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내적치유

[스크랩] 4. 상처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힐링&바이블센터 2006. 5. 6. 13:56
 


                          4

 

                 상처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버림받음


     사실상 근본적인 상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버림받는 순간부터 생겼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상처받은 성경인물들은 버림받고 고향에서 떠나면서 생긴 상처들이었다. 분리...이것이 상처의 근본적인 자리이다.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는 모든 상처의 고향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인간들과도 서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로부터 인간은 상처 속에 들어가게 된다. 사울왕은 자신이 사무엘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백성들도 자기를 떠나 마음이 다윗에게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견딜 수가 없었다. 백성들의 마음이 자기에게 머물게 하려면 다윗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울의 치적은 일생을 다윗을 죽이기 위해 생산적인 모든 힘을 파괴적인 힘으로 소모했다는 것이었다. 아담과 이브의 가족처럼, 사울처럼, 야곱처럼,  우리들도 상처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 상처들의 자리를 한번 알아보자. 

                      성폭행


    현대 가정에 나타나는 아픔 가운데 가장 빈번해지는 것이 가족에 의한 성폭행사건이다. 성폭행이라는 것은 미성년을 강간한다든지 가족관계에서 성 관계를 갖는다든지 아니면 말이나 몸짓으로 성희롱을 한다든지 아직 나이가 어린 고등학생들을 매춘 등에 알선하는 행위들에 해당될 수 있다.   대부분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우선 자기 자신을 “더럽다” “더렵혀졌다”고 생각하여 결벽증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을 항상 깨끗하게 씻고 주위를 깨끗하게 만들면서 “더렵혀졌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게 된다. 또한 깊은 “수치감” 속에 빠집니다. 창피하고 부끄러워 자신의 생활을 소외하고 은폐한다. 그래서 건강한 부부관계나 사랑의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사랑할 자격이 없다” “사랑 받기에는 너무 더럽다”고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고 괴롭히면서 비뚤어진 생활을 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고 자학하고 은폐하면서 소외된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체로 감정을 닫아버리고 또 다시 상처를 받기 싫어서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장애로 인한 상처


     임상의들에 의하면 심리학적 장애를 두 가지 종류로 보고 있다고 멕레모어는 책에 기록하고 있다(C. W.맥레모어, 목회상담임상핸드북, 22면, 성광문화사,1986). 첫째는 기능적 장애인데 이것은 모든 신체가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를 의미하고 둘째는 기질적 장애로서 신체적 결함으로 나타나는 장애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건강해도 장애자가 될 수 있고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어도 장애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려서부터 신체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놀림은 그들의 기억과 감정가운데 깊은 상처로 남아있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낮은 자기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특히 자기 방어(self-defence)적인 사람이 되게 된다. 이렇게 자기를 방어하지 않으면 상처 위에 또 상처가 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가정생활을 통해서도 자신의 감정적 상처가 두려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자신을 들어내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반응을 하게 되는데 혹자는 철저하게 은폐하고 소외하는 생활을 하든지 아니면 복수심과 자기방어, 공격적인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아동학대로 인한 상처


     요사이 많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 아동학대이다. 아동들은 힘 있는 사람에 의하여 구타당하며 인격을 유린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미국에서는 아동보호법이 있어서 이렇게 학대당하는 아동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12세미만 이하에 아이들을 혼자 두고 나가도 안 되고 몸에 상처를 입히는 구타는 검거되어 벌을 받게 되어 있다. 종종 사회면을 보게 되면 아이들을 굶기는 부모들이 있는가하면 모시고 사는 노부모들을 굶겨서 죽게 만드는 가정들도 많이 있다. 또한 여행 중에 노부모들을 버리고 간다든지 자녀들을 길거리에 낳자마자 버리고 달아나는 부모도 있다. 특히 어린 시절에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악몽과 같은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가장 불쌍한 것은 방어력이 없는 힘없는 아이들이 당하는 학대이다. 그들을 학대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잔인한 부모들은 이미 부모라고 할 수가 없다. 가정에서 받은 상처가운데 많은 것들이 이렇게 어렸을 때 무차별하게 학대당하고 구박받고 유린당한 기억일 것이다.


                가난과 빈곤으로 인한 상처


     어떤 가정을 보게 되면 가난이라는 것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너무나 가난하여 가족이 집단 자살을 하는 경우도 보게 되고 산동네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가난한 생활을 하는 서민들이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외되고 버림받는 경우도 많이 있다. 또한 가난하다는 것으로 인하여 인격이 유린되고 비인간화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가난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에 비뚤어진 성격을 형성할 수 있는 요인이며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난도 상대적인 것이긴 하지만 특히 가난에 대한 수치심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감정 발달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필자가 다니던 중고등학교는 한국의 부자들의 0.3% 해당한다는 집의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목사인 아버님이 어렵게 생활을 이끌고 가던 때이지만 아버님은 학교만은 기독교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주장하셔서 다른 공립학교는 못 가고 크리스쳔 사립학교에 가게 되었다. 모교는 부자들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너무 우리가 가난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다. 사실 나는 처음으로 이런 부자들이 있음을 중학교에 가서 알게 되었다. 나하고 두 해나 짝을 하던 친구는 재벌집 딸이었다. 점심을 먹을 때면 나는 상대적 가난으로 인하여 언제나 부끄러움을 반찬으로 먹어야 하였다. 친구의 점심은 잘 준비된 음식으로 가정부들이 만들어주는 것이었고 나의 점심은 잘해야 콩자반이었는데...허구 헌날 콩자반 국물이 흘러서 점심 뚜껑을 열면 냄새가 나는 점심이었다. 나는 이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다른 시간에 조금씩 숨어서 먹어치웠다.

 

   또한 괴로운 것은 가정환경조사를 할 때였다. 담임선생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정 환경조사를 하는데 나는 그 시간마다 괴로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사실 어떤 부분에도 손을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데 딱 한번 손을 들 기회가 왔다. “아직도 수도가 없어서 물을 길러 먹는 집 손들어 봐요” 하는데 나 혼자 손을 들었다. 냉장고, 전축, 집, 자동차, 가정부...라디오..등등을 물을 때에는 한번도 손을 들지 못했는데 물 길어먹는 집에 유일하게 손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언니가 입고 다니던 교복을 뒤집어서 동생이 입고...그렇게 몇 언니를 거쳐서 내가 입어야 했다. 체육시간이 옷을 벗으면 여기 저기 기운 자리, 뒤집은 자리가 있어서 마음 놓고 옷을 벗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팠고 부잣집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하니 자연히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는 조그만 호수가 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어디에 호수가 있느냐고 물어볼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대적인 빈곤으로 너무 마음이 괴로웠고 등록금을 내야 하는 시기에는 학급 친구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에 담임선생님이 “언제 등록금을 낼 것이냐”고 재촉을 받아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채근을 받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꼭 부자가 되어야 해, 모든지 고급이어야만 해”라고 주장하던 언니가 있었고 우리 딸들은 목사와 결혼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쓰기도 하였다. 그 가난을 다시 전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난이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무척 불편한 것이다. 그 불편함을 건강하게 받아드리지 못하면 거짓말을 하고 위선적인 행동을 해야 하고 스스로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한다. 

 

                  편애로 인한 상처  


   편애 또한 큰 상처를 남기는 요인이기도 한다. 이것은 편애를 받은 사람이나 편애를 당한 사람이나 모두가 건강하게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 역할을 한다. 사랑을 받은 자녀들은 과연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부모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준 자녀들은 대개가 무기력과 의존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하고서도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의 연장이기를 바라고 어머니 같은 사랑을 요구하게 된다. 항상 받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아내를 사랑하기보다는 아내로부터 보호를 받고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 야곱도 편애로 인하여 피해를 본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야곱을 너무 사랑함으로 장자의 축복을 에서로부터 빼앗게 함으로 일생을 가정과 고향을 떠나 외롭게 상처가운데 살았다.

 

   그렇다면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들은 어떻게 될까? 또한 부모로부터 관심밖에 있었던 자녀들은 더욱 깊은 상처를 갖게 된다. 형제들은 특별히 사랑을 받는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게 된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이러한 경우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극진히 사랑하는 아내 라헬로부터 난 아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였다. 그래서 색동옷을 입히고 일도 시키지 않고 사랑하였다. 이것이 형제들에게는 언제나 못마땅한 일이었다. 요셉에 대한 야곱에 특별한 사랑은 형제들의 질투와 시기심을 일으켜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버리는 일을 하게 만든다. 사랑 받지 못한 자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정상적인 사랑을 하기가 힘든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깊은 사랑을 주고받기가 어려워진다. 자신은 사랑을 받을 수 없으리라는 자기 암시가 있으며 그러한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리지 못한다.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에 들어가는 것도 원하지 않고 그들이 자신에게 깊이 들어와 상처를 건드리는 것도 싫어한다. 자기 방어가 깊어지고 친밀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주예수영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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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버지와 함께 쓰는 신학이야기
글쓴이 : 윤남옥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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