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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과거의 상처와 건강하게 작별할 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어느 선교사의 간증에서 작별(굿바이)을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경험을 간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선교사 가족이 그동안 섬기던 지역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주할 때였다. 그들은 딸이 학교를 간 사이에 짐을 정리하면서 딸의 장남감들을 모두 이웃집 아이들에게 주어버렸다. 이삿짐을 가볍게 하기 위함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또 이사를 가야 함을 알았다. 그래서 딸은 급히 사랑하고 아끼며 항상 놀던 인형을 찾았다. 그런데 인형이 이미 보이지를 않았다. 딸은 울면서 엄마에게 매달렸다. “엄마...내가 아직 인형에게 굿바이를 하지 않았는데요”
대개 선교사의 자녀들, 목회자의 자녀들은 수시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 동네를 급히 나가버리고 만다. 이러한 것들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모르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자녀들에게는 기르던 강아지, 갖고 놀던 장남감들, 동네 돌 하나 하나에 사랑과 추억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별인사를 잘 하지 못하고 떠난 아이들이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른 곳에 이사 가서 갑자기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렇게 슬픈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엉엉 울어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별로 가깝지 않았던 옆집 강아지가 죽었다고 할 때 엉엉 울며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것은 그동안 숨겨져 왔던 슬픔이 그 때 표현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작별을 잘 하지 못하고 떠나온 동네 놀이터, 친구, 나무와 꽃, 강아지 등에 갖고 있던 이별의 슬픔이 표현되지 못하다가 어떤 계기가 생기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번 작별을 해야 할 기회가 있다. 작별을 잘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당시 헤어지는 아픔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부랴부랴...그 현장에서 어색하게 빠져나가 버린다. 이것이 감정적 성인아동들의 이사하는 스타일이다.
필자도 미국에 이민 와서 2년간 살다가 한국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두 달 동안 고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떠나는 날이 왔다. 부모님은 공항에 나오셔서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는 딸에게 잘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딸을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작별이 너무나 덤덤하였다. 옆에 사진기 하나 들고 “잘 가라” 하면서 돌아서서 가버리셨다. 뒷모습을 보면서 너무 썰렁하다 생각했다. 아버지...왜 한번 껴안고 볼을 부비고 사랑한다고 말씀 못해 주세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간 후에 왜 부모님이 급하게 뒤도 안보고 공항을 빠져 나가셨는지 알게 되었다. 시간을 끌다가 헤어지는 딸에게 눈물을 보이게 될까봐 걱정이 되셨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손녀와의 이별도 역시 마음이 아프셨던 것이다.
그 모습이 부모님의 마지막 이 땅에서의 모습이었다. 아버님은 그로부터 6개월 뒤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2년 뒤에 돌아가셨다. 필자가 한국에 다시 간 것은 어머님의 장례식 때였다. 눈물을 안 보이시려고 급히 공항을 빠져나가시던 뒷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그 때 아무도 몰랐다. 나는 지금도 부모님의 마지막 뒷모습을 떠오르며 많이 운다. 나도 작별을 좀 잘할 것을...어머님, 아버님, 감사했어요. 사랑해요..왜 이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따듯하게 껴안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섭섭하게 덤덤하게 헤어졌을까 하고..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작별해야 할 때가 많이 있다. 정들던 학교, 동네, 교회, 친구, 친지들을 떠나야 한다. 그 때마다 우리는 적절하게 즐겁게 작별을 해야 한다. 작별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그리고 이것도 어느 면에서는 예술이기도 하다.
그런데 필자가 앞으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상처에 대하여 굿바이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도 작별을 잘 해야 하지만 숨겨져 있던 상처들을 찾아서 작별하고 잘 떠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아름다운 이별, 아름다운 작별이 이런 곳에서 필요한 것이다. 이별이라는 것이 슬픈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과의 상처와의 작별은 슬픈 것이 아니라 힘든 것이다. 자신의 일부처럼, 자신의 가족처럼 항상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별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어떤 것이 상처인지도 모를 수도 있고 그 상처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함께 살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떠나라”라고 말씀하시고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여러 번 본다. 아브라함을 본향에서 떠나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보다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함께 하고 있는 것들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이 사실상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처는 성장을 위해서 제일 먼저 떠나야 할 방해물들이다. 이러한 것들과 건강하게 작별할 때에 건강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과감하게 단호하게 작별해야 하는 것도 있다. 부드럽게 작별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이제 그러한 작별의 예술을 익히기 위하여 함께 이 여행을 떠나보자. 그래야 새로운 곳으로의 행진이 힘찰 수 있을 것이다.
주예수영성마을
http://cafe.daum.net/bride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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