인해 생겨난 틈새로 독성 강한 리더들의 보증서라 할 수 있는 권위주의가 스며 들어온다. 너무나 무섭고 낯선 바다에 표류하고 있느니 우리 대부분은 권위에 넘치는 선장이면 누구에게나 자유를 기꺼이 내놓으려 들 것이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그렇게도 중요한 표현의 자유마저도 위기 상황에서는 매우 신속하게 위기의 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많은 지도자들이 뒤늦게 깨닫듯이, 서둘러 의견의 일치를 내려 드는 집단사고는 위기의 환경에서 발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불안이 팽배한 시대에 지도자의 결정에 노골적으로 반대의 뜻을 표하는 사람은 종종 일치단결을 추구하고 감시하는 단체의 분노를 살 수 있다. 이처럼 위기로 인해 개인적인 자유까지 축소하려 드는 자세 혹은 열광은 일부 리더들에게 내재해 있던 유독한 기질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정말로 중요한 결정을 오직 강력한 리더에게만 맡겨버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 이유는 그 리더야말로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리라는 환상을 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일시적으로는 우리의 불안을 달래줄지 몰라도 한편으로 보면 독성 강한 물질을 가지고 위험한 장난을 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분명히 말하지만, 위기의 시기에도 리더들에게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권한을 허용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안전을 효과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3부  독성 강한 리더와 그를 따르는 지지자는 왜 나오는 걸까?


합리화와 통제 신화: 독성 강한 리더에게 권좌를 계속 허용한다


치명적인 리더 밑에서 삶을 경험해본 사람은 그 리더가 상사이든, 배우자이든, 통치자이든 간에 거기서 탈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안다. 우리가 질 나쁜 리더를 참아내면서 자신에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제시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여행의 출발 단계에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주제까지도 솔직하게 파고들기로 약속하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 자신을 똑바로 응시할 차례다. 그리고 치명적인 리더가 계속 그런 모습으로 남게 되는 이유를 알아야 할 때다. 바로 합리화이다. 치명적인 리더 밑에서 지내면서도 그 사람의 지시에 복종하거나 그 사람에 맞서는 행동을 하지 못할 때 자신에게 내 놓는 그 해명 말이다.


지지자들이 자신에게 내놓는 합리화는 결국에는 통제 신화로 굳어간다. 여기서 말하는 통제 신화란 우리가 해야 할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하여 신성하게 품고 있는 믿음을 뜻한다. 이 믿음은 우리의 초자아 안에서 굳어지는데, 거기서 그 믿음은 우리의 행동을 다듬을 공작소를 세운다. 이 신화는 어떤 문제나 자기보다 더 강력한 개인에 맞서 감히 도전장을 던지지 못하는 무능력의 느낌을 표현한다. 이 통제 신화가 한 묶음으로 작용하면서 리더를 득의양양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그 사람에게 초인적인 면모를 덧씌우게 된다. 간접적으로는 자신의 무능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면서 말이다.


■ 반격의 두려움을 불어넣는 통제 신화

이 통제 신화는 리더에게 도전할 경우에 되돌아올지도 모르는 반격에 대하여 큰 소리로 외친다. 거기에는 리더에 맞섰다가 실패하는 개인이면 누구나 당하게 되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표현되어 있다. 앙갚음의 종류도 그 범위가 상당히 넓어서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존재에 의해 처벌받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낙인이 찍히지는 않을까 하는 종교적 혹은 영적인 두려움에서 시작한다. 게다가 리더를 뒤엎거나 곤경에 빠뜨리게 하려 들었다는 이유로 집단이나 어떤 운동의 중심으로부터 추방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보태진다.


■ 지지자들의 혜택을 걱정하는 통제 신화

이 통제 신화는 도전장을 던졌다가는 가만히 복종하고 있으면 저절로 주어졌을 재원까지 박탈당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신화는 그 리더의 굳건한 지지자로 남아 있을 경우에 누릴 수 있는 현재와 미래의 혜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대체적인 현상 유지를 보호하는 통제 신화

이 통제 신화는 좀더 큰 집단의 문화적 기풍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 집단은 우리가 일하는 회사일 수도 있고 우리가 속한 더 큰 사회일 수도 있다. 전통 또한 그러지 않아도 무거운 그 신화에다가 더 큰 힘을 실어준다.


■ 우리로 하여금 리더로서의 책임을 피하게 하는 통제 신화

이 통제 신화는 힘들기만 한 리더십이라는 과업을 짊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확신을 얻는 데 매우 유익하다. 또한 사업에 몰두하고, 가슴에 고이 묻어두었던 꿈들을 실현하게 한다. 적어도 치명적인 리더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는 그런 성취가 가능하다.


■ 고귀함과 불멸을 약속하는 통제 신화

이 통제 신화는 인간이 염원하는 것 중에서도 가장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유혹적이다. 영웅적인 자질과 용기, 성취 그리고 인류에 대한 다른 기여들을 건드리는 것이다. 고귀함과 불멸과 관계있는 통제 신화가 아마도 모든 통제 신화 중에서 가장 위험할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좋거나 나쁜 리더에게 취약하도록 만드는데, 그 리더는 자신의 ‘고귀한 이상’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에게 손짓한다. 그러나 그 통제 신화는 건설적인 리더와 치명적인 리더를 가려내는 방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 묶음의 통제 신화들은 지지자들로 하여금 환상과 자기기만이라는 마약에 쉽게 중독되게 한다. 리더가 가진 특별하고 신과 같은 자질을 믿게 되면, 지지자는 자신이 그 리더의 초자연적인 힘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가늠하는 일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개인을 너무나 열렬히 믿어버리기 때문에 그리고 그 리더가 이상을 현실화하는 일에 완전히 자신을 헌신하기 때문에, 자기 최면적인 요소가 강한 다른 모든 예언과 마찬가지로, 그 이상이 정말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성공의 대부분을 그 리더의 이상의 덕택으로 돌리고는 자신의 노력이나 다른 사회적인 혹은 시대적인 환경의 덕이라고는 좀처럼 평가하지 않는다. 영웅적 행위와 불멸의 가능성에 대한 약속은 대단한 호소력을 지닌다. 그것은 또한 죽음을 물리치고 싶다는 존재론적 갈망을 실현하는 데 꼭 필요한 단계로, 우리가 자신의 희생을 먼 미래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일을 돕는다.


통제 신화들이 특별히 잠재력이 큰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욕구를 위해서 뿐 아니라 리더의 그것을 위하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통제 신화들이 너무나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리더는 우리의 행동을 억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일에는 잠시라도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자신을 제어함으로써 리더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베푼다. 그러면 리더는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면서도 불만분자들이 사는 거리를 순찰할 필요가 거의 없다. 그러기는커녕 리더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을 처리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다. 우리의 행동과 관심의 부족, 환상에 대한 취약성, 자기기만에 기꺼이 빠져드려는 성향, 이 모든 것이 리더가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준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 지지자들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한 가지는 지지자들이 자신의 합리화와 통제 신화를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온화한 지지자, 리더의 측근, 악의에 찬 지지자: 독성이 없는 리더를 경계선 너머로 밀어넣다


이 장에서는 잘못된 행동과 요구를 통하여 독성이 없는 리더들을 경계선 너머로 억지로 떠밀 수 있는 세 부류의 지지자들을 만날 것이다. 온화한 지지자들과 리더의 측근, 그리고 악의에 찬 지지자들이 그들이다. 이들 세 부류의 지지자들은 이미 기반을 다진 독성 강한 리더들을 계속 떠받치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한 번 권좌에 오르면 갈수록 더 나빠지는 치명적이고 부도덕한 리더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처음에는 훌륭한 사람이었다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지지자들의 요구에 반응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나쁜 사람이 된 리더에게로 초점을 옮긴다. 희생자들, 즉 치명적인 리더들의 손아귀에서 고통 받는 힘없는 사람들을 책망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망원경의 정반대쪽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목적은 가만두었으면 양질의 리더로 남았을 사람을 어떻게 하여 지지자들이 치명적인 리더의 영역으로 몰아붙였는지를 조금이라도 더 예리하게 자각하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참을성 없는 지지자들은 영광스런 비전에 목말라하는 자신의 갈증을 만족시켜주겠다는 다른 리더가 나타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 배로 갈아탈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조급함이 기존의 리더로 하여금 급히 전략을 만들어내도록 부추기게 된다. 결과는 핵심 아이디어들이 충분히 무르익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 전략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결함이 있게 마련이다. 혹은 완성된 계획이 부서지거나 오도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장기적인 차원에서 그 비전에 함축된 의미가 불분명하여, 자칫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급조된 비전에는 알맹이나 실행 계획에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것을 현실로 구체화하는 일이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이런 결함 때문에 리더는 그 비전에 고속 기어를 넣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더욱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면서 더 세게 페달을 밟게 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지지자 집단은 리더의 측근들인데, 그들에게는 리더를 영락시킬 수 있는 특별한 욕구가 있다. 측근들은 지도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지위와 존재 이유를 끌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언제나 그 지도자가 권좌를 계속 지키는 일에 헌신한다. 그 결과 지도자의 측면을 지키는 게 본연의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권력을 손에 쥐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판단력이 흐려질 때도 더러 있다. 지도자의 측근에 남아 서로 경쟁하는 동료들은 ‘가장 과감하고’, ‘가장 환상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깊이 고려하지 않고 나오는 계획은 독성이 없는 지도자를 독성 강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극단적인 선택 쪽으로 몰아붙인다.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측근이라고 해서 모두가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궁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쿠데타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주요한 지지자인 악의의 지지자들은 분명히 감시의 눈초리를 늦춰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조직의 생리에 예민한 베테랑들은 악의의 지지자를 쉽게 가려낼 수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나타난 이아고(셰익스피어의 『오델로』에 나오는 음험하고 간악한 인물)들이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음흉한 인물로, 자신이 ‘정직한 사람’으로 가치 있는 조언자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그 리더의 몰락을 도모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돌아올 잠재적인 혜택을 기대하면서 야심적이고, 시기심 강하며, 탐욕스런 지지자들은 독성이 없는 리더에게 윤리적 회색 지대로 넘어가라고 부추길 수도 있다. 경험이 부족한 리더, 특별히 자신이 취해야 할 도덕적 경계선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하는 리더가 악의의 지지자들에게 특히 더 취약하다. 이아고의 형제들은 허영심에서부터 불안까지 그 리더가 안고 있는 특별한 취약점을 너무나 잘 찾아낸다.


우리는 위기에 처한 리더를 논의할 때, 지지자들의 욕구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기에 그들이 전지하고 전능한 인물을, 말하자면 기꺼이 신의 역할을 맡으려 드는 누군가를 찾아 나서게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시대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 처하면 지지자들은 대체로 자기 리더가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길 바란다. 일부 리더는 지지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보니, 심지어 그것으로 인해 독성이 가득한 벼랑으로 넘어질 위험이 있을 때조차도 그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다. 신의 역할을 맡아달라는 초청을 받아들일 때 그 리더는 치명적인 리더로 넘어가는 경계선 위에서 망설이고 있는 셈이다. 이제 그들은 더욱 확신에 찬 모습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 상황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는 것 같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덫은 그 리더의 신뢰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지지자들의 삶까지 파괴해버린다.


4부  독성 강한 리더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독성 강한 리더를 다룰 수 있는가


우리는 얼마간은 학대와 부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언론매체를 들여다보면, 경영과 정치, 정부, 체육, 교회, 학계 그리고 심지어 이타적인 목적을 위해 생겨난 비영리 단체의 치명적인 리더들이 도에 넘치는 행동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빈정대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간단히 우리가 조직과 사회적 계급 구조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사는 대가라고 치부해버린다. 또 일부는 속임수를 보더라도 그게 정말로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면 치명적인 리더의 충실한 지지자로서 거기서 나오는 이득의 일부가 자신에게 떨어질지 모른다는 희망에서 그 일에 눈을 감아버린다. 권력이 걸린 관계에는, 비록 지켜지는 일은 드물긴 하지만 언제나 그런 식의 숨은 약속이 따른다.


여기에 대해 항의할 것인가를 놓고 지지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추진력과 억제력 몇 가지를 고려해보자.


■가까운 거리: 개탄스러운 행위를 가까이에서 보는 지지자일수록 그 행위를 까발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정보: 그 문제와 관련된 지식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우리는 그 문제에 점점 더 끌려 들어간다.

■비용: 일부 저항자와 내부 고발자, 독성을 다루는 조련사들은 그런 위험 또한 큰 것이 사실이지만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생기는 진짜 비용이 엄청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 진짜 비용이란 바로 영혼에 가해지는 손상이다.

■희생자와 동일시: 만약에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경우 우리가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모범적인 성격-용기와 위험을 무릅쓰려는 각오, 고결함, 책임감, 봉사, 동정심: 권력에 맞서서 진실을 폭로하는 경우를 분석해보면, 거의 모든 경우에서 개인이 가진 성격의 어떤 면이 행동을 하게 하는 막강한 추진력이었음이 드러난다.

■항의하는 누군가, 혹은 결정적인 사건의 출현: 치명적인 리더의 결정에 항의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 자체가 어떤 집단의 표면 바로 아래에서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던 저항의 불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에 독성 강한 리더를 예방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한 안전장치를 고려해보자. 그렇다고 모든 장치가 어떤 상황에서나 먹히는 것은 아니다.


■임기 제한: 처음 리더가 될 때에는 존경할 만한 능력과 성실함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지나치게 오래 그 자리에 연연하다 보면 결국에는 무능한 인물로 추락하고 만다. 그 결과 그들은 점점 작아져 보통이나 그 이하의 평가를 받게 된다.

■리더를 선택하는 절차에 흠이 있으면 바로 잡아라: 공공 분야나 민간 분야의 리더 선출 과정 전체를 개선하는 일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을 바로잡을 때까지,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한 개인들이 다른 사람을 밀쳐내고 지도부 자리에 오르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존경을 받으면서 떠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내라: 많은 리더들이 자신의 역할에 매달리는 이유가 리더로서 일상적으로 누려온 안락한 특혜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부 고발자들을 보복으로부터 보호하자: 근절되지 않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률로뿐 아니라 조직 안에서도 보호의 성격이 더 강한 정책이 개발되고 실시되어야 한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포럼: “그 결정은 어떻게 나왔나?”, “어떤 정보를 근거로 했는가?”, “누구의 주장으로?” 그리고 “누구의 조언으로?”라는 질문들은 공개적으로 책임을 묻는 포럼에서 리더들이 반드시 대답해야 하는 질문 중 극히 일부이다.


이 장에서 우리는 지지자들이 독성 강한 리더들을 다룰 때 선택할 수 있는 실용적인 아이디어 몇 가지를 탐험했다. 동원 가능한 아이디어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 치명적인 리더들에게 맞서고, 그들이 변화하도록 도우며, 그들의 기반을 은밀히 손상시키고, 그들의 부정한 행위를 고발하며, 그들을 축출하기 위해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이 그런 아이디어들이다. 그 외에도 더 많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치명적인 리더들을 다루는 데 꼭 필요한 행위의 대부분은 소심한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무위의 대가는 아마 그보다 더 클지 모른다. 이 선택들은 독성 강한 리더십을 치유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치명적인 리더에게도 1그램의 예방은 1킬로그램의 치료나 마찬가지라는 옛 격언이 그대로 통한다.


독성을 피하거나 저항할 기회를 갖다: 고귀한 이상과 독성의 신호를 탐지하다


삶의 흥분을 추구하고 불멸을 얻으려고 애쓸 때,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좋거나 나쁜 지도자의 고귀한 이상에 위험스럽게 노출되게 된다. 그 고귀한 이상 중에서 대재앙으로 끝나고 말 것들을 가려내는 작업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희생자와 악한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는 CNN의 국제 뉴스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중동과 코소보, 북아일랜드, 그리고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처럼, 고귀한 이상이 서로 충돌할 때 새로운 공격은 희생자와 그 지도자로부터 더 강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 보복은 또 더 악랄하고 야만적인 앙갚음을 낳는다. 매일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에 일어나는 충돌은 양편의 다음 세대들을 맹목적으로 죽이면서 ‘고귀한 이상’이 부를 수 있는 끝없는 악순환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힘과 희생을 요구하는 고귀한 이상이라면 꼭 의심해봐야 한다. 이 세상을 구하거나 삶을 향상시키는 따위의 훌륭한 행동을 요구하는 이상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까? 그런 이상 또한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위험을 안기는 대가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약속하지는 않는가? 과거를 들여다보면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해결책이 가져올 제2, 혹은 제3의 결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일에만 매달렸던 경우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우리가 환영한 바로 그 해결책이란 것이 새로운 문제를 잉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문제라는 것이 해결된다고 해봐야 어디로 가겠는가. 인간의 문제 또한 그런 이치와 똑같다. 간단한 대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더 다양한 질문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자신의 생명과 문명의 운명이 걸린 이 물음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든다.


현실을 다루다 보면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떠맡고 극복 전략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다. 리더라는 존재가 실은 솜사탕 같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정한 깨달음이야말로 구성원들이, 그리고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가 살아남고 번영을 구가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다. 로널드 하이페츠는 리더의 역할이란 집단에게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하기보다는 그 집단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해낼 수 있는 안온한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암시한다. 전능한 리더가 모든 해악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환상으로 지지자들을 어를 경우, 지지자들이 현실에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는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기회를 차단하는 셈이 된다. 곤경을 직시하고 그것과 화해를 이루고 어쩌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다음에 당연히 닥치게 되는 시련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진다. 우리가 자신의 힘을 발견하는 것도 가혹한 시련 속에서 일 때가 많다.


삶이란 불확실하고, 그것의 의미는 결코 명확하게 드러날 수 없으며,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만 삶의 진정한 흥분을 느낄 수 있다. 만약에 자신이 갖고 있는 영웅적인 자질을 똑바로 응시하고 치명적인 리더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풀려나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가 억지로라도 거쳐야 하는 근본적이고 고귀한 일이 바로 그런 진실을 똑바로 보는 것이다. 두려움을 억제할 필요는 없다. 사실 두려움과 불안도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다듬어 나가려고 노력할 때, 불안은 창조적인 에너지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중요 상징들과 맞붙어 싸울 때 도움이 된다. 그 상징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완성되지 않은 세상이라는 이 퍼즐에 조각을 하나 더 끼워 넣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독성 강한 리더에게서 벗어나라: 숨은 리더를 찾고 우리의 리더십 잠재력을 발견하다


환상의 유혹, 그리고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환상을 내놓는 치명적인 리더의 유혹이 그렇게 강한데, 과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런 환상에서 자유롭게 풀려나 자립적인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 몇 가지 가능한 전략을 고려해보자.


■ 전략 하나: 불안의 학교에 입학한다

지지자들은 존재론적 고민과 상황에 따른 두려움이 그들을 인질로 잡도록 내버려둘 게 아니라 쇠렌 키에르케고르가 ‘불안의 학교’라고 부른 곳에 등록할 수 있다. 거기서 자신의 창의성을 끄집어내고, 좀더 탄력 있는 존재가 되며, 자신의 복잡한 불안과 정면 대결함으로써 성숙해갈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을 배울 수 있다.


■ 전략 둘: 내면의 리더를 찾고 민주적 조직을 강화한다

우리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독립적으로 문제를 평가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 우리는 자신을 지지자가 아니라 리더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리더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해결책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구성원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컨설턴트로서 관련 있는 전략과 해결책에 대하여 리더에게 조언하라.


■ 전략 셋: 우리의 환상을 깨뜨리는 리더를 요구한다

우리는 환상을 내놓기를 거부하는 리더를, 심지어 우리 스스로 만들어놓은 환상까지 깨뜨리겠다고 고집 부리는 리더를 받아들이고 찾고 지원하며 필요하다면 만들어내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런 리더들은 지지자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부담지울 가능성이 높은데, 그 책임은 결과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배우게 하고, 성장하게 하며, 탄력을 개발하도록 한다.


■ 전략 넷: 원대한 계획에 빠지는 버릇과 우리/그들 식의 이분법을 버린다

또한 지지자들은 장대한 계획을 가진 리더들에 대한 중독을 버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비전을 가진 리더를 두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일부 리더들의 비전은 우리가 생각해온 그 이상으로 성숙하도록 고무한다. 그렇더라도 한 리더의 비전이 완벽한 순수를 요구할 때에는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어떤 리더가 독성이 없는지는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의 일상에서 ‘우분투’(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하여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으로 줄루 사람들이 쓰는 표현)가 표현되고 있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다면 그 리더에게는 독성이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에게 리더가 되는 불편을 스스로 감당하라고 주장하는 리더도 독성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삶을 확장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바치라고 촉구한다. 그 노력은 힘들긴 하지만 무시 못할 보상을 여섯 가지나 안겨준다.


첫째, 삶을 확장하는 경험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만 생각하던 편협한 에고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한다.


둘째, 삶을 확장하는 경험은 우리에게 공감을 가르쳐준다.


셋째, 타자의 숭고한 명분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면 불가피하게 우리 자신의 옹졸함을 버리게 된다.


넷째, 삶을 확장하는 이 경험은 정의 그대로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다섯째, 삶을 확장하려는 노력은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통일성을 간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여섯째, 이 여정은 자율과 자유에 이르는 길 위에 우리를 놓아줄 수 있다. 자유와 자율은 죽음에 직면하면서까지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우리가 진정한 영웅적인 잠재력에 닿을 수 있는 때가 바로 그 시점이다. 자존심에 대한 갈망도 채워진다.


우리는 우리 안의 리더를 전면으로 불러내고 있다. 내면의 리더를 발견하고, 인간애의 승리를 일궈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육체적 자아를 뛰어 넘어 대단히 숭고한 존재로 성숙하게 된다. 이런 환경이라면 우리는 지지자들을 노예로 만들지 않을 리더들을 자유로운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자유가 존재하고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민주적인 제도가 구축되면 우리가 또 다른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 데 도움이 된다. 나 자신과 이 세상의 복잡성을 다 이해하고 나면 건설적이고 타자 지향적인 리더십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출처 : 복음과 삶
글쓴이 : 코람데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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