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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구원론

힐링&바이블센터 2009. 1. 24. 10:16

조직신학 - 구원론





※ 구원의 진리들

구원에 관한 진리는 구원의 필요성과 구원의 방법과 구원의 결과 등의 주제들을 포함한다. 이 주제들은 하나님의 복음 전체의 요약이다. 이 셋 중, 구원의 필요성은 신론과 인간론에서, 또 구원의 방법의 일부인 선택과 속죄는 신론과 기독론에서 다루어졌다. 구원의 방법의 나머지는 구원론에서, 그리고 구원의 결과는 교회론과 종말론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 구원론의 주요 주제들

구원론(soteriology)은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각 개인에게 실제로 적용하시는 과정을 정돈하는 것이다. 구원론은 성령의 사역론이다. 구원론의 주요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일반 은혜
2. 성령의 활동들
3. 부르심
4. 신비적 연합
5. 중생(重生)
6. 회개
7. 믿음
8. 칭의(稱義)
9. 양자(養子)
10. 성화(聖化)
11. 성도의 견인(堅忍)
12. 영화(榮化)



1. 일반 은혜

1-1.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와 사랑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를 구분할 수 있다. 일반 은혜(common grace)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혹은 공통적으로 베푸시는 은혜를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나 택하지 않으신 자들이나 구별 없이 공통적으로 누리는 은혜이다.

사람이 이 은혜를 받는다고 해서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별 은혜(special grace)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내리시는 구원의 은혜를 가리킨다. 이것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1-2. 역사적 고찰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초대교회의 펠라기우스(Pelagius)는 하나님의 영께서 사람의 의지에 직접 역사하지 않고 오직 간접적으로만 역사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반대로 어거스틴(Augustine)은 성경대로 사람의 전적 부패와, 구원에 있어서의 성령의 주권적 활동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령의 주권적 활동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며, 사람이 그것을 거절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의지에 직접 역사하셔서 사람의 영혼을 중생시키시는 선행적 은혜와, 하나님께서 중생한 영혼과 협력하여 그로 하여금 선을 행케 하시는 후속적 혹은 협력적 은혜를 구별하였다.

중세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활동을 인정하는 어거스틴주의를 취하든지, 구원을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적 결과로 보는 소위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를 취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성례를 통해 주입된다는 소위 성례주의를 발전시켰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루터(Luther)와 칼빈(Calvin)은 어거스틴이 주장한 성경적 은혜 개념으로 돌아갔고 성례주의를 배격했다. 그러나 후에 루터파는 루터의 입장을 떠나 반(半)펠라기우스주의적인 신인협력설(神人協力說)의 경향을 보였다.

칼빈을 따랐던 개혁교회는 성경적 은혜 개념을 보존하였다. 칼빈은 또 처음으로 하나님의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를 구별하였다. 그 시대에 유아 세례를 부정했던 재세례파(再洗禮派, Ana- baptists)는 하나님의 일반 은혜를 부정했다. 그들은 자연과 은혜를 대립시켰고 자연의 질서를 불결하다고 보았다. 또 그들은 국가의 권위를 무시했고 전쟁을 반대하였다.

17세기의 알미니우스주의(Arminianism)는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와 구원을 위해 충족한 은혜를 주신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의하면, 이 충족한 은혜가 곧 일반 은혜요 구원하시는 은혜이다.

만일 하나님의 이 충족한 은혜가 구원적 은혜가 아니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회개의 원인은 성령과 협력하는 사람의 의지뿐이라고 한다. 이것은 반(半)펠라기우스주의와 같은 신인협력설이다.

 개혁교회의 도르트 회의는 알미니우스주의를 정죄하고 사람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 단독적 사역을 고백하였다.

근래에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와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하나님의 일반 은혜의 교리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개혁교회 안에서도 헤르만 훽스마(Herman Hoeksema)는 은혜라는 말을 하나님의 구원적 은혜에만 적용하고 일반 은혜는 은혜라고 부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



1-3. 일반 은혜의 내용들

하나님의 일반 은혜는 몇 가지 점들에서 고찰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여러 가지 자연적 혜택들을 주신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신다. 사도행전 17:25,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그는 선인과 악인에게 햇빛과 비를 주신다. 마태복음 5:44, 4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그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때를 따라 식물을 주시며, 또 결실기를 주셔서 식물로 사람의 마음에 기쁨과 만족을 주신다. 시편 145:9, 15, 16,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 . .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사도행전 14:16, 17,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 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지혜와 재능을 주심으로써 문화적 혜택을 누리게 하신다.

 

그는 첫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다(창 1:28).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러한 문화 명령을 받아 땅을 정복하며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였다. 일찌기 가인의 자손들 가운데 야발은 목축업을 시작했고, 유발은 악기들과 음악을, 두발가인은 철공업을 개발하였다(창 4:20-22).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혜의 정신을 주셔서 아론의 옷을 만들게 하셨다(출 28:3). 또 그는 브사렐과 오홀리압과 기타 지혜 있는 자들을 세워 성막의 여러 가지 기구들을 만들게 하셨다(출 31:1-11). 현대인들이 누리는 주택, 전기와 수도, 교통과 통신, 출판, 의술 등의 문화적 혜택들은 다 하나님의 일반 은혜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종교성, 즉 하나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과 생각을 주셨다.

 

로마서 1:19, 20,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사도행전 17: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도덕 의식을 주셨다.

 

그것은 사람의 양심을 통해 나타나며, 또한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선악 보응을 통해 일깨워진다. 세상 정부와 사회 여론은 상당히 이런 도덕 의식을 반영한다. 로마서 2:14, 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서 13:3, 4,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이러한 종교성과 도덕 의식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선과 의를 행하며 세상의 악들도 상당히 억제되고 극단적 부패와 혼란도 방지된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도 어느 정도 지연된다.



2. 성령의 활동들

성령께서는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셔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救贖)을 그들에게 적용시키신다. 구원의 전체적 과정은 성령의 활동이다. 구원론은 성령론,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성령의 사역론이다.



2-1. 오순절 성령 강림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강림하셨다(행 2장). 오순절 성령 강림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오순절 성령 강림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과정에서 한 시대적 분기점을 이루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의 성취이었다(사 32:15; 겔 36:27; 욜 2:28, 29; 요 14:16, 17; 15:26; 16:7, 13). 그것은 또한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거하시기 시작한 사건이었고 성령의 활동 시대가 시작된 사건이었다. 요한복음 14:16,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이러한 점들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반복될 수 없다. 

둘째로, 오순절 사건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 성령을 받은 사건이라는 일반적 의미를 가졌다.

 

신자가 성령을 받는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그 사건은 그 후시대에 계속 반복된다. 즉, 죄인이 구원 받을 때마다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들어가신다. 사도행전 10:44에 증거된 대로, 성령께서는 베드로의 전도를 듣는 고넬료의 가족들에게 내려오셨다.



2-2. 성령의 세례

2-2-1. 성령 세례의 의미

신약성경에는 '성령의 세례'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

 

첫째로, 사도행전 1:5의 성령 세례는 오순절 사건을 가리켰다. 오순절의 성령 세례는 성령께서 제자들 속에 처음 들어오신 사건이었다.

제자들은 이미 믿은 자들이었으나, 성령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성령을 받게 된 것이었다.

둘째로, 사도행전 11:16의 성령 세례는 성령께서 고넬료의 가족들 속에 처음 들어오신 사건이었다. 15절,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이 경우엔, 사도행전 1:5의 경우와 달리, 대상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듣고 처음 믿었을 때 일어났다.

셋째로, 고린도전서 12:13의 성령 세례는 그리스도와 성도들간의 신비적 연합을 의미한다. "우리가 . .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성령의 세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약성경에 쓰인 용법을 살펴 볼 때, 성령 세례는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처음 들어오시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오순절 사건의 일반적 의미와 동일하며, 구원의 사건이다. 이것을 '성령의 세례'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하여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우리를 깨끗케 하시기 때문이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는 성령의 내주하심이나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동일하다. 요한복음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 . .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2-2. 성령 세례를 받는 때

신자는 언제 성령을 받는가? 성령께서는 언제 신자 속에 들어오셔서 거하시는가? 신자가 성령을 받는 것은 중생할 때 즉 구원 받을 때라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대답할 때, 우리는 성경 역사상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야 한다. 오순절 사건 이전에는, 구원받는 것과 성령 받는 것이 시간적으로 달랐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이미 구원을 받았고 깨끗함을 얻었지만(요 13:10; 15:3) 성령을 받지 못했었다. 요한복음 7:39,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러나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그러한 구별이 사라졌다. 사도행전 8장의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성경은 믿는 자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밝히 가르치고 있다.

로마서 8:9,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저주받은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에베소서 1:13, "그[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한일서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모든 믿는 자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신약성경에는 성도들을 위해 성령을 받으라거나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과 같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그는 우리에게 더 오실 수 없다.' 단지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단지, 사도행전 8장에 증거된 사마리아 교회의 경우는 예외적이었다. 사도행전 8:15, 16은 그것이 예외적이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오직 . . . 만'이라는 표현은 그 당시 다른 곳에서는 믿음과 세례와 성령 받는 일이 시간적으로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인다. 사마리아 교회가 예외적이었던 이유는 그 교회의 독특한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반쯤 이방인이었다. 더욱이 그 곳에 복음을 전했던 사람은 사도가 아니고 집사 빌립이었다. 이런 점들이 주께서 사마리아 교회에 성령 강림을 지연시키셨던 이유이었을 것이다.



2-2-3. 성령 세례의 목적

성령 세례 즉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들어오심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적용하여 죄를 씻으시고 그들로 회개하고 예수 믿어 구원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며 또 구원한 자들을 위로, 격려, 권면, 경책하셔서 그들로 거룩하고 온전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에스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요한복음 14:16, "그가 또 다른 보혜사[위로자, 돕는 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고린도후서 13:13,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2-3. 성령의 충만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와 구별된다. 모든 신자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지만 모든 신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교훈하였다(엡 5: 18). '충만을 받으라'는 원어(플레루스데, 현재 수동태 명령법)는 '계속적으로 혹은 반복해서 성령으로 충만케 되라'는 뜻이다.

성령 충만의 증거는, 믿음을 굳게 지키고 말씀을 담대히 증거함과 거룩한 인격과 삶이다. 사도행전 4:8,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 . . ." 사도행전 4:31,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갈라디아서 5:22, 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에베소서 5:18절 이하에서, 바울 사도는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한 후 찬송과 감사, 피차 복종,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등을 교훈하였다.

성령 충만의 방법은 철저한 회개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기도와 말씀 묵상과 순종이다. 성령 충만은 어떤 이상한 체험이 아니고, 성도의 정상적 경건 생활의 과정이다.

성도는 그의 모든 죄악과 연약을 철저히 고백하고 버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것이다.

성경 역사에서 성령 충만을 받았던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 출애굽기 31:2, 3, "부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신명기 34:9, "모세가 . . .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영]이 충만하니." 누가복음 1:41,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사도행전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도행전 4:8,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사도행전 6:5,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 사도행전 9:17, "형제 사울아, 주 곧 . . . 예수께서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사도행전 11: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2-4. 성령의 그 밖의 활동들

성경은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 도우심, 간구하심, 위로하심, 가르치심, 인치심 등에 대해 말씀한다. 로마서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26,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4: 26, "보혜사[파라클레토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께서 이렇게 성도들 속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하고(갈 5:16) 그를 근심케 말아야 하며(엡 4:30) 또 그의 감동을 소멸치 말아야 한다(살전 5:19).



3. 부르심

3-1. 구원의 순서

하나님의 특별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은 어떤 순서 혹은 단계로 이루어지는가?

성경의 전체적 진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 타락 허용, 선택, 속죄, 구원의 순서로 이해된다. 그 가운데, 인간 구원의 순서 혹은 논리적 단계는 부르심, 중생(重生), 회심(回心), 믿음, 칭의(稱義), 양자(養子), 성화(聖化), 성도의 견인(堅忍), 영화(榮化) 등이다. 로마서 8:30은 구원의 순서를 간단히 예정, 부르심, 칭의(稱義), 영화(榮化)로 표현하였다.

다른 파의 견해를 살펴 보면, 로마 천주교회는 구원의 은혜를 셋으로 나누었다.

첫째로, 충족 은혜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깨달음을 주시고 의지를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가리키며, 사람은 이 은혜에 저항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로, 협력 은혜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죄악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려고 결심하고 세례를 받고자 하는 것을 가리킨다.

셋째로, 주입 은혜란 세례를 통해 초자연적 덕성이 주입(注入)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은혜를 통하여 사람이 중생하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한다. 또한 칭의는 계명의 순종과 선행으로 보존되고 불신앙과 죽음에 이르는 죄를 인해 잃어버릴 수 있지만, 고해성사(告解聖事)와 관면(寬免)과 보속(補贖)으로 다시 얻을 수 있다. 관면은 죄책과 영원한 형벌을 제거하고 보속은 현세적 형벌을 제거한다고 한다.

한편 루터교회는 구원의 순서를 외적 부르심, 깨닫게 하심, 회개, 중생, 믿음, 칭의, 양자(養子), 신비적 연합, 성화(聖化), 보전 등으로 본다. 알미니우스파는 외적 부르심, 회개(복음적 순종), 믿음, 칭의, 중생, 성화(계속적 순종), 성도의 견인(믿고 순종할 때만) 등으로 본다.



3-2. 외적 부르심

성경은 구원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표현한다. 로마서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외적 부르심과 내적 부르심이 있다.

외적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것이다. 마가복음 16:15,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태복음 22:1-14,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 . . .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 .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누가복음 14장의 잔치 초청의 비유도 비슷하다.

외적 부르심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주어진다. 마가복음 16:15,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요한계시록 22:17,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율법의 요구가 진실하듯이, 외적 부르심은 진실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고 진실하게 부르시며 초청하신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경우, 외적 부르심은 구원으로 연결된다. 주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막 16:15, 16).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외적 부르심은, 비록 구원을 위한 부르심이 될 수 있지만, 아직 구원이라는 의미의 부르심은 아니다. 불택자들의 경우, 외적 부르심과 초청은 단지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낼 뿐이다. 로마서 2:4, 5,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교회 역사상, 초대교회의 펠라기우스주의는 하나님의 외적 부르심이 사람의 완전한 자유 의지의 응답으로 효력있게 된다고 보았다. 중세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나 종교개혁 이후의 알미니우스주의는 하나님의 외적 부르심이 사람의 협력으로 효력있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되었고 무능력하므로, 하나님의 외적 부르심은 사람의 심령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특별한 활동이 없이는 효력을 가질 수 없다.



3-3. 내적 부르심

하나님의 내적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효력있게 부르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중생(重生)과 동일한 사건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하는 말씀은 이러한 부르심을 가리킨다. 로마서 1:6, "너희도 . . .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서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고린도전서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 . ." 베드로후서 1:10,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1문: "효력 있는 부르심이란 무엇입니까?" 답: "효력 있는 부르심이란, 하나님의 영의 하시는 일인데, 그것에 의해 그는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권하사 복음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내적 부르심은 주권적이다. 그것을 '성령의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 은혜'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이끄시면 죄인들은 그에게로 온다.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또한, 하나님의 이 부르심은 불변적이다. 그가 한 번 구원에 이르도록 부르시면 그의 구원은 확실해진다. 로마서 8: 2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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