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공간/칼럼

축복의 현장 광야

힐링&바이블센터 2007. 8. 6. 08:30



광야는, 고통스런 곳이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기도 하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곳이며..
풀벌레 소리와, 뱀과 전갈로, 우글 거리는 장소이며..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는 곳이며..
하루 하루가, 한숨과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찬 곳이기도 하다.
먹을 것과, 입을 옷과, 잠잘 곳을, 모두 걱정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며..
외롭고, 고독하고, 심심하고, 지루하고, 사방이 막힌 곳이기도 하다.
그런 광야를,성경은.. 어떻게 축복이라 말할수 있겠는가?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말이 맞다.

그러나, 영적인 시각과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해석은 다르다.
광야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먹이시며, 마시게 하기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며..
전갈과 뱀의 위험과, 고독과, 외로움의 문제와, 더움과 추위의 문제로 부터, 철저히 보호하시며..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직접 공급하시는, 장소이기도 하다.
날마다 힘들고, 날마나 걱정해야 하지만..
날마나, 하나님이 가까이에서 보호하시고,인도하시는 곳이기도 하다.

광야는..
기도하는 곳이며, 광야는 응답이 신속한 곳이며, 광야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곳이기도 하다.
누구도 하나님의 관계를 끊고는, 생존자체가 어려운 곳이 광야인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광야는 처절하게 힘든 곳이다.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 광야지만..
광야는, 하나님이 계신곳이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만날수 있고,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경험할수 잇는 곳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이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 그토록 꿈꾸던 가나안으로 입성하엿다.
가나안은, 광야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먹을 것이 풍성햇고, 입을 옷과, 쓸것과, 누릴것으로.. 가득찬 곳이 가나안이었다.
위험한 일도, 뱀도, 전갈도 없었으며,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이었다.
외로움도, 고독함도 없었고, 마실 물도, 먹을 양식도, 차고 넘쳤다.
하루 하루가 살맛나는 현장이었으며, 날마다 신바람 나는 삶을 누릴수 있는 곳이, 가나안이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의 주님과 달콤했던 첫 사랑의 경험들이..
한낱, 추억거리로 기억될 뿐이었다.

가나안의 풍성함속에, 광야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세밀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에 선하심에 대하여, 무뎌지기 시작하엿다.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새벽을 깨우며 힘들게 만나를 먹으러 나갈 이유도 사라졌을 것이다.
더 이상, 간절하게 예배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열심히 하나님을 갈망할 이유도 사라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하지 않아도, 갈망하지 않아도, 열심으르 내지 않아도, 얼마든지..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쓸것과, 형통함과, 누릴 것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시작했고, 기도를 놓치기 시작했으며..
예배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종교적이고 교리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거추장 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마음은, 완악해 졌으며 스스로 높아졌고..
급기야 저들은, 하나님을 마음에서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햇으며..
가나안에 입성하여, 형통하고 축복받은 것이..
자신들의 노력과 수고의 결과라, 착각하기 시작햇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하나님은 없었다.

하나님을 믿지만, 가짜엿다.
예배를 드리지만, 형식적이엇다.
기도를 하지만, 타성에 빠진 습관적인 기도엿다.
필요한 것이 잇지만, 더 이상 하나님께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저들의 통장에는, 여유돈이 쌓이게 되었고, 그돈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였고..
아파트 평수는, 넓어 지게  되었으며..
자녀들은, 하나님을 멀리해도 형통하며 성공하게 되었고..
몸이 아파도, 더 이상 치료하시는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곳이, 가나안이었다.

정말, 돈만 있으면, 축복받은 것인가?
정말, 건강만 있으면, 축복인가?
정말, 자녀들이 성공하면, 축복받은 것인가?
정말, 아무일이 없이 순탄하면, 그것이 복인가?
정말,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없이, 좋은 집에 살면.. 그게 축복의 전부인가?
하나님과 교제가 끊기고, 영혼은 피폐되고, 삶의 가치와 목적은 상실되고..
동물처럼, 먹고 즐기고 아이 낳고, 공부시키고 싸놓고 살고..
하나님과는 구만리 장천 멀어져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가?

사람은 누구나, 등 따숩과 배부르면.. 하나님을 잊어 버린다.
등 따숩과 배부른데, 누가 간절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겟는가?
누가, 아무일이 없이 편안하고 형통한데, 열심히 예배자로 헌신하겠는가?
그럴수 없다.
그래서 '광야가, 축복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광야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고, 열린 것 보다 막힌 것이 더 많고..
누릴 것 보다, 찢어지게 궁핍한 곳이며, 고독의 절정이며,  위험과 염려로 충만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곳 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장소이며..
어느곳 보다,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광야는, '축복의 현장'이며, '은혜의 도가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없는 가나안보다, 하나님으로 충만한 광야가 낫다는 말이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없는 고대광실이.. 무슨 복이겠는가?
다리 밑에, 노숙자로 살지언정.. 부모와 함께 함이 복이 아닌가?
그뿐인가?
광야에서 우리는, 깨어지고 철들고 성숙하고, 하나님과 인생과 사람을 공부하게 된다.
그래서 광야는, 학교이다.
성숙하지 않은 부자..
성숙하지 못한 박사..
성숙하지 않은 유명인사보다, 성숙한 거지가 오히려 축복이 아닌가?
우리의 영성이, 다시 광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다시 광야에 머물어야 한다.
부자가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공부를 게을리 하라는, 뜻이 아니다.
좋은 집에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으로 부자가 되고, 하나님으로 공부를 하고, 하나님으로 좋은 집에 살라는 뜻이다.
내 노력과 내 열심으로, 형통하거나 성공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없는 성공, 부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으로 충만한 부자와 성공을, 누가 나쁘다 하겠는가?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을..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잘 믿는 것에 집중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없는 가나안 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광야가.. 더 복되다'는 진리를, 마음에 담아 두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를 광야의 길로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시니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신8장2-3절)

'사색공간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균실 성도  (0) 2007.08.06
예배를 통한 회복의 은혜  (0) 2007.08.06
명품아울렛  (0) 2007.06.02
성공중독자  (0) 2007.05.30
감찰하시는 하나님  (0) 2007.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