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폴투르니에 정동섭 옮김
1.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해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며칠 전에 나는 한 미국인 동료를 소개 받았는데, 그는 유욕에서 외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었다. 그는 첫 눈에 아주 호감이 가는 인상을 주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영어를 몇 마디밖에 못하는 형편이었고, 그도 불어를 몇 마디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서로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의사소통하는 것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이정도만 말해도 독자들은 우리가 연구하려는 주제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였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첫째 조건은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 이해를 추구하는 마음, 이해하고자 하는 자발적인의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매우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이 기본적인 태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찾아 보기 힘든 것이다. 부부간의 대화는 물론이고 국가간의 대화를 포함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라 그것은 대개가 귀머거리들의 대화다. 사람들은 주로 각자 자기 생각을 제시하고, 자신을 정당화 하며,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하여 말한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서로의 관점을 주고 받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만난 외과 의사 친구는 뉴욕이 한 병원에서 자기가 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흥미 있는 직업과 눈부신 성공으로 인해 그는 온전한 만족감을 갖고 있었다. 잘못된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 그의 아내가 매우 신경절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뉴욕의 수천 명의 정신과 의사들 중 하나인 그의 친구에게 보냈다. 또 그의 어머니도 신경질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를 또 다른 정신과 의사에게 보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장모를 또 다른 정신과 의사에게 보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의무를 다한샘이었다. 어찌 되었든 외과 의사들은 심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문제로 오는 환자들을 전문가에게 맡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를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가 그를 불러 이런말을 해주었다. “여보게, 자네는 아내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하고 있어 적어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함께 영화관람을 하든지 바깥 구경을 할 수 있게 두와주어야 할 것 같네.”
이 외과 의사는 그다지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기꺼이 정신과 의사의 충고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하고 이내 그가 대답하였다. “매주 금요일 아내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가겠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실천하였다. 그는 둘이서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면 양심이 어찌나 편하게 느껴지는 모르겠다고 나에게 고백하였다. 이제 남편과 함께 외출을 하니까, 아내는 남편이 병원 때문에 일주일 내내 자기를 본척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는 불평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정신과 의사의 조언이 얼마나 현명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별로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간과 하였다. 이 부부는 이렇다할 갈등도 없이 점차 멀어지게 된 수많은 부부 중 하나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 예화를 택했다. “결혼상담”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이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부부나 손지검까지 서슴치 않는 폭력적인 싸움에 휘말린 부부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한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실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과 주의를 받아 마땅한 사례는 그 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는 서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부부가 많다는 말이다.
이제 이 외과 의사는 정신과 의사 친구의 도움을 받은 후로, 아내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면에서 이직도 그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나 이해를 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크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심지어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여러 해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유명하고 교양이 있으며 지적인 가정, 상류층의 사람들, 학식이 있는 사람들, 심지어는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서 이러한 예를 보게 된다. 그들은 다른 면에서는 훌륭한지 모르지만 그들의 삶에서 무언가 빠져 있음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가정생활은 살아 있는 실제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것에 대해 막연한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면, 금요일 밤에 아내를 데리고 나가 함께 영화를 보면서 그 갈책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신혼부부들은 대부분 높은 이상을 품고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어떤 부부들은 약혼 커플을 위한 결혼 예비 강좌를 수강하기도 하고 성생활에 대한 두툼하고 학구적인 책을 읽기도 한다. 이들은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을 배우며, 남녀 심리에 대한 책을 읽기도 하는데,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많이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십수년이 지난 후에 그들의 가정생활이 자기들이 기대하던 것처럼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부가 몇이나 되겠는가? 거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며,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탓하고 비난하는 본능적 성향이 있다. 상대방이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적인 결함을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전혀 무익하다. 이것은 결혼한 사람들을 끊임없는 악의와 원한 감정, 내적인 반감 그리고 판에 박히 상호 비방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한편 자신의 운명을 탓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자는 어쩌다가 운이 나빠 이렇게 구제불능인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여자는 반대로 어쩌다가 저렇게 답답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을까? 하고 자신의 팔자를 탓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인격이나 좋지 못한 건강, 성격적 결함, 가정교육 또는 상대방이 자라난 전혀 다른 환경의 영향 등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이와 같은 문제는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자녀들이 배우자를 제대로 선택하도록 잘 지도해야 한다. 어느 정도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결혼의 성공과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 가능성이 피차의 성장 배경에 의해 좌우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결혼은 우리가 매일 매일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시앙 보배 박사가 늘 말하던 대로 “결혼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마치 복권 당첨금처럼 생각하고 재수 좋게 진주 같은 아내를 얻을 수도 있다고 상상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자. 더군다나 당신이 자신을 진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진주와 결혼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얻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애써 성취해야할 목표인 것이다. 그런데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를 이해해야만 한다. 소위 “정서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혼을 변호하기 위해서 논거가 빈약한 변호사들이 지어낸 미신에 불과하다. 그것은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흔해빠진 변명거리이기도 하다. 나는 정서의 궁합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정서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는 일은 없다. 오해와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발적인 의지만 있다면 그런것들은 얼마든지 바로 잡을 수 있다.
내가 볼 때 가장 흔한 잘못은 완전히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많은 부부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의 배후에는 항상 이 상호 개방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에게는 서로에게 성실하고 완전한 개방성이 없다. 이것이 없이 진정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언제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용기가 있는 부부는 틀림없이 수많은 갈등을 경험하겠지만, 그들은 더욱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숨기고 위장하는 부부는 결혼생활에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많은 부부들이 서로 진정한 감정의 일부와 그들의 생각과 확신 그리고 개인적인 반응을 숨기고 있으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내 사무실을 방문한 한 남자가 진지한어조로, “나는 모든 것을 제 아내와 의논한답니다.” 하고 말한적이 있다. 우리는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내가 물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부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그런 것들은 아내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겁니다. 설령 말해준다 해도, 이해하지 못 할거에요.” 그에게서 불쑥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아내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할거에요.” 바꾸어 말하면, 아내는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안을 것이며, 나는 어떤 논쟁도 피하고 싶다는 말이다. 이렇듯 많은 부부들이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진정한 상호 이해해 이르는 데 가장 중요한-감정이 개입되어 있는-문제들을 옆으로 제쳐 놓는다. 이렇게 해서 언제나 투명한 유리 같아야할 부부관계가 조금씩 흐려지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결혼을 위해 예비하신 온전한 하나됨의 법칙을 잃어가고 있다.
하나님은 결혼 제도를 만드시면서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을 이룰 지로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분명 서로에게 비밀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다. 부부가 서로에게 문제를 숨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은 결혼생활의 기본이 되는 하나됨을 손상 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실패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설사 아무리 좋은 의도였다 해도, 아니면 그 비밀이 아주 좋은 내용이라 해도 마찬가지다(우리들은 수치스런 것 못지앟게 자랑스러운 것도 쉽게 숨길 수 있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새로 시작하려 할 수도 있으며, 화해를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재생의 길은 언제나 좀 더 깊고 어려운 상호 정직성을 전제로 열리게 될 것이다.
@적용하기
·저자는 왜 세상의 모든 대화가 귀머거리들의 대화와 같다고 하는가? 당신도 그렇게 느껴본 경험이 있다면 언제인가?
·상호 이해를 위한 첫째 조껀은 무엇인가?
·당신과 배우자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원한다면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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