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160명 ④♠
성경인물 160명 ④
▶▶ 유 발
창세기 4장 21절
유발은 ?강?이라는 뜻이다. 유발은 아다의 소생으로 라멕의 둘째아들이었다.
성경에서 최초로 악기를 사용한 기악의 창시자였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수금과 퉁소를 잡는 최초의 조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음악은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된 인간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된다.
음악은 정서를 순화시키고 인간의 감정을 안정시키는 큰 힘이 있다.
그보다 더 교회 음악은 노래이기 이전에 예배와 찬양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하나님의 백성은 시와 찬미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되 이 찬양을 돕고
더 정성된 성의를 표하기 위해 악기를 동원하고 몸과 마음을 드리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교회 음악의 창시자로 유발이 수금과 퉁소를 개발했다는
것은 놀라운 공헌이 아닐 수 없다. 구약시대에 교회 음악이 더 성장해 감에 따라
악기의 숫자를 더하여 비파와 소고와 나발을 추가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상의 정성을 더해가는 방법이었다.
유발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모험적인 결단이었으나
그가 발명한 악기는 하나님이 수용하셨고 구약 예배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솔로몬 시대에 와서는 레위족속중에
찬양단이 조직되었고 다양한 악기가 함께 예배에 동원되었다.
▶▶ 아도니세덱
여호수아 10장 1 ~ 27절
아도니세덱은 ?의의 주?라는 뜻이다.
가나안의 아모리족 출신으로 예루살렘왕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와 아이성을 함락시켜 가나안 전역을 위협하자
기브온은 원방에서 찾아온 것처럼 위장하여 이스라엘과 화친한 후 합류했다.
당시에 상당한 힘을 자랑하던 기브온이 이스라엘에 항복하자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이 분개하여 기브온을 치기 위해 연합군을 만들었다.
헤브론왕 호함과 야르뭇왕 비람과 라기스왕 야비아왕 에글론왕 드빌이
아도니세덱의 요청에 따라 기브온에 대진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결국 아도니세덱의 연합군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므로
기브온에서 벧호론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크게 도륙되었다.
또한 아도니세덱과 함께한 네 왕은 막게다 굴에 숨었다가 끌려나와
목이 밟히고 여호수아에 의해 살해된 후
나무에 달려 백성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 전쟁에 큰 우박과 태양이 머무는 두가지 기적을 통해 전쟁을
승리케 한 데는 하나님의 큰 의지가 있었다.
▶▶ 에브론
창세기 23장
에브론은 ?유력하다?는 뜻이다.
에브론은 헷족속 소할의 아들로 헤브론 지역에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가족이 에브론에 이주하여 살 때 사라가 1백27세를
향년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때에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소유지인 마므레 앞 막벨라굴을 장지로 삼기 위해 그 땅의
매입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 말에 대한 에브론의 대답은 유명한 기사이다.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중에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소서? 이상과 같이 아브라함을 존경했고
부러워했고 지도자로 알고 있었다.
이는 아브라함이 보여준 훌륭한 감화도 컸지만 헷족속인
에브론이 이방 사람이면서도 아브라함에게 크게 동화된 것을 보면
인격과 생활을 통한 전도가 얼마나 성공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에브론은 세번이나 아브라함에게 막벨라굴을 선물할 것을
제안했으나 아브라함은 몸을 굽혀 감사의 뜻을 표하고 은 4백세겔을 주고
그 밭과 막벨라굴을 매입하게 된다.
이곳은 아브라함의 가족장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사라와 아브라함및 이삭의 부부,
야곱과 레아가 다 이곳에 묻히는 기념비적인 장지가 되었다.
아브라함과 에브론 사이에 얽힌 이익을 뛰어넘는 친교와 이방인으로서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에브론의 영적인 부흥을 발견하게 된다.
▶▶ 에 훗
사사기 3장 15 ~ 30절
에훗은 ?함께?또는 ?결합?이라는 뜻이다.
베냐민지파 사람이며 게라의 아들이었다.
에훗은 신앙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의협심이 강하고 담력이 있는
사람으로 선천적으로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압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에훗을 들어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하셨고 이스라엘의 두번째 사사가
된 후 80년동안 나라가 평화로웠다. 그는 왼손에 힘이 많고
그 손을 많이 사용하므로 왼손잡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에훗이 사사가 된 역사적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옷니엘이 살아있는 동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나 옷니엘 사사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타락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돌이키기 위해
모압왕 에글론을 들어 이스라엘 나라를 지배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18년동안 에글론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부끄러운 역사를 갖게 된다.
사사기를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큰 개념 두가지를 발견하는데
징취와 치유가 반복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이와같이 시련중에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모압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에훗을 선택하신다.
에훗은 공물을 전달하는 대표자로 가장하여
그의 지기로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 옷니엘
옷니엘은 ?하나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옷니엘은 에서의 혈통 그나스의 아들이었으나 그들중에 선택받은
사람처럼 에돔의 혈통같지 않게 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다.
그나스의 신앙과 가정 분위기가 영적으로 본이 되었음은
그의 자녀중 갈렘과 옷니엘을 보아 알 수 있다. 한 가정에서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의 동역자인 갈렙이 나왔고 이스라엘 첫번째 사사인
옷니엘이 일어난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갈렙과 옷니엘은 형제간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은 한 시대의 사역자였다.
옷니엘은 신앙과 인격과 용맹이 뛰어남으로 사사가 되기 이전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을 정복할 때 군대의 지휘관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고 가나안 원주민과 혼합결혼이 이루어져 극히 타락하게 되었다.
그 결과 메소보다미아왕 구산 리사다임을 통해
이스라엘을 8년동안 징계함으로 큰 고난을 겪게 된다.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부르짖음으로 선민의 구원자를 찾으시는 중
옷니엘을 들어 사용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첫 사사가 되었다.
옷니엘이 선택된 데는 그만한 영적 조건이 그에게 있었다.
▶▶ 요 셉
요셉이라는 뜻은 ?그는 더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라헬의 첫번째 아들이며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입니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대단히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만득자로 얻은 아들이어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열한단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말함으로써
형들의 미움과 시기가 날로 더해 갔습니다(창 37:3~11).
그 형들이 도단에서 양을 칠 때에 그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형들의 목장을 찾아갔습니다. 이때에 형들이 의논하여 요셉을 죽이기로
결의하였고 르우벤의 제의에 따라 구덩이에 넣게 되었으며
다시 유다의 제의로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함께 포함되고 있음을 그림을 보듯이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애굽의 장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보디발의 아내가 끈기있게 유혹하였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자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반복되는 고통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첩경이 되었습니다. 자기가족을 애굽 고센땅에
이주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을 애굽의 국장같이
치렀고 요셉도 1백10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모세가
그 유골을 들고 나와 세겜에 안장되었습니다(여 24:32).
▶▶ 여호수아
출애굽기 33장 11절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본명은 호세아였고 에브라힘지파의 눈의 아들이었습니다(민 13:8).
일찍부터 모세의 수종자가 되어 측근에서 그를 도왔으며 모세의
감화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종교심이 강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은 일에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청년기에 이미 영적인 사람으로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회막을 떠날 줄을 모르고 기도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출 33:11).
이때에 열 사람의 불신앙의 보고와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의 보고는
유명한 간증이 되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허락속에
모세의 안수를 받고 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민 27:18~23).
그후 가나안 7족속을 진멸하고 그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지도자의 궁핍을 느끼지 못할만큼
여호수아는 모세의 자리를 잘 지켰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선민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자기들의 사명을 만족스럽게
바로 감당했고 선민의 지도자의 자질을 잘 갖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 엘르아살
민수기 3장 1 ~ 4절
엘르아살은 ?하나님이 돕는 자?라는 뜻이다. 아론의 셋째아들로서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의 사명을 담당하였다. 그의 형 나답과
아비후가 있었으나 성막에서 다른 불을 드리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 죽음을 통해 제사직을 깨우치려고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못하게 하였고 일절 슬퍼하는 기색을 띠지 못하게 하였다.
나답과 아비후는 시범 심판이었다.
결국 그 형들이 이어받을 제사장 가문에 대한
영적 축복을 엘르아살이 물려받게 되었다.
모세와 함께 호르산에 올라 아론의 옷을 물려받고 아론이 엘르아살에게
안수함으로 대제사장이 되었다(민 20:22~29). 엘르아살은 레위지파의
어른이 되고 모든 제사와 모든 성막봉사 전체를 관장하게 되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백성의 통치를 담당한 것과 같이
아론의 뒤를 이어 엘르아살이 종교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엘르아살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땅을 점령하는데
함께 수고한 공로자가 되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뒤에
그 땅을 12지파에 분배할 때에도 엘르아살이 크게 공헌하였다.
엘르아살은 나답과 아비후를 대신하여 갑자기 소명되었으나
대제사장 직분이나 성막 전체의 관리나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여유있게 사명을 감당한 훌륭한 인물이었다.
▶▶ 아스낫
창세기 41장 45 ~ 52절
아스낫은 ?태양신에 속한 자?라는 뜻이다.
애굽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로 바로가 요셉에게 아내로 맺어준 여자였다.
바로가 요셉에게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아스낫을 선택해 짝지어
준 것을 볼 때 그녀는 예절이나 미모가 뛰어난 여자였을 것이다.
요셉이 아스낫과 결혼하는데 전혀 이의가 없었으며 그의 일생을
보아도 부부간에 문제가 없었던 것을 보면 잘 조화된 부부였다.
아스낫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면서
한 제국의 2인자인 남편을 잘 내조한 아내였다.
그는 결혼이 약속되자 지금까지 믿었던 이방신을 버리고
요셉과 결혼했다는 전설이 있다.
요셉과 부부가 되는데 있어 가장 우선적인 일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는 처녀였다.
요셉이 갖고 있는 정직한 마음이나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만큼 깨끗함과 경건함에 대한 소문도 들었겠지만
하나님을 얼마나 뜨겁게 섬기고 경외하는지
그 중심을 잘 파악한 사람이었다. 이런 면에서 요셉에게
잘 어울리는 아내였다. 가정생활이나 종교생활이나 정치적인 활동까지도
잘 조력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요셉과 결혼한 후 애굽에 흉년이
시작되기 전에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아들을 낳아 훌륭하게 양육하였다.
▶▶ 압 돈
사사기 12장 13 ~ 15절
압돈은 ?종?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11대 사사로
에브라힘지파 비라돈사람 힐렐의 아들이었다.
그는 8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성경에 그에게는 아들이 사십명
있었고 손자가 삼십명이었으며 나귀 칩십필을 탔다고 밝혀 놓았다.
압돈을 소개하면서 많은 자손을 열거하고 칠십필의 나귀를
소개한 것을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지적한 듯하다.
압돈은 8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통치기간에 자기 개인과
가정을 위해서만 치부한 사사였다. 당시에 나귀를 탄다는
것은 부유층에나 있었던 일로 사치스럽게 살았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칠십명의 자손을 두었다는 사실도
그가 얼마나 향락을 추구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단기간의 통치를 이용하여 마음껏 자기 욕심을 채운 사람이었다.
압돈은 남이 저축한 국력을 소모하는 사람이었다.
지도자로서의 양식이 결여된 사람으로 백성에게 본이 되지못하였다.
이렇게 나라의 지도자가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국력을 소모할 때
결국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압돈은 생활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타락하고 백성들까지 탈선하여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게 되었다.
결국 압돈을 놓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에
붙이겠다고 결정하셨다. 압돈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사사였다.
불신앙과 타락과 하나님의 징계는 묶여진 내용이다.
▶▶ 요게벳
출애굽기 6장 20절. 2장 1 ~ 10절
요게벳은 ?여호와는 영광?이라는 뜻이다.
레위의 딸로 아므람의 아내였으며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의 어머니였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신앙이 독실한 부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가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겨 온 가족이었다.
그러므로 모세가 태어났을 때
믿음으로 3개월 동안 숨겨 기를 수 있었으며,
바로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성경이 전해 주고 있다
(히 11:23).
요게벳은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된 대로
믿음의 위인으로 하나님이 증거 하셨다.
그 아이를 더 이상 기를 수 없게 되자 갈상자에 어린 모세를 넣고
역청과 나무진을 발라 나일강에 그 상자를 띄운 것도 믿음의 행위였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왔다가 이 상자를 발견하고
유모를 구할 때에 미리암을 통해 요게벳이 소개되고,
요게벳은 오히려 인건비를 받아가며 모세를 양육했고,
그후 모세는 바로의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로 성장했다.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소명을 받는데까지
요게벳은 큰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양육하기 위해
섭리하신 선택이 지배적이었지만,
모세가 젖을 빨며 요게벳의 품에서 유아시절을 보낸 것도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데 크게 공헌하게 하였다.
또 모세와 요게벳 사이에는 궁궐의 40년간에도
은밀한 교제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모세가 애굽사람을
쳐죽일 만큼 강한 선민의식을 가진 것으로 알 수 있다.
▶▶ 아 론
출애굽기 4장 10 ~ 14절
아론은 ?고상하다?라는 뜻이다. 모세의 형제요 아므람과 요게벳의
장자요 모세의 형이었습니다. 아론에게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
이라말등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론은 도량이 넓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습니다.
자기 개인보다 공적인 사역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일꾼이었습니다.
또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말을 잘하므로
모세의 대언자이기도 했습니다.
아론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구출 사역에 모세만큼이나 공헌한 사람입니다.
더욱이 연하의 자기 동생을 지도자로 섬기는데
불평하지 않았으며 협력 관계가 충성스러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도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들어 기도를 돕는데 조력하였고 모세의 사역을
보좌하는데 성실하였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올 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일은 아주 부끄러운 실수였습니다.
아론은 최초의 제사장으로 제사직과 하나님의 일을
대언하는 데 충성되었습니다. 또한 아론의 두번째 실수는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할 때 모세와 함께 반석을 두번치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민 20:1~3).
아론은 1백23세에 세상을 떠나고 엘르아살이
그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 엘리에셀
창세기 24장
엘리에셀은 ?하나님은 구원자?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소유를 맡아 관리한 청지기였는데 다메섹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이삭을 얻기 이전에는
엘리에셀을 아들로 삼으려고 할만큼 신임하는 신복이었고
서로 믿고 사랑하는 가족과 같았다. 엘리에셀은 그 사람됨이
충성되고 책임감이 강하며 윗사람을 섬기는 질서도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정과 엘리에셀의 가족은 한 식구와 같이
거리감이 없이 친숙하게 살 수 있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후한 인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에게 보여준
신임과 사생활 속에서 풍기는 인격이 감화였다.
사람이 믿어지고 정이 들 때에는 동족인이나 이방인이나 분별이 없이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엘리에셀이 다메섹 사람인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갈대아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과정에 합류된 종인 것 같다.
그러나 이들 사이는 주종관계를 뛰어넘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였다.
특별히 창세기 24장에 나타난 아브라함이 그 자부를 맞기 위해 아브라함의
환도뼈 밑에 손을 넣어 맹세케 하고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는
자기 고향 친척에게로 보냈던 사연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엘리에셀이 처녀를 쉽게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와 하나님이 허락하신
처녀인지 확인하는 기도와 자기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는 고백은 그의 충정이었다.
▶▶ 아므람
출애굽기 6장 20절 ...민수기 3장 19,27절
아므람은 ?고상한 백성?이라는 뜻이다. 고핫의 아들로서 레위지파 사람이었다.
그는 한 종족을 형성하여 그 종족의 시조가 되었는데 아므람 종족이다.
아므람은 그 아비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했으며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 3남매를 길러 내게 되었다.
아므람이 많은 믿는 자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모세의 아버지였다는데 있다.
남자아이가 출생하면 하수에 버리도록 국법으로 정해진 애굽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세를 길러 낸 아므람의 믿음이 축복의 요건이 된 것 같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한 선민의 지도자를 세상에 보내실 때
아므람 부부를 선택한 것은 그만한 영적 자질이 하나님께 인정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모세를 선민의 지도자로 선택할 때 그가 부모의
슬하에서 신앙의 감화와 영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3년간의
기회를 아므람 부부에게 위임하게 되었다.
이 기간의 종교적인 감화가 1백20년간 모세의 생애를 지배할 수 있는
유효한 기간이었다. 판단력도 없고 자기 의식도 없고 전혀 분별력도
없는 영아 기간의 3년에 그 일생을 지배할 수 있는 영적인 양육이
바로 아므람과 그 아내 요게벳에게 맡겨졌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신임이었다.
선민을 구출하기 위하여 출애굽 사건을 담당할 모세에 대한 발육과
성장과 그 인격 형성에
하나님의 기대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생각해 보자.
▶▶ 엘 리
사무엘상 2장 32 ~ 36절
엘리는 ?고상하다 혹은 높다?는 뜻이다.
그는 아론의 아들 이다말의 혈통 중에 제일 큰 제사장이었다.
엘리는 제사장직과 사사직을 겸비하여 40년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또 엘리가 사무엘이 어릴 때에 양육했다는 사실은 그의 평생 사역중
크나큰 공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엘리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결함은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 대한 자녀교육의 실패였다.
제사장 중에서도 대제사장이 될 만큼 그의 헌신생활은 무흠할
정도로 돋보이는 생활이었다. 대인관계에도 무난했고 제사직에 대해서도,
사사직에 대해서도 그의 실수를 성경은 지적하지 않는다.
자기 사역과 책임에 별탈이 없이 잘 감당하는 일꾼이었다.
이와같이 공생활은 성공했는데 그의 사생활은 실패했다.
그것이 바로 자녀들을 영적으로 지도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종으로
길러내지 못한 과오였다.
두 아들을 올바른 제사장으로 길러내지 못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하였으며 제사와 예물을 방해하고
탈취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 무서운 죄는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범하였다.
이 일로 하나님은 엘리의 가정을 심판하셨는데 두 아들은 전사했고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자 엘리도 의자에서 쓰러져
목이 부러지며 세상을 떠났다.
대제사장의 불행한 마지막을 보게 된다.
▶▶ 아도니베섹
사사기 1장 1 ~ 7절
아도니베섹은 ?베섹은 나의 흙이다?라는 뜻이다.
아도니베섹은 가나안 원주민의 한 부족 베섹왕이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백성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여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허락받은 땅을 다 점령하지
못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여호수아를 잃은 이스라엘백성은
목자를 잃은 양같이 불안한 처지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나안 원주민과의 전투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으며 지도자가 있든 없든 가나안땅에 대한
점령이나 원주민과의 전쟁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결국 영도자 여호수아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가나안족과
브리스족과의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이 전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자 유다백성을 앞세워 싸우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
이 전쟁으로 가나안과 브리스사람 일만명을 도륙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는데 그들과 싸운 지역이 베섹이어서 베섹까지 함락시켰으며
베섹은 예상보다 빨리 정복되었다. 이때에 평소 덕이 없고 강포하며
잔인했던 아도니베섹왕을 사로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어 그의 교만을 꺾었다.
이때에 아도니베섹은 과거 자기가 정복한 70명 왕들의
엄지가락을 자르는 체형을 가한 사실을 기억하며 내가
그 보응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이 아도니베섹은
예루살렘에 끌려오자 죽게 되었다.
이는 강포한 사람의 종말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오훌리압
출애굽기 31장 6 ~ 11절
오홀리압은 ?부친의 천막?이라는 뜻이다.
아히사막의 아들로서 단지파 사람이었다.
모세가 성막을 건축할 때 브사렐과 함께 공교한 성막
기구를 만드는 공인과 감독자로 선택되었다.
하나님은 이들을 선택하실 뿐 아니고 그들에게 지혜를 주셨으며
총명한 마음도 주었고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하게 하였다.
성막의 설계자는 하나님이었고 그 설계를 전달받은 자는
모세였으며 성막을 완성하는 기술자가 브사렐과 오홀리압이었다.
이들은 성막을 건축하는 일과 그 모든 기구를 만드는 것과
제사장의 의복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목표하신 조건을 만족스럽게 완성하였다.
하나님은 성막 건축에 대한 양식을 중요한 부분이나
간략한 윤곽만 지시하신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계시하셨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는 단순한 속죄소를 만드는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에 포함시킨
구속사에 메시아의 예증에 큰 뜻이 숨겨져 있다.
성막에는 그 구조와 기구 하나 하나에 하나님과 우리,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구원의 섭리를 깨우치는 구체적인 교훈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성막 건축에 대한 계시도 성별된 방법으로 특수하게 전달되었고
건축을 담당하는 자나 진행 과정은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인도를 일일이 받았다.
▶▶ 오벧에돔
사무엘하 6장 10 ~ 12절 ...역대상 15장 25절
오벧에돔은 ?에돔신의 예배자?라는 뜻이다.
가드 사람으로 가드림몬 레위사람의 성읍 출신으로 본다.
그는 기럇여아림과 예루살렘의 중간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대었다가 죽은 근방이었다.
웃사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행렬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고
그 인근에 있는 오벧에돔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 기간이 3개월이었다.
하나님이 오벧에돔과 그 온 집을 축복하시므로 법궤를 두려워했던
다윗왕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된 것이다.
아비나답의 집에서 법궤를 운반할 때에는 새수레를 만들어 소들이
끌게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법궤는 채를 양편 고리에 꿰어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수레를 만들어 법궤를 운반하는 것이 더 정성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지는 법궤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장로들이 어깨에 메고 올라갔다.
오벧에돔은 뜻밖에 자기 집에서 법궤를 맡게 되었고 짧은 기간에
다른 사람이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었다.
이 소문은 그 부락이나 지역뿐 아니라 전국에 삽시간에 알려졌다.
법궤는 두려워할 대상만이 아니라 가까이할 대상임을 알게 하였다.
▶▶ 이 새
사무엘상 16장
이새는 ?주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이새는 그 본인보다 다윗의 아버지로서 더 유명하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으로 그 생업은 목축업이었다.
그에게 아들 여덟 형제가 있었는데 다윗은 그 막내였다. 이새는 신앙의 인물이었다.
성군을 아들로 양육했다는 게 그에겐 명예였다.
이사야서 11장1절에 보면 ?이생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하신 말씀이 이새를 존귀하게 만들었다. 이 예언에서는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라기보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혈통으로
이새를 높인 하나님의 의지를 볼 수 있다.
이새는 다윗의 그늘로만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선택으로 특수한 인물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이새의 줄기로
메시아를 소개하신 것은 말 구유에 태어나신 것처럼 모든 백성을
구원하실 메시아의 신분이 서민적임을 돋보이게 하셨다.
이새는 촌부요 목동으로 큰 야망도 없었으며
조용히 자기일에 충실한 평화로운 시골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으로 명인이 된 것이다.
이새에 대한 소개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어
다닐 때까지의 기사로 끝나는 것 같다.
이새는 아버지로서나 남편으로서의 책임도
원만하게 감당한 모법적인 인물이었다.
이는 자녀들을 위해 쏟는 정성으로 알 수 있다.
▶▶ 아 각
아각은 ?흉포?의 뜻으로 생각한다.
아각은 아말렉의 왕으로 하나님께 심판 받은 자였다.
아각은 그 자신의 남보다 지나치게 사악한 사람이라든지 큰 죄인이어서
심판받았다기 보다 아말렉의 왕이었으므로 심판 받았다는 편이
본문이 보여주는 강한 인상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선민을
괴롭힌 과거가 있는 아말렉의 왕이 됐다는 것이
그에게는 결정적인 불행의 조건이었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때
그 진로를 방해하고 직접 전쟁을 일으킨 최초의 적이 아말렉이었다.
이 전쟁은 모세가 산상에서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손을 들고
기도함으로 아말렉을 대파하게 됐다. 이때에 여호와께서 아말렉을
도말하고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겠다는 예언을 허락하셨다.
이 예언이 아각왕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사울에게 지시된 것이다.
그러나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고 아각왕과 짐승의 일부를 살려둠으로
하나님이 사울을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으며 사울이 버림받는 원인이 됐다.
사무엘 선지자도 크게 노여워하면서 아각을 끌어오게 하여 아각을
찍어 쪼개 아말렉에 대한 심판의 표증을 삼았다.
아말렉과 아각에 대한 정죄와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을 대항하고
하나님의 큰 역사의 섭리를 거스르는데 있었다.
개인이나 국가나 하나님과 맞서서 심판된 좋은 실례이다.
▶▶ 엘리압
사무엘상 16장 6,7절....역대상 27장 18절
엘리압은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뜻이다.
이새의 맏아들이며 다윗의 장형이었다.
그는 준수한 사람이며 키도 크고 용모가 뛰어나 사람이었다.
누구든지 첫눈에 호감을 가질 만큼 좋은 인상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새의 아들 중에 기름을 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사물은 엘리압이 기름부음 받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렇게 사무엘이 엘리압에게 관심을 갖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기를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상과 같이 하나님은 사무엘의 관심을 엘리압에게서
그의 다른 형제에게로 돌이켜 놓으셨다.
엘리압은 외모가 매력과 호감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그의 중심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이르기를 ?
내가 이미 그(엘리압)룰 버렸노라?하셨다.
이 말은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됐다는 말이다.
엘리압은 이새를 돕고 그 뒤를 이을만큼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으로 윤리적으로는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영적 자질이나 마음은
하나님이 쓰시기에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엘리압이 관장이 된 것을 보면(대상 27:18)
사람들에게는 존경을 받고 있었다. 관장은 수령이요 재판장이었던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엘리압에게 아쉬웠던 것은
하나님과의 친교가 미흡했다는 점이었다.
▶▶ 오 벳
룻기 4장
오벳은 ?종?이라는 뜻이다.
오벳은 룻과 보아스의 아들이며 다윗의 할아버지였다.
오벳은 그의 행적이나 그가 남긴 선행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엘리멜렉의 끊어진 혈통을 이어준 인물로 더 유명하다.
한 가정이 경제적으로 파탄되고 모든 남자를 잃어 혈통의 계승을
소중히 여겼던 유대 사회에서의 부끄러운
수치를 모면하게 만든 주인이 오벳이었다.
오벳은 다 쓰러져가는 불행한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큰 소망의 상징이 된 사람으로 우리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준다.
오벳의 출생 배경은 아래와 같다.
나오미가 빈 몸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베들레헴에
돌아온 것은 한 가문을 다시 세우는데 거의 불가능한 처지였다.
그러나 계대의식에 따라 기업 무를 자를 찾던 중 보아스를 만나므로
나오미의 가정은 경제적인 것과
함께 혈통을 잇는 축복도 받게 되었다. 이것이 룻과
보아스와의 결혼이었다.
여기에서 태어난 아들이 오벳이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 사람들은 오벳을 두고 이르기를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며 생명의 회복자요,
일곱 아들보다 귀한 선물이요,
나오미의 아들이라고까지 불렀다.
결국 오벳은 나오미의 가정과 보아스의 가정에 기쁨과
소망이 되었다. 양가를 위한 축복의 증인이기도 하다.
▶▶ 이가봇
사무엘상 4장 19 ~ 22절
이가봇은 ?영광이 떠났다?는 뜻이다.
이가봇은 비느하스의 아들이요 엘리 제사장의 손자였다.
엘리 제사장이 제사장 직분을 바로 감당하지 못하였고
홉니와 비느하스 두 아들의 문란한 행위를 바로잡지 못하였으므로
엘리 제사장 가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이 심판을 상징하듯이 성직자의 가정이 비참하게 무너질 때
태어났으므로 이름을 그 어머니가 이가봇이라 호칭하였다.
하나님의 법궤는 블레셋 나라에 빼앗기고 그 남편
비느하스와 그 형제 홉니가 함께 전사되었으며
이 소식을 들은 엘리가 충격에 못이겨 쓰러져 죽게 되었다.
이 큰 소동 속에서 비느하스의 아내도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몸을 굽혀 이가봇을 해산하게 되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이가봇을 해산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죽어가는 산모에게 ?두려워 말라 아들을 낳았다?고
위로했지만 대답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신앙 양심이 살아 있었고 조만간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예감했던 신앙의 사람인 것 같다.
이가봇은 엘리의 가문을 대변하는 이름의 소유자다.
▶▶ 웃 사
사무엘하 6장 3 ~ 11절
웃사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웃사는 기럇여아림에 살았던
아비나답의 아들로 웃사에게는 아효와 엘리아살이라는 두 형제가 있었다.
20년간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되었다가
다윗왕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때 새 수레를 만들어 법궤를 운반하게 되었는데
아효와 웃사가 새 수레를 몰게 되었다. 이는 20년동안 법궤와
더불어 생활해 왔기 때문에 아비나답의
자녀들이 법궤 운반의 책임자가 된 듯하다.
매우 평범한 가정에 다윗왕이 직접 주관하는 행사였으므로
그 행렬이나 그 행사 자체가 대단히 성대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이 행사에 하나님의 관심도 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법궤가 운반되던 도중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수레를 끌던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궤를
붙들자 하나님의 진노로 웃사가 현장에서 죽게 되었다.
이는 자기집에서 20년동안 함께 했던 웃사로서는
자연스러운 행동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법궤에 대한 권위를 새롭게 하며
법궤를 통한 영적질서를 다시 세우시려는 때였으므로 법궤에
함부로 손을 대는 일에 대한 엄격한 경고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더욱이 법궤를 빼앗겼다 돌려받은
입장에서 웃사의 사건은 새로운 경각심을 갖게 한다.
▶▶ 요엘,아비야
사무엘상 8장 1 ~ 9절
요엘은 ?여호와는 그의 하나님?
이라는 뜻이며 아비야는 ?여호와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이들은 사무엘 선지자의 아들로 요엘은 장자요,
아비야는 차자였다. 사무엘은 나이가 들자
그 두 아들을 다 사사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요엘과 아비야는 아버지 사무엘 선지자를
따르지 않고 신앙적으로나 영적으로 나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탈선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따라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였으며
백성들로부터 전혀 신망이 없었다. 사무엘과 같이 훌륭한
선지자를 아버지로 모셨고 사무엘의 일생에 나실인으로서 훌륭한
모범을 보였는데 요엘과 아비야는 탈선된 자녀들이 되었다.
훌륭한 감화와 올바른 영적인 헌신을 보여주었는데도 요엘과
아비야는 영적으로나 헌신의 방법으로나 전혀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
사람의 신앙과 하나님과의 교제는
전혀 개별적인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부모의 훌륭한 인격과 하나님께 대한 충성된 헌신이
반드시 자녀에게 계승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요엘과 아비야의 지도력은 백성의 불신앙을 받게 되었고,
신망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몰려와 당신이 죽기 전에 왕을 세워 달라고
제안하기에 이르렀고 하나님께 대한 영적인 질서까지
위협받게 되었다. 선민에게 왕을 세우는 것은 사무엘이나
하나님이 다같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 아비나답
사무엘상 7장 1 ~ 2절..사무엘하 6장 3,4절
아비나답은 ?아버지는 관용하심?이라는 뜻이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전함으로써 빼앗겼던 법궤가 블레셋땅
다곤 신전에 옮겨지자 우상이 파괴됐다. 다시 가드로 법궤를 옮기자
그 지역 주민이 죽거나 독종으로 고통을 받아 법궤를
이스라엘에 귀환시키기로 결의했다. 이 법궤가 벧세메스에 이르렀을 때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 본고로 5만70명이 죽게 되었다.
이렇게 다시 돌아온 법궤에 대한 안치 문제가 두려운 조건이 되었을 때
아비나답이 자기집에 법궤를 들여놓은 것은
놀라운 영적인 용기가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이는 실수할 경우 불경죄로 인해 자신과 온 가족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기럇여아림의 촌부 아비나답이 그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믿음이 있어 법궤의 위치가 곤란할 때에
법궤를 환영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큰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이 아비나답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는가.
법궤가 그 집에 20년간 머물고 그 가정이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았다.
또한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법궤를 지키게 하였다.
아비나답은 법궤를 이방인에게 빼앗길 만큼 영적으로 불안한 때에
온 선민을 안정시킬 수 있는 큰 사명을 감당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 오르바
룻기 1장 4,14,15절
오르바는 모압여자로서 나오미의 며느리였다. 엘리멜렉의 가족이
베들레헴 지역에 흉년이 들자 모압에 이주하여 그 아들 말론과
기룐을 위해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맞았었다.
그러나 그 가족중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은 세상을 떠나고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만 남게 되었다.
결국 나오미는 오르바와 룻에게 자기집으로 돌아가도록 권고하고
가기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이때에 오르바와
룻은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갈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나오미는 내 고난을 너희에게까지 지우지 않겠노라고 강하게
권고하여 새 가정을 갖게 좋은 남편을 만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아픈 마음으로 권고했다.
이때 오르바는 크게 울며 시어머니에게 입맞추고 가지 친정으로 돌아갔다.
오르바도 룻과 같이 처음에 가졌던 나오미를 좇으려는
결심을 실천했더라면 그의 운명은 전혀 달라 졌을 것이다.
오르바가 크게 실수했거나 죄를 범한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큰 축복의 기회를 상실했다.
룻이 이방여자로 그리스도의 족보에 끼여든 것처럼 오르바도 동등한
기회를 가졌는데 인내심과 판단력과 종교적인
성향의 부족으로 실패하였다. 이는 오르바의 아쉬운 점이다.
▶▶ 요아스
역대하 22장 10절 ~ 24장 7절
요아스라는 말은 ?여호와는 강하다?는 뜻이다.
요아스는 유다왕 아히시야의 아들이며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요
브엘세바 사람이었다. 나이 7세에 즉위하여
예루살렘에서 40년동안 통치하였다.
그 아버지 아히시야왕이 세상을 떠날 때에 아히시야의 어머니
아달야가 왕의 혈통을 모조리 학살하고
자기 아들의 뒤를 이어 왕의 되었다.
이 참변 속에서 아히시야의 어린 왕자 요아스는
그의 고모 여호사브앗의 기지로 죽을 면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손이었다.
요아스가 6년동안 은밀히 양육되자 제사장 여호야다와
여러 족장과 레위 사람들이 동맹하여 아달야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요아스를 즉위시키려고 결의하였다.
결국 아달야는 왕궁 미문 어귀에서 살해되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가족이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였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바알의 단과
우상들을 훼파하고 그 제사장까지 제거하였다.
이렇게 종교적인 개혁을 이뤘고 하나님의 전을 수리하여
정성껏 가꾸고 성전 기명까지 구비해 온 백성의 지지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크게 번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년에 와서는 믿음이 없는 방백들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기며 충성된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였다.
결국 요아스는 특수한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훌륭한 신앙으로
출발하였으나 말년에는 타락해 하나님께 버림받고
그 심복에게 살해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 아 낙
민수기 13장 22,32,33절
아낙은 가나안 원주민
중에 아낙 사람의 조상이며 아르바의 아들이었다.
이들의 선조는 고대의 용사 네피림이었다.
네피림은 전쟁에 능하고 사냥꾼 같이 날쌔고
강한 부족이었다(창 6:4). 그 종족은 키가 장대하고 골격이 컸고
힘이 장사요 대장부와 같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12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땅을
탐지하게 하였을 때에 정탐꾼들은 그들의 보고에서
아낙 자손에 비해 자기들은 메뚜기 같다고 비교하였다.
아낙 자손의 성은 견고하고 심히 컸다고 기록하므로
그들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을 점령할 때에는
다른 원주민과 다를 바 없이 함락되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점령하고 헤브론 지역과
그 성을 갈렙에게 주었을 때 거기에도 아낙의 소생 세새,
아히만, 달매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을 추방하였다.
아낙 자손은 유리한 신체적인 축복을 받았으나
그들의 건장한 힘을 평화와 건전한 번영을 위해 사용하지
못한 채 힘만 자랑하다가 역사에서 쇠퇴하고 말았다.
네피림의 기원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낳은 후손들이었다(창 6:4). 이 죄로 노아의 홍수 심판이
있게 되었는데 이들은 무분별한 성적
타락으로 얻어진 혈통이었다. 네피림과 아낙 자손은
힘이 좋고 장대하였으나 타락의 대명사가 되었다.
▶▶ 아르바
여호수아 14장 15절. 15장 13절
아르바는 ?넷?이라는 뜻이다. 아르바는 아낙의 부친이며
아낙 자손의 시조로 가장 큰 사람이었다.
아르바가 헤브론으로 알려진 지역에 기럇 아르바를 창설하여
그 지역의 족장인 동시에 통치자가 되었고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이 그의 영토였다. 아르바는 사람 이름이면서 동시에
지명으로도 통용될 만큼 당시 그의 위세는 대단했다.
또한 아르바는 지역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낙 자손의 본거지요 요새이기도 하였다. 이 기럇 아르바가
성읍과 평원을 갖춘 지역이어서 남부 유다에서 역대로 욕심을
내는 지역이었다. 아브라함이 처음 정착한 곳도 이곳이요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정복하는데 있어 일등 공신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마음을 써서 허락한 땅이 기럇 아르바였다. 이는 여호수아가 갈렙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의미있게 허락한 분깃이었다. 또한 여섯 도피성중에
하나가 바로 기럇 아르바에 있었다.
아르바의 후손 아낙 자손은 특수한 건강과 체력과 골격을 가진
유명한 자손이었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가능성만큼
훌륭한 업적이나 화려한 역사를 남기지 못했다.
아르바의 후손은 가나안의 후손으로 묻혀 버렸고
아낙 자손의 특징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르바도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가나안 원주민들과 같이
타락한 생활을 일삼았고 우상숭배와 이방신을 섬기다가 심판 받았다.
▶▶ 엘가나
사무엘상 1장 1 ~ 8절
엘가나는 ?하나님은 소유하심?이라는 뜻이다.
엘가나는 에브라임 사람으로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살고 있었다.
엘가나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었다.
성경에 그의 혈통을 자세히 기록한 것은 엘가나를 선택하고
그 혈통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엘가나에겐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브닌나에게만 자녀가 있었다.
엘가나가 종교심이 강했던 것은 매년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에 나아가
온 가족이 제사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또한 제사를 드릴 때마다 한 가정이라는 가족 단위의 제사가 아니라
온 가족이 개별적으로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이는 일반 사랑으로는 드문 일이었다.
또한 무지했던 한나가 하나님께 서원하여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며
나실인으로 드릴 것을 약속하고 특별 기도를 드렸다.
한나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포도주에 취한 사람같이
보일 만큼 열렬하게 부르짖는 기도요 뜨거운 기도였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셨고 그 서원을 받으셨다.
이때에 엘가나와 한나를 통해 사무엘을 허락하셨고 사울과
다윗왕에 걸쳐 선민의 왕궁이 크게 번영하는 시대에 영적 지도자를
삼으신 것이다.
엘가나는 사무엘에게 있어 훌륭한 아버지였다.
▶▶ 엘닷과 메닷
민수기 11장 26 ~ 29절
엘닷은 ?하나님의 벗?이라는 뜻이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가질 때
모세를 도운 70장로 중에 속해 있었다.
다른 장로들은 성막에서 여호와의 신을 받고 예언할 때에
엘닷과 메닷은 진중에 있었는데도 여호와의 신이
그들에게 임해 예언하게 되었다.
이때 한 소년이 모세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여호수아가
회막에서 받지 아니한 두 장로에게 임한 성령과 예언을
부정하려 하였으나 모세는 시인하였다.
그뿐 아니라 회막에서나 진중에서나 어디서든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신에 충만하며 나와 같이되기를 원한다고 오히려
여호수아를 권면하였다. 여기서 모세의 큰 인격을 알 수 있고
너그러운 그의 지도력을 알 수 있고
너그러운 그의 지도력을 발견하게 된다.
엘닷과 메닷이 모세가 인도하는 성막예배에 참여하지
못했는데도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
이는 성막예배의 성격을 알고 진을 지키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였기 때문에 성막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진중에도 함께 내려졌다.
이는 칠십인 장로가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영적 분위기에 동참했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
제한되지 않고 같은 목표를 위해 마음을 함께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엘닷과 메닷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엘닷과 메닷은 맡겨진 일에도 성실했지만 영적인 성장에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항상 깨어 있는 사람에게 은혜를 더하신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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