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공간/칼럼

십자가의 용서

힐링&바이블센터 2006. 8. 17. 21:36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용서를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만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용서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용서가 쉬운 것이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을 당하지 않으셔도 되었을 것입니다. 용서가 쉬운 것이 아니기에 귀한 것입니다. 값진 것입니다. 용서란 복수하지 않고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복수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비는 것입니다. 용서란 자신에게 엄청난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복수는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복수하기로 마음먹은 자는 무덤을 두 개나 파는 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해 무덤을 파다가 자신의 무덤까지 파는 것이 복수입니다. 복수는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불태워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다리를 불태우는 자가 아니라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연결시키는 곳입니다. 다리를 놓아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손을 잡아 주는 곳입니다. 화해하지 못하고 갈등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양손을 잡아 연결시켜 주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죽음이란 분리를 의미합니다. 생명이란 연결을 의미합니다. 분리되는 순간 죽음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연결되는 순간 생명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상처를 치유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상처를 받으면 그 마음에 쓴 뿌리가 생깁니다. 한이 생깁니다. 그 한이 치유되지 않으면 독이 됩니다. 마음에 분노가 생기고, 증오가 일어납니다. 쓴 뿌리는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고, 우리의 육체까지도 해칠 수 있습니다. 쓴 뿌리는 축복의 흐름을 막는 장애물과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쓴 뿌리를 없애야 합니다.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쓴 뿌리를 가지고 살게 만드는 상처를 치유하는 해결책은 용서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는 곳입니다. 용서란 죄인의 죄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하면 덮어줍니다. 사랑하는 것만큼 덮어줍니다. 용서란 죄인을 감싸주고, 일으켜 주고, 회복시켜주는 것입니다. 참된 용서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새 출발하는 곳입니다. 용서는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용서의 능력은 위대한 능력입니다. 우리가 용서의 사람이 되는 길은 먼저 예수님이 베풀어주시는 용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를 통해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는 더 큰 사랑으로만 치유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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