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공간/칼럼

침묵

힐링&바이블센터 2006. 8. 17. 16:27
 
 
영상 가운데를  클릭해 보세요
 
 


 

침묵



제게 있어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는 침묵을 지키는 것입니다. 침묵의 중요성을 알지만 침묵을 잘 지키지 못해 늘 아쉬워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호라티우스는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혀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혀는 입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입의 혀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의 혀로 많은 말을 하게 됩니다.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입술의 혀와 마음의 혀를 모두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외적인 침묵이 입의 혀의 침묵이라면 내적 침묵은 마음의 혀의 침묵입니다.


 혀를 지킨다는 것은 혀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혀의 온도에 따라 우리의 영적 온도가 결정됩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혀는 온도계다. 혀는 우리의 영적 온도를 말해 준다. 혀는 또한 온도조절 장치로서 우리의 영적 온도를 조절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침묵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침묵할 때 비로소 혀의 온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혀의 온도를 느낄 수 있을 때 혀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혀의 온도는 따뜻해야 합니다. 혀의 온도가 차가울 때 차가운 말을 하게 됩니다. 혀의 온도가 따뜻할 때 온유한 말을 하게 됩니다. 혀의 온도가 차가울 때 혀가 딱딱해 집니다. 혀가 딱딱해 질 때 혀에서 나오는 언어가 딱딱해 집니다. 혀의 온도가 따뜻할 때 혀가 부드러워 집니다. 혀가 부드러울 때 혀에서 나오는 언어도 부드러워집니다. 차갑고 딱딱해진 혀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하는 길은 침묵을 지키는 것입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침묵의 세계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태초에 침묵이 있었습니다. 침묵할 때 우리는 태초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침묵할 때 하나님의 언어를 만납니다. 침묵은 내면의 언어요, 영혼의 언어입니다. 침묵은 인류의 공통 언어입니다. 침묵 중에 우리 모두는 하나로 만나게 됩니다.


 침묵할 때 고요해 집니다. 고요해지면 맑아집니다. 맑아지면 밝아집니다. 밝아질 때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되고, 이전에 보았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이전에 잘못 보았던 것을 바로 보게 됩니다. 마치 호수가 고요해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면서 하늘을 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침묵할 때 듣게 됩니다. 침묵할 때 귀가 열립니다. 귀가 열릴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침묵할 때 우리는 듣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침묵할 때 사랑하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침묵할 때 보게 되고, 침묵할 때 듣게 됩니다. 그래서 침묵이 좋은 것입니다.


 침묵할 때 깊어지게 됩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의 언어는 깊어집니다. 마치 밥이 뜸이 드는 것처럼, 우리의 언어는 침묵을 통해 뜸이 듭니다. 마치 밥을 익히듯이, 우리의 언어는 침묵을 통해 익혀지게 됩니다. 침묵 속에 익혀진 언어는 깊은 맛을 내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침묵을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어의 공해(公害) 속에 살게 됩니다. 우리의 언어가 인간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벽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언어가 서로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따뜻한 손길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뾰족하게 날선 흉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언어가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되고, 차가운 인생을 덥혀 주는 따뜻한 손길이 되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합니다.

   침묵은 값진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나오는 언어는 깊이가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나오는 언어는 미래를 창조하고, 사람을 소생시킵니다. 태초에 침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침묵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침묵에서 나온 말씀은 창조의 재료였고, 창조의 능력이었습니다. 침묵을 배경으로 한 말씀이 창조의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뿌리는 하나님의 침묵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침묵은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나무의 열매는 뿌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언어는 나무의 열매와 같습니다. 우리의 언어의 열매는 침묵이라는 뿌리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의 말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뿌리가 있는 말은 뿌리가 없는 말과 다릅니다.

  뿌리가 없는 말은 힘이 없습니다. 가볍습니다. 향기가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때로는 가시가 돋쳐 있어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뿌리가 있는 말은 생기가 있습니다. 생명이 약동합니다. 뿌리가 있는 말은 깊이가 있습니다. 말의 뿌리는 침묵입니다. ‘침묵의 세계’라는 책을 쓴 막스 삐까르(Max Picard)는 말과 침묵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침묵은 말없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침묵 없이 있을 수 없다. 말은 침묵의 배경이 없으면 깊이가 없다.”

   깊은 말은 깊은 침묵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깊은 침묵은 말을 깊게 만들어주는 견고한 뿌리입니다. 침묵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우리의 언어는 소음에 불과합니다. 우리 마음에 공해를 만들어내는 ‘스모그’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침묵을 통해 언어를 가꾸어야 합니다. 침묵을 통해 언어를 가꾸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말을 하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참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말,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침묵한다 할지라도 속으로 끝없이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있다면 그것은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잠잠히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마음의 침묵을 통해 창조된 언어는 가장 생기 있는 언어입니다. 마음의 침묵 중에 나오는 마음의 언어는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언어가 됩니다. 그때 우리는 칼릴 지브란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대 목소리 안의 목소리로써 그의 귓속의 귀에게 말하게 하라.”



'사색공간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어짐의 size,영성의 size  (0) 2006.08.17
속도보다 방향  (0) 2006.08.17
네비게이션  (0) 2006.08.17
성숙에 이르는 실패  (0) 2006.08.17
훈련  (0) 200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