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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설교학

힐링&바이블센터 2006. 8. 1. 15:47
說敎學

제1장 서론
Ⅰ 설교의 정의
1. 설교란 무엇인가?
(1)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하고 근거하여 신자와 불신자에게 예수의 복음을 감동하도록 권면 하는 강화이다.
(2) 하나님의 매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3) 예수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설득시키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적용시켜 주는 것이다.
(6) 성령의 감동 감화를 입어 성령이 하게 하시는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7)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계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8) 공적인 예배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 담화이다.
2. 학자들의 정의
앤드류 블랙우드(미국 감독교회의 대설교가): 필요한 어떤 것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선정된 인물이 성경의 거룩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무엘 볼베더(미국 칼빈신학 설교학 교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구두로 행하는 선포이다
에반스: 설교는 인간에 대한 구원의 선포이다
다드(C.H.Dodd)(영국의교수): 설교는 자기의 말을 전달하는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를 선택하여 보낸 분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즉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설교이다
호핀: 설교란 공 예배 시에 기독교 진리를 계획적이고 구체적으로 확신을 가 지고 선포하는 것이다.
포사이드: 설교는 복음의 연장이고 복음의 선포이다.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중단 없는 행위로서 그것이 계속적으로 반복되어 선언되는 것이다.
짐 그레함: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 주고 설명해 주는 것이다
고도고상: 설교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설교자가 성령의 인도에 의하여 성경 의 말씀을 고백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증거 하는 것이다
헤릭 존슨: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사람을 구원하려는 계획과 목적에서 사람을 감동하도록 권면 하는 법 있는 강화이다.
정성구: 설교란 구속주인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을 만나도록 해주는 것이다
임택진;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박희천: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조리있게 잘 표현하여 양떼들의 마음에 깊 은 감동을 끼치는 것이다
Ⅱ 설교의 중요성
1. 예수님이 주요시 한 사역 중의 하나였다
▶ 예수님의 3대 사역은 (1) 신유, (2) 축귀, (3) 설교이었는데 이 3대 사역 중 설교는 가장 중심이 되는 사역이었던 것이다.
▶ 예수님의 분부는 천국을 선포하며 복음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는데 후세 제자들에게 주신 분부 중 제일 중요한 사역이었던 것이다
2. 목회의 성패를 좌우한다,
▶ 목회의 3대 성공 조건을 든다면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이든
(1) 지도력 -정치 (2) 감화력 -설교 (3) 영 력 -기도를 들 수 있는데
설교는 이 3대 조건 중 제일 중요한 기능적 조건인 것이다.
3. 복음 전파에 제일 효과적이다.
사람을 회개시켜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며, 예수님을 영접시키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데 설교만큼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없다
4. 교회의 부흥을 좌우한다
교회가 부흥되는 데는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조건은 그 교회 목사의 설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생명력이 넘치는 설교를 찾고 있음을 잊지 말자.
5. 신자의 신앙 각성과 양육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신자들은 목사의 설교를 듣고 신앙을 추스르며, 신앙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목사의 설교에 의하여 신앙이 좌우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인은 목사가 설교해 주는 더 이상의 하나님을 상상치 못한다.
교인은 목사의 영향을 받는다.

Ⅲ 설교의 기능
1. 설교는 선교의 기능이 있다
2. 설교는 교회 성장의 기능이 있다
3. 설교는 신앙 성장의 기능이 있다
4. 설교는 치유의 기능이 있다.
Ⅳ 설교의 기본 원칙
1. 성경에 포함 된 하나님의 말씀(진리=뜻)이어야 한다
설교자의 권위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계시)을 선포한다고 하는 인식을 주는데서 온다. 인간의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 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교인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절대로 설교 시간에 말하 지 말아야 한다.
설교는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성경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 다. 설교의 내용과 성경의 문맥이 잘 맞아야 한다.
성경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오늘에 살리는 것이다. 가능한 본문을 떠나서는 안 된다.
2. 설교는 항상 종교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설교가 윤리 강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어서는 안 된다.
종교적 관계와 윤리적 관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3. 하나님과 사람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 ← 설교자 → 사람(현실상황)
설교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말씀의 소통을 위한 방편이다.
설교자는 말씀에 붙들려 있다는 manner를 가져야 한다.
설교자와 교인이 함께 은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4. 주제와 명제가 분명해야 한다.
주제가 추상적인 것은 금물이다. 항상 구체적인 말씀이어야 한다.
정확한 명제여야 한다. 주제와 명제가 분명하게 정의되어지고 분명하게 풀 어져 나가야 된다. 주제나 명제와 다른 것들로 줄거리를 혼미 시키면 안 된다.
5. 확신된 것을 확신 있게 전해야 한다.
괴테: 당신들의 의심스러운 것은 내게 말하지 말라. 내게도 의심이 많으니까?
그러므로 설교자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렇습니다."라고 외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
6, 줄거리와 사상이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앞뒤가 엉크러지거나. 앞 뒤 논리가 이랬다 저랬다 틀리면 안 된다.
사상과 주장점이 정(正) 반(反)으로 왔다 갔다 하거나, 여러 가지로 갈리 면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거리가 일관되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7. 소망적, 적극적, 긍정적이어야 한다.
마틴 루터킹: 나는 꿈을 본다. 참으로 설교는 소망을 갖다 주는 배임을 잊지 말라.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면서, 한숨을 쉬면 환자는 절망한다.
내용과 언어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채우도록 해야 한다.
8. 황공함과 경건함이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경건한 manner가 있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말씀이 설교자인 나로 성육 신 되어 교인들 가운데 거한다.
그러므로 황공스러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강단 등단 시 이제 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정해진다고 생각하고 언어의 부족을 고백해야 한다.
*루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로 인해서 제한되어 질 수 있다."
9. 사랑과 축복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목사는 저주 권이 없다. 오직 사랑 긍휼히 여기는 권한 이외는 없다.
설교 시간에 감정적으로 교인을 저주하지 말라.
7. 적절한 시간과 방법으로 해야 한다.
설교의 법을 무시하지 말라, 형식은 자유롭게 하되 설교의 법을 벗어나지 는 말라. 적절한 방법으로 효과를 증가시키도록 해야 한다.
지루하면 설교의 효과가 삭감된다. 적당한 시간에 멈출 줄 알아야 한다.
Ⅴ 설교의 목표
1. 이 설교로 죄인을 회개토록 해야겠다
2. 이 설교로 예수를 영접토록 해야겠다
3. 이 설교로 영혼을 구원토록 해야겠다
4. 이 설교로 사회를 구원토록 해야겠다
5. 이 설교로 천국을 향하도록 해야겠다
6. 이 설교로 믿음을 불일 듯 일으키도록 해야겠다
7. 이 설교로 소망을 불일 듯 일으키도록 해야겠다
8. 이 설교로 사랑을 불일 듯 일으키도록 해야겠다
9. 이 설교로 회중을 치료토록 해야겠다
1O. 이 설교로 제자가 되도록 해야겠다
* 설교의 목적을 대별한다면
1) 구원시키는 것
1. 죄, 사망, 불안, 절망. 고통으로부터 치유하는 것 즉 풀려나는 것
2. 죄, 절망, 불안, 고통으로부터 승리하는 것
3. 사랑하는 것- 구원은 근본적으로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즉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님의 자녀된 자아의식을 갖는 것,
설교는 구원받은 상태를 지속케 하는 것이며 구원의 깊이, 힘, 높은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2) 소생시키는 것
설교의 목적은 심령적으로 볼 때 소생시키고 위로하고, 문제 해결을 주고 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어서 점점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Ⅵ 설교의 근거
1. 설교의 합당치 않은 근거
(1). 설교는 자기 사상(이데오르기)을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
(2). 설교는 자기 감정을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
(3). 설교는 자기 경험, 체험을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
(4). 설교는 자기 목적을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
(5). 설교는 세상 학문을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
(6). 설교는 가변적 진리를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
(7). 설교는 사람들의 욕망적 요구를 근거로 삼으면 안 된다.
2. 설교의 근거 - 성경
(1). 성경만이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2). 성경만이 거룩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3). 성경만이 축복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4). 성경만이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5), 성경만이 사람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6). 성경만이 치료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7). 성경만이 모든 문제의 바른 응답이기 때문이다.
(8). 성경만이 사람을 온전하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9). 성경만이 모든 사람의 모든 필요를 다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1O). 성경만이 예수를 제일 바르게 증거 해 주기 때문이다.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에서 설교하지 않고 신학 서를 설교하는 경우가 있다.
설교 원고를 작성하는 그 시간만큼은 책을 보지 말라. 설교는 반드시 성서에 의존하라. 목적이 구원에 있다. 성경 외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내게 주신 말씀으로 테마가 주어져야 한다. 항상 성서에 친숙하고 익숙해야 한다. 성서를 매일같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메모해 두어야 한다.
▶ 성경을 근거로 삼는 다는 것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1. 성경의 완전한 한 부분을 본문으로 하여
2. 성경 본문이 말하는 제목으로
3. 성경 본문이 전개하는 줄거리로
4. 성경 본문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5. 성경을 증거로 들어 확증하는 것이다.
3. 설교 방법의 근거 - 성령
(1). 성령만이 거룩하게 하기 때문이다.
(2). 성령만이 지혜롭게 하기 때문이다.
(3). 성령만이 능력 있게 하기 때문이다.
(4). 성령만이 인도하시고 도우시기 때문이다
(5). 성령만이 영적인 문체를 바르게 해결해 주시기 때문이다.
(6). 성령만이 각양 은사를 주시기 때문이다.
(7). 성령만이 성경의 진리를 바로 알리시기 때문이다.
▶ 성령을 근거로 삼는 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1.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2. 성령의 조명하심과
3. 성령의 감동하심과 4. 성령의 인도하심과
5.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6.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7.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말한다.

제2장 설교의 분류
Ⅰ 대상에 의한 분류
1. 어린이 설교,
2. 중, 고등 학생 설교.
3. 청년 설교.
4.장년 설교.
5. 새 신자 설교.
Ⅱ 주제(내용)에 의한 분류
1. 교리적 설교.
2. 역사적 설교.(사건, 인물 설교)
2. 철학적 설교.
4. 윤리적 설교.(도덕적 설교)
5. 경험적 설교.(간증 설교)
Ⅲ 설교안 작성에 의한 분류
1. 기술(원고)설교.
2. 초안(메모)설교.
3. 암송 설교.
4. 즉석 설교.
Ⅳ 청중의 심리에 의한 분류
1. 지성에 호소하는 이지적 설교
2. 감정에 호소하는 감정적 설교.
3. 의지에 호소하는 목적 설교.
Ⅴ 특수 시기에 의한 분류
1. 예식 설교.
2. 절기 설교.
3. 심방 설교.
Ⅵ 목적에 의한 분류
1. 목회 설교
2. 전도 설교
3, 부흥 설교
Ⅶ 본문 처리 구성에 의한 분류
1. 강해 설교 : 본문의 배경, 문자적 의미, 본문의 해석, 교훈.
2. 제목 설교 : 제목만 본문에서 발췌하여 제목에 의해 대지와 내용을 전개
1 제목 설교
설교형식 자체가 연역적이다. 다루고자 하는 제목과 문제를 내걸고 그 문제
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것을 여기 저기서 뽑아 그 제목을 증명. 지원하고
그 제목에 대한 설교자 자신의 결론적 요점을 전개시켜 나가는 설교이다 무
조건 제목설교를 정죄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강해 설교를 선호하고 주장하지만, 목회자로서 목회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제목설교가 필요한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고 강해 설교를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무조건 그 사람을 축복하시고 제목설교를 했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을 정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제목설교자 중에 널리 알려진 훌륭한 설교자들이 많이 있다. 좀
자유주의적 색채가 있기는 하지만 에머슨 포스틱 같은 침례교 설교자가 이
에 해당하고 빌리 그래함 목사도 역시 제목설교자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설교는 성경 그 자체의 말씀보다도 설교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의도에서
부터 설교가 출발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제목 설교는 많은 사람들을 훌륭하게 인도하는 일에 사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설교의 전제가 인간적일 수 있고 위험하다는 것이 약점이다. 트리니티 신학교의 월터 카이져 교수는 심지어 5년에 한번씩 할 수 있다면 제목설교를 시도하십시오. 시도한 다음에 즉각적으로 회개하십시오 라는 말을 했다.
그것은 제목설교가 가진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설교와 제목설교는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실제로는 구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주제라는 뜻은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것을 뜻한다면 제목이라 함은 보다 구체적이고 세분화한 내용의 특징을 전제한다.
(1) 제목설교의 정의
본문 자체의 내용을 포괄하기보다는 설교자가 말하고자 하는 테마 제목
에 치중하는 설교를 말한다.
설교자의 말 가운데 있는 진리에 치중하며, 먼저 테마를 택하고 성경을 인용하는 것이 제목 설교라 할 수 있다,
초대 교부 사도들의 설교들은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본다
(2) 제목 설교의 장점
1) 수사학적(논리적) 완전성을 기할 수 있다.
설교의 초점을 맞추고 완벽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
2) 전반적인 설명을 끝낼 수 있다.
3) 폭넓은 사상을 발표할 수 있다.
4) 다른 본문을 많이 인용할 수 있다.
5) 어떠한 테마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
(3) 제목 설교의 단점
1) 비양심적일 수가 있다. 성경을 억지로 인용
2)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기 쉽다.
설교자가 성경말씀을 등한히 여기면 교인들은 설교자를 등한히 여긴다.
3) 영적 운동이 부족하기 쉽다.
웅변은 잘하는데 영력은 없다는 비평을 듣는다.
4) 단조롭기 쉽다.
(4) 제목설교의 주의 사항
1) 본문을 가까이 하라
2) 논리를 정연하게 전개(철두철미하게 수사학적이어야 한다.)
3) 테마 외의 말을 하지 말라. 산만해 진다.
4) 제목과 테마를 잘 택하라
꼭 필요한 테마에만 제목설교를 하라
2. 강해 설교 (본문 설교, 주해 설교)
루니아(Klaas Runia)박사는 "말하기를 기독교적인 설교가 되려면 성경적인
설교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설교 방법은 어떤 것인가? 대다수 설교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강해 설교가 가장 성경적인 설교라고 인정하고 있다.
톰슨(D.Thomson)은 말하기를 "나는 전부터 성경적 설교의 바탕으로서 강해 설교를 주장해 왔다"고 하였다. 또 성경주석가요 설교가인 메이어((F.B
Meyer)는 그의 학생들에게 언제나 사용될 수 있는 설교 방법은 오직 강해식
설교법" 이라고 썼다. 또 강해 설교 연구가로 알려진 로빈슨은 말하기를 "신적인 권위의 능력을 가장 온전하게 전달하는 설교가 바로 성경 강해 설교이다라고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장 성경적인 설교는 강해설교라는 결론을 얻는다.
주해설교는 논리 전개나 테마를 따로 두지 않는다. 어떤 설교든지 주해적 성격을 가졌다. 결론 대신에 요점을 강조해 준다,
(1) 강해 설교의 명칭문제
강해설교란 영어의 Expository Preching 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
데 이 말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주해(註解) 설교 또는 주경(註經) 설교, 해석
설교, 성경설교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불리어지고 있다. 그러나 주해나 주석
은 해석하는 작업이요, 강해라고 할 때는 설명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강해는
단순히 글자 풀이나 언급을 하기보다는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주석이나 주해설교라는 말보다 강해설교란 명칭이
설교의 성격으로 보아 잘 어울리는 말이 된다고 본다.
(2) 강해설교의 정의
a) 메이어의 정의 : 강해 설교란 그 속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 정신이 설교자의 심령 속에 들어오기까지 설교자의 머리와 마음과 두뇌와 근육을 총동원하여 이에 대하여 생각하고 , 울고 그리고 기도한 성경 중의 어느 한 책이나 또는 보다 확장된 부분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취급하는 방법이다 라고 했다.
b) 로빈슨의 정의 : 미국 보수 침례신학교 학장인 그는 "강해 설교란, 성경본문의 배경과 관련하여 역사적, 문법적, 문자적으로 연구하여 발견하고 알아낸 성경적 개념을 전달하는 것으로서, 성령께서 그 개념을 우선 설교자의 인격과 경험에 적용하시며, 설교자를 통하여 다시 청중들에게 적용하시는 것이다."
c) 데니스 레인(Denis J.V.Lane)의 정의 : 데니스 레인 목사는 O M F 의본부에서 상담역을 하고 있는 분으로 한국교회에 강해 설교에 대한 많 은 도전을 주신 분이다. 그는 말하기를"강해 설교란 성경의 특정 구절의 뜻을 회중의 필요한 환경에 맞추어 설명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깨닫게 하는 과정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3) 강해 설교의 목적
강해 설교를 하는 설교자들은 성도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기대하는 분 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1) 성경의 숨은 진리를 재발견하게 한다
2) 기독교 지식의 성장에 목적이 있다.
3) 성경의 실제적 활용의 목적
4) 바른 영적 성장에 목적이 있다.
(4) 주해 설교의 방법
1) 먼저 본문을 구분해야 한다. - 순서를 바로 정해야 한다.
2) 올바른 단어 해석을 한다
3) 문장의 구절과 구문을 잘 다듬어야 한다.
4) 요절이 어디에 있는가?. 좌우명(Key Word)를 택해야 한다.
5) 본문을 짧게 잡아서는 안 된다. 완전한 문장을 택해야 한다.
(5) 주해 설교의 종류
1) 성경 전권을 창세기부터 차례대로 하는 주해 설교
2) 특정한 책을 택해서 집중적으로 하는 주해 설교
(루터는 로마서, 칼빈은 에베소서 이상근 박사는 요한 복음등)
3) 성서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강해 설교
4) 특수한 제목을 가지고 하는 주제별 강해 설교
(예수의 비유, 예수의 이적, 십계명 강해, 기독교 윤리, 예수의 격언, 신앙고백 강해등)
* 주석은 참고하는 것이지 그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시대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6)주해설교의 장점
1) 주해설교가 가장 평범함
2) 성경 전체가 다소 화 됨
3) 성령의 역사를 바로 접하게 됨
4) 교인들을 올바르게 양육하게 됨
5) 교역자가 영력과 담력과 그리고 설교의 많은 테마를 얻게 됨
6) 거룩한 진리 안에서 감화를 받게 됨
*목사는 일단 주해설교의 권위자가 되어야 한다. 설교 원고는 3번 써라
(7)주해 설교를 잘하는 법
1) 성경을 영감 된 책으로 믿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2) 성경이 소중하다는 신학이 있어야 한다.
3) 성경을 잘 구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4) 논리적인 머리가 있어야 한다.
5)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6) 깊은 연구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7) 본문을 택하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8) 설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힘 생기, 재미 적응성, 웅변적)
(8)주해 설교시 주의 사항
1) 간단한 주해로부터 시작할 것
2) 주일 예배를 위해서 준비하지 말고 항상 주해설교를 준비 할 것
3) 잘하는 사람을 모텔로 택할 것
4) 수사학을 겸할 것을 잊지 말 것
5) 모든 성경의 흐르는 문맥을 다 알고 있어야 본문을 이해 할 수 있다. (배경과 역사)
6) 조직 신학적 차원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제3장 설교의 내용
Ⅰ 설교 내용의 발원
1. 설교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와야 한다
2. 설교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야 한다
3. 설교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같이 전해져야 한다
Ⅱ 설교 내용의 중심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Ⅲ 설교 내용의 요소
1. 설교 안에 구원의 복음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회개. 믿음)
2. 설교 안에 성령의 복음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충만, 은사)
3. 설교 안에 치료의 복음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위안, 평강)
4. 설교 안에 축복의 복음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영육, 물질)
5. 설교 안에 소망의 복음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재림, 천국)
Ⅳ 설교 내용의 구조
1. 설교 내용은 서론 부분과 (도입)
2. 설교 내용엔 본론 부분과 (전개)
3. 설교 내용은 결론 부분으로 구성된다. (도착)

Ⅴ 설교 내용의 원칙
1. 설교 내용이 본문에 충실해야 한다
2. 설교 내용은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3. 설교 내용은 단순 명료해야 한다
4. 설교 내용은 질서가 있어야 한다
5. 설교 내용은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
6. 설교 내용은 진행성이 있어야 한다.
7. 설교 내용은 핵심성이 있어야 한다
Ⅵ 설교 내용의 개발
1. 성경의 묵상과 깊은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설교가 독자성을 갖게 된다
그래야 전문 복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2. 성령의 충만과 높은 영감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설교가 신령성을 갖게 된다
그래야 능력 복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3. 시대의 조명과 넓은 식견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설교가 참신성을 갖게 된다
그래야 예언 복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성서 연구에 대하여
1) 설교 제목을 앞에 놓고 성서 연구하는 것은 좋지 않다
2) 촛점이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3) 내 경험과 부딪칠 때 깨닫게 된다.

▶ 독서에 대하여
인문과학, 에세이, 문학, 철학 등 폭넓은 지식을 습득 할 수 있어야 한다.
▶ 타인과의 접촉에 대하여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기 이해서 타인과의 접촉이 필요하다.
가능한 관계를 넓혀서 접촉해야 한다.(교인, 사회인)
교인만 접촉하면 외골수가 된다.
▶ 자기와의 싸움에 대하여
죄, 교만, 탐심, 음욕, 이성, 게으름, 나약함으로부터 싸워 이겨야 한다.
-설교란 교역자 자신의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 명상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과 명상하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말이면서 들을 수 없다.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
명상은 창조력을 길러주고 호소력 있는 설교를 가능케 한다.
-설교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이 아니고 명상을 통해서 되새김 질 되어 전해져야 한다.
▶ 타인 봉사에 대하여
봉사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봉사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봉사를 통해 경험함으로써 깊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타인 봉사의 희생과 합해져 명 설교가 될 수 있다.
* 설교자에겐 전문가적 권위와 희생적 권위가 있어야 한다.

제4장 설교의 구성
한 편의 설교는 아무런 준비와 계획 없이 갑자기 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한 편의 설교가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정신
적인 노고와 구체적인 준비과정이 따르는 법이다.
일반적으로 설교가 준비되는 과정을 보면 먼저 설교자가 여러 가지 자료
들을 기초로 하여 착상을 하게되고 착상이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성서의 본문을 해석하고 부가적인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의 생각을 발전
시키며 마지막으로 제목과 서론, 본론, 결론을 포함하는 메세지의 실제적인
구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한마디로 설교를 작성하는
일 혹은 설교의 구조를 형성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설교의 구성이라고 할 때 구체적으로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랜돌프(D.J.Randolph)는 '설교의 구성이란 현대 설교자에게 청중이 설교에
대한 반응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성서 본문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을 밝히는 과정과 언어 구조의 사용을 의미한다'고 하며
'이 구성의 과정에서 설교계획이 세워져야 하며 설교의 기본적인 부분들이
분류되어야 하고 그리고 상호관계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설교자는 설교의 구성을 시작하기 전에 그 마음속에 설교에 대한 계획
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그 계획이 바로 설교의 개요 또는 윤곽이 된다. 설
교의 윤곽을 잡는다는 것은 설교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질서 정연한 순서
로 단순하게 조직하는 방법으로써 설교작성을 위한 하나의 시안(시안)이라
고 할 수 있다. 개요는 설교 구성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데 집으로 비유하
면 집의 뼈대와 같이 그것은 설교에 건축학적인 견고함을 제공한다.
설교자는 그 설교 구성하는데 개요를 놓고 본격적으로 설교의 살을 붙이는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설교자는 제목을 분명히 결정하고 그 다음에 본문과 주제, 목표, 그 밖의 자료들에 기초하여 설교의 본론을 구성한 후 계속해서 결론과 서론을 첨가함으로써 구성작업을 종결짓는 것이다. 대체로 훌륭한 설교는 세 부분 즉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분된다.
Ⅰ 제목
1. 제목의 중요성:
(1) 설교 전체의 요약
(2) 설교 전체를 구속
(3) 설교 전체의 한계
(4) 설교 생성의 씨

2. 제목의 의미
(1) 제목은 설교의 About:(방향) 이다
(2) 제목은 설교의 Limitation(한계)이다
(3) 제목은 설교의 Hint(암시) 이다
(4) 제목은 설교의 요약이다
(5) 제목은 설교의 포괄이다.
2. 제목의 종류 및 형식
(1) 수사적 제목
긍정, 부정이 아닌 제목-감정, 정서에 호소할 때
예) 심야의 찬송 (0) 갈릴리에 부는 바람(x)
(2) 논리적 제목
주어, 동사, 목적어를 갖는 긍정, 부정의 제목-지성에 호소
(3) 불투명한 제목
예: 부활의 혼 기도의 혼, 용서의 영,
(5) 명사로 끝나는 제목 (힘이 없을 수 있다.)
예: 믿음의 현주소. 네가 믿음이 있느냐?
(6) 복합적인 제목
예: 신자의 경험 안에서 십자가, 죄의 기업, 자유의 노예
(7) 성경 구절 그대로의 제목 (주의: 내용과 맞아야 한다.)
예; 범사에 감사하라,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깨어 기도하라.
어찌 의심하느냐, 사람을 낚는 어부
(9) 의문식 제목 (주의: 설교 중에 충분히 대답을 해야 한다.)
예) 현대 청년에게 소망이 있느냐, 인생아 어디에 있느냐
(10) 명령적, 호소적 제목
예) 깨어 기도하라 일어나라
*설교 내용은 영감적이라도 설교 제목은 설교학적이라야 한다.
3.제목 표현에 주의할 점.
(1) 정확하게 배열할 것
(2) 분명한 진술일 것.
(3) 간단할 것
(4) 목적에 관계될 것
(5) 장소, 시기에 맞게 할 것
(6) 천박하지 않게 할 것.
4. 설교 제목 결정에 있어서 주의할 사항
(1)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기를 원하는 가를 들어야 한다.
(2) 너무 어려우면 안된다.
(3) 외래어를 쓰지 말라
(4) 무리한 문법을 쓰지 말고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라
(5) 25분 이내에 충분히 소화시켜서 전달할 수 있는 제목을 정하라
(6) 설교는 단순한 강연이나 웅변이 아니다. 설교적인 제목을 정해야 한다.
(7) 신학적인 입장과 예배의 경건에 부합된 제목이도록 하라
예) 할례란 무엇인가?
Ⅱ 본문
1. 본문의 요건:
(1) 제목을 가지고 있을 것
(2) 완전한 사상을 가질 것
(3)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을 것
(4) 인간이 말한 부분만이 아닐 것.
2. 본문 선택 상 주의할 점.
(1) 너무 길지 않을 것.
(2) 보삽(補揷) 된 부분이 아닐 것
(3) 불완전 본문이 아닐 것
(4) 특수성이 있을 것
(5) 명료성, 확실성이 있을 것.
(6) 본문과 관련된 다른 성경을 찾아 비교 연구하라
(7) 본문에 대해서는 항상 Note Book을 남겨라
(8) 이미 설교한 본문들은 Rist를 만들어 두어라
-제목, 설교, 본문, 찬송 등
(9) 설교 내용 중에 본문 그 자체를 자주 인용하라
- 본문을 전문적으로 깊게 해석하라
(10) 한 본문을 해석하는 입장을 되도록 떠나지 말라
결론도 되도록 본문에서 찾아라
(본문 한 절을 읽고 끝내는 설교가 좋다)
(11) 다른 본문 성경을 많이 인용하지 말라

3. 본문 선택의 원칙
(1) 원칙적으로 Thema 는 Text를 카바 해야 한다.
(2) 한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완전한 수사학적인
문장이라야 한다.
(3) 단편적인 본문도 사용할 수 있다. 예)범사에 감사하라
(4) 본문의 적당한 길이는 완전한 문장이 될 수 있는 범위의 7-8절이다
(5) 성경 본문은 Thema와 적당하게 부합되어야 한다.
제목의 특징이 본문의 내용을 뒷받침해야 한다.
설교자가 양심적일 것( Thema가 정말 본문에서 나왔느냐)
(6) 본문이 자연스럽게 말하고자 하는 Thema를 암시하고 있어야 한다.
예) (1) 너희 안에 천국- 심중 천국- 바리새인 마음에 천국
(2) 왼 뺨을 치는 자에게 -부부싸움 이쪽도 쳐라 - 반항
4. 본문 선택의 비결
(1) 많은 성경 읽기
(2) 깊이 성경 묵상하기
(3) 깊은 기도와 영감.
(4) 풍부한 신앙과 인생체험

Ⅲ 서론 (Introduction)
많은 설교학자들은 설교의 서론 부분을 한 건물의 현관 입구에 비유한다. 건물의 현관이 들어서는 사람에게 첫 인상을 심어주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듯이 설교의 서론 역시 설교를 들으려 하는 회중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설교자에 대한 인상을 심어준다.
펠프스(A.Phelps)는 그의 저서 '설교의 원리'(The Theory of Preach-
ing)에서 도입이란 설교자가 그의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청중에게 전함으로 청중들로 하여금 그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준비작업을 의미한다고 했다.
많은 설교학자들이 도입의 목적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바
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그 주제의 이해를 위한 준비
를 갖추게 하는 것으로서 설교자와 회중 사이의 공감대 형성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순서적으로 하나씩 살펴보면 우선 도입부분에서는 주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이 몇 분 동안에 설교가 흥미를 주지 못하게 될 때 회중들은 지체없이 마음과 귀를 닫아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설교를 시작
하는 수분 동안에 여러 가지 상태에 놓여있는 청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사실상 설교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론은 설교의 주제에 대한 관심을 끄는 것과 아울러 앞으로
의 설교 진행과정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청중들에게 알려줌으로 청중들로
하여금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서론은 본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청중들은 우회하는 것을 싫어할 것이며 도입
은 바로 설교의 본론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이기 때문에 설교자는 거기서 시
간을 많이 끌지 말고 곧 바로 본론으로 넘어와야 하며 한편 주제와 관련없
는 것들은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서론의 특성은 장황한 설명과 함께 엮어지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함축성 있는 어휘들과 함께 간결하게 던져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론은 서론만의 특수한 성격이 있어야 하며, 서론은 신중해야 하고, 서론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하여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많은 설교학자들이 매번 똑같은 스타일로 설교의 시작을 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바와 같이 설교자들은 판에 박은 듯한 서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1.서론의 정의
서론은 시의 전주, 책의 서문, 건물의 현관과 같다.
서론은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서론은 청중과 설교자의 만남의 시간이다.
서론은 간판, 인상을 주는 곳, 말의 문을 여는 곳이다

2. 서론의 목적
(1) 본문이나 테마에로 관심을 끌고 가는데 있다.
두부장사가 종치는 것과 같다.
내가 먼저 청중에게 관심을 두어야 한다. 청중들의 관심이 없는 어떤 이야기도 설교의 서론은 될 수 없다.
(2) 설교자와 듣는 자가 서로 만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멘 할 수 있는 내용이라야 한다.
청중을 먼저 잘 이해하고 내가 말하려고 하는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메칭 시켜야 한다.
3. 서론의 전개 방법
(1) 일반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본문으로 이끌거나
(2) 주해로부터 시작해서 본문의 문제로 이끌어서
(3) 본문 중에 의문점을 끄집어내어 문제 제기하고
예) 아나니아와 삽비라 왜 죽였나
무화가 나무가 왜 저주를 받아야 하나
(3) 가장 뚜렷한 제목을 끄집어내어서 본론으로 이끌어 가야한다.

4. 서론의 필수 요건(성질)
(1) 적절해야 한다.
절대로 본문과 테마를 직접 취급하지 말아라.
(2) 간결해야 한다 (짧아야 한다)(3분에서 5분)
(3) 자연스러워야 한다.
화려한 스타일을 피하라.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이야기는 피하라 모든 사람에게 경험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
(4) 복잡한 문장을 피해야 한다
서론과 결론만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라 교인들은 듣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산뜻하고 생생한 그림으로 시작해야 한다.
(5) 특수성(일회용)과 신중성이 있어야 한다.
(6) 과장하지 말 것. 최상급으로 거창하게 큰소리쳐 놓으면 안 된다.
(7)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하도록 암시적이어야 한다.
(8) 적당한 음성(분명하고, 깨끗하고, 조용한 협력적인 음성)으로 하라
(9) 관심을 끌만한 가치와 흥미를 촉진시킬 내용이어야 한다.
천박한 농담이나 너무 깊은 사색을 요하는 말은 삼가라.
(10) 서론은 천천히 , 결론은 격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몰아 부치면 곧 지치고 싫증이 난다.
5. 서론의 목적과 중요성:
(1) 주의 집중, 관심 고조, 흥미 유발.
(2) 분위기 조성
(3) 전개 방향 설정
6. 서론 작성법
(1) 본문에 근거한 내용으로(본문 배경 및 해설)
(2) 제목에 근거한 내용으로 (문제의 시사 및 사건)
(3) 청중의 관심사를 근거한 내용으로(호감, 흥미의 문제 제시)
뉴스 활용, 시사성 용어 인용, 책의 인용 등이 좋다.
(4) 자기의 경험 및 목적을 근거한 내용으로(암시, 명제 제시)
(5) 문제를 제기시키도록 한다
(5) 5분의 1 내로 할 것
7. 서론에서 피해야 할 것.
(1) 자기 변명, 자기 소개. 자기 자랑 및 경험
(2) 직접적인 목적 제시
Ⅳ 본론 (Body)
설교의 본론은 설교의 중심을 이루는 동체(동체)이며 그 설교의 구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설교자가 모든 지식과 창조력을 발휘해서 설교를 작성할 때가 바로 이
때인 것이다. 설교자는 설교개요를 어느 정도 확장하고 확대하여 균형 잡히고 생명력 있는 메세지가 되도록 해야 하며 그가 마음에 품었던 목적을 성취하도록 해야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설교 자료를 도입, 선택, 배열함으로써 각 대지의 사상을 효과 있게 전개시켜 나가야 한다.
사실 이 본론 부분에서 설교자는 모든 지식과 창조력을 발휘해서 설교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을 위한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A.P.깁스는 '설교자는 건축가와 같아서 그의 설교는 그가 청중들의 마
음속에 세우기 원하는 건물과 같다. 본문작성에 있어서 그가 해야할 일은
건물을 세우는데 있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그
기초가 놓여져야 하고 순서적인 연속을 따라서 구조가 완성될 때까지 설교
자는 집을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론은 어떤 계획아래 구성되어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계획은
가끔 주제로부터 혹은 성찰(성찰)로부터 오기도 하고 다른 경우에는 여러
분산된 사고들이 구체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설교자는 그의 사상과 말
이라는 살과 피를 가지고 뼈대와 같은 그의 설교구성의 개요에 옷 입혀야만 하는 것이다.
1. 본론의 구분
제1대지 - 1소지 2소지 3소지
제2대지 - 1소지 2소지 3소지
제3대지 - 1소지 2소지 3소지

2. 본론 구분 시의 장점
(1) 설교자에게:
1) 설교성의 조직이 가능
2) 사색을 조직적으로 하는데 훈련
3) 전체의 내용을 뚜렷하게 소화
4) 역점(point)을 분명히 할 수 있다.
5) 발전(전개)을 가능케 한다.
6) 나름대로의 모델을 형성할 수 있다.
(2) 청중에게 :
1) 기억하기 좋다
2) 이해하기 좋다
3) 흥미를 준다.
4) 결과가 좋다(많이 기억하면 실천하기가 어렵다)
3. 본론 구분의 방법
(1) 구분들이 설교에 적절한가
(2) 구분을 알리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
-첫째로... 마지막으로 라고 말하는 것은 지헤롭지 못하다
그러나 형제 관계의 구분은 알리는 것이 좋다
예)기독청년의 갈길 (1)믿음 (2)소망 (3)사랑
(3) 몇으로 구분하는 것이 좋으냐
엄격한 규칙은 없으나 자연스럽게 구분 너무 많이 구분하지 말라 중세기부터 내려온 풍습은 3대지(3분설)이다

4. 본론 구분시 주의 사항
(1) 교인의 관심에 주의 할 것
(2) 중심을 잃지 말 것
(3) 테마를 깨끗하게 이해하라
(4) 분명해야 한다.(깨끗하게 구별해야 한다)
내용에서 구분되어야지 억지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교인들의 마음에 멀미를 하게 하면 안 된다.
(5) 발전적이어야 한다
(6) 균형이 잡혀야 한다.(각 대지의 시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7) 불필요하게 뛰어든 가지가 없어야 한다.
구분마다 합당한 사명이 있어서 전개되어야 한다.
예화는 설교 준비한 다음에 집어넣어야 한다.
6. 대지
(1) 대지 구분의 목적
1) 설교자로 하여금 그의 주제에 충실하게 하기 위하여
2) 청중들의 관심을 유지시켜 줄 뿐 아니라 설교자의 논리적 사고의 과정을 평이하게 하기 위하여
3) 기억을 돕기 위해.
인간의 사고는 본능적으로 질서를 요구하고 혼돈을 싫어하는데 설교자가 질서 있고 관련된 방식으로 진리를 전하면 청중들의 마음에 질서 있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고 그 시간이 지난 오랜 후에도 여러 논점이나 사상들을 회상할 수 있는 것이다.
(2) 대지 구분의 원리
1) 각 구분은 다른 대지와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2) 사고 전개에 있어서 3가지 기본 요건이 있는데 그것은 질서와 운동과 진전이다.
3) 대지는 본문과 주제의 의미를 충분히 포함하고 있어서 그 속에 담긴 진리를 모두 들어내도록 해야한다.
4) 대지는 질서가 있어야한다.
▶ 질서의 원칙
① 소극에서 적극적으로
② 타아에서 자아에로 (전체에서 개인에로)
③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④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진실보다 거짓이 앞서야 하는바 먼저 잘못된 생각을 보여주고 그 다음에 참된 생각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⑤ 절망적인 것에 소망적인 것으로
대지를 말할 때의 그 논리 전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바람직한 것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3) 대지 결정시 주의 사항
1) 각 대지는 제목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일치성)
2) 각 대지는 한 계통이어야 한다.(통일성)
3) 각 대지는 상호 구별되고, 중복되지 않아야 한다.(창의성, 독자성)
4) 각 대지는 서로 대등해야 한다.(균형성, 대등성)
5) 사고의 연결, 단계적인 정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방향성)
6) 표제들은 간략하고, 명료해야 한다.(신선성, 간결성)
7) 밀착감과 현재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상관성, 적응성)
7) 3-4대지만 되도록 해야 한다.
7. 대지의 전개
(1) 전개의 형식
1) 서술적 형식
선정한 설교의 주제에 역점을 두고 일관성 있게 전개해 나가는 방법이다
2) 야화적 형식
스스로 자기의 역량에 따라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해 나가는 방법이다.
3) 해설적 형식
본문과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설명해 주는 방법이다.
4) 문답적 형식
질문을 던지고 답변해 나가는 방법이다.
(2) 전개의 방법 및 소재들
1) 제일 근본적인 방법
① 설명 : 본문, 개념, 일반적인 사실, 진리.
② 논증 : 연역적 논증법. 귀납적 논증법, 인과적 논증법, 유추적 논증법
③ 적용
④ 예증 및 예화
2) now-then 전개법
then(그때는) ; 성경 본문 그때의 뜻을 풀이하고
now(지금은) : 그 의미를 오늘 우리에게로 가져와서 적용하는 방법이다.
3) 윌리암 에반스(William Evans)의 방법
① what(무엇인가?) :
이 부분에서는 설교의 주제의 정의를 내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 해 준다.
② why(왜 그런가?) :
이 부분에서는 이 주제가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밝힌다.
③ how(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는 필요한 그것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을 것인지 그 방법 을 제시해 준다.
④ what then(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
이 부분에서는 이 주제가 이룩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자신 있게 적용시킨다.

예 : 주제 : 성령의 권능
본문 : 행1:8
서론 : 본문의 개황
본론 :
1. what? - 성령의 권능이란 무엇인가?
2. why? - 성령의 권능이 왜 필요한가?
3. how? - 성령의 권능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4. what then? - 성령의 권능을 받은자의 삶은?
결론 : 그런고로 지금 성령의 충만을 받자!
Ⅴ 결론(Conclusion)
H.데이비스는 '결론은 청중들이 전체로써 그리고 한번에 모두 개념을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점에 올 수 있는 순간으로써 문제가 가장 명확하
게 들어 나며, 가장 예리하게 느껴지며, 해결되어져야만 하는 삶 속으로 옮겨지는(carried back)순간이다.
결론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설교의 목적을 이루는 마지막 기회로써
그 순간은 아마도 설교전체의 연속성안에서 가장 중요한 한 순간'이라고 정
의를 내렸다. 결론은 지금까지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통일성과 명료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며 설교하여 온 것을 가장 분명하고도 예리하게 '그러나 잔
소리를 하거나 화를 낸다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고 오히려 모든 사람을 개인적으로 도와주리라는 진지한 관심이 명백히 들어 나도록' 설득력을 가지고
청중들의 행동과 마음에 결단을 촉구하는 설교에 있어서 하나의 정점인 것
이다. 그러므로 H.데이비스의 정의와도 같이 결론은 설교를 마무리 짓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요 '설교의 모든 내용을 균형 있고 감동적인 절정에로 인
도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전체설교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요소임에는 틀림없는바 적절한
결론이 없는 설교는 어떤 면에서 꼬리 없는 고래와 같이 힘없고 미완성적인것이다. 그러므로 이 순간을 어떻게 적절히 맞이하며 또한 준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설교자의 큰 과제이며 그것을 작성하는 능력은 설교자 자신의
자질과 감수성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설교자는 그러한 마무리의 능력과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많은 실습과 연구를 하여야 할 것이다.
1. 결론의 정의
(1) 결론은 설교의 생명이다.
(2) 결론은 우연지사가 아니고 필연적이다.
(3) 결론은 서론 본론에서 쌓은 결과이다.
본론이 엉망이면서 결론만 좋을 수 없다. 어디서 시작했느냐 도 중요
하지만 어떤 말로 끝내는 것도 중요하다.
2. 결론의 성격
(1) 요약 되풀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의: 잘못하면 반복에 그친다. 같은 말로 하면 안 된다. 다시 전개하는 과정이 되기 쉽다)
(2) 응용적인 요소(적응적인 요소)이다.
윤리적, 현실적인 것이어야 한다
기억하도록 간단하게,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
자연스럽게 해야지 너무 많은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Here now to me
예)나단이 다윗왕 앞에서의 설교
(3) 호소와 간청 포함된다
직선적으로 양심에 부딪쳐야 한다. 다분히 감정적이어야 한다.
(4) 수사학적 (웅변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이면서 결단을 주는 내용이어야 한다
예)그러므로 이러 이러해야 합니다.
(5) 성경으로의 결론
성경 요절로, 마지막 인상을 성경 자체에 두는 것이 좋다
(6) 소망적, 긍정적, 적극적이어야 한다.

*끝으로, 결론으로, 라는 말을 쓰는 것보다 "그런고로"란 말이 좋다

3. 결론 구성법
(1) 내용을 집약한다.
(2) 적용된 실례를 든다.
(3) 적절한 인용문을 든다.
(4) 판단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5) 강력한 권고, 격려, 선동, 교훈을 한다
(6) 명령적이거나 절박한 호소를 한다
(7) 경이적이고 충격적인 표현으로 끝맺는다.
(8) 축복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4. 결론의 양상
(1) 듣는 자 자신에게 관계되어야 한다.
(2) 전 설교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3) 서론에 문제를 제기했으면 해결을 주어야 한다.
(4) 결론이 너무 길면 안 된다. 서론보다 짧아야 한다.
루터 "가장 열중할 때에 결론을 맺어라 그래야 다음에 또 교인이 온다."
(5) 다양성 있게 폭넓은 방법으로 결론을 맺어야 한다.
끝나기 전에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하지 말라
(6) 결론을 말할 때는 목사는 교인을 보고 교인은 목사를 보아야 한다.
5. 결론에서 주의할 점.
(1) 본론과 다른 어떤 내용이 다시 퉁겨저 나오지 않도록 할 것
(2) 질질 몰리지 않고,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할 것.
(3) 절망. 낙심적 이지 않고 소망적 이게 맺아 나갈 것
(4) 권위 있게, 자신 있게 할 것
(5) 클라이막스가 되도록 할 것
(6) 어떤 때는 여운을 남기도록, 단애적으로 뚝 끝내기도 할 것
(7) 조건부 결론이 되지 않게 할 것.
*성공적인 설교는
서론은 끌어야(호기심) 한다 : 감정에 호소
본론은 납득시켜야 한다. : 지성에 호소
결론은 결심이 서게 해야 한다. 의지에 호소

제5장 설교의 작성
Ⅰ 설교의 개요 작성
1.개요란 :
(1) 개요란 설교의 계획이다.
(2) 개요란 설교의 줄거리이다
(3) 개요란 설교의 축소이다.
2.개요의 형식 :
(1) 제목
(2) 본문
(3) 서론
(4) 본론
1대지; 전개할 내용(소지)
2대지: 전개할 내용(소지)
3대지: 전개할 내용(소지)
(5) 결론
3. 개요 작성의 지침 :
(1) 사상을 뚜렷하게 구분 정리하여 잘 전달되도록 할 것
(2)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배열 잘 파악 되도록 할 것
(3) 내용을 집중성과 다양성이 있도록 할 것

Ⅱ 설교의 자료 수집
1 자신의 준비:
1) 깊은 기도-성령의 충만과 영감
2) 청중의 상태와 요구 파악, 구원과 축복의 사명감
3) 성경의 다양한 연구
2 자료의 준비:
1) 성경의 자료, 예화 수집, 신문 잡지 단행본 전문서적에서 자료 수집,
대화 중 자료 메모, 떠오르는 영감 메모해 둔다.
2) 각 제목으로 분류 스크랩, 봉투. 폴더 등으로 보존한다.
3) 자기의 인생, 신앙 체험을 비망록화 보존한다
Ⅲ 설교의 원고 작성
(1) 정확한 표현을 할 것.
(2) 간결하고 쉬운 언어를 사용할 것.
(3) 감각적 언어로 표현할 것
1) 시각적 언어
2) 청각적 언어
3) 미각적 언어
4) 후각적 언어
5) 촉각적 언어
6) 상상적 언어
(4) 수식어를 다각적으로 사용할 것
(5) 대조식 표현으로 할 것
(6) 열거식 표현으로 할 것
(7) 상황 전개를 현재 진행형식으로 할 것
(8) 대화식으로 표현도 해 볼 것.
Ⅳ 설교의 예화
1. 예화 사용의 장점
(1) 상상력을 동원하고 누구나 다 좋아한다.
(2) 머리 속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인상을 주어 오래 기억된다.
(3) 설교 내용을 확고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4) 생생하다. 실생활에 적응력을 준다. 실천의 길을 가르쳐 준다.
(5)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성경이 예화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

2. 예화의 요소
(1) 성경 : 반복해도 좋다
(2) 매일의 실생활 : 보편 타당하며 일반성이 있는 예화를 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3) 역사 : 길어지지 않게 하라.
(4) 여행, 관광 : 내가 어디에 갔더니 라고는 말하지 말라.
다만 소재만 인용하라
(5)자연
(6)문학
(7)과학
(8)예술(미술......)
3. 예화의 목적
(1) 설교자 : 1) 설교의 개념을 잘 정리해 준다.
2) 설교 구상을 간결하게 만들어 준다.
(2) 교 인 : 1) 흥미와 주의를 끌게 한다.
2) 진리를 생생하게 이해하게 한다.
3) 결심하게 한다. 행동하게도 한다.
4. 예화의 분류
(1) 단어 : (예: 곰 같이.......)많이 쓰면 시가 수필이 된다.
(2) 암시적 비유 :
(3) 직유(........ 처럼)
(4) 은유(간접적)
(5) 일화 : (일반적인 예화, 서술적 비유)
5. 예화 사용시 주의사항
(1) 주제에 맞아야 한다.
(예화 하기 위해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2) 과장하지 말라
(3) 한 예화를 2분 이내에 끝내라
(4) 예화는 예화라는 것을 잊지 말라
(설교의 부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쉬는 시간이다.)
(5) 예화는 한번만 하라
모든 경우에 그 예화가 맞는 것이 아니다.)
(6) 보편화하지 말고 정확하게 하라
(보편화되지 못한 예화는 "대단히 실례되는 말씀이지만은" 이란 말을 하고 사용하라)
(7) 자기 경험담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라
(말씀의 성서적 권위가 상실된다.인격 평가 받기 쉽다)
(8) 적당하게 하라
(듣는 사람은 기억하지만 한 사람은 잊어버린다.)
(9) 비유나 예화는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가 하나 이어야한다.
(10) 어조나 화법도 달리해야 한다.
(음성을 낮추어서 재미있고, 친절하게 하라)
(11) 예화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하얀 거짓말을 쓰지 말라, 진실이 구실이 되면 안 된다.)
(12) 100만 분의 1이 있을까 말까 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
흥미는 있으나 실천성이 없다.
6. 예화 사용의 요령
(1) 짧게
(2) 듣는 자의 경험과 흥미와 교육 정도에 맞아야 한다.
(3) 예화를 하면서 위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야유나 희롱은 금물, 유모어나 제스처가 지나치면 안 된다.
신중한 유머를 사용하라)
(4)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책임을 져라 (정확성을 보장하라)
(5) 진실하게 말하라
(말을 만들어 내는 예화는 좋지 않다)
Ⅴ 설교의 길이(시간)
설교의 적정 시간은 23분이다. (23-30분)
길게 느끼지 않도록 하라.
설교 시간에 메이지 말고 다만 '길다' 란 말은 듣지 말라,
짧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다만 길다는 인상을 주지 말라.

제6장 설교의 전달 기술
Ⅰ 설교의 태도와 자세
1. 용모 :
(1) 단정해야 한다
(2) 평범해야 한다
(3) 품위가 있어야 한다
2.태도 :
(1) 겸손해야 한다
(2) 자연스러워야 한다
(3) 확신이 있어야 한다
3. 표정 :
(1)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2) 평화로워야 한다,
(3) 심오해야 한다,
(무표정, 과장 표정, 습관 표정을 주의하라)
4.자세 :
강단에서 15-30cmdm의 거리에 발폭 20-30cm로 자연스럽게 선 자세를 취할 것. (축 늘어진 자세, 기대는 자세, 쇠 꼬챙이 자세를 주의 할 것)

5.시선 :
전체를 골고루 주시할 것 (막연한 바라보기, 시선 피함, 훔쳐보기 주의하라)
6. 몸 동작에 주의할 점
(1) 요지 부동을 삼가라,
(2) 과속 동작을 피하라,
(3) 게으른 동작을 하지 말라.
(4) 계속 동작을 삼가라,
(5) 무의미 동작을 하지 말라.
Ⅱ 설교의 음성과 언어
1. 좋은 음성이란?
(1) 듣기 싫지 않은 음성이다
(2) 적당한 높이의 음성이다
(3) 적당한 강도의 음성이다
(4) 알맞은 길이의 음성이다
(5) 알맞은 속도의 음성이다
(6) 단조롭지 않은 음성이다
2. 나쁜 음성이란?
(1) 쇳소리이다
(2) 기성(괴성)이다
(3) 변성이다
(4) 비성이다
3. 좋은 음성을 내는 요령
(1) 훈련을 해야 한다.
훈련 없는 좋은 음성은 무표정한 얼굴과 같다.
훈련에 앞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좋은 음성은 오랜 습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2) 긴장이 지나치면 말을 더듬는다.
왼손잡이 어린이를 오른손으로 먹으라면 말더듬이가 된다.
(3)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건강한 음성
(4) 후두와 악골, 호흡 조절을 잘할 것, 후두에 힘을 주지 말 것
혀를 잘 조정할 것
(5) 입술 모양을 거울을 보면서 훈련할 것, 자연스럽게 할 것
(6) 골방에서 자기 음성을 들어 보라
(7) 개성을 살려야 한다.
자기 음성을 듣고 자기 모양을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8) 다른 사람 중에 자기 음성과 비슷한 사람을 약간 모방하는 것이 좋다
(9) 시간 조절을 잘 해야 한다.(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해야 한다.)
(10) 한 단어 한 단어에도 강약이 있어야 한다.(문장과 문장사이에도)
(11) 성경을 소리내서 읽는 연습을 하라
(12) 3 면경을 놓고 하라

4. 호흡법
(1) 복식 호흡을 하라
(2) 심호흡을 하라
4. 발음법
(1) 문법에 맞는 발음을 하라
(2) 명확한 발음을 하라
(3) 액센트의 발음을 하라
(4) 억양 있는 발음을 하라
(5) 고저 있는 발음을 하라
(6) 장단 있는 발음을 하라
(7) 띄움 있는 발음을 하라
5. 발음의 주의 사항
(1) 잘 들려야 한다.
(2) 발음이 잘 구분되어야 한다.
분명해야 한다. 특별히 모음이 분명해야 한다.
(3) 명랑해야 한다. 기분 좋은 음성이어야 한다
(4) 잘 훈련된 것이라야 한다.

6. 말의 속도
(1) 청중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타이밍에 내가 적중하도록 하라
(2) 속도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3) 쉼표를 설교 원고에 표시해서 연습하라.
(4) 자기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느리게 하고,
자기가 느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빠르게 하라
7. 언어 사용시 주의 할 점
(1) 사투리를 쓰지 말 것
(2) 어려운 전문어, 외래어, 약어 등을 피할 것.
(3) 비속어, 실례되는 말을 쓰지 말 것,
(4) 방에 비해 너무 크거나 너무 적게 말하지 말 것
8.적절한 언어의 기교
(1) 길게 뽑는 단어를 적절히 쓸 것.
(2) 잠깐 멈추는 법을 적절히 쓸 것.
(3) 속삭이듯 말하기를 적절히 쓸 것.
(4) 유모어를 침착하게 적절히 쓸 것.
(5) 의성을 비속하지 않게 적절히 쓸 것.
Ⅲ 설교의 제스쳐
1. 제스쳐의 원리
(1) 가능한 제스쳐는 미리 준비하라 (훈련을 통해서 나와야 한다)
(2) 되는 대로하지 말라, 목표 없이 하지 말라
(3) 너무 많이 하지 말라
(4) 같은 제스처를 반복하지 말라
(5) 기본법에 익숙 하라
(6) 말보다 제스처가 약간 앞서는 것이 좋다.
(7) 제스처는 꼭 해야 한다고 할 때만 해야 한다.
(8) 얼굴의 표정도 제스처다 인위적으로 조작한 듯 하지 말라
2. 제스처의 필요성
(1) 설교는 입체적이고, 온 인격을 통해서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2) 설교의 의미를 잘 전하고, 강조되기 때문이다.
(3) 제스처가 없는 설교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설교자에게 힘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3. 제스추어의 조건 :
(1) 자연성이다,
(2) 간결성이다,
(3) 확실성이다,
(4) 적합성(일치)이다,
(5) 적시성(적절)이다,
(6) 활기성이다,
(7) 다양성이다,
(8) 변화성이다,
4. 제스추어의 실제 방법과 형식
(1) 순서 ;
눈--손--말순으로 하라.
(2) 상하 부분 원칙;
윗부분…하늘, 정신, 고상한 것.
아랫부분--세상, 물질, 저속,
(3) 움직임의 방향(손)
1) 원심 동작--열정, 분노, 증오, 멸시, 거절.
2) 구심 동작--깊은 사상, 수용.
3) 회심 동작--사랑, 동정, 긍휼,
4) 상하 동작--통일성, 현재의 시간, 개인적 호소, 확신,
5) 사면 동작--제거, 지나침, 부정.
6) 측면 동작--큰 수, 거리, 공간, 시간. 광범위 호소, 안정, 강한 부정.
7) 악수 동작--공개, 솔직, 허용, 확신, 호소, 환영, 통상적 언급,
8) 손바닥으로 덮는 동작--은폐, 기만, 압박, 금지, 반대
9) 손가락으로 지시 동작--지시, 조목, 계수, 비난, 위협, 관심, 강조,
10) 주먹 동작--힘, 결심, 분노, 도전, 파악, 강함.
11) 아래로(45도)뻗는 동작--주저, 놀람, 거절, 혐오.
12) 양손 동작--솔직, 결합, 양, 포섭, 환영.
13) 양손 쥔 동작--동정 구함, 강한 의지, 소원, 간절함.
Ⅳ 설교의 보조장치
1. 설교를 위한 청각 장치
(1) 청각 장치의 원칙
1) 전축용 앰프는 안 된다.
2) 스피커의 방향을 잘 조절해야 한다.
말하는 자와 스피커가 일치해야 한다.
3) 한 곳에서 들려져야 한다.
4) 육성과 같은 음향으로 들려져야 한다.
5) 육성과 같은 음질로 들려져야 한다.
(2) 마이크 사용법
1) 마이크와 입과 거리는 8인치(10-30cm)가 되어야 한다.
2) 가까우면 바람소리가 들어간다.
3) 고저 강약을 마이크로 조절토록 하라
2. 설교를 위한 시각 장치 :
(1) 액정 프로젝터(파워 포인트)
(2) OHP
설교의 개요나 중요 장면을 시각화하여 이해와 기억과 감동을 더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7장 설교자
Ⅰ 설교자의 자기 인식 (입장)
(1) 설교자는 설교자인 동시에 청중이다.
목회가 먼저 되고 그리고 부흥사가 되어야 한다.
계속 듣는 자세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설교는 창작이 없다.
(2) 설교는 사람이며 신앙이다.
사람 그 자체, 그의 신앙 고백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
비쳐는 설교하는데 몇 시간 걸렸습니까? 하는 질문에 40년이 걸렸 다고 했다.
-사람의 지식은 전달해도 지혜는 전달하지 못한다.
설교는 지혜를 전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말했느냐 보다는 누가 말했느냐에 관심을 가진다.
(3) 위신이 중요하다.
(4) 설교자는 질그릇 그 안에 보화가 있어야 한다.
고후 4:7 렘1:5, 고전 9:16, 갈1:7
(5) 설교자는 하나님 집의 청지기이다
딛전 3:15
(6)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설교자가 설교하는 그 이상의 교인이 될 수 없다.
(7) 투철한 소명의식,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개인적인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교인들에게 느끼게 해야 한다.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장소와 시간을 알아야 한다.
(8) 설교자는 소명의식 가운데 대상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9) 소명에 응답하는 정열(자기 희생의 권위)이 있어야 한다.
-자기를 바치고자 하는 정열이 있어야 한다.
자기 희생 속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
-1년을 성공하는 것은 설교로, 2년 이상 성공하는 것은 인격으로 된다
-목사가 기도 좀 하세요. 책 좀 보세요 하는 말을 들으면 사표 내라
-골방, 서재, 사람 사귐을 잘하는 일이 목회 성공을 가져온다.
설교는 예언자로서 죄를 지적하는 것이며 왕으로서 심판, 비판하는 것이며, 제사장으로서 사죄해 주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Ⅱ 설교자의 신앙
1. 자기 확신
(1) 소명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2)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3)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2. 은혜 확신
(1)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저야 한다.
(2) 성경의 영감에 대한 확신을 가저야 한다.
(3) 성령의 역사에 대한 확신을 가저야 한다
3. 신앙 생산적 삶
(1) 생각---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2) 시각---낙천적으로 보아야 한다.
(3) 들음---신앙적으로 들어야 한다.
(4) 언어---창조적으로 말해야 한다.

Ⅲ 설교자의 인격
1. 설교자는 겸손하고 온유해야 한다.
2. 설교자는 정직하고 순수해야 한다.
3. 설교자는 경건하고 성결해야 한다.
4. 설교자는 은혜롭고 고상한 말을 해야 한다.
5. 설교자는 진리와 하나님 편에서 판단 대처해야 한다.
6. 설교자는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Ⅳ 설교자의 생활
1. 깊고 많은 기도 생활로 영력을 길러야 한다.(골방 생활)
2. 독서 독경 연구 생활로 실력을 길러야 한다.(글방 생활)
3. 상담 안위 친교 생활로 덕력을 길러야 한다.(심방 생활)
4. 운동 레크레션 휴식 생활로 체력을 길러야 한다.(쉼방 생활)
Ⅴ 설교자의 목적 의식
1. 이 회중에게 알게 하고야 말리라
2. 이 회중을 감화를 시키고야 말리라
3. 이 회중을 설득을 시키고야 말리라
4. 이 회중을 결단을 시키고야 말리라
5. 이 회중을 변화를 시키고야 말리라
6. 이 회중에 사건을 일으키고야 말리라
* 설교자는 회중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얻게 해주어야 한다.
1) 지적으로 - 얻음
2) 정적으로 - 감동
3) 의지적으로 - 결단.
Ⅵ 목표 달성을 위한 설교자의 자세
1. 미친 듯이 목표의 소원을 품고 바라보라
2. 보화를 캐내듯 설교 내용을 전개하라.
3. 진주를 찾아 파고들 듯 성경을 파고들라.
4. 포위망을 좁히듯 설교를 이끌어 가라.
5. 진액을 짜내듯 설교에 힘을 쏟으라.
6. 열화를 토하듯 설교를 뜨겁게 하라.
7. 바위를 부스러트리듯 설교를 토해내라.
8. 한마디가 천금인 듯 뜻과 힘을 주어 설교하라.
9. 죽기를 각오한 듯 설교에 전력을 쏟으라.
1O. 손아귀에 휘어잡은 듯 회중을 사로 잡으라.
목적을 향해서 직행하는 것이 좋다. 설교의 목적은 교인이 좋아하는 대로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주입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설교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야 한다.
Ⅶ 설교자의 성공 요소
1. 진리와 주제에 대한 심오한 파악이 있어야 한다.
2. 진리와 주제에 대한 긍정적 확신이 있어야 한다
3. 진리와 주제에 대한 감화된 열심히 있어야 한다.
4. 진리와 주제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가 있어야 한다.
Ⅷ 설교자의 훈련 (경건 훈련)
1.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훈련
설교자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어야 한다. 그는 말씀의 중심이고 삶의 중심이다. 필립 부룩스가 60세 때 그의 서랍에서 한 통의 편지가 간직되어 있었음을 발견했다. '저는 주일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습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노라면 목사님은 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과 십자가를 생각하고 은혜를 받습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설교자가 강단에 서면 그야말로 예수님처럼 느껴지도록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 마음은 자기를 낮추고 자기의 마음을 비울 때 가질 수 있다. 자기의 마음을 비워야 그리스도의 마음을 채울 수가 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 2:6 - 8)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된 것처럼 우리는 자기를 비운만큼 주님의 마음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2. 회개의 훈련
마음을 비운 사람은 회개가 온다. 회개가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하였다. 베드로는 자신이 회개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신앙적 체험에 따라 증거 하였다.
설교자 자신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다는 것이 말하기는 쉬워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성령을 충만히 받은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회개함으로 이루어지는 인격의 변화이다. 자신이 죽는 것이다. 죽음으로 은
혜를 받고 새롭게 예수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설교에 자신이 없어진다. 회개한 설교자만이 교인을 회개하도록 변화시킨다. 설교자가 철저하게 회개하고 성결과 경건한 생활의 인격적 변화에서 오는 힘은 담대한 설교자로서 큰 능력이 된다. 이 능력으로 자신 있는 설교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 삶의 원리를 찾는 명상 훈련
설교자의 경건 생활은 끊임없이 빚진 자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명상이 필요하다. 명상이란 각 인간 존재의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다. 자기자신의 현실문제에만 집착하지 않게 해주고 한 발 물러서서 근본적 삶을 보게 해준다. 그러므로 명상은 자신의 신앙생활, 경건 생활을 그리스도의 빛에 비추어서 조명하는 거울이 된다.
우리에게 명상은 인간의 본질적인 삶인 빚진 자로서 살아가도록 돕는다.
인간은 은혜로 살아가는데 이 은혜는 전적으로 빚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빚진 자로서 살아간다.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은 철저하게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사명감에 근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의 '빚진 자'는 은혜 받은 자의 고백이다.
사도 바울은 "오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자기의 실체를 바로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섭리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은혜를 알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이 고백한 이 은혜가 빚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제 그의 전 삶은 그 은혜 때문에 살고 그 은혜 때문에 죽는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빚진 자로서 종이 되고자 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은혜는 커지고 빚은 늘어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설교할 때는 언제나 이 빚진 자의 심정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고 은혜를 은혜 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빚으로 갚아야 하고 은혜 받은 자는 자신을 빚진 자로 고백하도록 이끈다.
은혜가 빚이 되었다면 빚을 진자는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예수의 은혜를 고백했던 위대한 종들은 그 은혜의 빚 때문에 순교할 수 있었다. 빚진 자의 삶 그것이 우리 설교자들의 삶이다.
우리의 근본적인 삶의 원리이다. 이 삶을 위해서 명상해야 한다. 그 명상을 통하여 자기를 인식하고 구체적인 행동원리들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의 미래적 모습들을 명확하게 그려 나갈 수 있는 것이다.
4. 기도의 훈련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회개하고 자신의 삶의 원리를 확정하면 그는 기도해야 한다. 먼저 자신이 겸손해 지도록 기도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자신이 섬기는 양들을 위하여 눈물 뿌리며 기도해야 한다.
빚진 자의 삶으로 자신의 삶의 원칙을 세운 사람은 기도를 안하고는 견딜
수가 없다. 자신이 말씀의 떡으로 먹여서 살아가는 양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눈물 흘리며 하는 골방의 은밀한 기도를 경험하지 않은 자
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그는 사업가이지 소명 받은 사명자가 아니다.
또한 자신이 담대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 진리를 선포하지 않으면 하
나님께서 어떻게 생각 하실까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며 진리만을 선포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위로만을 설교하고 책망하는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리의 선포자가 아니다.
청중들은 '아멘'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멘 하실 설교를 행하는 담대함을
갖도록 기도해야 한다. 성령도 위로하시고 책망하시는 분이시다(요 16: 8)
하나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5. 나눔의 실천 훈련
실천하는 설교자이어야 경건 생활하는 사람이다. 감기약 장사가 기침을 하
면서 감기 약을 판다면 누가 그 감기 약을 사겠는가. 말씀과 생활이 일치하는 목회자라야 그의 얼굴에서 예수님을 보게 되고 그의 설교에서 소명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나눔의 생애였다. 복음은 은혜의 나눔이다. 만약에 예수를 어느 부자나 힘있는 자가 독점해 버린다면 복음이 될 수 없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역사의 신비를 더 많이 깨달은 사람일수록 나누는 삶을 살게 된다.
가진 자의 호주머니와 장농 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양심의 소리를 들음으로
써 나누어지도록 만드는데 이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요 진정한 목회요 하나
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나눔의 공동체를 실천한 교회로서 예수의 목회가 구체적으로 실현된 가장 이상적인 교회 상이었다.
예배는 은혜의 나눔이요, 선교는 복음의 나눔이요, 화해는 사랑의 나눔이요,
복음은 작은 자의 나눔이다. 그러므로 물질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서로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경건 생활하는 자의 열매는 나눔인 것이다.

6. 독서 훈련
경건 생활은 독서를 통하여 한층 더 완숙하게 된다. 독서를 포기한 사람은
가르칠 수도 없고 신령한 영감을 얻을 수도 없다. 더 이상 연구에 씨를 뿌리
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강단에서 수확을 거둘 수가 없다(스펄젼).
설교자는 항상 설교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진리를 탐구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설교는 그가 얻은 진리로부터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필
립 부룩스) 독서하고 연구하는 자 그들만이 목회자의 능력을 가질 수 있고 신령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신령한 영감을 얻는 것도 지난날 신령한 하나님의 종들의 저서를 통하여 얻을 수 있다. 순교자의 전기와, 자기를 부정하고 일생을 헌신한 성자들의 생애를 통하여 영감을 얻는 것이다.
7. 경건의 능력 체험
말씀을 읽는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 음성을 들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받는 사람처럼 말씀 안에 경
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그에게 영적, 육체적 능력이 크게 나타날 것이다.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딤전 3:16). 그가 속한 교회에서, 지역사회에서, 그가 속한 민족사회에서 위대한 자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자로 우뚝 솟을 것이다.

◈ 설교자의 십계명 ◈
1. 설교에 생명을 쏟으라
2. 설교를 기도의 불로 달구라
3. 설교 시작 전에 일체 변명을 삼가라
4. 바른 발음과 적당한 음성으로 설교하라
5. 회중을 경시하거나 아부하지 말라
6. 남의 설교를 레코딩하지 말라
7. 자신의 설교를 재탕하는 것을 삼가라
8. 다른 설교자를 모방하거나 부러워 말라
9. 연구, 인격, 생활로 준비되어 지지 아니한 설교를 삼가라
1O. 진실성, 도덕성, 영성으로 설교를 뒷받침 하라

제8장 설교사
그리스도의 교회는 설교에서 시작했다 오순절의 베드로의 설교에서 교회는
땅위에 탄생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
되었다
Ⅰ 세계 설교사
1. 구약시대의 설교
(1) 예언자의 설교
1) 예언자의 문제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였다.
나비 : 메세지(하나님의 말씀)를 운반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선지자는 과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현재의 죄를 책망하고 앞으로 구원해 주는 것을 예언하였던 것이다, 예언자는 3차원(현재,과거, 미래)식으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인간에게 전하고 제사장은 인간의 말을 하나님께 전한다.
2) 예언자는 하나님의 권위로 인간에게 전하였다.
선지자의 3가지 고민이 있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
2. 백성들이 말씀을 안 듣는 것
3. 동역자들 때문에 오는 고민(거짓 선지자) 이 있었던 것이다.
3) 예언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항상 말하고 있으며 율법과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항상 앞에 있는 약속 즉 메시야를 말하고 있다. 예언자는 그 말속에자기 경험이 내제 해 있었다. 즉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 경험을 시켰다.
(예: 예레미야 호세아...........생활 속에서 경험했었기에 하나님의 말씀 이 구체적, 실천적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2) 중간시대
1) 회당 : 회당의 3가지 목적 1. 일반 시민이 모이는 공회당
2. 학교
3. 교인이 모이는 회당
회당에서는 안식일 오전에는 예배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오후에는 교육을 했다.
*예배순서 1. 고백 2. 율법 낭독 3. 설교
4. 예배서 낭독 (주로 아람어) 5.축도(민수기11:7)

(3) 세례요한의 설교
1) 그 시대 사람들을 불신하고 책망하였다.(독사의 자식..........)
2) 임박한 심판을 부르짖었다.(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3)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을 선포했다.(뒤에 메시야가 오기 때문에)
4) 현실에 충실할 것을 가르쳤다(눅3:7-14)
5) 예언적 설교를 하였다.(오신 메시야를 증거)
*세례요한의 겸손 : 1)그는 흥하여 하고 나는 쇠하여...
2)신들메도........
3)안드레 빌립을 예수께로 인도

2. 신약시대 및 교부들의 설교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기독교의 첫 번째 설교자였다. 확
실이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갈릴리 사역을 이러한 말들로써 요약한다. "예
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의 예언의 성취로서 주의 성령이 자유케 하는 그의 멧시지를 전파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기름 부으셨음을 주장하셨다 .예수께서는 설교자와 교사로서의 강한 사명 의식을 느끼셨으며 이에 대한 요한의 증거도 이와 비슷했다(요13:13,18:20,37)

(1)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
예수님은 삶 전체가 설교였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1) 권세(자기의 권세)가 있었다.
2) 죄를 심판하시기도 하셨고, 사하기도 하셨다.
* 예수님은 절대로 제사장은 책망을 안 하셨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직책이기에 (예 미리암이 모세를 비판하다가 문둥병에 걸림)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절대로 저주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3) 구원과 영생에 목표를 두셨다
심판의 말씀도 구원을 목표로 하고 말씀하심
4) 구약성서를 많이 인용하셨다.
5) 해석이 독창적이고, 신선하였다
예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6) 생활과 직접 관련된 말씀을 하셨다.
예 ; 부자 나사로의 이야기는 외경에 있는 것
7)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모든 사건을 소재로 삼으신 것을 본다.
예 :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실제 사건
8) 자기 희생과 관련시키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설교는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사도들이 설교사역에 우선권을 두었던 사실은 특별
이 사도행전 6장에 기술되어 있다. 그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4
절)에 전념하기 위하여 다른 형태의 봉사에 빠져들려는 유혹을 물리쳤다 .본
래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던 것은 바로 이일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
생에 기간 동안에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마10:5-7)에게 설교하도록 그들을 보내셨으나 부활 후에는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할 것을 그들에게 엄숙히 위임하셨다 (마28:19) 그들은 나가 두루 전파하였다(막16:20) 그들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또는 고통과 영광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벧전1:12)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로 베드로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4:31)그 밖의 예루살렘에 다른 사도들, 그리고 세 번의 선교 여행에서 누가의 존경을 받았던 바울이 그리하였다. 바울은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행28:31) 바울은 인생 말년에 그의 젊은 부관 디모데에게 그의 임무를 넘겨주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던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권하라(딤후4:1,2)고 했다.
(2) 사도들의 설교
1) 예수님의 설교를 모방해서 구약을 많이 인용하였다.
2) 구약의 예언된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고 증거 하였다.
3)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였다.
a. 베드로의 설교
1) 죄를 지적하였다
2) 성경 예언의 성취를 확증했다
3) 그리스도와 저들의 관계를 지적해 주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4) 사죄와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
5)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마가복음의 별명이 베드로 복음, 베드로의 사건이 많이 기록 되었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이었기 때문이다.
b. 스데반의 설교
1) 구약 역사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적 예언을 찾아 증거했다
2) 출애굽 역사를 기독교 구원론으로 인용 적용했다.
3) 그리스도는 구약의 중심이라고 증거 했다.
구약은 신약을 위해 있는 것이다.(구약을 기독교 화한 설교였다

c. 바울의 설교
1) 구약의 말씀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고 증거했다
2) 구약 해석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이다고 갈파했다.
3) 율법적 관계에서 복음을 설명하였다.
구약적 방법론을 가지고 논리를 펴나갔다
4)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설교하였다.
이와 같이 사도들은 구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을 설교하는데 최선을 다한 것을 보게 된다.
(3) 교부들의 설교
속사도교부들의 작품중의 하나인 디다케(The Didache)는 기록하기를 "나의
자녀들아 너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밤낮으로 기억하라. 너는
그를 주와 같이 존경하라"(디다케3:8, 4:1)고 했다.
순교자 저스틴의 첫 번째 변증은 기독교를 변호하며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진리의 체현이시며, 인류의 구주이시기 때문에 기독교는 참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일마다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의 글 중 성경 읽기와 성경 본문 설교에 대한 강조 점과 말씀과 성례전의 결함에 대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주일이라고 하는 날은 도시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사도들의 언행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는다. 그
다음에 낭독자가 읽기를 멈추면 그 모임의 지도자가 말로써 가르치며, 이 선
한 교훈을 따라 살도록 권면 한다. 그 다음에는 모두 함께 일어나 서 기도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이야기 한대로 기도가 끝나면 빵과 포도주와 물이 나누어진다
2세기말경의 라틴 교부 터툴리안은 그의 변증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거룩한 글들을 읽기 위하여 모인다. 그 거룩한 말씀으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살찌우고 우리의 소망을 고무시키며 우리의 확신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훈들을 반복적으로 배움으로써 우리는 좋은 습관들을 굳힌다. 또한 동일한 곳에서 권면들이 행해지고 꾸지람과 거룩한 책망들이 베풀어진다(39)고 하였다.
희랍 교부 이레니우스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고수해야 하는 장로들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또한 우리를 위해 그처럼 놀라운 섭리를 성취하신 ,한 하나님 안에
서 우리가 가지는 이 신앙을 보존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모독하거
나 족장들의 이름을 더럽히거나 선지자들을 경멸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성경을 상세히 설명해 준다
4세기초 가이샤라의 감독이었으며 교회사의 아버지인 유세비우스는 기원후 2백년을 설교자들과 교사들의 활동의 측면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그들은 집을 떠나 여행하면서 아직까지 전혀 신앙의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그들에게 거룩한 복음서를 주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
복음전도자로서의 사역을 수행하였다. 그 다음에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받아 다른 나라와 민족들에게로 떠나곤 하였다고 적은 것이다.
후기 교부시대에 가장 뛰어난 설교자는 안디옥에서 12년간 설교하다가 398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된 크리소스톰이었다. 그의 설교의 주요한 네가지 특성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성경적이다. 그는 여러 권의 책들을 통해서 조직적으로 설교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설교 성경의 인용과 암시들로 가득하였다,
두 번째로 성경에 대한 그의 해석은 단순하고 솔직하다.
그는 문자해석을 주장하는 안디옥 학파를 따랐는데 , 이 학파는 우화적 해석을 하는 공상적인 알렉산드리아학파와 대조되는 학파이다.
세 째로 그의 도덕적 적용들은 현실적이다.
네 째로 그는 죄를 선고함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었다
사실 그는 강단의 순교자였다. 왜냐하면 그를 추방하도록 만든 것은 주로 그
의 충실한 설교였기 때문이다.
3. 수도사들과 개혁자들의 설교
설교의 시대는 수사들이 나타나면서부터 그 연대가 추정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데로 강단의 역사는 설교하는 수사들과 함께 시작된다 . 그들은 설교에 대한 증가는 대중들의 요구를 자극하며 충족시켰다. 그들은 설교 기술의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들의 직무를 확대시켰다. 아시아의 프란시스는 마치 가난에 관해서 설교하기를 위탁받은 사람과 같았다. 그와 동시대 인물인 도미니크는 설교를 더 크게 강조하였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대한 프란시스회 수사들과 도미닉회 수사들의 놀라운 주장으로부터 종교개혁의 위대한 선구자인 존 위클리프에 이르기까지는 그렇게 긴 세월은 아니었다. 그는 성경을 신앙과 생활에 있어 최고의 권위라고 선포했다. 그는 부지런하고 성경적인 설교자였으며, 성경으로부터 교황권, 면죄부, 화체설과 교회의 부를 공격하였다 그는 목사의 가장 주요한 사명이 설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상에서 획득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봉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일이다 이 봉사는 특별히 성직자들에게 부여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일을 더욱 철저하게 요구하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
께서는 다른 일들을 놓아두시고 주로 설교하는 일에 전념하셨으며 그의 사
도들도 그와 같이 하였다
종교개혁은 설교에 구심 성을 부여하였다. 강단이 제단보다 높아졌다. 이는
루터의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다. 구원은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말씀없는 성체용 빵과 포도주는 성례전적 특성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말씀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 하나님의 약속들이 교회를 만드는 것이지 교회가 하나님의 약속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절대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만 있다면 그 외의 모든 것은 없어도 그 영혼은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말씀이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말씀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하는 필요성은 바로 이 사실로부터 유래한다.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확립한 것은 정치적 술책이나 무력의 힘이 아니라 바
로 이 거룩한 말씀에 대한 설교였다 . 루터는 후에 이 사실을 이렇게 진술했
다. 나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설교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나
는 달리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말씀이 모든
것을 해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에 그의 기독교 강요를 썼을 때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높였다 . 특별히 그는 참된 교회의 제일 중요한 표징은 말씀에 대한 충실한 설교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는 기록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게 설교되어지고 들려지며, 성례전이 그리스도의 제정하심에 따라 집행되는 곳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 곳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고하였다 사실 말씀과 성례전에 대한 이 사역, 즉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복음의 선포는 하나님의 교회를 구별하는 영원한 표로 생각해야 한다.
영국의 종교 개혁자들은 칼빈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 성례전은 말씀으로
부터 그 효력이 나타나며 말씀 없이는 효력을 상실한다는 것과 , 말씀과 성례전은 교회의 필요 불가결한 표징들이라는 것, 그리고 성직은 본질적으로 말씀의 사역이라는 그의 가르침을 그들은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영국 성공회 19개 조항은 그리스도의 보이는 교회는 그 안에서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되고, 성례전이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의식에 따라 정당하게 집행되는 신앙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라고 공언하였다.
이 거룩한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개혁자도 영국 종교 개혁의 대중
설교자인 휴 래티머 보다 더 진하게 행한 개혁자는 없다. 그는 고위 성직자가 되지 않았으며 그의 평범하고 소박한 특성을 결코 잃지 않았으며 그는 마음으로부터 말하였으며 그의 말들은 사람들의 마음에가 닿았다 래티머의 유명한 연설은 경작의 설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연설은 그가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직후인 1548년 1월 18일에 성 바울 대성당에서 행해졌다 그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밭에 심어지기 위하여 뿌려진다는 것과 설교자는 씨뿌리는 자 라는 것이다. 그는 그 설교를 전개시켜 가면서 레스터셔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땅에서 농사지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설교자는 일년 내내 애써야 하는 농부와 같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직자들이 쓸데없는 사업과 오락에 참견하는 일로 그들의 시간을 낭비한다는 사실을 슬퍼하였다.
강력한 종교개혁의 위대한 결과들과 업적들은 주로 설교자들의 설교의 소산이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의 최상의 그리고 최대의 지속적인 활동이 행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였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랑하고 가르친 열심 있는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종교 개혁과 설교와의 관계는 상호의존, 상호보조, 상호 지도의 관계로 기술될 수 있다.
a. 루터의 설교
1) 상징과 미사로 드리던 예배를 설교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2)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많이 이용하였다
3) 믿음 중심의 설교를 하였다.
4) 성령과 성경을 강조하였다.
5) 설교의 원칙
① 문법적 지식을 따라 해석하며.
② 책의 시대와 환경을 고려하고
③ 문맥에 조심하며
④ 신앙과 조명이 있어야 한다.
⑤ 신앙과 조화가 있어야 한다.
⑥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6) 설교자의 이상적 태도
① 발음이 좋아야 한다.
② 학자인체 하지 말 것
③ 웅변적이어야 한다.
④ 처녀들이 반할 만큼 외모가 아름다울 것
⑤ 돈 받는 것은 조심할 것(신경 쓰지 말라)
⑥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이야기하라

b. 칼빈의 설교
1) 성서에 충실한 설교자였다
(루터는 로마서를 말구유의 아기로, 야고보서를 짚으로 봄
칼빈은 축자 영감설에 의거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다.)
2) 학자라기 보다는 민중적 설교자였다.
3) 성령의 감화를 강조 (설교준비를 하지만 원고는 강단에 안 가지고 올라감)
4) 예배의 중심을 설교에 두었다.
5)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였다.
6) 구약을 신약화 해서 보았다.
7) 실생활에 까지 파고 들었다.( 가정.경제, 정치,왕의 모든 문제까지
취급)
4. 청교도들과 복음주의자들의 설교
초기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서 설교에 주어진 강조는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에 청교도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졌다.
청교도들을 이해함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그들이 다른 어떤 존재들이기
전에 설교자들이며 또한 그들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들을 다른 설교자들과 구별하여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단합하고 투쟁하고 살아남
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은 그들 자신이 복음을 설교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의식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 는 것이 그들의 영감이며 의로움이었다
17세기의 청교도들 가운데 참 목자상의 저자인 리차드 박스터는 청교도 전통과 그 자신의 책이 보여주고 있는 전형들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서 유명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많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를 가르쳐야 한다. 참으로 이 두 가지야말로 목회자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얼마나 위대하고 탁월하며 놀랍고 신비로운 일인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학생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학교이며 우리는 그의 안내인들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문법책이다 우리가 매일 그들을 가르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라고 그는 썼다
대서양저편에서 미국의 청교도 인인 커튼 마더는 보스턴에서 양쪽 대양 해변에 그 영향력을 미치는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학생과 설교자라는 그의 책 속에서 목회자 후보생을 위한 지침서라는 것을 마련하였다. 그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기독교 사역자의 직무는 세상에 있는 누구라도 승인할 수 있는 가장 명예롭고 중요한 일이다. 어째서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이 이 직무를 불완전하고 죄지은 인간에게 맡기셨는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사의한 일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설교자의 직무에 대한 위대한 계획과 목적은 사람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왕권과 통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의 놀라운 완전하심과 그의 임무와 은혜를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며, 가장 명백한 언어로 선포하는 일이며, 또한 사람들의 영혼을 그리스도와 영원한 교제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영광이 되는 것으로서 천사가 흠모할 만한 일이다고 적고 있다.
죠지아에서의 2년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존 웨슬리는 마음이 뜨거워 지는 경험을 가졌다 그의 경험 속에서 그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였다 그의 죄들이 사라졌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를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즉시 그가 받은 자유케 하는 구원을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교회와 교회 마당에서 마을 잔디밭에서 들과 야외 극장에서 그는 복음을 선포하였고 그의 설교를 들으러 모인 수많은 군중들에게 그리스도를 권하였다 1757년 8월 28일자 그의 잡지에서 그는 사실 나는 설교 때문에 산다 고 말하였다 그의 교과서는 언제나 성경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며 독자들에게 구원을 깨우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다 .
죠지 휫필드는 분명코 더 능력 있는 설교자였다. 그는 영국과 미국을 돌아
다니며 34년 동안 일주일에 평균20번 가량의 설교를 하였다 능변에다가 열심있고 교리적이며 열정적인 그는 생생한 은유들과 평범한 예화들, 극적인 제스처로써 그의 설교에 생기를 더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의 권위를 철저하게 확신하였으며 그의 메시지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5. 19세기의 설교
챨스 시므온 은 캠브리지 대학부 시절에 개심 하였다. 그때 그는 거기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열망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
를 들어주셨다. 1782년에 그의 그 교회의 교구 목사가 되었다. 그는 54년
동안 홀리트리니티 교회의 강단을 지켰으며 성경을 조직적으로 가르쳤다 설
교에 대한 시므온의 고귀한 식별은 목회자를 대사로 생각하는 개념으로부터
나왔다.
목사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사이며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말하는 자이다. 그가 성경에 근거한 것을 설교한다면 그의 말은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자의 말을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19세기 전반에 있어서 성경에 대한 고등 비평의 공격들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도 불구하고 강단은 영국에서 그 명성을 지켰다. 사람들은 그 당시의 위대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으려 몰려들었고 인쇄된 그의 설교를 열심히 읽었다. 그 설교자들 중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교회의 존 헨리 뉴멘, 성 바울 대성당의 케논 리든 브리튼의 로버트슨 그리고 모든 설교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런던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의 스펄젼이었다
1812년에 신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첫 번째 교수직을 맡았던 아키볼드 알렉산더의 아들인 제임스 알렉산더는 설교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 가운데 설교의 중요성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염려한다. 오늘의 젊은 사람들은 설교에 임할 때 대 전투를 하루 앞둔 자의 각오로 임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장 강력한 열정의 원천을 찾아 인간 감정의 대양의 깊은 곳까지 충격을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서 설교 준비를 하지 않는다. 설교는 하나님 자신의 방법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설교를 영예롭게 하실
것이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개혁자들은 위대한 설교자들이었다
후에 알렉산더는 설교를 단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또한 설교자 자신을 위한 참된 성취라고 주장하였다. 설교에는 기쁨이 있다 . 설교 듣는 사람에게 지루한 만큼 설교자 자신에게도 지루하게 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설교가 훌륭하게 행해질 때 그 설교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고귀한 감동을 일으킨다. 그러한 설교에는 기쁨이 있다.
설교의 이러한 능력과 기쁨 때문에 금세기에 이르러 에딘버러의 알렉산더
화이트가 낙담해 있는 한 감리교 목사에게 설교 포기할 생각일랑 하지 마시
오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서 있는 천사들이 당신의 그 위대한 일 때문에 당신을 부러워하고 있오! 라고 충고할 수 있었음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말은 1908년에 있었던 일이다. 또한 1907년에는 회중교회 신학자 포사이
드의 저서 긍정적인 설교와 현대 지성이 출판되었다 그 책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모한 시작일지 모르나, 나는
감히 기독교는 설교와 함께 흥하거나 설교와 함께 망한다고 생각한다.
6. 20세기의 설교
금세기는 행복감에 도취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분위기에 동조하였다.
20세기 초의 위대한 설교자 찰스 실베스타 혼 목사는 1914년 예일대학에서
설교의 로멘스 라는 제목으로 설교에 대한 비쳐 강좌를 인도하였다 혼은 회
중교회의 목사이며 영국의 하원이었다. 그는 하원에서는 능변가로, 설교에
있어서는 열정가로 평판이 높았다 정치가이자 설교자이었던 그는 자신의 개
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어느 것이 더 영향력 있는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자인 설교자는 사회의 참된 스승이다. 즉 통치자가 되도록 집단에 의하여 뽑힌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이상을 형성하기 위해, 그 이상을 통해서 사회 생활을 인도하고 다스리기 위해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뽑힌 사회의 스승이다.
역사의 진정한 로맨스는 이러한 설교자들의 로맨스다 . 이 사람은 무력의
충돌과 어리석은 힘의 각축들 속에서 오직 진리라는 이름의 칼과 의의 갑옷과 평화의 영을 구하면서 평온하게 서있다. 이 사람은 세상이 정복할 수 없고 저항할 수 도 없는 영웅이다 . 세상의 가장 영속적인 승리는 모두 그의 것이다. 회중교회 목사로서 , 설교를 정치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생각했던 또 한 사람은 조운즈 박사였다 그는 거의 40년간을 본머드에 있는 리치몬드 힐 회중교회 목사로 있었다. 한 정당의 지도자로부터 의회의 후보자로 출마하도록
권고 받았을 때 그는 그 권고를 사양하면서 그 이유로서 산발랏과 도비야에
게 보낸 느헤미야의 답변을 인용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느6:3) 조운즈 박사는 두 마디를 강조하며 선언했다. 나는 의회
가 인간의 조건을 좀더 개선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상처를 궁극적으로 치료 할 수 있는 것은 입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구속의 은혜를 선포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부름 받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다
금세기 초에 유행했던 낙관주의는 먼저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 다음에는 참호 속의 진흙과 피의 참사로 산산이 부서졌다 실로 전쟁을 경험한 후 이전의 자유로운 낙관주의를 버리고 인류에 대한 새로운 현실주의와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신앙을 표명하는 설교가 이전보다 더욱 심각한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 것보다 현실 상황에 더 적절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긴박하며 더 유용하며, 더 구속적이고, 더 유익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은 아주 자명한 이치이다
또 다른 예는 에딘버러의 제임스 블렉의 경우이다. 그는 1923년 스코틀랜드
에서의 워랙 강좌와 미국의 프린스톤 강좌에서 학생들에게 그들의 설교 사역을 진지하게 수행하라는 고무적인 충고를 하였다. 우리의 봉사는 위대하고
장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을 바칠 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일찍부터 여러분의 설교 사역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주기를 부탁한다. 우리의 일은 필요한 모든 준비와 그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재능을 모두 사용해야 할만큼 중대한 일이다. 여러분의 일은 영혼들을 보살피고 기르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일에 여러분 자신의 값진 삶의 열심과 열정을 쏟으라고 한 것이다..
비록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유럽 속에서의 세속화 과정이 가속화되었다할지라도 그 2차대전 조차도 설교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 못했다 웨스트민스
터 샌드럴홀의 월 생스터는 18세때 감리교 지방 설교자가 되었고 1950년에는 영국 감리교 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잘 알려진 저서인 설교의 기술에서 그는 설교자의 임무와 특권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설교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았다! 위대하신 왕의 사자! 영원한 복음의 증인 ! 다른 어떤 일이 그보다 더 높고 더 거룩할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사람이 전념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거룩한 활동이다 그러므로 그 일은 어쩌면 천사들조차 부러워서 그 일을 하고자 하늘의 궁정을 버릴만한 일인 것이다."
앤드류 블랙우드도 그와 비슷하게 설교는 지상에서 가장 고상한 일로서 그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고 논평하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1960년대, 1970년대 그리고 80년대에 이르게된다. 불행
히도 설교의 조수는 점점 쇠하였고 그 간조는 여전히 오늘날도 낮은 채로 있다.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의 설교의 쇠퇴는 교회 쇠퇴의 징후이다. 회의론의 시대적인 분위기는 확신 있는 선포의 회복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설교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단언하며 설교의 부활을 요구하는 소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74년부터 1980년까지 켄터베리 대주교를 지낸 도날드 코건보다 더 영국교회에서의 설교의 회복에 자극을 준 사람은 없다. 설교자 대학이 영국에서 세워진 것은 주로 그의 발의에 의해서였다. 설교에 대한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인 은혜의 청지기들에서 그는 이러한 말로써 설교의 절대 필요성에 대한 그의 확신을 표현하였다
"여기에 하나님의 경륜의 기적이 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람의 죄 사이에
서있는 설교자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준비와 인간의 필요 사이에 서 있
는 자가 곧 설교자이다. 인간의 죄를 용서에, 인간의 필요를 하나님의 전능
에, 인간의 탐구를 하나님의 계시에 연결시키는 것이 그의 과업이다."
자유 교회에서의 예는 1938년부터 1968년까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교회당
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목회를 해온 마틴 로이드 존즈 목사의 경우이다. 그는 주일날에 자신의 강단을 떠난 일이 결코 없지만 그의 메시지는 지구의 가장 먼 구석구석까지 미쳤다. 그의 의학적인 훈련과 내과 의사로서의 초기 경험, 성경 권위와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흔들릴 수 없는 신념, 그의 예리하고 분석적인 지성,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그의 통찰력, 그리고 그의 열정적인 웨일즈인의 기질로 인하여 그는 50년대와 60년대의 영국의 가장 힘있는 설교자가 되었다 내게 있어서 설교의 사역은 이제까지 부름 받을 수 있었던 누구에게나 가장 귀하고 위대하며 가장 영광스런 소명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감격스럽고 가장 흥분시키며 가장 보람되고 가장 놀라운 일이다.
Ⅱ 한국교회 설교사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축복 받은 배후에는 비판의 여지도 많겠지만 한국교회의 지난날에 주의 사역 자들이 눈물과 땀과 피를 바친 흔적과 자국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 선교 초기 선교사들의 설교
이 땅에 기독교의 복음의 씨가 뿌려진 것은 1885년 4월 5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H.C.Appenzeller) 부부가 인천에 상륙함으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선교의 초기 선교사들은 무엇을 어떻게 설교하였을까? 처음에는
언어의 장벽으로 만족할 만한 설교를 할 수 없었겠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퍽 단순하고 복음적 이었음을 후일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감리교 <신학세계>(1916), 장로교의 평양 신학교에서 출판된 <신학지남>(1918), 그리고 성결교회<활천> (1924) 등에 설교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특히 1929년대에는 한국교회의 최초의 설교집이 출판 되었는데 이 설교집은 당시 대영성서 공회의 사찰이었던 양익환에 의해 편집되었다.

(1) 설교의 특징
초기 선교사들의 설교의 특징은 1900년대 초에 미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제목설교(Topical Sermon)의 방법을 그대로 도입하였다. 오히
려 초기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본문 설교에 가까운 것에 반해서 선교사
들이 제목 설교를 한 이유는 그들이 언어를 충분히 구사하지 못해서 이
해를 쉽게 하는 방법과 너무 딱딱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예화를 많이 도입하였다.
이런 제목 설교의 방향은 한국교회 강단 100년 역사에 끼친 영향이 실로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제목 설교의 경향은 설교에 많은 예화를 사용하게 됨으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예화를 많이 권장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제시한 예화 내용들은 역사적 사건들로서 당시 미국교회의 강단
에 흔히 쓰여지는 내용이었으며 초기 선교사들이 들여온 예화들은 한국
교회 강단 100년 역사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2) 선교사들의 설교관
초기 선교사로 평양 신학교 교수였던 곽안련 선교사는 신학자로서 한국 장로교회의 설교의 실제적인 방향과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다. 또한 당시 평
양 신학교 교수였던 부두일 선교사 등의 논문 "흥미 있는 강도"와"실효 있
는 강도의 요소"에서 당시 선교사들의 설교 신학을 엿볼 수 있다. 즉, 설교는 기독교의 특성인 동시에 설교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하고 그 말씀을 바로 해석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 얻는 복된 유익한 방법은 설교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그 외 논문이나 심방이나 성례로 복음 증거하는 것은 설교에 보조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1918년에 <신학지남>에 발표한 "취미 있는 강도"에서 설교의 준비를 다
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a. 성경을 연구할 것
b. 신학을 연구할 것
c. 시대를 이용할 것
d. 각 개인의 정황을 잘 살펴볼 것
e. 우리가 생활하는 시대 형편을 잘 알 것.
f. 자기를 잘 알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그는 성경 연구 방법을 말하지 않았으나 성경 연구 태도에 "강도
하는 자는 성경을 해석할 때에 이상하게 상상적으로 하지 말고 묵시의 뜻
을 정확히 해석할 것이요..." 라고 했다. 곽안련 박사가 <신학지남>에서
특기할 만한 내용을 발표했는데 당시 한국 교회의 부흥회와 설교 문제를
열거하면서 부흥 시에 은혜를 받는 것도 귀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흥의 이
후로 부흥회 사후처리 문제의 방향이 한국교회의 참된 부흥의 열쇠라고
말하였다.
(3) 선교사들의 설교의 실제
a. 언더우드 (H.G. Underwood 1859,7.19-1916,10.12)
언더우드 목사는 실로 한국교회의 아버지이며 한국기독교 교육 운동의 선각자이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말을 익히자 곧 거리나 마을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과 함께 성경을 펴서 읽으면서 성경의 진리를 설교했다. 얼마 후에는 큰 거리나 마을로 나가서 만나는 사람과 함께 성경을 펴서 읽었다. 그러면 언더우드 목사가 1912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제1회 총회 총회장시의 설교를 보자. 그는 빌립보서 3:8-10을 읽고 제목을 "모든 것을 해로 여김" 이라고 했다. 요점은 세 가지로 다음과 같다.
(1) 속죄해주시는 예수님
(2) 부활하신 예수님
(3) 예수님과 같이 고생하면 즐거워진다. 등 세 대지로 나누었으나 본문
과 제목과 대지와 내용이 서로 연결이 없고 논리성이 부족해서 무엇을 말
하려고 했는지 얼른 파악하기 곤란하다.
우선 설교만을 두고 볼 때 대개 초기 선교사들의 설교의 경향은 본문과는
무관한 설교가 많았으며 논리성이 희박해서 설교학적으로 미숙했던 점도
없지 않다. 그것은 피선교지로 오기 전에 목회에 대한 경험 부족도 문제
됐을 것이다.
<윈도우 강도 취집> 에서 그 설교에 나타난 사상적 측면을 생각하면 그의 설교 집의 첫 제목이 "예수교회의 사기 와 저희 위하여 하나님께 일하
시려고 함" 이란 긴 제목이다. 영문 표기는 "History of the Church" 이
다. 본문은 고린도후서 6:17-18였다. 이 설교도 본문 제목 그리고 내용이 서로 연결되지도 않고 논리성이 부족함을 보게 된다.
b. 곽안련 목사 (C.A.Clark)
1920년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서 한국에 온 곽안련 목사는 평양신
학교의 교수로서 실천 신학에 대한 여러 가지 저서를 남겼는데 그 중 그의
설교학과 목회학은 오늘까지 신학교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그는
<신학지남>을 통하여 매회 "기술적 강도"또는 요약설교인 "강도 도형" 예
화를 모아서 설교 자료를 제공하는 "강도에 사용할 비사" 그리고 설교의
아이디어와 힌트를 제공하는 "가용적 제목과 본문"이란 난에 매회 걸쳐서
수 편의 글을 썼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이고 실제적인 노력은 한국교회 강
단에 방향을 잡아 주었고 한국 장로교회 목사들의 설교 내용과 틀을 만들
어 주었다.
1918년 <신학지남>의 창간호에 실린 "예수의 평안과 사단의 평안을 비교
함"이란 설교에서 요한복음 14:27을 택했는데 서론에서 이 세상을 사단과
동일시하는 등 식을 만들어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 했다. 차라리
성경 그대로 예수의 평안과 세상이 주는 평안을 해설했다면 좋을 뻔했다.
그는 요한복음 14:30에 '세상 임금'을 사단으로 보고 이 세상은 결국 사
단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삶의 현장인 세상을 어떻게 해
석하는 가에 따라서 설교의 방향은 퍽 달라지게 된다.
그는 예수와 사단이 평안을 주는 방법을 비교하면서 "사단은 진리를 결
함으로 평안을 주고 예수는 진리를 밝히 나타냄으로 평안함을 주시는 것
이외다."고 한 것이다.
다음 곽박사의 초기 설교를 몇 개 더 보면, 요한복음 1:42-43을 본문으로
택하고 "토기쟁이 되신 예수시라"는 제목을 택하였다. 그는 이 내용에서
진흙 같은 시몬을 택해서 토기를 넣어서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옛 사람이
변해서 새 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 이러한 제목을 쓴 듯하다. 그러나 설
교 내용의 전개는 본문의 내용과는 관계없고 베드로의 생애를 추적하여 베
드로의 생애의 변화를 취급하고 있다. 또 부활주일 요약설교 중에 본문을
요한복음 11:14을 읽고 "나사로를 기생하심"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대지로 구분했다.
(1) 예수께서 사역하시는 중에 신자의 도움을 받으심이오 (돌을 옮겨 놓
으라의 이해에서 교우와 교역자의 할 사역이라).
(2) 예수께서 무리들의 신앙이 미약함을 책망하심이오 (교훈을 받고도 망
각함으로 다시 권유하심).
(3) 제반 육신 상 예비가 된 후에 예수께서 오신 일을 천부께서 맡기심이
오(이적을 보는 자가 이 권능은 하나님의 권세로 이를 줄 알았다)
(4) 예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신 것은 장차 재림하실 때에 크게 외치실 장
본인이 됨(살전4:12).
결말은 지금 예수의 음성을 들으면 그날에 또 들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
께서 사역하실 때 신자의 도움을 받는다는 말은 오해의 여지가 있고 돌을
옮기고 수족을 묶었던 끈을 푸는 것을 교우와 교역자의 할 일이라고 단언
한 것은 Alegorical 한 방법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흥미있는 설교는 본문 이사야 53:12와 빌립보서 2:9-11을 읽고 "예수를 대
적함과 예수를 대접함"이란 설교이다. 이런 유의 대조적인 제목 설정은 곽
목사의 설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그의 설교에서 당시에 고난받는 한국 민족에게 어떤 결정적인 메시지 보
다는 순수한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야 할 것을 가르쳤다.
다만 그의 설교의 내용 중에는 당시의 사회상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거기서
뛰어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을 것을 권고하는 말들을 볼 수 있다
c. 마포삼열(S.A.Moffett 1864-1939)
마포 삼열 박사 전기의 서문에는 "한국의 예루살렘을 이룩한 마포삼열
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잊을 수 없는 한국의 은인이요, 개척자요, 선각자요,
비단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 근대사에서도 위대한 공
헌을 장식한 사람이다" 라고 했다. 과연 그는 한국교회의 창설자요, 공로자
요, 한국민족의 역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민족의 개혁자이다.
그가 1889년 12월 정든 모국을 떠나 1890년 1월 25일 한국 땅에 도착한 26세부터 1936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46년간 일하면서 한국 땅에서 20여만의 성도 1500교회가 선 것을 볼 때 그는 한국인 영혼의 개척자이고 한국교회의 아버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전도자일 뿐만 아니라 교육 사업자로서 평양신학교, 숭실전문학교, 경신학교 등을 세웠다. 평안도에만 교회가 세운 학교가 800이었으며 그 중에 마목사가 100여개 학교의 교장과 이사장으로 그 동안 배출한 목사만도 365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선교방법으로
(1) 사경회를 열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요
(2) 자선 사업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3) 각급 학교를 세워 교육 사업으로 지도자를 배출하고 간접 전도에 주력했다.
그의 선교 또는 설교의 현장은 사랑방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
접촉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고 날마다 종일토록 그들과 만나며 그들과 생활
하며 그들이 내 생활 속에 들어오는 것을 소원해 왔다."
마박사와 다른 선교사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과 한국인을 동일시하
는 동일화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남긴 설교 중에는 골로새서 2:8을
본문으로 한 "조선 교회에 기함"이란 제목의 설교로 이 설교는 제8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설교에서 우리는 설교학적
인 입장에서의 평가에 앞서 그가 눈물과 땀과 피를 바친 한국 교회를 향한
불같이 뜨거운 정열을 듣고 보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교회를 참 교회 되게 해 보겠다는 굳은 신념, 그리고 전국 교회에 일
하는 선교사들과 지도자들을 향한 그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그가 택한 본문과 제목을 보면 그가 무엇을 설교할 것인가 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마치 골로새 교회처럼 한국 교회가 사상적으로 흔들림이 있었다. 이러한 교회의 위기를 보고 안타까이 발을 구르며 이 땅에서의 선교 활동을 통한 체험적인 신앙 고백을 그의 설교에서 털어놓았다.
설교에 나타난 주요 사상은 "나는 조선에 와서 복음 전도하기 전에 황주
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결심한바 있었다. 결심은 내가 이 나라에 십자
가의 도 외에는 전하지 않기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죽든지 살든지 구원
의 복음만을 전하기로 굳세게 결심하였다. 그 다음 해에 평양에 왔는데 그
때 평양에 신자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다음 해에 의주로 가서 한 청년을 만나서 산에 올라가 산보도 하고 봉천에서 받은 한국 신약을 주고 예수를 믿으라 전하였는데 그 청년이 믿기 작정하였다. 그가 곧 한석진 목사이다. 그는 "우리의 처음 결심은 바울의 결심과 똑 같은 결심을 하였다.
바울이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않고 만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
라고 결심한 것 같이 나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이외는 다른 것을 전하
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려 하였다.
실로 한국교회의 전통 신앙을 사수하기 위한 불같은 외침이었다. 그는 바
울이 청년목사 디모데에게 부탁함과 같이 나도 조선 청년 교역자에게 말한
다면 "원로 선교사와 원로 목사의 전한 그대로 전하라 이 복음 내 것이 아
니오 우리가 옛적부터 전한 복음이다. 이는 모든 백성에게 십자가의 도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바란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딴
복음을 전하지 말기를 바란다." 고 하였다.
그는 예언자적인 투시력과 꿈을 가지고 한국의 장래를 환히 내다보고 있
었다. 그는 미국인이었으나 한국인의 문화와 사상과 생활 속에 들어와 동질
화되기를 원했다. 그가 한국을 보는 눈은 한국인들보다도 더 정확한 판단
이었다. 새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수단이나 외부적조
건보다 정신적인 각성과 무장을 더 우선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구습을 버리고 정의를 위하여 청렴한 생활 혁명이 필요하다
는 것이다. 특히 한 민족의 장래와 축복은 정치나 군사적 시위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정신적 무장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람 이상으로 이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을 가진 메시지를 전
해주었다. 1920년에 방황과 좌절과 낙심 중에 있던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적시타 메시지가 되기도 하였다.
2.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 분석
대한예수교장로회 역대 총회장 설교 집에 수록된 설교 중에 교리적인
설교는 극소수이다. 다만 한석진 목사의 "죄인을 선대하시는 예수" 이인
식 목사의 "주님이 이 땅에 오신 3가지 목적", 이자익 목사의 "인자 되
신 예수" 등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딱딱한 교리보다 생활면에 치
중하며 당시 유교적 영향을 받은 국민에게 기독교의 윤리를 내세워서 대
중의 호응을 받아 복음전파에 적응을 꾀하고자 하며, 둘째는 당시의 설
교자들이 신학적 기초보다는 실제적인 면에 적응하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본다. 초기 한국교회는 아직 어린 교회로서 신학을 논하고 교리를 설명
하는 설교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에 비
추어진 신학적인 문제를 간략하게 지적해 보고자 한다.
a. 설교에 나타난 신관
< 한국기독교 100주년 대설교 전집(1)> (1884-1919)에 나타난 설교
의 목차를 보면 141편의 설교 중에 하나님에 대한 설교는 고작 4편에 불
과하다.
길선주 목사의 설교 중에 신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로마서 8:26-30
을 읽고 "상제(하나님)의 직조 기계"란 제목에서 하나님의 무소부재 불능
하심을 전제한 것인데 전개의 방법은 풍유적(Allegorical)이었다.
즉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직조기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다. 흥미롭게 했지
만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과 예정과 섭리, 그리고 구원의 서정을찾
아볼 수 없고 지나친 풍유적 해석으로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없다.
또한 평양신학교 4회 졸업 (1911) 한 이기범 목사는 창세기 1:1-19을 중
심해서 "하나님의 신이 물위에 운동하심"이라는 제목 하에
(1) 하나님의 신은 물위에 창조의 운동이시라
(2) 물위에 중생의 운동이시라.
(3) 물위에 생명의 운동이시라
(4) 물위에 구원의 운동이시라
(5) 하나님의 신은 물위에 연합적 운동이시라는 대지로 설명했으나 여기
서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고,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없다.
이에 반해서 감리교의 방훈 목사의 설교를 보면 상당히 체계적인 교리가
나타난 있다. 즉, 요한복음 3:6을 읽고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면서 다
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세계를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하
나님의 창조로 인해 이 세계는 그의 보호아래 지배를 받아 오는 까닭입니
다, 하나님의 애호 아래 우리의 지구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
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냐 하면 그는 독생자를 보내 주실 만
치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성서는 밝혀 주셨습니다."라고 했다. 즉, 하나님
의 세계 창조와 통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밝힌 셈이다.

b. 설교에 나타난 기독관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 중에 기독관을 언급한 설교는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구속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뿐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과 인격을 따라야 할 것을 강조했댜.
당시 장로교회 목사인 김관식은 그의 설교 요한복음 15:13에 대한 "철저
한 애"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고아의 사
랑으로써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현명한 사랑으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생명을 바치실 것을 1년 전부터 각오하시고 태연히 동하
지 않는 태도로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철저한
사랑을 행하려 할 때에 부지불식간에 너무 정이 적다. 너무 동정이 결핍하
다는 말을 듣게 될런지 모릅니다.
당시의 설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형님이란 표현을 많이 쓰고 있
다는 것이 특색이다. 당시 원산남 감리교회의 신석구 목사는 "기독교와 사
명"(마16:16-20)이란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첫째가 무엇이냐 하
면 그리스도 올시다. 그리스도가 토대가 된 그리스도 교회의 둘째가 무엇
이냐 하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믿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 하
는 넷째가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에서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이가 있습
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동생이 도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
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형제가 된다는 말인 모양인데 그렇게 자연스럽
지는 못한 것 같다. 이는 기독론을 바로 취급하는 논법이 아니다. 예수님
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예수와 우리는
한 형제라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
이명직 목사의 설교에 나타난 것을 보면 이미 1920년대에 신학이나 설교
에 있어서 잘못된 기독관을 설교하는 자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
히 예수를 사회 복음주의자와 같이 취급한 사람들의 설교도 많았다는 것
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명직 목사의 설교는 바른 기독관을 제시한 설교
라 본다.
이자익 목사도 "선한 목자 예수님"에서
(1) 양을 잘 인도하심
(2) 양을 잘 보호하심
(3) 양을 지극히 사랑하심이라고 설교했다.
평양신학교 10회 졸업생(1917) 이인식 목사의 "예수님이 땅에 오신 세가
지 목적"(막10:35-45)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1) 환전한 사람을 보이실려고 (45절)
(2) 섬기려고 (45절중반)
(3) 속죄하여 주려고 (45절 하반)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증거했다.
당시 설교에 있어서 기독관은 비교적 건전했으나 일부에서는 예수를 도덕
적 표적으로 이해하고 설교하기도 했다.

c.설교에 타나나 성령관
초기 한국교회의 설교에 나타난 성령관 1907년에 일어난 대부흥 운동
과 무관하지 않다.
1) 1903년 겨울에 감리교 선교사들이 원산에서 한 주간 기도회와 성경공
부를 가졌다. 여기에 참석한 하이디(R.A.Hardie)목사는 기도하는 중에 성
령을 체험하고 동료선교사들에게 자신의 실패와 그 원인을 고백하고 간증
하기를 "나는 성령이 내 안에 충만한 증거를 가지고서 나의 게으름과 교만
과 마음의 완악함을 자복한바 강한 죄 의식과 회개의 체험을 비로소 깨닫
게 되었다.고 하였다.
2) 1904년 봄에 원산에는 장. 감. 침의 모든 선교사들이 창전교회에 모여
연합 사경회를 열었다. 그 집회에서 특히 로브(A.F.Robb) 선교사가 큰 체
험을 얻게 되었다.
3) 1906년 여름에 하이디 (R.A.Hardie)목사가 체험을 얻게 되었다.
4) 1906년에는 뉴욕의 죤슨(Howard Agnew Johnson)목사가 한국을 방문
하여 모두 성령 받기를 더욱 갈망하였다. 죤슨 목사가 청중을 향해서 성
령받기를 원하는 자는 일어서라고 설교하자 길선주가 벌떡 일어나 단번에
응답했다.
5) 1907년 1월 6일부터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하여 선교사들과 평양
시내 온 신도들이 함께 모이는 대 사경회가 열렸다. 10일간 계속되는 대
사경회에서 수 천명에게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다. 온 회중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했다.
6) 1907년 대부흥 이후 장감 연합 부흥회의 강사였던 김상준 목사는 야
고보 2:7을 읽고 "추수의 비를 빌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옛날 교회 창
립시 곧 오순절에 성신 강림하심은 농사 시작할 때에 춘우같고, 금일 시
대 종말에 성신을 부어 주심은 농사를 마칠 때에 내리는 추우와 같습니다.
이 말일을 당한 오인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고대할 것은 이 추우올시다"라
고 했는데 퍽 흥미 있는 비유이다. 오순절의 성령을 봄비로 오늘의 성령을
가을 비로 마지막 때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이해한 것이다.
또한 신성학교 창설자이며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인 양전백 목사는 " 늘
계시는 보혜사"(요14:15-17)에서 '보혜사'를 헬라 방언의 원의 대로 " 겉
으로 부른자"(Parakletos)라 하니 변호사란 말에서 왔다는 뜻을 지적하고
설교한 것은 깊은 연구가 있었다. 당시에 아직도 성령관에 대한 신학적인
깊은 설명이 없던 때에 이런 설교는 매우 드문 것이며 보혜사 성령의 역
할과 기능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도 김익두 목사의 경우 사도행전 1:1-5에서 "성령의 세례"란 설교에서 불
의 성령, 비둘기의 성령, 물의 성령, 바람의 성령, 기름의 성령이라 하여
성령의 역할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의 설교 결론부에는 그의 성령관의 중
요한 것을 제시해 주었다.
d. 설교에 나타난 교회관
1900년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가졌던 교회관은 그들의 설교에서 발
견할 수 있다. 성결교의 이명직 목사의 설교 중 "전투의 교회"에서 혹 이
교회를 오해하며 일종의 정신 수양의 장소로 여기나니 이것은 큰 잘못이
다. 교회는 한 개인의 정신수양이나 나무아미타불이나 부르는 사원이 아
니다. 죄악에서 실제로 구원받은 무리 곧 그리스도의 정병이 모여 싸움을
준비한 곳이다. 당시에 정신 수양의 장소로서 또는 독립 운동의 장소로만
생각하는 자들이 많던 때에 그는 전투적 교회로서의 모습을 설교했다.
한편 길선주 목사는 "참교회"(엡1:21-23) 란 설교에서 세상에 교회가 많
다. 그러나 거짓 교회이다. 참 교회가 오직 하나 있으니 곧 예수 교회이다.
(1) 교회의 위치 -어디든지
(2) 주장자 - 그리스도의 예수
(3) 교회의 책임자 - 그리스도의 지체
(4) 얼마나 왕성할까 - 우주에 충만이라고 했다.
그의 교회관은 정통 교회의 그것과 다름없다. 특히 교회의 보편성과 통일
성을 지적한 것이 눈에 띤다. 특히 "신령한 교회"설교에서 신령한 교회를
조직하는 5대 요소로서 성신, 권능, 땀, 눈물, 피를 들었다. 신령 교회의
직분으로서 기도와 전도 세상에 충만할 것을 들었다.
3. 수난기 한국교회의 설교

a. 길선주 (1869,3.15-1935.11.26)
길선주 목사의 성격을 살펴보면 얼른 베드로를 연상할 수 있을 만
치 급격한 성격이면서 쾌활하고 용감하여 요한처럼 심오하고 자애한 면
이 있다고 한다. 그는 성경 중에서 요한복음, 요한1서 요한계시록을 가
장 많이 애독하였다. 길목사는 한국교회의 오순절이라 할 수 있는 1907
년 대 부흥 운동의 주역이었다. 그에게 신학교는 하나님과 만남의 도장
이었다. 매일 한시간 이상의 기도와 매주 3일간 금식기도와 매년 1주일
간의 금식 기도를 세상 떠날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의 설교로 2,200명 결
신자를 얻고, 성령의 충만한 기도로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이상한 주인과 괴이한 주인"의 제목으로 부흥설교에서 온 회중은 통
회자복과 죄인임을 회개하자 3일째에 방은덕이란 순포(경찰)가 음흉한 생
각으로 범죄자를 잡으려고 참석했다가 자신의 얼굴을 들 수 없고 다른 사
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장내는 고요하고 강단에는 이상한 빛이
비치었다. 이때 길목사의 설교 내용은 지옥을 취하랴, 천당을 택하랴?
물질을 도둑한 사람은 잡을 수 있지만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죄는 다스
릴 수 없다고 했다. 이 설교를 들은 방은덕은 그의 마음이 터질 것 같았
고 마음의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아이고 하는 소리와 함께"
선생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하고 딩굴었다. 이때 방은 일어서면서 선생
님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길목사는 통회하는 사람들의 심령
을 향해서 새로운 소망과 안위를 주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은
총의 진리를 성신의 감화로 가르치는 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적인 설
교가 된다는 것을 설교의 신조로 하였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의 설교를 매개로 하여 일어난 성령
의 불길은 전국 각처에 번져 나갔다. 길선주 목사의 설교 방법론은 (1)
본문 선택 (2) 인도 (3) 제목 (4) 설교의 본론 (5) 결론이다.
첫째 - 말할 제목이 본문을 택할 것
둘째 - 뜻이 명백한 본문을 택할 것
셋째 - 간단한 본문을 택할 것
넷째 - 교회의 형편에 적합한 본문을 택할 것
당시 장대현 교회의 장로였던 고영수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길목사
님은 특히 설교에 능하셔서 모든 신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 설교
때면 우선 자신이 열렬하고 진지한 태도를 보여 분위기를 이끌어 가곤했
디. 그 설교들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신앙적이어서 얼마 전 <강대보감>이
란 설교 집을 출판한 일도 있다. '강도의 뜻'을 강도라 하는 것은 경우와
형편을 따라 하나님의 신령한 이치를 가지고 성경 말씀으로 기초를 세우
고 구속하는 뜻으로 인심을 감동하도록 권면하는 유법적 강설"이라 했다.
강도주의를 죄의 더러움과 마귀의 권세 가운데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하
나님의 광명한 빛 가운데로 인도함이라고 하였다.
b. 김익두 목사 (1874.1.3-1950)
김목사는 우리 한국의 무디(D.L.Mood)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국교회의 부흥회를 대표한 인물이었다. 그는 황해도 안악군에서 태어나서
17세에 과거에 낙방하고 술과 노름과 완력으로 악명 높은 깡패였다.
1900년 27세 때에 소안련(William Swallen)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 집회
에 참석하였다가 영생에 대한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로부터 세례 받기까지 10개월간 일체 바깥 출입을 삼가
고 성경을 100독할 정도로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세례 받
는 날에는 (1901년 1월 소안련 목사에게) 김익두 사망했다는 부고장을 돌
렸다. 그후 1906년 평양 신학교에 입학, 1906년 평양 신학교에 입학,19
10년 제 3회 졸업 후 서천교회에 시무당시 불같은 성령의 임재, 기적의
신유를 겸한 부흥목사로 부각했다. 1919가년 12월 3.1 독립운동 이후 민
족의 좌절과 절망, 사회주의자와 무신론자의 도전, 온갖 정신적 황폐,
교회의 침체와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 이러한 혼란 속에 김목사는 민족
구원의 대 역사를 주도하고 나섰다.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와 설교 운동
은 이적이 수반되었다.
온갖 이적 기사가 나타남으로 재령의 임택권 목사가 이적 증명회를 발
기해서 3년간 각처에서 나타난 이적을 실지 조사하고 1902년 이적 증명
서를 발행했다. 김목사 부흥회 중에 일어난 이적의 사실은 당시의 신문
에서 세계 3대 불가사의로 말했는가 하면 다른 신문에는 '벙어리가 말
하고 앉은뱅이가 걸어감'이란 제목으로 김익두 목사의 부흥 전도회에 만
명의 큰 무리가 은혜의 목욕을 받음이라고 했다.
(1) 김익두 목사의 부흥운동은 성령의 은사와 이적을 동반하였으며 그
의 설교는 성령의 능력과 기도의 힘, 그러면서 소박한 신앙, 고난 이후
에 낙이 오리라는 메시지를 전하였다.
신앙인 김익두 목사에 대한 평을 24년간 봉직한 신천교회의 한 성도의
말을 빌어 김인서 장로는 "우리 김목사님은 기도를 많이 하고 교인을 많
이 사랑하며, 성경을 잘 가르쳤습니다. 부흥 강단에서는 사자 같건만 교
회 안에서는 자부였습니다." 김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주기철목사가 은혜
를 받았으며, 전재선 목사와 이성봉 목사가 그의 부흥 운동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는 주님의 사역을 시작한지 반세기 동안 한국은 물론, 중국과
시베리아, 일본까지 그의 밭길을 옮겨 776회 부흥회를 인도, 150여개처
에 교회를 개척 건축하였고, 2만 8천여 회의 설교를 통해 이 땅위에 구
령 사업의 최선봉에 섰던 것이었다. 김목사님의 설교 스타일과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설교의 방향을 결정해 두고, 그 방향에 따라 설교 내용을 채우고
있다. 그의 설교 주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 부활, 천국 등 회
개의 설교를 외친 것이다. 민족적인 잘못된 인습과 개인적인 잘못된 습
성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불신앙적인 관행, 무당, 미신타파 등 비
복음적인 요소를 과감히 지적하였다. 특히 그의 설교에는 익살과 유모
어가 풍부하였고 설교 시간에는 시청각적 방법을 최대로 동원하였다.
(2) 김목사의 설교에 나타난 신학과 신앙을 보면 대개 가난하고 병마
에 시달린 소외 계층에게 환영을 받았다. 그는 사회적 미덕을 겸손, 양보
가난과 소박함을 찬양하고 부에 대한 경원과 현세상의 종말과 심판을설
교했다. 김목사의 천년왕국적 종말론은 현실의 죄악성과 단죄 때문이라
고 지적하며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 속에 내재하는 성령의 강림 체험은한
인간의 존엄을 약속할 수 있었고, 기존 사회의 신분제도에 대한 저항을
신앙으로 지당케 한 것이다.
김익두 목사의 메시지는 내세 지향적이었다. 이것이 일제의 압박으로
찌들고 허탈에 빠진 절망적인 민족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셈이었
다. 즉,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라는 신앙이었다.
그가 부흥회 때마다 외치는 설교의 중요한 제목들은 다음 13가지로 요
약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라, 성신을 받으라, 주일을 거룩되이 지키라, 기도하시오,
십가자의 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되는 증거, 신
자의 즐거움, 연약한 것을 면하고 신령해지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근신하라. 깨달음, 순종하라.
그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주제의 설교를 마태복음 7:13-14을 통
해서 했는데 그 서두에서 "교회 안에는 권리가 없습니다. 세상의 부도 없
습니다. 세상의 영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들어오는 길은 너무
나 좁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담배와 술도 먹을 수 없습니다. 그 길이
좁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넓은 길의 마지막은 좁아지며 그 끝은 사망과
멸망의 길입니다.
c. 김화식 목사 (1894-1950)
김화식 목사는 한국이 낳은 최대의 설교자이다. 흔히들 영국이 낳
은 설교자를 스퍼젼(Spurgeon)이라 하면 김목사는 한국이 낳은 스퍼젼
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김목사는 설교의 메시지나 설교의 기술에
있어서 훌륭한 설교가일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뛰어난 대
표적인 설교가이다. 그의 설교는 영감이 풍성하고 논리가 정연하다.
김화식은 25세의 청년으로 기미독립 운동때 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어 2
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르는 동안 감방 안에서 전도인으로 크게 활약하였
다. 그의 전도를 받아 믿은 이 중에 목사 된 사람이 두 사람, 전도사, 장
로가 된 사람도 무수하다. 김화식 목사는 1927년 목사로 장립한 후 안
주동교회 평북 용천 양시교회를 시무했고, 1931년에 신성학교 교목으로
부임하였다. 재임 5년 동안 그의 업적은 화려했다. 1935년 선천남교회로
부임했다. 1936년부터 1946년 2월 18일 공산당에게 체포될 때까지 평양
창동교회 목사로 시무하며 평양의 종교 지도자로 경건한 설교자로 활동
하였다.
김화식 목사의 설교의 특징과 방법
김린서 목사는 김화식 목사를 가리켜 "설교가 김화식 목사"라고 불
렀다. 주기철 복사의 설교는 '일사각오' 즉, 군사를 지휘하는 전투 사령
관다운 설교라면 김화식 목사는 푸른 초장에 풀 내음새 나고 시냇물 소리
가 들리는 목장에서 양을 치는 목자다운 설교를 하였다. 그의 설교는 반
세기가 지났어도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인에게 깊은 감화를 준다. 그의 설
교가 갖는 특성이 성경적이며, 논리적이며, 조직적이며, 시간적이면서 전
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설교는 동서양의 고사를 종횡 무진 구사
하는가 하면 스피치(Speech)의 탁월한 기술과 학문적 진리가 담겨져 있
다. 그가 이런 훌륭한 설교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을 많
이 읽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매일 잠자는 시
간과 성경 읽는 시간이 제일 많습니다."이렇듯 성경을 많이 읽는 김목사
에게 신령한 능력을 주셔서 항상 생명수가 흐르는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설교는 날카로우면서도 웅장한 설교였다. 김목사님이 강단에 설 때
마다 교인들은 은혜와 위로를 받았다. 그의 설교 방법은 성경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펼쳐 나가는 설교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력을 주었던 한
국교회사의 독특한 존재였다.
특히, 그의 설교 중에 "죽은 것은 아니라 잔다" (마9:24) 란 제목의 서
두에서 웨서스터 예배당에 있는 무덤 앞에는 옛날의 돌비석 한 개가 있
는데 그 비문에 라틴어로 새긴 한 구절이 "가장 비참하다"라고 쓰여있다.
로마에 있는 큰 땅굴은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흉악한 핍박을 피
하던 곳이며 또 시체를 장사하는 곳도 되었다. 한 무덤에는 무덤 돌비가
있고 아름다운 한 구절이 있는데 "가장 즐겁다"라고 하였다.
이 두 라틴어 비문 중에서 어느 것이 신자의 무덤을 적절히 표현할 말입
니까? '가장 즐겁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시작한 서두는 청중
들로 하여금 다음의 그의 설교에 자연스럽게 빨려들게 하고 있다. 그는
설교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설교자였다.
김목사의 설교는 그의 음성을 사용하는데 독특하였다. 그는 언제나 설
교 내용과 예화가 새로웠다. 그의 음성은 처음에는 저음으로 시작하여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이나 차츰 고성으로 올리다가 결론에 이르러서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청중들에게 그 시간의 설
교의 목적과 내용을 가슴에 못을 박듯이 강권하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김화식 목사의 설교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신앙생활 연결지어 주는 삶의
설교이다. 우리는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적어도 양심생활
과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을 하며, 봉사와 사랑과 겸손, 즉 보다 나은 의
의 생활을 나타낼 것이다.
또한 그의 설교에서 1930년대와 40년대 초까지의 사회변화 과정을 직시
2000년 기독교 역사의 흐름을 오늘의 삶의 속에서 연결 지으려고 노력하
였다.즉 우리의 삶은 신앙생활과 동떨어져 살 수 없고, 오늘 삶 가운데
크리스찬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제언하고 있다. 그는 1946년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순교의 제물이 되었지만 그가 외친 설교의 메아리는 한국교회
사 길이 남을 것이다.
d. 주기철 목사 (1897.11.25-1944.4)
사람 앞에서도 완전하기 어렵거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기는 인간으
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속죄하심을 입어 죄를 청산하고
성신의 주시는 힘으로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마음도 경
건하고 입도 경건하고 또한 말도 경건하여야 할 강단에서 공연히 자기를
자랑하며 성도가 모인 좌석에서 불결한 농담을 토하는 것은 불경 천만이
요, 무례 막심한 일이다.
1936년 주기철 목사의 설교 중에서 "이 어른의 설교는 당신의 목숨으로
실증한 말씀이다. 편편 복음의 진리요, 순교외 정신이니 그 고귀함을 읽
어본 뒤에 알리라" "나는 이 책을 한시대 독자의 읽을 꺼리로 내는 것이
아니라 천고의 보배를 만세후에 전하는 문헌으로 제공하는 것이니 독자
도 옷깃을 바로 잡고 정독하시라"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진리를 지키며 강단에서 외치다 옥
고와 순교로써 진리를 보수한 신앙 양심의 설교가이다. 한국 기독교 100
년사가 세계 교회사에 자랑할 만한 기적적인 성장과 부흥이 있었다면 그
이면에는 일제말의 갖은 환란과 핍박의 와중에서도 복음으로 승리한 교
회요, 수 많은 순교자를 탄생케 하였으니 그 중에도 주기철 목사는 대표
적인 순교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1) 주기철 목사는 1919년 김익두 목사가 마산교회에서 부흥회시에 "성
신을 받으라"는 외침에 크게 감동되어 192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 1926년]
19회 졸업생으로 30세의 청년 목사로 부산 초량교회에서 부임했다. 초량
교회 80년사는 주기철 목사 재임 기간인 1926년 -1931년까지 6년을 초량
교회 제1차 부흥기였다고 기록한다. 그는 목회의 첫 설교부터 십계명의
제1계명, 제2계명을 주제로 하나님 주권에 신앙과 사신 우상 숭배의 부
당성을 역설하였다. 그후 1931년 6월 마산 문창교회로 옮겼다.
부임 4년만에 목회 성공자로 알려져 전국 각지에서 부흥 사경회를 인도
하게 되면서 교회 길선주 목사 후임으로 청빙을 받게 되었다. 주기철 목
사는 신사참배 문제에서 한국교회를 지키려면 당시 평양을 지켜야 한다
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하여 동의했다.
(2) 주기철 목사의 설교의 특징
주기철 목사는 위대한 순교자이기 전에 대 설교가이다. 그의 설교는
김린서 목사 (당시 장로)가 강단을 따라 다니면서 그이 설교를 기록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주목사의 목회는 철저한 설교중심이었다. 10중의 7이 설교이고, 2가 심
방이고, 나머지 1이 기타 시무이다. 한주간 5일은 설교 준비를 하고 토
요일은 준비된 설교를 위해 기도하고 주일에는 강단에서 선포하였다. 주
기철 목사의 설교는 누구에게 나 잘못이 있으면 기탄없이 공격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불의라고 생각되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책망하였
다. 한번은 일제 당국에서 예배드리기 전에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기도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을 받은 주목사는 예배 시간전에 이 공문
을 낭독하고 "불의한 자는 누구나 망하게 하고 의로운 자는 흥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이는 그의 신앙 생활이 하나님과 사람 보기에
순결한 도덕성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칼빈주의 설교학자로 알려진 안드레아스 겔하르트 (Anereas Gerhard)가
1553년 펴낸 <성경의 평이한 해석> (De Formandes con Cionibus Sacris)
이란 설교론에서 설교의 준비 단계로서 첫째가 설교자는 무엇보다 신학
적 지식 (성경지식 포함) 이 있어야 하며, 둘째는 설교자에게 순결한 도
덕성이 요구된다고 했다. 제 아무리 신학적 지식이 있어도 하나님과 사
람 앞에 깨끗지 못하면 그는 영혼을 살리는 능력있는 설교자가 되지 못
한다. 셋째는 가르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주목사의 설교는 이러한 공식에 잘 맞는 설교자였다. 하나님과 사람 앞
에 부끄러움 없이 진실하게 믿고 살았기에 그의 설교는 생명력이 있고감
화와 감동을 줄 수가 있었다. 주기철 목사의 선교는 그의 신앙고백이요
그의 생활이요,그의 정신을 그의 피로 인친 것이었다. 김린서 목사는 그
가 편집한 <주기철 목사의 순교사와 설교집> 서론에서 말하기를 " 이 어
른의 설교는 당신의 신앙 고백이요, 당신의 목숨으로 실증한 말씀입니다.
편편 복음의 진리요, 순교의 정신이니 그 고귀함을 읽어 본자는 알리라.
나는 이 책을 한 시대에 독자의 읽을 꺼리로 내는 것이 아니라 천고의보
배를 백세후대에 전하는 문헌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3) 주기철 목사의 설교에 나타난 사상
주목사님은 한권의 책을 쓴 일도 없고 한 편의 논문도 남기지 않았
다. 그러나 그가 피를 토하며 외쳤던 25편의 설교와 그의 생활이 그의신
앙과 사상을 충본히 전해 주고도 남는다. 설교는 그 사람의 신앙이요,사
상이요, 인격과 신학과 삶을 함축시킨 작품이다.
주기철 목사의 설교중에 가장 뚜렷이 나타난 사상은 하나님 중심사상이
다. 1936년 9월 1일 주목사는 평양신학교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대 행한
유명한 설교가 "일사각오"였다.당시 신사참배의 소용돌이에 그 몸을 주
의 제단에 바칠 것을 피력하였다. " 이 사람이 다른 것으로는 우리 한국
교회에 바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데 앞장 서겠
습니다."
그는 설교에서 예수를 따라서의 일사각오, 남을 위하여 일사각오, 부활
활의 진리를 위하여 일사각오, 이 세가지 말하였다. 예수를 버리고 사느
냐? 예수를 따라서 죽느냐? 예수를 버리고 사는 것은 정말 죽는 것이요,
예수를 따라 죽는 것은 정말로 사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
의 신학'은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는 제1계명을 지키기 위
하여서입니다. 즉 '신 존엄 사상'을 의미한다. 1973년 6월 20일 평양 산
정현 교회에서 창세기 17장을 읽고 "하나님 앞에 완전하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1)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므로 완전하라.
2)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므로 완전하라.
3) 하나님 앞에서 태연하므로 완전하라.
칼빈에게 있어서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때문이었던 것처럼 주
기철 목사의 설교에서도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의 맥을 찾을 수가 있다.
주목사는 신사참배 항거로 세 차례의 옥고를 치르고 일시 석방되었을때,
산정현교회의 강단에서 "5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는데,
이것이 그의 최후 고별 설교가 되었다. 마태복음 5:18,로마서 8:18,31-
39을 읽고 설교하였다.
1)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
2) 장기간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3) 노모와 처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4)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5)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재차 검속은 1940년이었다. 여전히 신사참배에 항쟁하는 주목사에게 처
음에는 설교를 그만두라고 했다. "하나님께 받은 설교권을 누구도 그만
두게 할 수 없다. 설교는 내가 힐이요 체포는 당신들이 할 일이다."

e. 손양원 목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 받은 이몸이니 주 위해 살다가 주 위해
죽는다면 이 이상 더 성공이 있겠는가?" 이는 1950년 손양원 목사의 설
교 중에서 하신 말씀이다. 사랑의 사도 산돌 손양원 목사는 한국이 낳은
위대한 목회자요, 설교자요, 순교자이다. 원자탄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면 "사랑의 원자탄"은 우리 한국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기독교 근세사에
나타난 순교사에 있어서 손목사의 순교 사실은 주님 십자가의 속죄의 사
랑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이는 우리 백의민족의 축복이요, 영광이요,
자랑인 것이다.
1948년 10월 21일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동인 군과 동신 군이 순교의
제목이 되었다. 1950년 9월 28일 손목사는, 1,100여명의 나환자 성도들
의 영혼을 사수하다가 두 아들의 뒤를 이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이처
럼 3부자의 순교야말로 한국교회사의 굵은 획을 남겨 놓았다. 그러나그
보다도 설교자로서의 손양원 목사의 평은 아직도 많지가 않다. 다음의
글에서 사랑의 사도요, 순교자였던 손양원 목사의 설교를 찾아 보자.그
의 설교는 말로만의 설교가 아니고 몸으로의 설교이며 그의 삶과 죽음
을 통해서의 설교였던 것이다.
(1) 손양원 목사의 설교문제
손양원 목사는 왜 일본치하에서 6년의 옥고를 치렀는가? 단순히 신사참
배를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설교문제
때문이다. 그는 한 시대의 양심으로 일본의 패망을 내다보고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를 소유자이다.
손양원 목사는 1941년(소화 16년) 7월 19일 여수 경찰서에 수감되었다.
그 사유는 다음과 같다. 손양원 목사의 사상은 철저히 칼빈주의적 신학과
신앙의 소유자이다.
첫째, 소화 14년 11월 중순 애양원 교회당에서 나환자인 김경호 장로
(62)외 710명에게 행한 설교 제1호 " 현하 교회가 요구하는 교역자"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현재 조선교회는 비상 시대요, 수난 시대이다. 현재 각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각지에는 한재, 수해,질병환자가 증가하고기
독교도들에게는 신사참배가 강요되고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바 이것이 바
로 말세 현상이요, 우리 기독교도들이 대망하고 있던 우리를 괴롭히고있
는바 이것이 바로 말세 현상이요,우리 기독교도들이 대망하고 있던 그리
스도의 재림이 목첩간에 임박한 것이다. 이 때에 그리스도가 지상 재림
하시어 현재와 같은 악마적인 불신자의 세력에 지배되는 각국 통치 제도
를 멸망시키고 그리스도를 수반하는 신천 신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
게 되는 고로 현대 국가의 국체를 멸망시킬 때가 오나니 우리들은 하나
님의 예지 예정설인 성경대로 실행애햐 한다는 등의 선동을 하고
두번째는 소화 15년 4월 중순 어느 일요일 애양원 교회당에서 설교시"주
의 재림과 우리의 고대"라는 제목하에서 세상은 벌써 종말기로서 그리스
도의 재림은 임박하였다. 악마적인 현재 제목하에서 세상은 벌써 종말기
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임박하였다. 악마적인 현재 각구의 통치제도를 멸
망시킬 시대가 왔다. 그리스가 우선 공중 재림하시면 7년간 지상에는 불
신자간에 있을 아마겟돈 전쟁이 각국에 발생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자
측이 승리하게 되고 그리스도는 지상에 재림하시어 불신자들 전부를 옥중
에 구금한다. 따라서 만왕의 왕이 되시어 세계를 통치하시는 심판장의 왕
권을 가지고 오시게 된다.
그의 설교는 고난 받는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제시하고 있
다. 그는 왕권을 가지고 현재의 부조리와 문제를 해결하실 그리스도인 것
이다. 결국 손양원 목사의 설교는 신사 불참배를 강조했고 이것은 반일 사
상으로 이어졌다. 그의 메시지는 개인구원 뿐아니라 민족구원이 항상 전
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설교는 민족의 정황(Context) 이 문제되었고
그것은 바로 삶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환난과 어려움을
딛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키고 우
상에게 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1계명을 바로 지켜
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2) 손양원 목사의 설교에 타나나 메시지
안용준 목사는 그가 편집한 <산돌 손양원 목사의 설교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교는 말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말과 생활이 모두가 설교가
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는 기도로 호흡 삼고 성경으로 양식 삼고 복음 전
도로 생활을 삼되 목회 중에는 나환자의 부모처자로, 옥중 생활에는 주와
동행한 자로 원수에게는 사랑의 사도로 양떼를 지키기 위해 순교의 제물이
되기까지 한 산돌(생석) 손양원 목사님의 설교를 그래서 내놓는 것이다"
라고 했다.
첫째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Sola Gratia)의 사상이다. 이는 사도 바울
의 사상일 뿐아니라, 신.구약 66권의 내용이다. 종교 개혁자들의 사상이
Sola Gratia 에 근거하는 것이다. 손양원목사의 시편 100:1-5에 대한 "나
의 감사"란 설교에서 우선 네가지 감사의 조건을 들었다. 첫째,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감사(유일신관), 둘째, 이러한 여호와가 나의 아버
지가 되어진 것이 감사(베푸신 은혜), 셋째, 여호와께서 나의 왕이 되어
주신 감사 (통치자), 넷째, 여호와가 나의 목자되어 주심에 대한 감사(은
혜의 공급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으니 만큼 모든 것이 감사할 뿐
이라고 하였다. 그의 다른 설교문 중에서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도 많으
나 오직 내게는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감사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오니 다만 감사할 것 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중심사상의 설교이다. 손목사의 설교는 주기철 목사의 설
교와 다를 바 없다. 박원섭 목사는 이것을 "대한 최애주의 사상"이라고 했
으나 결국 하나님 중심의 설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셋째로 민족구원의 설교이다. 손양원 목사의 관심은 항상 교회와 하나님
의 나라 건설 못지 않게 민족적 구원을 발을 구르며 외쳤다. 그것은 단순
한 애국사상이나 애국운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졌다. 이는 사
도 바울의 염원과도 동일한 사상이었다. (로마서 9:1-3 참고)
손양원 목사의 설교관은 그의 삶과 죽음과 그의 메시지가 꼭 같았다. 한
시대의 교회의 성패는 강단에서 누가 무엇을 증거했는가에 달려있다.
교회가 교회다움에는 건물이나 숫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옳게 증
거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손목사는 그의 설교 "성전을 더럽히지 말라"(마
23:27-24:2) 는 설교에서 자신의 설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즉, 오늘의 예
배당이 옛날의 성전과 같다면 오늘의 강단은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와 같
다. 따라서 지성소가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면 강단도 예배당에
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단에서 전해지는 말씀은 성경 말씀만이 그대로 전해
져야 한다.
"나의 설교란 강도학 원리처럼 성경 말씀에만 터를 닦은 성경 66권의 본
문이요, 제목이요, 대지도 소지도 이를 기초로 한다. 성경에서 성경으로
전부를 삼고 성경에서 성경을 풀고 싶다. 성경에 묻고 성경에 대답하고 싶
다. 서론도 내용도 결론도 성경이 되고자 한다. 즉, 성경으로 시작하여 성
경으로 마치고 싶다. 그래서 십자가의 대도와 기독교의 교회를 분명히 전
하고 싶다." 손양원목사는 설교를 말로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생활로 보
여주는 설교를 했다. 그러기에 두 아들의 순교에 이어서 순교했을 뿐만 아
니라 원수를 데려다 죽은 아들 대신 믿음의 아들로 삼는다는 것은 순교 이
상의 금세기의 성자인 것이다.
4. 광복이후 교회의 설교 (1946-1960년까지)
(1) 해방 후 설교의 방법과 특성
36년간의 일제의 탄압 기간은 강단의 무력화와 변질을 가져오게 하였다. 강단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이며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일찍이 포사이드(P.T.Forsyth)는 말하기를 "설교로서 기독교는 일어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설교는 복음의 선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a. 강단의 혼돈과 설교의 이해가 희박하였다.
당시 서울 신학교장인 이명직 목사는 설교관을 피력하기를 " 설교는
정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요, 과학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요, 역사를 강
연하는 것도 아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해설하여 교훈을 베
푸는 것이요, 겉 사람인 육체의 귀에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인 영
혼에 향하여 말하는 것이다. 즉,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식유무, 권세유무를 가리지 않고 일반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설교자의 자신이 혼돈과 문란에서 질서를 바로 잡고 바른 설교를 못하는 시기였다.
b. 해방과 자유에의 설교였다.
1945년 해방을 맞는 교회는 자연히 강단에서 해방과 자유를 외치게
되었다. 설교는 모든 삶의 새로운 출발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바 이를 해
방과 자유에 맞추기도 하였다.
c. 회개에 대한 설교였다.
해방과 동시에 교회의 재건이 과제였다. 그런데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옥고를 치룬 성도와 성직자는 (70명중 50명은 순교 당하고 20
명이 출옥됨) 해방과 함께 출옥하여 한국교회의 재건을 결의하고 회개를
촉구하였다.
d. 부흥을 외치는 설교였다.
해방과 자유의 물결 속에 국가와 교회는 무질서와 혼돈의 악순환만이
계속되었다. 이때에 성결교회의 지도자인 김응조 목사는 한국교회의 살
길은 부흥하는데 있다고 보고 사도행전 2:43-47에서 "조선교회는 부흥을
원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도전했다. 그는 네 가지 부흥을 호소하였다. 즉
기도의 부흥, 성서의 부흥, 구령의 부흥, 사랑의 부흥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부흥의 호소는 사실상 해방후 6.25사변을 전후한 부흥 운동의 대
표자 격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2) 영향력을 끼친 설교가
a. 이성봉 목사 (1900-1968)
이성봉 목사는 김익두 목사의 대를 이은 한국의 무디요, 대부흥사였
다. 이성봉 목사는 김익두 목사를 매우 존경하며 그에게서 깊은 영향을
입었는데 마침내 장차 김익두 목사와 같은 위대한 부흥사가 되겠다고 결
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김익두 목사의 자라던 환경이나 회개의 과
정이 흡사한 데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성봉은 19세의 결혼했
으나 가정적인 안정도 없었고 성격도 포악해서 술과 노름에 빠져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다리에 골막염으로 6개월간 입원하였으나 다리를
절단하여야 한다는 진단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절망적 환경에 있을 때
에 그의 어머니의 권유로 예수를 믿고 영접하게 되었고 기도를 받았다.
그대에 김익두 목사를 통해서 철저히 회개하고 그의 생활은 완전히 변하
여 새 사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때 이렇게 서원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
님 나의 다리만 고쳐 주시면 한 평생 이 다리를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데 드리겠습니다. "그때 기도 응답으로 다리가 점점 회복되어 절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목사는 1925년 동양 선교회 성서학원을 졸업하고 수원에 첫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주님의 권능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이 놓임 받는 등 기사와 이적이 많이 일어났다.
각 처에서 회개운동과 우상을 불사르고 주초와 도박 등 부정한 관습들을
끊고 열매 맺는 일이 일어났다. 1931년 목포성결교회에 부임한 후 기도
단을 조직하여 유달산에서 기도운동을 일으켜 6년만에 크게 교회를 부흥
시켰다. 1937년 신의주 동부교회의 목회 기간은 그의 목회 생활 중에서
가장 크게 부흥시켜 교인이 1,000명이 넘었고, 220평의 큰 교회당을 짓
게 되었다. 그가 본격적인 부흥사로 대집회를 갖기는 평양 경창문 밖 천
막 집회에 수천 명이 참석하여 뜨거운 성령의 불세례를 체험한 기록이 남
아 있다.
(1) 이성봉목사의 설교 방법과 메시지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주역은 길선주 목사(초기)와 김익두 목사 (권
능의 종)와 그리고 이성봉 목사로 이어져 간다. 그가 30여년 간 외친 설
교들은 장.감.성 할 것 없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의 설교는
단순하면서도 그 시대마다 적절한 진리를 제공했다. 그의 특징적인 메
시지는 죤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을 낮에나 저녁에나 감명깊게
전했다. 이미 소개한바 있는 스퍼젼 목사가 영국에서 한 세기에 유명한
설교자가 된 것도 그는 살아 생전에 <천로역정>을 100번 이상 읽었다고
하며 죤 번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이성봉 목사가 죤 번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새벽기도회는 회개운동을 일으키며 요나서 강해도 그의 특징적인
회개의 메시지이다. 그는 부흥사로써 타고난 굴직한 성대와 인생 허사가
를 비롯해 그가 작사 작곡한 부흥 성가는 청중들의 심령을 울릴 수가 있
었다. 이성봉 목사의 설교는 성결 교회의 4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
을 그대로 받고 의지하고 체험적으로 전하였다.
그는 성결의 복음이란 설교에서 "성결은 성결교의 전매 특허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며 누구나 이 복음을 그대로 받아 체득해야 한다" 첫째, 성
결은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5
)이 하나님의 말씀은 결정적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 살고 안 들으면 죽
는다. 이 말씀은 시금석이다. 이 성결의 복음으로 심판하신다. 둘째, 성
결은 하나님의 뜻이다. 항상 거룩하며 음란을 버리는 것이 아버지의 뜻
이다. 셋째, 성결은 천국인의 자격이다. 넷째, 성결은 그리스도 신부의
단장이다. 다섯째, 성결의 사람은 하나님이 귀히 쓰는 뜻이 된다.
무디 선생은 소학교도 못다니고 구두 직공 노릇하던 분이다. 그러나 성
령 받아 성결할 때 얼마나 귀하게 쓰였던가.
한국교회 한 시대에 강단을 주름잡았던 이성봉 목사의 설교는 단순하
하면서도 명쾌하여 고난 받고 상처받은 가슴에 파고들어 위로의 메시지
가 되었다. 과연 그를 한국의 무디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가 가는 곳
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 많은 성도들의 뜨거운 성
령의 체험과 위로가 되었다. 그가 친히 작사 작곡하여 매 집회 때마다 메
시지에 맞게 부른 부흥성가는 전국 방방곡곡마다. 널리 퍼져 성도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30여년 간 설교자와 부흥사로 깨끗한 생활을 마쳤다. 그는 청렴한
생활을 하였다. 두 벌 옷과 신발을 가지지 않았다. 설교는 그의 인격과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이성봉 목사의 설교는 주를 사랑하는 뜨거운 정
열과 믿음의 정조와 성결의 생활로 잘 조화를 이루었다. 아직까지도 이
성봉 목사의 가신 뒤를 이어받을 부흥사가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지
아쉽기만 하다.
b. 한상동 목사
한상동 목사는 순교적 진리 파수를 몸으로 설교한 목회자이다. 그는 한평생 고난과 인내로써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선포한 능력의 설교자이다.
"신사참배 반대 운동은 우리 주님께서 하신 것이지 결단코 나 한상동이 잘나서 한 것이 아닙니다. 옥중 5년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셨기에 그냥 견디어 온 것입니다." 이렇게 늘 겸손하게 말하던 한목사는 언제나 한국교회의 앞날을 예견했고, 앞날의 환난이 지난날 보다 더 심할 것이니 기도한 회개와 사랑의 무장이 시급하다고 외쳤다.
그는 항상 교회와 양떼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와 산 순교자"로 불려지기도 했다.
한상동 목사의 한국교회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홀로 울면서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 싸우면서 토해낸 그의 설교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한상동 목사의 설교 방법과 특징
한목사님의 초량교회에 첫 부임 설교를 하게 되어 그는 철야 기도
를 했다. 그는 그 첫 설교를 순전히 성경연구와 자신의 체험으로 설교
원고를 작성했다. 과연 그 첫 설교에서 은혜가 쏟아졌다.
그후 1937년 마산 문창교회에 주기철 목사의 후임으로 부임했다. 그때
에 신사참배 문제가 나왔다. 그 자리에서 한목사는 말하기를 " 우리는
예수를 믿지 일본 신사 가미다나를 믿지 않습니다" 라고 명백히 일축했다. 결국 신사참배 문제로 교회를 사임하고 부산에 와서 전국적인 신사 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인재 목사(조사)와 함께 경남 지방을 순회하며 설교를 통해 4가지 실행 조목을 제시했다.
첫째, 신사참배하는 교회 출석 금지
둘째, 신사참배하는 목사에게 성례 불수
셋째, 신사참배한 교회에 연보 거부 (개인 신앙 운동에 할 것 )
넷째, 신앙 동지끼지 따로 모여 예배 볼 것 등
"한 목사님의 설교는 쉽게 알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꾸며대는 일이 없
었습니다. 그이의 설교는 곧 생활이었고, 공사간의 생활이 설교의 연장
이었습니다. "라고 김경태 장로가 증언했다. 또한 한상동 목사의 설교
는 깊은 기도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그의 생
활 전부는 기도롤 일관되고 있었다. 그의 설교의 감화력은 기도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바운드 박사는 말하기를 "진실된 설교를 하는 사람은 참으
로 기도하는 사람이요, 또한 기도는 설교자의 무기입니다. 가장 완전한
능력이 기도안에 있고 이 기도만이 온 세상 사람에게 생명과 능력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되고 생명있는 설교는 밀실에서 나옵니다. 기도
는 사람을 만들고 기도는 참된 설교자를 만들고 기도는 귀한 목사를 만
드는 것입니다."
(2) 한상동 목사의 메시지
첫째,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다. 그의 설교에는 하나님의 사상이
충일해 있다. 그는 어떤 설교에서든지 뚜렷한 신전의식을 갖고 설교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의 설교에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이 강조되고 있다.
둘째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과 고독에 설교가 많다. 그는 설교 중에
서 "신앙 운동에는 고독을 각오하라"고 외쳤다.
셋째는 한상동 목사에 나타난 신앙론이다. 그의 첫 설교집 "신앙 세계
와 천국"에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불타는 삶이 설교를 통해서 무수히 나
타나고 있다. 결국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신학교를 세웠다. 그래서
이른바 신앙 운동 또는 진리 운동이라고도 한다.
한상동 목사의 설교는 앞에서 말한 대로 해석학적 또는 논리적인 설교
는 아니다. 설교학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느 부류에 속한다고 말하기가 곤
란하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성경이 그의 가슴에 부딪혀서 자신
의 언어로 확신을 가지고 증거한 것이다. 설교는 항상 설교자의 삶이 뒷
받침될 때 빛을 발하게 되고 살아 움직이게 되듯 한상동 목사는 한 목회
자로서, 설교자로서, 영계의 지도자로서 이 나라와 교계에 가장 어두운
시대에 힘있게 말씀을 증거했던 설교자였다.

C. 한경직 목사 (1901년 2월 -)
그는 일찍이 평북 오산학교와 평양 숭실전문을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와 엠포니와 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1942년까지 신의주 제2교회를 시무 한 것을 비롯해서 1945년 해방후 서울 영락교회를 개척하여 25년 후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장로교단의 굴지의 교회로 부흥 발전시킨 것은 그의 인격과 신앙과 목회적 자질을 넉넉히 알고도 남는다. 외국인들은 한경직 목사를 한국의 빌리그래함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한목사를 한국의 스펄젼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설교가 영국의 스펄젼을 능가한다는 뜻에서일 것이다 (스펄젼은 일만 오천명의 교인을 놓고 목회하였다.)
한경직 목사는 신학자이며 교육가이다. 그가 영락교회를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품과 신앙 인격, 학덕을 겸비한 진실된 목회자이며 설교가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한목사를 가까이 잘 아는 어느 분의 증언으로는 그가 아직까지 단 한번도 화를 내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교직자와 강단에 대해서 교직자는 강단이 그의 생명과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그는 강단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단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곳이요, 양을 먹이는 곳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설교자의 기억할 일에 대해서 "설교는 언제나 성서적이어야 하며 설교는 목회를 위한 설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한경직 목사의 설교 특징
설교는 그의 삶과 인격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표현
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목사의 설교는 언제나 그의 신앙 인격과 그의
신앙 인격과 그의 생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설교 내
용이다. 또한 그가 신앙 생활에 결코 실행 가능성이 없는 것은 설교에
서 말하지 않는다. 그의 설교는 너무나 소박하며 누구나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 그의 설교의 특징을 보면
첫째는 하나님으로 설교하게 하는 축복이다. 한목사의 설교에서 특수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예로, "오늘 이 설교 중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 말씀 중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이 우리 심령 속에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 물으심에 하나님께서 분명한 해답을 우리에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즉, 하나님으로 설교하시도록 하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시종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하나님이 내게 말씀해 주시는 설교"라고
했다.
둘째는 불미스러운 언사를 기피했다는 점이다.. 한목사는 설교 중에 불미스러운 사건이나 언사는 물론 부덕한 사람의 이름까지 기피하고 있다.
실례로 "제가 신의주에서 목회할 때 무슨 일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만
한번은 크게 마음이 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 낙심이 되어서 일할 마
음도 없어지고 용기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한목사는 목회 중 크게 상심
된 일이긴 하지만 그 사건 내용이나 무엇을 밝히지 않았다. 그 내용이
밝혀짐으로 부덕스러운 일이 있을까 염려해서였다. 또한 "... 누구라 말
하기는 어렵지만 이북에 어떤 목사 한사람..." 여기서 그 이름을 숨기는 한목사는 구원받은 나사로는 이름을 부르고 멸망 받은 부자 (누구)의 이름은 숨긴 예수의 심정을 물려받은 인격이 승화된 차원의 인물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셋째는 쉬운 어휘와 간결한 예화를 사용하였다. 예수의 설교는 쉬웠고
예화는 간결하였다. 진리의 말씀을 가장 바르게 전하고 잘 이해할 수 있
도록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휘를 풍부하게 가지는 것이다. 언제나
청중에게 쉽게 이해시키고 납득이 가도록 알기 쉽게 자연스러운 말로 적
당한 순서와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주는 설교를 하였다.
넷째로 삶의 의미를 주는 설교를 하였다. 설교가 설교다워 지려면 설
교자의 삶을 배제시킬 수는 없다. 똑같은 내용의 설교를 보다 훌륭한
표현기법에 따라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외친다 해도 설교자가 누구냐에
따라 설교를 통한 깨달음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한목사의 설교
는 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살아있으며 삶의 의미를 주는 설교였다.

부록 : 설교 반성 질문서
一. 설교 내용
1. 제목 :
1) 본문과 적당한 것인가?
2) 내용과 적당한 것인가?
3) 제목으로 적당한 것인가?
4) 매력이 있는 재목인가?
2. 조직 :
1) 서론 본론 결론이 조화를 이루는가?
2) 전체의 시간이 알맞은가?
3) 내용이 구별과 통일이 잘 됐는가?

3. 재료 :
1) 재료가 적당한가?
2) 불필요한 것이 있지 않는가?
3) 예화는 적당한가?
二 설교의 형식
1. 문장 :
1) 문법적으로 바른가?
2) 표현이 잘 되었는가?
3) 문장의 단락들이 걸지 않는가?
2. 용어 :
1) 용어가 바른가?
2) 저질 및 너무 통속적인 용어는 없는가?
3) 용어가 알기 쉬운 것인가?
4) 용어가 구체적인가?
3. 서론 :
1) 문제와 주제가 잘 제기됐는가?
2) 흥미를 끄는가?
3) 너무 길지 않은가?
4) 본문과 잘 연관시켰는가?

4. 본론 :
1) 어떤 형식으로(주해, 주제)됐는가?
2) 전개된 논리는 정당한가?
3) 상호 연관 관계는 잘 이뤄졌는가?
5 결론 :
1) 경이적이고 충동적이고 공감할 수 있게 됐는가?
2) 어떤 형식으로 됐는가? (반복형, 격려형, 교훈형, 설득형, 적응형,)
三. 설교의 대도
1. 복장 :
1) 단정한가?
2) 조화로운가?
3) 고상한가?
2. 자세 :
1) 침착했는가?
2) 굳지 않았는가?
3) 적극적였는가?
4) 시선은 잘 맞추었는가?
3. 제스츄어 :
1) 알맞게 구사했는가?
2) 효과적이었는가?
四. 설교의 음성
1. 발성 :
1) 소리의 질은 좋았는가?
2) 잘 들리도록 냈는가?
2. 발음 :
1) 분명했는가?
2) 장단은 찰 됐는가?
3. 어조 :
1) 억양, 고저, 강약, 장단은 잘 됐는가?
2) 명쾌했는가?
3) 크라이막스는 잘 이뤼졌는가?

4. 속도 :
1)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았는가?
2) 쉼과 끊기가 잘 됐나?
五. 설교의 효과
1. 전체적으로 호감과 감동이 있었는가?
2. 본문이 잘 전달되었는가?
3. 교리적으로 정당했는가?
4. 바른 해석과 깊은 탐구가 있었는가?
5. 복음적인 은혜를 받았는가?



원본: 설교학
출처 : † 세계제일교회 †
글쓴이 : 띠띠빵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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