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공간/성경의 인물들

[스크랩] 주를 버리고 세상을 택한 사람 데마(99)

힐링&바이블센터 2006. 5. 6. 14:50
주를 버리고 세상을 택한 사람 데마(99)

본문; 딤후4:10, 골4:14, 몬1:24

오늘은 주의 일을 버리고 세상의 안일을 택한 사람 데마를 통하여 함께 생각하며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
데마라는 이름의 뜻은 '대중의 떡', '통솔적인 사람' 또는 '다스리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데마는 데살로리가 출신으로 짐작되며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후 소아시아 전역을 3차에 걸쳐 다니면서 전도하던 사도시대에 일찍부터 복음을 받아 들이고, 바울의 동역자로서 그의 전도 여행에 참여 하였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1차 투옥때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복음전파 사역으로 말미암아 소아시아 지역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점으로 보아 데마는 초기에는 복음에 대한 열심도 있었으며 발이 빠르고 열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그가 바울의 2차 투옥 때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딤후4:10, 몬1:24, 골4:14)
바울을 버리고 떠난 점으로 보아 신앙적 뿌리가 깊지 못하고 이해 타산에 빠른 듯하며 세상적 가치 때문에 신앙을 버린 점으로 보아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성이 강한 현실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주님을 열심히 따르던 데마는 왜 중간에서 도중하차 하였을까요?

첫째, 세상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주님을 잘 따르던 성도가 뒤로 물러가는 이유를 보면 그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왜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가?
(1) 돈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주님을 잘 따르던 성도가 뒤로 물러가는 이유 중 첫째는 돈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사람을 미혹케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딤전6:10).
돈은 사람으로 하여금 비굴하게 만들고, 악하게도 만듭니다. 돈은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증인이 되게 하고, 돈은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 합니다. 또 사람의 마음을 나누이게 합니다. 열왕기상21: 4-12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낸 아합왕은 결국 나봇의 기름진 포도원을 갈취하기는 했지만, 그가 사용하지도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 7: 1 절 이하에 보면, 아간이라는 사람은 물질에 눈이 어두워 욕심을 냄으로 말미암아 국가적으로 손해와 망신을 시켰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은 파멸을 당하고, 일가 친족까지도 살육을 당하게 한ㄴ, 그야말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현대를 사람들은 "쓰리엠(three-m)" 시대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Money(돈), Machine(기계), Mass-Com(대중전달)의 머리글자 M을 따서 현대 사회의 특징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뿐입니다. 즉 돈은 관리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은 아닙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2) 이 세상의 정욕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딛2:12) 이 세상의 정욕은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습니다.그래서 로마서 1:24 절 이하에 보면, 이 세상의 정욕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려서 피조물을 더 경배한다고 말했고, 그 다음에 26절을 보면, 무슨 일이든지 순리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정욕에 이끌린 데마는 자연히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퇴보의 원인은 믿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정욕을 따라 향락주의에 미혹된 사람은 고난 받기를 두려워하고 싫어합니다. 안일하고 평안한 생활 때문에 세상을 향하여 돌아선 사람은 고난이 임할까봐 도리어 불안해하고, 걱정과 염려에 싸여 있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을 사랑한 데마는 고난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은, "성도들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고난)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말씀한 것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25절 이하에도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좋아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들을 신원하시며 긍휼히 여기신다"(시140:2)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함께 고난받기를 꺼려하고 세상을 향하였던 데마의 행위는 분명히 믿음이 없는 행위입니다.(히11:6)

셋째, 고난 받기 싫어서입니다.
돼지를 도살장으로 유인하는데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 방법은, 노끈에다가 감을 붙들어 매어놓고 돼지코 앞에다가 냄새를 맡게 하면, 이 미련한 돼지는 그 감을 먹기 위해서 도살장까지 끌려간다고 합니다. 결국 그 돼지는 감을 먹지도 못한 채 끌려가 죽게 된디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이 물질이나 정욕에 끌려 그것만 따라가다 보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와 같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려고 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은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인 줄 알고,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데마처럼 고난을 받기 싫어서 성령으로 시작한 발걸음이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직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노력하면서, 필요하다면 시간과 물질과 생명까지도 주를 위하여 희생할 줄 아는 우리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울의 동역자였으나 세상을 사랑하여 옥중에서 고생하는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린 데마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고자 합니다.
A.D. 30- 70년경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예루살렘에서 태동한 초대 교회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되던 초대 교회의 확장기에 주로 활동, 데마는 이 시기에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지역을 중심으로 전도 활동을 하고 있던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회심한 인물 중의 하나였습니다.(데살로니가 출신으로 추측됩니다.- 딤후4:10)
그는 회심후 곧바로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는 열정과 헌심을 보였습니다.
전 3차에 걸친 전도 여행 후(A.D. 57년경)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 또 벨릭스와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앞에서 2년간의 재판을 마치고 가이사에게 심문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되어 투옥된 바울의 1차 로마투옥(A.D. 61-63년경) 때에 데마는 바울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골4:14, 몬 1:24). 그러나 A.D. 66- 67년경인 바울의 2차 로마 투옥시기에 데마는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나가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데마의 성품은
1.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을 때는 순간적인 열정으로 그의 사역에 동참하였다가 나중에 고난을 당하게 되자 이를 견디지 못해 바울과 결별한 것으로 보아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다혈질의 소유자로 보입니다.
2.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버린 점에서 인내심이 없고 복음에 대한 소망이 견고치 못한 자입니다.
3. 바울이 형통할 때는 그와 함께 하다가 그를 버리고 세상의 안일을 찾아 떠난 것으로 보아 동료애가 없고 이기적인 자입니다.
데마는 주를 위한 고난보다 세상을 더 사랑함으로써 순교의 면류관을 거부한 자이며,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단적으로 증거한 자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 17)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수시로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신앙생활에 대해 시작과 나중의 관계에 있어서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과 나중이 같은 자가 있는가 하면 처음보다 나중이 못한 자가 있고 처음보다 나중이 나은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데마라고 하는 사람은 시작은 좋았지만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이 변해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데마를 통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데마는 시작은 좋았지만 나중에는 낙오자가 되었습니다. 데마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바울의 전도로 주님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는 바울에게 상당히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되는 그때까지 바울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서 1장 24절에서 바울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하며 데마를 ‘나의 동역자’로 칭했습니다.
또 골로새서 4장 14절에서는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했는데 두 구절을 비교해 볼 때 두 가지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빌레몬서에는 누가보다도 데마라는 이름이 먼저 나오는데 골로새서에서는 데마의 이름이 뒤로 가고 누가의 이름이 앞에 옵니다.
또한 빌레몬서에서는 데마에게 바울의 동역자라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호칭을 붙이고 있는데 골로새서에서는 데마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이름만 기록돼 있습니다. 누가에게는 ‘사랑을 받는 의원’이라는 특별한 호칭을 붙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사람의 위치나 역량에 따라서 이름의 순서를 정하고 있는데 데마의 이름이 빌레몬서에서는 누가보다 앞서다가 골로새서에 가서는 누가보다 뒤에 나오는 것은 그가 영적으로 병들고 퇴보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말년은 감옥 생활로 비참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동역자들이 떠났습니다(딤후 1:15, 4:16).
그러나 바울은 그 사람들이 믿음이 타락해 떠났다거나 그들이 세상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데마에 대해서는 세상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 곁을 떠났다고 기록했습니다. 데마는 분명히 실패한 것입니다. 누가와 데마를 놓고 비교할 때 처음에는 데마가 앞섰으나 결국은 누가가 승리했고 데마는 중간에 이탈했습니다.
데마는 왜 낙오자가 되었습니까. 본문의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라는 말씀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신앙이 현세적인 복만 추구하는 기복적인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매우 적극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갔을 때도 따라갔을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데마는 불행히도 예수로 인해 좋은 것이 올 때만 그렇게 열심히 따랐던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로 인해 나쁜 것이 올 때는 무조건 그 자리를 회피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행복과 자랑과 그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밑바닥에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젠가는 더 사랑하는 쪽으로 돌아선다는 말입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끝까지 주님을 따를 것이지만 데마처럼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도중 하차해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쾌락과 부귀 영화와 이 세상의 권력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잘 살지 모르지만 영원한 나라의 영광을 잃어버립니다. 데마같은 실패자가 되지 말고 영원한 저 나라에서 면류관을 얻을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전진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데마를 통하여 우리가 얻을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1. 데마의 배신행위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가치, 곧 현실의 안락과 쾌락을 더 사랑한데서 나온 것으로, 이는 물질주의에 물들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무시한 채 살아오는 오늘날의 많은 현대인들에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분명한 진리와 아울러 신앙과 세상을 겸할 수 없다는 진리를 재차 교훈해줍니다.
2. 열심으로 봉사하지만 중심이 바로 서지 못하면 언젠가는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알려 주는 좋은 예입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좋아야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처음에는 좋았으나 끝이 안 좋았던 인물로는 데마 이외에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교만해지더니 제사장의 영역을 침범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잘못을 지적 받을 때 자기 합리화와 핑계로 일관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물론 처음과 끝이 모두 좋을 때가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처음은 나빠도 끝이 좋은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성도의 삶은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합니다.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거룩함의 여정이라고 부릅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나서 신앙의 길로 들어설 때 당신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예수의 향기를 발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보다도 앞으로 훨씬 더 진한 향기를 발하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2)
3. 데마는 한때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을 돕던 조력자로서 바울의 1차 로마 투옥 때 바울과 함께 있었으며 2차 투옥 때도 일시적으로 봉사했으나 결국 인간적으로 바울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마저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회색의 신앙은 곧 불신앙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마7:22-23, 계3:16)
4. 데마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축복과 영광과 함께 희생과 고난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일시적인 열정으로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업에 주력하다 불가피한 희생과 고독, 그리고 투옥 등의 고난이 일어났을 때 그 고난을 회피하고자 결국 바울을 고난 속에 버려두고 자신은 세상의 안일을 찾아 떠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이 주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사실(롬8:17)을 깊이 명심하고 평소에도 고난에 대비하여 신앙 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됨을 교훈한다 하겠습니다.
5. 바울은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자기를 버렸다'(딤후4:10)고 말하였습니다. 이에서 우리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신앙인들은 결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분명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수영선수는 헤엄을 칠 때, 자기 몸을 물에다 담그고, 그 물의 힘을 입지 않고는 헤엄을 칠 수가 없습니다. 또 정해진 자기 코스대로 앞으로 전진해야지, 뒤를 보거나 옆으로 이탈해도 안 됩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자는 예수님의 은혜에 몸을 담그고 예수님의 힘을 입어야 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가야 실패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변하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 믿던 사람도 변하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벧후2:20-21)
누가복음 8장 5절 이하에 유명한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어느 날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씨를 뿌리는 사람은 좋은 밭에 씨를 뿌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5절). 그러니까 싹이 나기도 전에 밟히고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습니다. 길가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입니다. 사람 많은 곳은 마귀의 유혹도 많은 곳입니다. 여러분! 군중 좋아하지 말고, 인기 좋아하지 말고, 스타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휩쓸리다 보면 영혼이 밟히고, 영혼이 마귀에게 먹힐 수 있습니다.
어떤 씨는 바위 위에 떨어졌습니다(6절). 그래서 바위가 따뜻하니까 금방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니까 다시 금방 말랐습니다. 금방 좋았다가 다시 금방 식었다가 하는 감정적인 신앙생활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멋진 것을 좋아하지 말고, 외모를 좋아하지 말고, 너무 분위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신앙이 미지근하게 될 수 있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의 가장 큰 맹점이 무엇입니까? 습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다"고 합니다. 눈물이 없는 신앙! 그것은 불행입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의 눈물, 헌신의 눈물, 십자가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뿌리가 깊어지고, 어떤 시험이 닥치고 고난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떤 씨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졌습니다(7절). 그래서 가시와 함께 같이 자랍니다. 그러니까 상당 기간 잘 자라는 듯 하다가 결실을 할 때쯤 가시 때문에 기운이 막혀 결실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가시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8장 14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3가지, 즉 염려와 재리(돈)와 일락(일시적 쾌락)이라고 합니다. 초신자 시절 막 신앙의 싹이 나서 영적인 키가 작을 때에는 가시떨기가 약간 햇빛은 가리고 영양분은 갉아먹어도 성장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인 키가 자라려고 하면 이제 이 3가지가 가시가 되어 영혼을 찌르게 되고, 결국 열매를 얻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항상 이 3가지, 즉 '부정적인 생각'과 '나눔에 인색한 삶'과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신앙의 높은 고지와 깊은 경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씨는 씨를 뿌리는 자가 목적한 대로 좋은 땅에 떨어져서 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8절).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15절)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하고 어떤 환난과 시험에도 변함 없는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살아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늘의 소망을 갖고 날마다 나를 죽임으로써 변질되지 않게 하소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쉽게 배반하고 무섭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주님을 본받아 겸손하게 하시고 충성하게 하옵소서. 끝까지 충성스런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과 교회를 위해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예수를 떠나면 받는 결과

본문: 요15:6-7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성도들이 주님을 떠나서는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1) 예수을 떠나면 생명을 얻을 수가 없음(요6:53)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요6:53-54, 63, 14:6)
예수님을 통해 생명의 양식을 공급 받음(요6:55-56, 10:9-10) 생명의 빛 되시는 예수님 떠나면 생명 없는 어두움 뿐임(요3:20-21, 8:12, 요1:1-5)

2) 예수를 떠나면 열매 맺을 수가 없음(요15:5)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임(요15:1-2, 16)
예수님을 떠나서는 열매 맺지 못함(요15:4-5, 마3:10)
우리는 예수의 몸에 붙은 지체 임(엡4:15-16, 12:12-13, 27, 롬12:4-5, 엡2:22)

3) 예수를 떠나면 사랑 받을 수 없음(요15:9)
신랑되시는 예수와 신부되는 우리는 한 몸임(엡6:30-32, 고전6:17, 롬8:9-10)) 그러므로 예수님 떠나서는 사랑 받을 수 없음(고전6:15, 고후11:2, 계19:7-8, 요15:9, 16-17) 예수님의 말씀 믿고 지키면 사랑 받음(요15:10-11, 유1:20-21, 히5:8-9)
주안에서 예수님의 몸의 지체가 된 우리들은 한시라도 떨어저서는 살수가 없음을 명심하고 항상 주안에서 아름다운 열매 맺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살전5:17-23 )

2. 묵상 및 토의:
0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까? 배신을 당했을 때 나는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0 나는 총칼 앞에서도 신앙의 정조를 지킬 수 있겠는가?
0 나에게 큰 믿음을 주시사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충성하는가?
0 나는 세월이 흘러도 주를 향한 사랑이 변치 않겠는가?
0 나에게 우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세가 있습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배은 망덕

오랜 세월 동안 가지를 뻗고 키가 자라 제법 큰 호도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서 빨리 열매를 많이 맺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불행하게도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도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고, 몇 년 후 드디어 소원대로 큰 호도 알을 주렁주렁 맺게 되었습니다. 호도나무는 속으로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드디어 열매가 무르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오더니 돌멩이를 집어 호도나무를 향하여 마구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호도가 와르르 떨어져 내렸습니다. 어느 날은 꼬마들이 긴 장대를 가지고 왔고, 또 어떤 때는 어른들이 몰려와 나무가 상하든 말든 신경 쓰지도 않고 돌멩이를 던져댔습니다.
몇 날 며칠을 이렇게 지낸 호도나무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가지도 여기저기 부러져 나갔습니다. 돌에 맞은 자리가 몹시도 아팠습니다. 나무는 자기의 찢긴 상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아! 나는 사람들에게 열매를 주려고 오랜 세월을 애쓰며 기다렸는데, 사람들은 정말 은혜를 모르는구나.

* 예화(2): 배반자의 최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겐 자부로의 작품 「사육」은 한 명의 흑인 병사를 짐승처럼 사육하는 일에 종사하는 소년이 체험한 비극을 소재로 하고 있다.
2차 대전 때 소년은 도시에서 떨어진 산 마을의 공동 창고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이 살고 있는 마을에 커다란 비행기가 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곧 수색에 나섰고, 저녁 무렵 비행복을 입은 흑인 병사 한 명을 끌고 왔다. 마을 사람들은 멧돼지 덫으로 쓰이는 쇠사슬로 흑인 병사의 양쪽 발목을 묶고 지하 창고에 가두고는 짐승처럼 사육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멧돼지 덫에 묶여진 흑인 병사의 살갗이 벗겨져 염증이 생긴 것을 보고 덫을 풀어 주었다. 소년의 도움으로 흑인 병사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청에서 흑인 병사를 끌고 오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린 흑인 병사는 지레 겁을 먹고 당황하여 자기에게 자유를 주고 먹을 것을 주었던 소년을 인질로 잡아서 난동을 벌이는 반역을 하였다. 결국 흑인 병사는 소년의 아버지 손에 죽고 말았다.
모든 인류가 죄의 족쇄에 채워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환경에 지레 겁먹고 당황하여 예수님을 배반한다면, 그것은 곧 반역이다. 그 반역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다.

* 예화(3): 사슴과 포도덩굴

이솝우화에 나온 얘기다. 아기 사슴이 사냥군에게 쫓기게 되었다.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아직 너무 어린 아기 사슴은 더 이상 사냥꾼을 피할 힘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혼자 멀리 가지 말라는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사슴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그곳에 무성하게 우거진 포도덩굴이 있었다. 제법 가지도 넓고, 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포도덩굴이었으므로 그 속에 숨으면 사냥꾼의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았다. 사슴이 그 포도덩굴에 몸을 숨기자 잠시후 사냥꾼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사냥꾼이 지나가자 숨어 있던 사슴은 "휴우, 살았다"하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사슴은 이제 안심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포도덩굴이 참 무성하구나!" 사슴은 씩 웃더니 자기를 숨겨 주었던 포도덩굴의 잎사귀를 마구 따먹기 시작했다. 포도나무 잎사귀들은 아파서 괴로워했지만 사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잎사귀들을 배불리 따먹었다. 그때 방금 지나갔던 사냥꾼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참 이상하군 분명히 이쪽으로 갔는데..." 주위를 살피던 사냥꾼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포도덩굴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사각사각'하고 잎사귀 먹는 소리까지 들렸다. "옳지, 그 사슴이 저기에 숨어 있구나." 사냥꾼은 살그머니 다가와 사슴을 잡았다. 그때서야 사슴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생명의 은인을 저버려서 신이 나를 벌 주시는구나!" 화장실 갈 적 마음과 나온 뒤의 마음이 다르듯이 자신이 아쉬울 때는 손을 내밀다가 그 순간이 지나면 은혜를 잊는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가룟 유다나 예수님께 고침 받은 아홉 명의 문둥병 환자처럼 은혜를 잊은 자(눅17:12-19)가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보자. 말세에는 사람들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딤후3:1-4)

4. 찬송: (412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1.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 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그 참되신 사랑을 베푸시나니 내 형제여 주님을 곧 따르라
2. 주께서 풍성한 은사를 내려 내 영혼이 나날이 복 받으니 주 예수를 그대도 구주로 섬겨 곧 따르면 풍성한 복 받겠네
3. 무거운 짐지고 애타는 인생 주 예수께 돌아와 곧 믿어라 내 주 예수 그대를 돌보실 때에 참 복락과 안위가 늘 있겠네

[후렴]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늘 빌으시네

5. 금언
0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배도한 자의 말로는 죽음이다. 두려울진저 회개하라(이성봉)
0 배은망덕한 사람보다 더 나쁜 것은 세상에 없다.(로마격언)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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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태완 목사님 설교 예화 자료집(언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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