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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인과 직장

힐링&바이블센터 2006. 8. 1. 15:07
그리스도인과 직장

방선기 목사



일하시는 분 손들어 보라니깐 손들기를 꺼려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와 무관한 것입니다. 공부가 일입니다. 병원에 누워있어도 여전히 일할수 있습니다. 일의 종류는 여러 가지 입니다. 경제적 수입을 얻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일을 해서 경제적 수입이 있는 경우입니다.



월요일 아침에 직장에 나오려할 때 신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여러 반응이 나옵니다만 신이 나서 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분은 육체노동을 하는데 한분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너무 너무 신나는 삶이라고 하는 사람도 몇이 예외로 있습니다. 일을 질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일에 묵여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중독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대 사람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직업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직장이 전부인 사람은 은퇴하면 어쩔줄 몰라합니다. 그런의미에서 직업관을 바로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요즘은 여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물론 가정에 대한 문제를 새로 정의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이발을 하였는데 굉장히 기분 나쁜톤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머리 어디서 이발했습니까? 하고 물으면서 자기는 어느 사부에게 배웠는데 이발이라는 것은 .....라고 하면서 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위로 머리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분은 이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정치 이야기로 들어갔는데 아주 멋진 말을 했습니다. 요즘 정치하는 자들이 내가 이발하는 만큼 만 해도 달라질것이라고 했다. 정치하는 자들이 내가 공부하는 것 만큼만 하면 이나라 변한다고 생각할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저는 그 예기를 듣고서 뜩금했습니다. 저는 목사이지만 그런 소리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이발사는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분명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엇다. 그리고 자기가 한 이야기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발사는 일 더한다고 돈 더 줍니까 그냥 시간 때우는 거죠뭐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두사람은 직업관의 차이이지만 결국은 인생관의 차이이다. 여러분들이 공부를 어떤 자세로 하느냐, 직장생활을 어떤 자세로 하느냐는 중요한 차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발사는 크리스챤은 아니지만 성경이 말하는 직업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성경적 직업관은 어떤 것인가?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모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맡기실 일이 있었기 떄문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까지는 동물과 같다. 그러나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창조하는 것은 직접하셨으나 다스리는 것은 대리인을 세우기를 원하셨다. 그것이 택함받은 사람이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게 창조하였다. 사람의 직업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하청준 것이 바로 직업이다. 하나님이 직접세상을 통치할수 있으나 정치인을 세우고, 직접 먹을 것을 주실수 있지만 농부를 통해서 유통업자를 통해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하청업채게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하는 일들을 대리하는 것이다. 원래 에덴동산에서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을 때 하나님 주신 특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월요일날 일할 때 지겹지 않았다. 에덴동산에는 TV가 필요치 않았다. 일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축복이 저주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죄안지었으면 일안하고 살았을탠데 하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일은 원래 사람에게 특권으로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 축복이 고통으로 변한 것이다. 만약 죄짓기 전에 공부하였다면 너무 즐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싫게 여겨지는 것은 죄 때문이다.



죄문제를 누가 해결하였는가? 그리스도가 해결하였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을 얻었고, 천국에 들어간다. 그 구속은 현재성도 있다. 이세상을 사는 동안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다른 사람이 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달라진 것중의 하나가 일에 대한 자세이다. 일이 원래 특권이요 축복이었는데 일이 고통스러워졌다. 이제는 원래의 목적대로 회복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골3:24)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그 당시 육체 노동을 하는 자들에게 한 말이다. 무슨일을 하든지 주께하듯하라고 하였다. 그 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지금너희들이 하는 일은 주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내게맞겨진 일을 주께하듯하는 것이다. 주를 섬기는 자세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안그런 것 같다. 주의일을 하는 사람은 목사님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만약 강의하면서 돈을 받으려 왔다면 그것은 죄된 일이다. 돈을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 주의일인가? 그러나 청소를 하면서도 주님께서 내개 시키신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주의일이다. 장로님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엿세동안 썩어질 육신을 위해서 일하다가 주의 전에 나와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엿세동안의 일을 죄송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비성경적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하듯하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때때로 주일학교에 교사들이 있는데 성가대이든지 누구든지 주의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다 못해 여전도회에서 강의하다가 교회에서 설거지하는 것은 주의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집에서 할 때는 내팔자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무슨 일을 하든지 라고 하여조건없는 일을 이야기힌다. 내게 맡겨진 일은 주께하듯 하여야하는 것이다. 성적을 받을때도 주님께서 내게 매겨주시는 성적이라고 생각해야한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실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그 자세를 반드시 가져야합니다. 하는일을 주님께 하듯이 하여야하고 보시기에 좋아야합니다.



미국에서 일할 때 한시간에 5불을 받는데 처음에는 기뻤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짜증이 났습니다. 한시간에 5불, 하루에 20불이 없어서 이렇게 고생해야합니까?하였는데 그때 골로세서의 말씀을 주셨다. 생각이 바뀌고 나니깐 청소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보람을 느낄까? 이웃에게 유익을 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하듯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업을 선택할 때 주께하듯 할수 있는 일만 선택해야한다는 것이다.



1. 직업의 소명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로 생각하려면 선택을 잘해야한다. 오늘 우리나라에 직업중에 주께하듯할수 없는 직업이 있다. 그러므로 주꼐하듯 하려하면 선택해야한다. 목사, 변호사, 이랜드등은 가능하다. 도둑질은 그렇게 할수 없다. 물론 직업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직업의 귀천은 없다. 그러나 직업에 선악은 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일을 하지 말아야하는 일이 있다. 마약공급이라든지 이런것들은 안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대체적으로 취할수 있는 직업은 주꼐하듯할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핵무가 만드는 공장에서는 일해서는 안된다는 논쟁이 일어나기도한다. 크리스챤으로서 주꼐하듯하는 것은 모든 것은 아니다. 선악은 분별해야한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목사일도 세속적으로 할수있고, 청소도 거룩하게 할 수 있다. 직업에 성속은 없다. 그러나 직업에 맞고 안맞고는 있다.



저는 공대를 나왔습니다. 어쨋든 연구소에 들어가 6년을 일했다. 그리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때 신학교에 들어가려고 할 때 주님일 하려고 세속직업을 버리고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거룩한 일을 하려고 들어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엔지니어로 얼마든지 주꼐하듯 할수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둔 것은 엔지니어로서 재능이 없다는 것을 6년동안 일하면서 발견하였다. 연구소 있으면서 상도 많이받았다. 주께하듯 하였다. 그러나 6년동안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엔지니어들은 고장을 고치면 뿌듯해진다. 그런데 저는 고장났다는 말을 들으면 왜 또 고장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하나님 또 고쳐주세요.라고 하면서 신앙은 좋았지만 적성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신학공부늘 하면서는 그것이 너무 쉬었다. 영어로 공부하는데도 말이다. 형광등 쓰는 가는 것 하고, 원고지 5장을 쓰는 일을 하겠느냐고하면 글쓰고 만다. 너무 좋은 일이다. 나에게 맞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신학교 간 것이 거룩해서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창조할 때 엔지니어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목사로 창조한 것이다. 지금도 수도파이프가 고장나면 아들을 시킨다. 모두가 하나님이 형상대로 창조하였지만 다르게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각자의 특성 재능이 다르다는 것이다. 주께하듯하려면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직업을 선택해야한다. 과거에 먹고살기가 힘들때는 이런 문제가 중요치않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내게 무슨 능력을 주셨는지를 살펴보고 그 달란트대로 발휘할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직업의 성속은 없어도 적성에 맞는 것은 있다.



전공도 여러분에게 맞는 것이 있고 맞지 않는 것이 있기도 하다.



자기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아들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딸은 확실한 은사가 있다. 말하는 은사입니다. 그냥 말하는 것은 쉬지 않고 말한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한없이 떠드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 번은 우리 딸에게 물으니깐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아무말로 하지 않고 별을 본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수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자기도 웃었습니다. 말하는 것은 학교선생, 앵커우먼, 변호사등이다. 그러니깐 학교선생되겠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며칠후에 연극하면 어떨까 하는 말을 하자 무언극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은사는 나를 창조할 때 주신 재능이 있다. 중학교부터 뭐든지 글을 썻다. 대학에가서도 연애편지를 썼다. 전화보다도. 그런데 내가 왜 화공과들어갔느냐! 그냥 줄 잘못선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라도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에 대해서 기뻐한다. 제 직업은 돈은 아닙니다. 제친구들이 훨씬 더 많이 법니다. 그러나 그 일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직업에 성속은 없어도 맞는 직업은 있습니다. 물론 맞는 직업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적성에 맞는 일은 없다. 일에 적성을 맞추는 것이라고 이명박 의원은 한다. 회사에 들어갈 때 그 일에맞추어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본적으로 내게 맞지 않는 일을 맞기시겠는가 하는 것이다.



2. 성공관(출세, 승진, 재물....)

그리스도인이 세상 직업에서 성공할수 있느냐? 성공할 필요가 있느냐?

꼭 그래야만 한다.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비실비실하였다면 초라했을 것이다. 요셉도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세상 직업에서 출새하였으면 한다. 기도해야한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 주님일을 충성하기 위해서 세상 공부가 무슨 중요한가?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공부안되니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학점 엉망인 사람이 꼭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사업을 성공하려면 땀을 흘려야합니다. 이랜드의 사장도 아주 부지런합니다 직원들도 아주 부지런합니다. 물론 시대를 잘만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아르바이트 할 때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 나쁜 것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야한다. 그러나 하나 기억할 것은 성공을 목표로 핤수는 있으나 궁극적 목표가 될떄 그것은 순간적으로 우상이 될 수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부딧칠 때 그것을 포기할수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우상이다. 하나님과 세상의 성공을 동시에 섬길수 없다. 그 성공이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될떄는 다르다.





3. 문화관

직장의 문화와 신앙의 문화와 구별되기 떄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일은 괸찬다고 한다. 그러나 갈등이 많다고 한다. 그 갈등중에 주로 이야기하는 것이 술문제, 주일 성수의 문제들이다.

여러분 가운데 술을 즐기는 분도 있고, 몰래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직장과 술을 우리나라에서 땔수 없다. 사실이다.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사업의 모든 일도 술좌석에서 이루어진다. 분명한 원칙은



(요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이것이 기본 원칙이다. 세상에 살동안에 잘 적응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동화되면 안된다. 그렇다고 격리되면 안된다. 구별되어야하지만 격리되면 안된다. 적응은 해야지만 동화되면 안된다. 적응과 구별되어야한다. 그러나 동화와 격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 어렵다. 크리스챤 들 가운데는 이 두부류가 많다. 경건하기는 하지만 격리되거나 유능하기는 하지만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별되지만 적응하는 일이 필요하다. 어렵다. 잘 한 사람이 다니엘이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때 바벨론이 요구한 것은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배우게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나라의 학문과 말을 배울것인가 고민하였다. 바벨론에서 성공하기 위해 받아들인다. 적응한 것이다. 바벨론식으로 이름으로 바꾸었다.벨드사살이다.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받아들였다. 적응이다. 아마 바벨론식으로 옷도 바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다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정체성이 사라지겠다고 정체성의 위기가 왔다. 그러다가 바벨론 청년들과 비슷하지만 나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고 정해놓았는데 그것이 1:8이다.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왜 거절했는가? 우상에게 바쳐졌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간절히 감사기도하고나서 먹으면 괜찮다. 더 중요한 것은 구별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술문제에도 적용된다. 성경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있습니다. 시편에 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주셨다고 말한다. 또 예수님에 가나혼인잔치에서도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음식이 포도주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술로시작해 술로 마쳤다. 사실 술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물론 부정적인것도 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독주를 마시지 말라. 잠23에 술은 보지도 말라는 것이다. TV에 카스 광고가 나오면 꺼버리라는 것이다. 왜 교회에서 술 먹지 말라고 하는가?

술의 화학적 요소보다 술이 가진 문화적 요소가 죄악적이라는 것이다. 술로 인한 문제, 죄악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술집 문화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저는 술집에 가는 것은 가라고 한다. 회식에 참여하라고 한다. 그러나 술먹지 않으면 교회다니느냐고 묻는다. 꼭 그런 것은 아니라도 그렇게 묻는다. 그러면 에이 요즘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다 마시는데 뭐! 라 했을 때 마시면 저녀석은 나이롱이구나라고 하는 것이다. 죄가 술먹은 죄밖에 없는데 나이롱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챤이 술을 금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술을 볼떄마다 은혜스럽다고 생각들면 집에서 조용히 마셔야한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야하기 위해 술을 금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니깐 어떤 청년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직장에서는 금해야하는데 그리스도인이 형제끼리 마시는 것은 어떻습니까?"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마셔야겠다고 하면 안된다. 이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것이다.



술자체를 죄악시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술 문화는 분명히 죄악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가 술을 마시면 대인관계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대인관계는 평상시에 좀 잘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상시에 대인관계잘못하는 자가 술먹지 않으면 저 얌체는 술도안마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잘하던 사람은 저사람은 진짜인가 보다.



농담을 잘하는 것도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이다. 요즘은 희생해야한다. 조금만 덜 이기적이면 감동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교회가야한다고 쏙 빠져 버리면 안된다. 주변을 생각하면서 빠져야한다. 술좌석도 생각하면서 빠져야한다.



주일날 오전시간에 잔업이 있는 직장이다. 교회를 가려면 동료에게 잔업을 맞겨야한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하는가?교회를 빠지더라도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주일날 교회를가더라도 폐를 끼치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손 안든 사람은 그때 기도하고 결정하겠는가?



어떻든 결정은 둘중에 하나를 해야한다. 고민하다가 이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잔업은 매일 생기는 것이 아니라 때떄로 생기는데 여름휴가나, 구정이나, 공휴일에 잔업하겠다고 하면서 교회가도되겠느냐고 하니깐 동료들이 교회가라고 하는 것이다. 두 마리 토키를 다 잡으려면 조금만 희생하는 것이다. 대인관계놓치거나 경건을 놓치는 것이다.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한다.



4. 윤리관

귀천은 없지만 선악은 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여야한다.

윤리적 직업을 택해야한다. 비 윤리적 직업은 버려야한다. 그 일을 행하는 과정에서 비윤리적인 것이 나타날 수 있다. 대통령도 윤리적인 직업이지만 신경질 나게 비윤리적으로 일할수 있다. 목사도 윤리적 직업이지만 비윤리적으로 일할 수 있다. 교회돈 때먹을수도있는 것이다. 윤리적인 직업도 중요하지만 윤리적으로 일해야한다. 이랜드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수있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래서 정직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되면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직하게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건물 하나 사서 용도 변경을 하려고 구청에 갔는데 서류를 다 해갔는데 다음에 오라는 것이다. 몇번 퇴짜를 맞았다. 그러자 옆사람이 인사를 좀 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직원이 인사를 꾸벅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소용있는가? 결국 받아냈습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니 문제가 많다. 그러니 뭐하나 걸려도 죄책감 없이 산다. 저는 직장생활 성실히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다고 생각하는데 하나 걸리는 것이 바로 대전에서 근무할 때 서울에 전화하는데 기숙사에 있는 사람이 전화요금을 너무 많이 부담을 하니깐 일과후에는 고정을 시키는 것이다. 근데 연구소에서 똑똑한 사람이 눌러서 전화하는 것이다. 저는 옆에서 저러면 안되는데 하고 생각하였는데 나중에 전화를 나도 해보니깐 되는 것입니다. 제가 30분 전화를 했는데 친구가 무슨 전화냐, 회사전화다. 전화 이렇게 써도 되는 거냐?라고 하는 것이다. 그때 "다하는데 뭐"라는 말이다. 근데 제가 이 말을 하면서 조금 찝찝하였지만 정당화가 되었다. 괸찮다는 것도 아니고 찜찜하기는 하지만 다하는데 뭐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하는데 뭐떄문에 삼풍이,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직장생활하면서 절대하지 말아야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한다.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 교회가 빛과 소금이 안되는 것이다. 말을 바꿔야한다. 다들 그럴지라도...라고 말해야한다. 그러면 크리스챤이 달라진다. 천몇명이라도 별수없다. 그러나 다들 그럴지라도...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져야한다.



회사에 들어갔는데 경리를 맡았다. 장부를 두 개를 주는 것이다. 비자금을 만든 것이다. 이런 일을 맡게 되었을 때 크리스챤으로서 그만두어야하는가? 아니면 어떻하냐 그냥한다. 그런데 내일 먹을 것 없다고 한다면 그만두겠는가? 까마귀를 주시겠지인가? 좋다. 그냥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솔직하긴 한데 너무하다. 그런 회사를 안들어간다? 아니 물론 모르고 들어갔을떄는 어떻하는가?



오락가락할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완전하기 않기에 이런 문제가 많다. 그런데 때려쳐 봐야 다른데 가도 그럴 것이다. 내가 떄려쳐 봐야 다른 사람을 불러 또하는 것이다. 저는 바람직한 것은 분명히 불법이나깐 사장에게 계속 이야기하고 향상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사장이 귀찮아할 때 나가라고 할떄 그럴 때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현실세계속에서 크리스챤이 가져야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5. 전도관

캠퍼스에서 전도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직장에서는 많이 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캠퍼스에서는 매일 교회만 갔으니깐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잘 어울렸다.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전도를 많이 했다. 전도한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도하면 나에게도 유익하고 당장 믿지 않아도 씨를 많이 뿌렸다. 일하다가 실험하다가 교회예기부터 한다. 박형 교회다녀봤어? 그러며 거의 다녀봤다고 한다. 그러면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맞장구 치다가 예수님 알어? 하면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큰소리로 예수가 뭔지고 모르고 무슨 교회를 비판하느냐고 하면서 내가 예수님 이야기 좀 해줄까?하면 슬끌려온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공부하면 그냥 하는 것이다. 3주를 끝내고 나서 예수를 믿겠느냐고하면 안믿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미안해라고 한다. 그리고 고마워요라고 끝낸다. 처음에는 실망이 되다가도 정말 미안할 사람은 안타까울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린것이나 나는 전한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는 것이다.



제가 목사님으로 설교하러갔는데 방목사 지금은 내가 믿어라고 하는 사람을 보았다. 제가 전도한 사람이 1년쯤 지나 자기도 전도했다는 것이다. 기분이 묘하게 전해져왔다.



그래서 저는 전직원의 복음화라고 꿈꾸지 말고 한두사람이라도 제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사람만이라도 제자화시키면 저는 그 직장을 나왔지만 지금도 그 사람은 전도하고 성경공부도 하는 것이다. 신우회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 사람을 세워야한다.

이랜드에도 신학교에 들어오려는 자가 있는데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학교에는 복음을 전할 사람이 없고, 목사되어도 예수믿는 사람만 있다. 목사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려는 목적이라면 뒤로 돌아 앞으로 갓이다.

저는 사목으로 있으니깐 직업인들을 대하면서 전도하지만 전도하고나서 목사라고 밝히면 아 목사세요?라고 하면서 직업으로 보는 것이 있따. 그러나 직장인이 전하면 그것은 진짜로 보는 것이다.
출처 : † 세계제일교회 †
글쓴이 : 띠띠빵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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