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영성훈련

[스크랩] 성령 충만한 삶

힐링&바이블센터 2006. 9. 11. 17:02

교회 세미나

성령 충만한 삶

2006/08/20 (주일오전)   엡 5:15~21    정진국 목사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교회를 계시하는 책입니다. 이제 우리가 교회에 대한 밝은 이해를 가지기 위해서 에베소서를 연구하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내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새 생명인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서를 통해서 밝아지듯이, 교회의 원리는 에베소서를 강해하며 연구하면 이해가 풍성해 질 것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충만에 관한 명령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교회는 성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화의 원리로써만 교회가 작용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는 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기능이 다양하고, 스케일이 큽니다. 그런데 그 기능 가운데 하나가 성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른 한 짝을 이루고 있음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이 있을 때, 여러분의 성화가 비로소 완성되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만 이해하게 될 때는 온전한 성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역사하는 생명의 유기적인 역사함과 함께 더불어 우리를 온전히 세워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예배 때부터는 그리스도의 몸의 비밀에 대해서 함께 묵상하며 연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보다 앞서서 이 시간에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오늘 본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은 15절로 17절의 말씀에 의하면 세월을 아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낀다는 말은 세월을 버는 것입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월은 우리가 잡지 않으면 놓쳐버립니다.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나의 공로, 나의 업적으로 캐치(catch)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실감납니다. 아침에 눈떴는데 벌써 잠잘 시간입니다. 일주일이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벌써 새로운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06년도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8월말입니다. 2006년도 몇 개월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세월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면, 세월을 낭비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세월을 잡아야 합니다.


성경은 세월을 잡는 방법을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이 세월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이 세월을 붙잡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단 말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이 세월을 자기의 업적으로 만드는 지혜를 가지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엡 5:15) 지혜로운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지혜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참된 지혜를 동시에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참 지혜로운 삶이란, 성령 충만한 삶임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 질 때, 세월을 붙잡는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으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서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은 이 세월동안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지고 변화되어지기를 갈망하시고 소망하심을 기억하십시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 제일 먼저 언급된 단어가 ‘태초에’입니다. (창 1:1) ‘태초에’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주 창조는 인간을 향한 창조였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창조의 시작은 시간과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세월 속에 창조되어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충만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비젼을 심어주시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간을 주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창 1:1)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 1장에서 “천지창조의 시작”이라는 개념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을 작동시키면서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시간이 끝날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시간이라는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이라는 것을 벗어날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영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원은 시간의 무한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끝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시작되어졌고, 시간이 멈춘 후에는 영원 속에서 시간에 제한받지 않고, 시간을 초월한 세계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시간의 존재가 없는 것이 영원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얼마나 붙잡는가?”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생각 없이 세월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헛된 것에 세월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생각 없이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80년을 산다고 해도, 그 중에 잠자는 시간만 합쳐도 10년이 넘습니다. 그 외에 여러 시간들을 빼고 나면 정작 우리가 의식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훨씬 적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멍하니 생각 없이 지낸단 말입니까? 생각 없이 사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죄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세월을 집중하지 않고 주목하지 않고 있으니 죄인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지 못함이 곧 죄다


과거부터 의식하지 못하는 큰 죄가 있습니다. 태만의 죄입니다. 태만이라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이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요, 게으름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가난해지고 부지런 한 사람이 부유해질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잠 10:4) 게으른 사람은 부자가 될 것을 기대하지 말고, 무엇인가를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이 태만의 죄요, 직무유기의 죄입니다.


이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최초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지키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세월을 아껴야 되는 명령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세월을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시간을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주어진 세월 속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월이 기회가 나에게 무엇을 향한 기회이고 시간인지를 이해하고,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시간이 무엇을 위한 시간인지 알지 못하고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면, 훗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그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막연한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계획 없는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에서는 세월을 가장 아끼지 않는 삶을 방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고 방탕이라는 말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방탕이라는 것은 되는대로 살아가는 것,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규모 없이 행한다는 말과 같은 개념인 것입니다. (살후 3:11) 규모 있는 삶은 시간을 관리해서 시간을 아끼는 삶입니다. 그러나 방탕한 삶은 규모가 없고, 시간을 관리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산다는 말입니다. 이는 육체의 정욕을 좇아 사는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다투는 인격적인 죄가 없다고 말할지 몰라도, 그 보다 더 무서운 죄는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는 게으름의 죄입니다. 세월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의도가 있는데, 그 세월을 그냥 흘러 보낼 때 그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 시간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학창시절에는 주어진 환경 가운데 열심히 공부하면서 보내야 합니다. 청년시절은 청춘을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시간으로 드려야 합니다. 장년의 때에 열심히 부지런히 일해서 하나님이 맡기신 비젼을 실현해 내는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노년의 때에는 삶의 노하우를 젊은이들에게 전수하고, 그들을 일깨우면서 지혜로 이끌어 가는데, 세월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젊음의 때를 관리하라고 말입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 심판대에 서게 될 날이 있음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십시오.


세월을 관리하는 가장 지혜로운 길은 성령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들에게 세월을 관리하는 지혜를 준다는 말이고, 성령 충만한 삶 자체가 우리에게 세월을 획득하는 길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세월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결코 방탕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성령 충만함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규모 있음이요, 부지런함입니다. 열심이 있습니다. 오늘 내 삶이 규모가 없고 게으르다고 판단된다면, 그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날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성령께서 순간순간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일주일 단위로, 1개월 단위로 조직적이고, 규모 있고, 체계적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의 현상 - 말의 변화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8)


이 말씀은 성령 충만한 것과 술 취하는 것을 함께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안에서 둘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대비한 것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술 취한 사람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틀립니다. 술에 취하면 방탕해지지만, 성령 충만하면 세월을 아끼면서 규모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술 취하면 제정신이 아닙니다. 자기 의지를 상실하고 풀어헤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해 지면, 감정도 자신의 의지도 통제할 수 없게 되지만, 방탕과 같은 풀림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조율되는 의미입니다. 술의 힘이 나를 이끌어 간다면, 성령 충만은 성령의 힘이 나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합니다. 혀도 꼬부라집니다. 눈동자도 풀리고 초점을 잃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말이 규모 있고, 조리 있고, 경우에 맞는 말을 하게 됩니다. 잠언에서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 9:10) 구약에서 지혜가 하나님이라면, 신약에서 지혜로움은 성령으로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면 우리는 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해지면 말부터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보십시오. 성령께 여러분을 맡기십시오. 성령이 나를 인도하시도록 나의 주재권을 맡겨보십시오. 그래서 성령이 나를 주장하시면 말이 규모가 있어 집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술취한 사람은 말이 꼬이면서 횡설수설하지만, 평상시 하고 싶었던 말을 그 술의 힘을 빌어서 합니다. 참고 눌러두었던 말들이 거침없이 폭발됩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를 주장하시면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눌러두었던 말들을 거침없이 하게 하십니다. 계산에 의해서, 입장에 의해서 말들을 가리지 않고 성령께서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대로 그 말들을 담대하게 쏟아내게 된단 말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하는 말에는 파괴력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는 술 취한 사람이 하는 말의 결과와 정 반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눅 12:11~12)


오늘 우리가 성령으로 온전히 충만한 가운데 성령이 나를 지배하고 성령이 나를 다스리고 내 입술을 주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체들을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불신자들을 향해서 거침없이 쏟아놓게 됩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 이 말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성령 충만하면 거침없이 나옵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좋아하겠지만 내가 볼 때 당신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그들이 가진 장신구가 보이는 게 아닙니다. 썩은 시체가 보입니다. 불쌍한 영혼이 보입니다. 죽은 시체가 잘난척 해봐야 썩은 냄새밖에 더 나겠습니까.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의 현상 - 걸음걸이의 변화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지지 않으면 세상 것이 보입니다.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지지 않으면 사람이 보이고 물질이 보이고 세상의 성공이 보입니다. 내 눈이 흐려져서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인생이 맑음과 흐림이 반복됩니다. 한때는 “주님 당신이 최고입니다”하다가 어느 날엔 돈이 없어서 울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마치 술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면서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변함없이 똑바로 목표를 향해서 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한 길을 갑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의 현상 - 감정의 변화


술 취한 사람들은 끊임없는 감정의 기복이 있는 반면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감정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한결 같이 기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가슴속에서 기쁨의 찬송이 늘 나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5:19)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가슴속으로부터 진정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찬양이 있습니까? 성령 충만하면 영혼의 노래, 생명의 노래, 생기발랄한 찬양이 흘러넘친단 말입니다.


대인관계 속에서 감정의 변화가 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감정이 자기를 이끌도록 내 버려둔 것입니다. 우울증도 문제이지만 조울증도 문제입니다. 우울증은 어두움의 증상으로 자꾸 다운되는 것입니다. 조울증은 밝은 것입니다. 굉장히 밝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도 감정에 의한 증세입니다. 결국 우울증이든 조울증이든 감정에 이끌려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감정에 이끄는 삶을 살면 안됩니다. 성령의 이끌리는 삶을 삽시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의 현상 - 그 안에 들어가는 과정


무엇보다 술 취해 가는 과정과 성령 충만해지는 과정이 매우 흡사합니다.


먼저 술을 마실 때 맨 정신에 술을 마심으로 시작합니다. 한잔 할 때, 정신이 멀쩡합니다. 내 감정과 의지로 술을 통제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도 같습니다. 처음에 성령께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이끌어 가실 때, 내 마음대로 성령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할 수 있고, 성령의 음성을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이 나를 지배하기 보다는 내가 성령을 지배하는 격인 것입니다. 이것은 술이 나를 이끄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술을 통제하는 인생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술을 두잔 세잔 먹다보면 술맛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술이 술을 부릅니다. 성령인도하심도 한번 두 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기쁨과 행복함이 생기면서 성령을 좇아 사는 삶의 맛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 생활을 누리고 싶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찾게 됩니다. 곧 성령이 성령을 부르는 단계입니다. 성령 충만의 맛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술맛을 알고 술이 맛있다가 이제 술의 맛을 모르는 단계인 취한 상태입니다. 술의 힘이 사람을 장악하고 지배합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나를 지배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것이 술 취함과 성령 충만과 같은 의미입니다. 술 취함은 술이 사람을 장악하는 상태라면 성령 충만은 성령이 나를 주관하는 상태입니다. 술이 사람을 주관하면 술의 힘에 의해서 말하고, 감정표현하고, 자신의 의지가 나오게 됩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힘에 의해서 말하고, 성령에 의해서 감정이 표현되어지고, 성령에 의해서 내 의지가 표현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술에 취하고 싶으면 술에 취할 수 있고, 성령에 취하고 싶으면 성령에 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술맛을 알아서 술에 취하면 술 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성령의 맛을 알아서 성령에 취하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출처 : 복음과 삶
글쓴이 : 코람데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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