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상처의 파괴력:
자녀들의 삶에게 전수된다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어머니의 무뚝뚝함이었다. 아버님은 자상하시고 잘 웃으시고 여성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어머님은 매우 남성적인 분이셨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남의 집에 가서 살았던 어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무뚝뚝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셨다. 전화가 오면 다정하게 반갑게 받는 것이 아니라 “윤박사님은 안 계셔요.”하고 한마디 하고 툭 끊어버리는 분이셨다. 오랜 세월을 부모를 떠나 홀로 생활하던 어머님은 무지 독립적인 분이 되셨고 어려운 삶 속에서 웃을 일이 없으셨다. 그래서 속은 참으로 다정하고 깊은 분이시지만 말을 그렇게 하셔서 많은 오해도 받고 상처를 받는 사람도 많았다. 함께 사는 우리들은 어머니 표정만 보아도 다 알고 이해하지만 전화를 받는 분은 깜짝 놀라서 그 다음에는 전화를 다시 거는 일이 무서워졌다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어머님의 모습을 내가 닮은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가장 싫어하였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여 전화를 걸 때 더 상냥하게 대하고 웃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도 순간 순간 무뚝뚝하게 사업상 하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릴 때가 많았다.
또한 어머님은 칭찬을 하거나 좋아하는 표정을 크게 짓는 분이 아니셨다. 이것은 비단 우리 어머님만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분들이 그럴지 모른다. 내가 학교 전체에서 일등을 하고 돌아와도 어머니는 그렇게 놀라는 표정도 아니고 잘했다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실망을 하였고 어머니가 좀 더 격려해주고 알아주기를 원하였다. 그런데 내가 딸에게도 그런 태도를 갖고 대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적이 많았다. 딸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고 돌아와서 나의 칭찬을 기다린다는 듯이 쳐다보면 별로 나는 놀라지 않았다. 속으로 “나는 전교에서 일등을 했는데 겨우 반에서 일등 한 것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니”라는 식으로 쳐다보았다.
결혼을 한 딸이 어느 날 아주 심각하게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자기가 곧 상담을 받으려고 하니 부모도 함께 가야 할 때가 있으면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우리 딸이 잘 자랐는데 무슨 상담인가 의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에게서 불현듯 나타나는 무뚝뚝함이 어린 딸에게 많은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딸은 완전주의자인 나에게서 별로 격려나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팔방미인이고 공부도 일등을 하고 각종 상들을 타고 스스로 잘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였다. 과외를 하지 않고도 UCLA에 들어가서 우등생으로 졸업을 하였다. 피아노, 훌륫, 치어리더, 바이올린, 발레 등 안 한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그리고 아름답고 믿음이 좋은 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은 남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고 정죄를 잘 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딸의 그런 태도에 대하여 나는 마음이 아팠고 어머니로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그러한 태도도 나에게서 배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딸은 상담을 받으려고 계획을 했고 나도 그 상담에 협조하기로 하였는데 그만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그 계획이 실행되지 않았다. 나는 딸에게 긴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내가 왜 이렇게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무뚝뚝하며 왜 비판적이 되었는지에 대하여...딸은 처음으로 나의 모든 삶의 스토리를 들었다. 그리고 사위도 함께 읽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딸은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탓”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모두 그런 것이 아니고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노력을 해야 함을 말해주었다. 그 다음부터 나를 객관적인 면에서 다시 살펴보고 과거의 상처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님이 스위스 바젤로 유학을 가시는 바람에 한번도 어렸을 때 아버님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나누며 여행을 한 기억이 없다. 아버님과 여행은 한번도 간 적이 없다. 그래서 아버님이 무서웠다. 하도 아버님이 무서워서 함께 밥을 먹을 때 아버님 앞에 있는 반찬에 손이 안 갔다. 나는 내 앞에 있는 고추장만 계속 먹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얼마 안 되어 나는 속이 너무 아파서 병원으로 실려 가야 하였다. 그러한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우리는 “사랑 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고 아버지 품에 안겨 사랑을 표현하며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바로 이것이 역기능 가정에서 전수되는 상처들이다. 그러한 상처로 인하여 딸에게 상처를 주었고 딸은 또 자신의 딸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상담을 받고 치유 받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꼭 상담이 아니라고 하여도 우리들은 많은 상처를 치유 받는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통해 매일 치유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스스로 많은 태도를 수정했고 하나님께서 조명하여 주시며 나를 먼저 치유하여 주셨을 때 나의 행동도 자유함과 따듯함을 가질 수가 있었다. 물론 이 치유의 과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길고 긴 성화의 과정과 함께 한다. 하지만 상처의 실체를 알고 그 상처가 주는 위험함을 알 때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고 주님의 치유하시는 은혜는 깊은 상처까지도 드러내어 치유하여 주신다.
주예수영성마을
http://cafe.daum.net/bride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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