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내적치유

[스크랩] [내적치유-세미나(6)/크리슨 해리슨 목사]쓴뿌리와 거절감으로부터 승리하는 삶의 방법(용서)

힐링&바이블센터 2006. 11. 20. 19:15

쓴뿌리와 거절감으로부터 승리하는 삶의 방법 (용서)

 

 

 

 

크리슨 해리슨 목사

 

여러분들이 찬양할 때 뒤에 앉아 있으면서 성령께서 저에게 강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이 굉장히 마음이 슬퍼요. 가족 중 어떤 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못본지 몇년이 되는 분도 계십니다. 또는 그 가족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모르는 분도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가족의 한 사람인데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분이 있는 것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도록 기도해 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안에 잃어버린 가족들 때문에 슬퍼하는 마음들을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역사하시도록 이 밤에 기도해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모두 기도할 것입니다. 만일 그런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나를 슬프게 만드는 그런 사람을 함께 안아보고 싶습니다.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로해 주시도록 여러분 중에 그런 분이 있다면 기도하는 중에 일어서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령 그 자체로서 여러분 안에 역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그들의 외로움을 거두어 가주십시오. 그들의 슬픔을 거두어 가주십시오. 그들의 마음 안에 주님의 평강을 주십시오. 주님 그들 안에 주님의 위로하심을 알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어젯밤에 중요한 사실에 대해 보았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해 기도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치유사역에 있어서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깊이있고 강한 역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깊은 치유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쓴뿌리와 거절감으로부터 승리하는 삶에 대해 보았습니다. 그것의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눈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보배롭고, 우리는 하나님의 시이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걸작품이다라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가족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죄나 묶임 가운데 있는 가족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날 밤에 하나 더 쓴뿌리와 거절감의 뿌리로부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을 더 보겠습니다. 우리가 본 것의 하나의 원칙 중의 하나가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을 다시 사람들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월요일에 이야기 했고 이번 주 내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것을 여러분과 나눈 것입니다. 저의 생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으로 받은 것입니다. 정말 제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을 여러분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제 삶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체험된 것을 여러분과 나누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가 받을 것이다”라는 말이 성경에 나와있는데 그것이 단지 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해 다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나누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주십니다. 에베소서 1:7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 중의 하나가 ‘용서함’이었습니다. 여기에 앉아 계신 모든 분들이 알기를 원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함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하나의 기반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가 용서함받았다는 것을 알 수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제가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용서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어떤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용서함이라는 것은 우리가 남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에베소서 4:30,32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서로 용서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13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했습니다. 피차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용서하는 것이 뿌리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굉장히 큰 열쇠가 됩니다.
여러분에게 용서에 대해 잘못된 개념 두가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첫번째는, 용서하는 것은 우리의 감정에 따라 해야된다는 개념입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용서는 사실 그것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다릅니다. 얼굴도 다르고 성격도 다릅니다. 여러분 중에 상처를 입거나 누가 나를 대적하거나 하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더 깊은 상처를 냅니다. 그리고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기도하고 자유롭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마치 영웅같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냥 삼켜버립니다. ‘나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어, 나는 괜찮아, 문제없어’ 그리고 속으로 다 삼켜버리고 ‘나는 영웅이다’라고 느낍니다. 이 사람들은 문제를 이렇게 다루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나는 용서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 것은 그냥 속으로 삼켜버린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도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만약 내가 그런 영웅같이 느낀다면 몇년 후에는 그 문제들이 다시 더 발전이 될 것입니다. 삼켜버린 문제들이 이 속에서 쌓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안에 있는 것이 점점 차 올라오기 시작해서 아주 쉽게 화를 나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굉장히 성질이 급해지고, 그 사람의 첫번째 문제로서 야기됩니다. 두번째 문제는 그 마음 안에 있는 감정적인 문제들이 육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소화기관, 근육, 뼈같은 곳에도 병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우리 감정이 우리 육체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생각하기를 육체의 질병이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웅이라면 우리 삶 가운데 직면할 수 있는 위험스런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굉장히 쉽게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우리 안에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거나 근육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 감정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감정의 정도가 다릅니다. 용서는 그 일어난 일에 바탕을 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 나는 용서해야 되겠다.’
두번째 잘못된 개념은, 어떤 사람은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 용서할 수 없다 이것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다른 것입니다.

 

만약 내가 말하기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묶어버리는 맹세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맹세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이 맹세를 깨뜨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하기를 거절한다면 ‘아니 나는 절대로 그 살마을 용서하지 않겠어’ 이렇게 된다면 그것은 굉장히 심각해 집니다. 그것은 우리 감정을 감옥 속에 집어 넣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용서를 아주 많이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에게 아주 조금 빚진 사람을 찾아가서 그 사람이 목덜미를 잡았습니다. 28절에 보면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동관이 엎드려서 간구하고 간구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동관이 빚진 돈은 갚기 쉬은 금액이었습니다. 30절에 보면 그 사람이 말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고 라고 했는데 영어 성경에 보면 용서하기를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번역에 보면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33~35에 『내가 너를 불상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상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옥으로 가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짜 의미는 우리가 감정적으로 묶인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가 평강을 잃어버리고 기쁨을 잃어버리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나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맹세를 하셨다면, ‘나는 용서할 수 없어’라고 하는 감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나는 그것 때문에 너무 상처받고 너무 아파서 정말 용서할 수 없어’라고 느낍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감정을 이해하십니다. 여러분이 ‘나는 용서할 수 없어’라고 할 때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용서하고 싶은 우리 감정이 나는 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만약 우리가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영혼을 주시고, 영혼은 지.정.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우리의 의지가 우리의 감정보다 더 강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만약 감정이 의지보다 더 강하다면 우리는 벌써 병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을 때는 의지가 감정보다 더 강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실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우리 속 안에 있는 그낌이 ‘나는 용서할 수 없어’라고 이야기할지라도 우리는 주님 앞에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에베소서에서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용서함을 벌써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용서함을 주셨습니다. 여기에 그 진실이 있습니다. 바로 그 용서함으로 우리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감정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나는 용서하겠다’ 그렇게 결정하면, 그리고 그 결정한 대로 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감정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모든 용서는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용서할 때 첫번째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통해 이 일들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하면 먼저 ‘나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맹세한 것이 있다면 그것부터 하나님 앞에 깨뜨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구하기를 “주님, 그 모든 맹세를 다 깨끗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그런 잘못된 맹세를 할 때 우리 안에 있는 판단과 쓴뿌리로부터 그런 맹세가 나옵니다.

 

두번째,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누구를 용서하는지 이야기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간에, 그 사람이 살았든 죽었든지간에, 그 사람이 한 사람이든지, 그 사람이 남자이든, 그것이 다른 나라 종족이든지, 그것이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 앞에 누구를 용서한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번째, 하나님 아버지에게 우리가 왜 그들을 용서하는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내가 이 사람을 용서하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했는 것에 대해 용서합니다’라고 왜 용서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셔야 합니다.

 

네번째, 그 용서를 구하는 기도에서 이 사람을 향해서 혹시 나쁜 태도나 잘못된 태도를 취한 것이 있다면 그런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꼭 기도해야 합니다.

1. 맹세를 깨드리라
2. 누구를 용서하는지 말하라
3. 왜 용서해야 하는지 말하라
4. 나를 용서하십시오라고 기도하라

이것이 바로 용서함에 대해 기도할 때 해야하는 기도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18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15절에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형제들에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형제들에게 이야기했다는 의미는 바로 제자들에게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독교인 멤버인의 가까운 관계를 말합니다. 어쩌면 제자훈련을 받는 그룹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함께 자라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보통 우리들과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관계가 깨어졌다면 우리는 화해할 필요가 잇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놀라운 능력이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화해할 수 있습니까?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가서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상황을 나쁘게 할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그 사람에게 가서 “내가 잘못했어, 내가 너에게 대해 미운 감정이 있었던 것에 대해 사과할께”라고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올 것을 기다리지 마세요.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가세요. 여러분이 먼저 그 사람에게 가세요.

제가 언제 한번 DTS에서 가르치고 있었는데 거기에 어떤 남편과 아내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서너 커플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어떤 부부가 정말 두 사람 사이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여기 앉으면 아내는 저기 앉습니다. 결코 같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아기가 있는데 너무 개구장이입니다. 막 뛰어다니며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주간 동안 일대일 상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른 부부는 다 같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남편이 혼자 왔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기도할 것이 있습니까?” 그러자 “기도할 것 없습니다.”그리고 나서는 얼마나서 아내가 왔습니다. “기도할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기도할 것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두분이 같이 오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날 그 두분이 같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를 발생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기도할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아내에게 “기도할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저는 너무 상처받았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말했습니다. “제발 두분이 마주 보십시오. 그리고 두분이 손을 잡으세요. 그리고 남편이 자매님에게 했던 아는 모든 일들을 다 고백하세요. 그리고 지금 자매님은 그 모든 일을 용서하세요. 자매님도 역시 자매님이 남편에게 했던 모든 것을 고백하고 형제님이 용서하세요. 두 사람이 손을 잡으세요.” 남편은 하늘을 쳐다보고, 자매님은 밑을 쳐다보았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불똥이 튀는 화난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사랑은 합니다. 그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맺어주신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얼마지나서 남편이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저주했지. 내가 당신을 때렸지. 그리고 당신이 아이를 돌볼 때 한번도 도와주지 않았지.” 하나 하나 고백할 때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아내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이런 고백을 다 하고 난 다음 남편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2년 동안 내게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감사합니다”하면서 계속 울고 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내가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우리 가정이 축복받기를 원해요”

 

다시 아내가 고백하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저주했었죠. 내가 아이들이 당신에게 못가게 붙잡고 있었죠. 당신 뒤에서 나쁜 말을 했었죠. 당신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깎아 내렸죠” 부인이 계속 이야기할 때마다 남편이 또 우는 것입니다. 남편은 화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간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내가 당신을 용서할께. 당신을 사랑해” 그리고 서로 껴안았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도 울면서 저도 울고 모든 간사들도 울고,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모임이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이 손을 붙잡고 말하기를 “오늘날 우리는 다시 결혼합니다” 그것이 바로 화해입니다.
남편과 아내이든지, 형제와 자매이든지, 기독교 공동체 안이든지,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있든지 화해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용서에 대해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21,22절에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곱번 뿐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진짜 용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했으니까 됐어 끝났어” 이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용서했는데 다시 생각하면 물론 생각이 기억이 납니다. 영어 속담에 “용서하고 잊어버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잊어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가다가 생각이 납니다. 어떻게 우리가 용서하고 잊어버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절대로 용서하고 잊어버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잊어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삶 가운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습니까? 가끔씩 그 기억들이 살아납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다시 보면, 만약 그 사람과 같이 사는 상황이라면, 아니면 꿈을 꾼다면, 정말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끔가다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 사실 자체가 우리가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용서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이 나면 다시 용서하세요. “나는 용서했는데 지금도 용서하고 미래에도 계속 용서할 것이다.” 이게 바로 진짜 용서입니다.
절대로 성경에서 용서하고 잊어버려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데 “용서하고 또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진짜 용서는 그런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태도를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제밤에 펜이나 종이, 백지를 가지고 오라고 말했는데 만약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얻으시거나 해서 꼭 한장씩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용서에 대한 기도를 할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한 10분정도 드리겠습니다. 10분 동안 아무말하지 말고 조용하시기 바랍니다. 종이에 빨리 쓰시는데 누군가 정말 용서할 필요가 있는 사람의 이름, 왜 이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지 적으십시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게 하세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세요.

 

만약 여러분 안에 분명히 용서해야 될 사람이 있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보여주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을 때 용서함도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말레이사야에 있을 때 한 부부를 만났는데 인도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아주 순결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결혼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자매의 친오빠가 그 자매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와서 이 자매를 강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오빠는 술이 취해 있었습니다. 너무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매가 파혼해 버렸습니다. 남자 친구와 완전히 관계를 깨뜨려 버리고 교회도 떠나버렸습니다. 이 자매는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선 담배피우기 시작하고, 술마시기 시작하고, 나이트 클럽에 다니고, 동생연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몇달 후에 저와 제 아내가 한번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 자매를 만났습니다. 그 자매 얼굴이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영들이 그 얼굴을 덮고 있었습니다. 옷도 아주 세상적인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너무 불행해 보였습니다. 그 자매는 말하기를 “나는 너무 불행해요. 나는 하나님 앞에 돌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말하기를 “정말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먼저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 자매에게 오빠를 용서해야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총을 겨누시면서 “용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냥 그 자매는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 마음 가운데서 “하나님, 저의 오빠를 용서합니다.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자매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자매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자매와 결혼할려고 했던 그 남자분은 정말 좋은 형제였습니다. 그 형제가 이 자매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매가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이 다시 데이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혼했습니다. 그 형제는 지금 목사가 되었습니다. 두 아이가 있고요, 너무나 멋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의 힘입니다. 정말 그 자매가

용서하기로 했을 때 자유로운 것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치유하심이 그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나아갑니다. 이것은 정말 우리 안에 실제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실제로 아픔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우리 삶 속에 용서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속해서 관계맺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과거에 우리의 삶을 완전히 망쳐버린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주짐 앞에 정직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부터 그런 사람을 쓰십시오. 제가 10분을 주겠습니다. 10분 동안 그것을 종이 위에 써주시기 바랍니다.

※ 위의 글은 예수전도단 가정 치유세미나 기간동안 크리슨 해리슨 목사님의 세미나 내용을 글로써 그대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출처 : 대명교회(大名*大明*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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