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내적치유

[스크랩] 수치의 돌 옮기기(1)

힐링&바이블센터 2006. 5. 6. 13:59

                                        수치의 돌 옮기기(1)

 

어느 날 교회에서 가족 찬양의 밤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나와서 재능들도 보여주고 함께 찬송하며 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녁 예배 후에 이어진 이 시간에는 많은 가족들이 와서 동참하였습니다. 신학대학 교수이셨던 아버님은 여러 교회로 설교하러 다니셨기 때문에 함께 저녁예배를 드릴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특별히 아버님께서 함께 참석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특별 찬양을 준비하고 기다렸는데 반주는 제가하기로 하였습니다. 가족이 모두 찬송을 부르고 제가 만돌린으로 반주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아버님은 스위스에서 공부하실 때 만돌린을 배워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만돌린으로 연주를 하시고 저에게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기타를 조금 칠 줄 알았는데 만돌린도 비슷해서 금방 배웠습니다.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 솜씨를 내어 보려고 하였습니다,

 

우리 가족이 전부 나가서 찬양을 하고 아버님은 교인들과 함께 듣고 계셨습니다. 제가 만돌린으로 반주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전혀 만돌린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혀 연주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몇 분 동안이나 땀을 흘리면서 반주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에 우리 가족은 반주 없이 노래만 하고 들어왔습니다. 저의 가슴에서는 화끈한 불덩이가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치심이었습니다. 어디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교인들 앞에서, 또한 제가 가르치는 고등학생들 앞에서 철저하게 망신을 당한 밤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순서가 끝날 때가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너무 잔인한 고문과도 같은 악몽의 시간이었습니다.

 

가족 찬양순서가 다 끝나고 나자 아버님은 자원하여 나가셔서 만돌린으로 멋있게 찬양을 해 주셨습니다. 교인들은 낭랑하고 아름다운 아버님의 만돌린 솜씨에 감탄을 했습니다. 돌아오면서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폼은 그럴듯했는데...” 저는 그 말에 더 상처를 받았습니다. 폼은 그럴듯하게 잡았지만 전혀 소리는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 잠도 자지 못하였습니다. 그 수치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불덩이처럼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 이후에 만돌린을 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만돌린을 칠 때마다 두 가지 사실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첫째, 만돌린을 볼 때마다 아버님 생각이 나서 저는 칠 수가 없었습니다. 만돌린을 볼 때마다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견딜 수 없이 살아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아버님의 만돌린 연주 녹음 테이프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언니네 집에 가면 아버님이 쓰시던 다 낡은 만돌린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만지는 순간 아버님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밤마다 연주해 주시던 닥터 지바고에 라라의 테마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만돌린을 볼 때마다 그 수치가 함께 되살아 나옵니다. 어린 마음에 받은 상처, 그래서 영원히 내 마음 속에서 해방되지 못한 그 수치가 되살아 나오기 때문에 사랑하던 만돌린을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악기점에 걸려있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만돌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서 만돌린을 쳐 보려고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치심은 다시 일어났고 그 생각은 무시되었습니다. 

 

죄의식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 한 것(about actions)들에 대한 부끄러운 의식이지만 수치심은 자기 자신(about oneself)에 대한 부끄러움, 존재에 대한 부끄러움입니다. 죄의식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회개하고 용서받고 행동을 수정, 교정 받으면 되지만 수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에 대한 부끄러움이므로 교정 받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누구나 수치심이 있습니다. 수치심을 갖게 되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그래 너는 별 수 없는 인간이야”하고 존재 자체를 정죄하게 됩니다. 제가 만돌린을 못 친 것이 수치가 아니고 바로 만돌린을 못 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웠고 완벽주의자였던 저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많은 점이 비슷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버님도 수치심에 대하여 큰 고통을 갖고 계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아버님이 어떤 문제만 나오면 이상한 반응을 하시는 것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을 하였고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하였습니다.  나중에 제가 알게 되었지만 그러한 반응은 자신에 대한 수치감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아버지처럼 머리가 좋으시고 학식이 많은 분이 수치를 느끼었을까요? 저는 지금도 아버님과 그런 점에 대하여 함께 생각을 나누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지금도 왜 아버님은 그렇게 깊은 수치를 갖게 되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아버님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저는 제 자신에 대하여 더욱 깊이 알게 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버님과 저는 많은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당신의 학식을 다른 분의 것과 비교를 하면 가장 불쾌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님 앞에서 다른 분의 지론을 이야기 한다든지 좋은 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면 아버님은 그것을 받아드리지 못하셨습니다. 곧 과민반응이 나오시는데 다른 분의 학식을 불쾌하도록 무시해버리시곤 하였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아버님의 인격을 의심하였습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학식을 그 정도로 받아드리지 못하실까? 아버님은 너무 마음이 좁으신 것이 아닌가?. 여러 가지로 저는 아버님에 대한 판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역기능을 공부하면서 그것이 아버님이 갖고 계신 수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은 학식과 자신과를 동일시하셨던 것입니다. 학식의 비교는 곧 인격의 비교였던 것입니다. 아버님은 그것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분의 학식에 대하여 칭찬을 하면 아버님은 다른 분의 학식은 뛰어나고 자신의 것은 열등하다고 생각하셨고 그것은 곧 자기 존재가 열등하다는 생각으로 연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고 생각, 곧 A도 좋고 B도 좋다라는 공식이 아니라 A가 좋다면 B는 나쁜 것이다라는 공식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님이 인격적으로 대처하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불쾌해 지시지 않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아버님이 학식에 대하여 지적을 받으시면 그것을 학식이라고 구별하여 생각하시지 못하고 그것을 당신 자신에 대한 도전이요 무시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입니다. 

 

아버님과 저는 항상 그 문제로 부딪쳤습니다. 저는 주의를 하였지만 어느 때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서 곧 예전과 똑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부딪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아버님은 곧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버님에 존재에 대하여 도전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돌린을 칠 수 없었던 것도 똑같은 맥락입니다. 저는 만돌린을 칠 수 없었다는 사실보다는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이 나였으며 나는 열등한 인간, 무능력한 인간이라고 보여졌을 것에 대한 수치였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사람들이 나의 악기 다루는 기술의 부족을 생각하기보다는 나 자체를 “열등한 인간, 무능력한 인간, 음악에 대하여 감각이 없는 사람, 음악적 재질이 없는 사람 등등”으로 생각하였을 것에 대한 수치였습니다. (계속)

 

주예수영성마을

http://cafe.daum.net/bride23

 

 

 


출처 : 아버지와 함께 쓰는 신학이야기
글쓴이 : 윤남옥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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