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Carl G. Jung, 1875∼1961)이 38세이던 1913년, 그는 자신이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3년 동안 그는 끊임없는 내적 압박감 속에서 외로이, "완전히 허공 중에 방향을 잃고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남에게 자칫 오해받을까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그대로 짊어지고 있었다.
그 당시 융은 큰 개인병원을 개업하여 아내와 가족을 거느리고 쮜리히대학의 강사직까지 맡아 안정되고 존경받는 정신과 의사로서 겉보기에는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인 면에서나 충분히 보장받는 생활을 했다. 바로 몇 개월 전에 프로이드와의 정서적ㅗ직업적 유대관계가 깨어졌는데(그것은 두 사람에게 모두 어려운 사건이었다), 그 불화가 융의 문제들을 유발하게 한 유일한 원인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이유에선가 그는 자신의 삶에 의미와 열정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꼈다. 지적(知的) 활동이 멈추어 아무 것도 쓸 수 없었고 과학서적도 읽을 수 없었다. 자신의 지적ㅗ정서적 상황이 극심히 혼란되고 불안한 상태에선 도저히 가르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강사직을 사퇴함으로써 대학교수직을 포기했다.
융은 현실세계와의 접촉을 잃을 위험성을 느꼈으나 다행히도 그의 환자와 가족의 요구 덕분에 정상생활과 충분히 접촉하며 생활은 해나갈 수 있었으나 물론 아주 힘든 노릇이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인식시켰다. "나는 스위스의 한 대학에서 의학 학위를 취득했고, 내게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돌보아야 하며, 내게는 아내와 다섯 아이들이 있고, 나는 쿠스나흐트(Kusnacht)의 제스트라세(Seestrasse) 228번가에 사는데-이러한 것들이 내게 요구되는 활동이며 내가 실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거듭 증명하는 것이니, 나는 영혼의 바람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빈 장(blank page)은 아니다."
이 혼란기에 융은 자신의 혼란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를 어떤 사건을 인지해내려는 희망 속에서 자신의 삶, 특히 어린시절을 차근차근 검토해 보기 시작했다. 두 번이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았으나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문제를 지적(知的)인 수준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자신에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을 무의식의 충동에 맡겨버렸는데 그 과정은 후에 무의식과의 대결(confrontation with the unconscious)로서 형성화되었다.
그의 무의식이 유도한 첫 번째 일은 작은 돌로 모형마을을 짓기, 즉 유년시절 벽돌 쌓기를 즐겨 하던 시기를 재현해 보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 속엔 아직도 삶이 있구나." 돌을 구하러 다니면서 그는 생각했다. "그 어린 소년시절의 자신이 아직도 주위에 서성이고 있다." 융은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이 놀이에 열중하면서 이 새로운 활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처음엔 치욕적인 것 같아 저항감이 들었다. 도대체 어린시절에 하던 이 놀이 외에는 그에게 할 일이 없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후에 "이 순간이 자신의 운명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로 장난감 마을을 짓는다는 것은 융의 무의식과의 대결에 있어 시초에 불과했다. 이 활동에 의해 환상(fantasy)과 꿈(dream)들이 풀려났고, 융은 그 후 수년간 적극적으로 열심히 그 환상과 꿈들을 추적해 갔다.
과연 그 대결은 효과가 있었다. 이런 지속적인 무의식으로의 노정(路程)으로부터 융은 자기 생(生)의 새로운 의미와 구심점을 형성하게 되고 인간의 성격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의 저술들을 볼 때 이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는 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밖으로 드러난 그의 무의식은 마치 "용암의 유출과 같아 그 화열(火熱)은 내 삶을 새로이 만들었다. 내 자신의 내면적 영상(inner image)들을 추구하고 있던 그 몇 해는 내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 영상들 속에 모든 본질적인 것이 결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융의 심리적 건강(psychological health)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강렬한 개인적 경험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융은 오랜 동안 꿈과 환상이라는 내면적 세계를 중요시해왔고 세 살 때 경험했던 꿈을 나이 든 사람으로서 놀랍도록 명확하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신경증적 기질을 가진 부모를 둔 외롭고 소외된 아이였었고, 여러 해 동안 친구라곤 유일하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나무 인형 뿐이었다. 부모들의 문제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몇 시간을 다락방에서 그 나무인형과 터놓고 얘기하면서 놀았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차단시키고 신화, 꿈, 상상, 환상 등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였다.
융은 젊은 시절 중요한 고비 때마다 꿈과 환상 속에 무의식이 표출됨으로써 문제의 해결책이나 적절한 대안(代案)이 결정되어 나타나 있음을 느꼈다. 한 예로 대학공부를 시작할 무렵 전공을 정하지 못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 때 한 번은 꿈 속에서, 고분(古墳)에서 선사시대 동물들의 뼈를 발굴하는 꿈을 꾸었다. 이래서 그 문제는 해결됐다. 자기 꿈의 해석에 따라 자연과학을 연구하기로 했다. 지표면 아래 발굴 작업을 하던 그 꿈은, 자신이 거대한 동굴 속에 있었던 세 살 때의 꿈과 함께 인간의 성격 연구-표면 아래 파묻힌 부분을 연구하려는 방향을 예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 성격구조의 표면 하부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의식이다. 우리는 개인적 경험들이 어떻게 성격에 대한 이해를 형성했는지를 다른 이론가들에게서 이미 알아본 바 있다. 개인적 경험과 전문적 연구방법 사이의 이러한 관계가, 융에 있어서는 더욱 강력했던 것 같다. 심리적 건강에 대한 그의 정의와 처방은 자신이 정서적 위기와 그것을 해결한 방법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각자가 무의식의 경험에 주의깊게 대면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정교한 성격이론을 확립하였다.
심리학과 신비주의, 불가사의론이 뒤엉킨 융의 이론은 열광적인 청중, 특히 젊은 층의 청중을 많이 모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양의 종교, 실존주의, 초현실주의 등-융의 업적과 같은 계통의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됨에 따라 이 청중들도 계속 늘어났다. 그의 저서들은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타계한 1961년 당시보다 오늘날 더 널리 보급되어 있는 둣하다.
융이 가진 건강한 성격에 대한 이론의 형태와 초점은 다른 이론가들과는 공통성이 거의 없다. 그의 연구는 융 자신의 삶처럼 고독하게 외따로 서 있는 것이다.
융의 성격 연구 방법
다른 어느 이론가보다도 융은 무의식을 강조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성격 형성에 있어서 무의식의 영향력을 중요시해야 함을 처음으로 일깨워 준 사람이지만 융은 우리 모두가 가진 그 감추어진 내면적 삶을 보다 깊은 차원으로 이끈 사람이다. 융은 무의식의 부분으로서, 개인이 살아가며 쌓아가는 경험 뿐 아니라 인류라는 종족과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원시 조상들이 쌓은 경험까지를 포함시켰다. 사실상 우리 각자는 전시대(全時代)를 통해 인류의 경험으로 구성된 기존 유산을 가지고 있다.
융은 자기 환자들을 관찰하고, 고대문명의 신화와 전설(그것들의 상징과 의식, 종교)들을 탐독하여, 연금술이나 점성술, 투시법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탐구함으로써 전능하고 광범위한 무의식의 본질을 도표로 그려냈다. 자신의 중년기의 위기경험(그리고 그의 많은 환자들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무의식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인류 역사의 상징과 의식, 신화들을 다시 접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인간의 많은 비극과 절망, 하찮고 목표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느낌들은 성격의 무의식적 토대와의 접촉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융은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접촉의 상실은 과학과 이성(理性)을 삶의 지표로서 믿어버리는 경향이 늘어가는 탓이라고 믿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생각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무의식이란 것을 희생시켜버리고 의식적 합리적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미신적인 신앙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혹은 그렇게 확신하려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영혼의 가치와 자연과의 일체감(一體感)을 잃어버렸다. 다시 말해 우리는 비인간화(非人間化)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의미도 없고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처럼 느끼며, 헛되이 공허감을 극복해 보려 한다. 이러한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신경증"은 과거와의 영적(靈的) 결합을 잃은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것은 의식의 분열과 해체가 낳은 병리(病理)로서 그 치료책은 한가지 뿐, 즉 성격의 무의식 세력과의 접촉을 회복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성(humanity)을 위한 융의 처방은 정확히 그 자신에게 행했던 것-무의식과의 대결이다.
융은 성격이 무의식에 의해 지배받고 통제받아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그의 심리적 건강의 이상형(理想型)은 무의식의 힘에 대한 의식의 감독과 지도이다. 이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가 융화되어 양편이 모두 자유로이 발달되도록 허용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융화가 일어나는 과정이 개별화(個別化, individuation) 혹은 자아인식(自我認識, self-realization)이다. "자신답게 되는 과정(coming to selfhood)"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대단히 강한 경향성이어서 융은 하나의 본능이라고까지 여겼다. 그러나 그 개별화를 꾀하는 데는 많은 장애가 있으며, 융도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될 능력이 있다고 낙관하지는 않았다. 개별화된 사람은 자기화(自己化, selfhood)와 이해성, 심리적 성숙과 건강, 완전성(完全性), 완전한 인간성이라는 궁극점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 존재의 이런 목표가 열망되기는 하나, 융도 그의 개인적 위기와 해결을 경험하던 시기였던 중년기까지는 거의 도달하지 못했다. 융의 개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격구조에 대한 그의 견해가 어떠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성격의 구조
융의 견해에 따르면 성격은 자아(自我, ego), 개인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라는 세 가지의 분리된, 그러나 서로 교류하는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체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양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집단 무의식은 성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융의 이론 전체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비교적 덜 중요한 두 가지 체계를 먼저 논의해보자.
자아(自我, ego)는 의식 속의 정신 부분이며, 매순간마다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오는 지각, 기억, 사고, 감정들을 포함한다. 우리는 일생을 통해 광범위한 자극 속에 끊임없이 몰려 있어서 효율적으로 그 많은 자극들에 다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위에 있는 것을 선택하여 지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해롭거나 위협적인 것들과 함께 무의미하고 부적절하고 사소한 자극들도 걸러낸다. 자아(ego)가 이 절대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감각이든 관념이든 기억이든, 자아의 의식 속으로 인지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사고(思考)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의식의 많은 부분(어떻게 세상을 지각하고 반응하는가)은 외향성(外向性, extroversion)과 내향성(內向性, introversion)이라는 태도군(態度群, attitudes)에 의해 결정된다. 이들은 세상을 보는 방법에 있어서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융의 이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심리학에서 하나의 전제로서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은 의식의 다른 두 가지 방향, 즉 우리들에게 익숙한 두 가지 성격형이다.
외향적 성격의 사람은 객관적 현실이라는 외부세계로 향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객관적이고 사교적이며 타인들과의 교제를 진실로 즐기는 듯하다. 한편 내향성은 내부의 주관적 삶에 방향을 두고 내성적이며 위축되어 있고 소심한 경향이 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상반(相反)된 방향-외부 대 내부-을 대표하고 있는데 융은 누구나 어느 한쪽 부류에 속할 수 있다고 느꼈다.
사람의 일생에 있어 정상적으로는 이 태도들 가운데 어느 한쪽이 우세하여 행동과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 그렇다고 다른 한쪽이 완전히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존재는 의식의 일부인 것만은 아니다. 개인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의 일부가 되어 그 속에서 여전히 행동에 영향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근본적으로 외향적이거나 혹은 내향적일지라도, 완전히 그렇지는 않다. 열세(劣勢)의 태도도 영향력이 조금 미약하긴 하더라도 존재한다. 이 태도의 우세가 심리적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연령에 따라 어떻게 번화되어가는지는 후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의식부(意識部)에는 외향성과 내향성 이외의 것이 또 있다. 융은 이를 심리적 기능군(psychological functions)이라고 소개했다. 이 역시 우리 주위와 내부 속에서 지각하고 반응해 보이는 방식인데 즉 우리의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이다.
융은 내향성과 외향성이라고 모두 똑같은 게 아님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세계에 대한 태도가 이성적(rational)이냐, 혹은 비이성적(nonrational)이냐 하는 점에서 다르다. 이성적 기능(rational function)은 사고(思考, thinking)와 감정(感情, feeling)이다. 이들은 실제로 정반대의 기능이지만 양쪽 모두 경험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며 체계화하고 분류한다는 면을 갖고 있다. 비이성적 기능이란 감각(sensing)과 직관(intuiting)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감각은 감각기관을 통해 현실을 경험하는 것을 말하고 반면, 직관이란 일종의 초감각적 경험이나 육감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들끼리 서로 상반되는 기능인 것이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라는 방향의 견지에서 한가지 태도만이 지배적이었듯이 기능에 있어서도 한가지 기능만이 의식부에서 지배적이고 다른 나머지 세 부분은 개인 무의식의 부분이 된다. 그 상반성 때문에 한 개인에게는 이성적이거나 혹은 비이성적 기능, 어느 한쪽만이 지배적인 것은 분명하다. 한 개인이 일관성있게 양쪽 형태의 기능을 한꺼번에 사용할 수는 없다. 또한, 각 쌍의 한쪽 편만이 어느 시기에든 우세하다. 한 인간이 동시에 사고와 감정 양식으로 작동하거나 혹은 감각과 직관 양식으로 작동할 수는 없다.
결국 이런 다소 복잡한 성격 분류에 의해 두 가지 태도군과 네 가지 기능군으로 여덟 가지의 심리형(psychological types)을 형성케 된다. 두 가지 태도군에 의하여 분류될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사람이 각각 네 가지 기능 중 한 가지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향적인 사람이 사고형(思考型)으로, 외향적인 사람이 감각형(感覺型)의 기능을 수행할 수가 있다.
융에 의하면 성격에 있어서 의식부는 중요하기는 하나 무의식부보다는 훨씬 덜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무의식에는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의 두 가지 차원이 있다. 보다 상위부에 보다 피상적인 차원에 있는 것이 개인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인데 근본적으로 의식 속에 더 이상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의식부로 쉽게 떠오를 수 있는 자료들의 저장소 혹은 저수지이다. 이 자료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그와는 반대로 너무 위협적이어서, 인식되는 의식부에서는 밀려나간 기억과 생각들로 구성된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순간에든 한 두 가지 혹은 몇몇 가지의 생각이나 경험 밖에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다. 다른 기억이나 생각들은 현재 초점이 되고 있는 것에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밀려나간다. 예를 들면, 우리는 수많은 정보-전화번호, 주소, 성명, 인상들(images),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기억 등을 지니고 있다. 전화번호를 알고는 있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요한 때는 즉시 의식부 안에서 인지될 수 있도록 상기(想起)해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의식부와 개인 무의식 사이에는 서로 빈번한 왕래가 있다. 여러분의 주의력은 이 장(章)의 내용에서부터 어젯 밤 했던 일의 기억으로 혹은 내일 할 일에 대한 계획으로 옮겨지기도 할 것이다. 개인 무의식은 우리들의 감정, 사고, 기억들을 모두 간직한 서류철에도 비교할 수가 있다. 어느 특정한 기억을 추출하여 잠시 검토해 본 후 제자리로 보내고 다음 필요할 때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잊어버린다.
융이 컴플렉스(complexes)라 부른, 하나의 공통된 주제에 관련된 정서, 기억, 사고의 묶음은 개인 무의식의 중요한 국면이다. 어떤 의미에서 컴플렉스란 성격 전체 속에 있는 보다 작은 성격이며 특정한 것에 대해서는 강한 편견을 갖는 특징이 있다. 한 예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 열등감(inferior complex) 혹은 권력 컴플렉스(power complex)를 갖고 있다고 말할 때는 그가 열등의식이나 권력에 사로잡혀 그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의식의 인지 수준에 놓여 있지 않고 개인 무의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지배를 받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컴플렉스란 실질적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즉 어떻게 세계를 지각하며 어떤 가치와 흥미와 동기를 가질 것이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융은 처음에는 컴플렉스가 아동기에 일어난 공격적 사건에서 비롯된다 고 믿었으나 후에 보다 깊은 경험에서 파생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에게는 컴플렉스가 종(種)의 진화사(進化史)에서 겪은 어떤 경험, 즉 유전이라는 기제(hereditary mechanisms)를 통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승되는 경험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마치 우리 각자가 과거의 경험을 쌓아 정리해 보관하는 것처럼 인간이란 종도 그렇게 하여 왔다. 이러한 우주 진화 경험의 저장고인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은 성격의 가장 접촉하기 어려운 깊은 수준에 존재하며 한 인간 성격의 토대가 된다. 집단 무의식은 현재의 모든 행동을 지시하므로 성격에는 가장 큰 힘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태초에 경험한 것들은 무의식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것들을 기억하거나 상상하지 않는다(한 번 의식에 있었던 개인 무의식의 내용물을 축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대신에 그 태초의 경험들은 우리들 속에, 조상들과 같은 방식으로 지각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소인(素因, predisposition)이나 경향성(tendencies)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 경향성이 우리 행동에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지 혹은 인식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앞으로 직면하게 될 특정한 경험들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면, 원시 조상이 어둠을 두려워하였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하나의 소인을 물려받았다고 하자. 이것이 자동적으로 어두움을 두려워하도록 우리 각자가 키워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낮에 빛이 있는 것보다는 어두움을 쉽게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내재하는 동안 그 소인을 현실화시킬 적절한 경험(말하자면 어두울 때 악몽에서 깨어나는)만이 필요하다. 융은, "자신이 태어날 세계에 대한 모습은 실제적 이미지로서 이미 자신과 함께 타고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우리는 조상들이 세계에 반응했던 방식으로 세상에 반응할 소자가 있다는 것이다.
또하나의 예로서, 융의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어떤 정해진 방식으로 어머니를 지각할 수 있는 소인을 타고난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는 지나간 세대의 어머니들이 행동했던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소인은 경험하고 있는 현실과 일치할 것이다. 타고난 우리 세계의 본질은 우리가 경험을 지각하고 반응하는 방식을 사전에 제시해 준다.
융은 다양한 문화를 연구할 때 어느 시대, 어느 장소나 유사한 경험과 주제와 상징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 주제들이 자기 환자들의 꿈이나 환상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고대와 현대의 이러한 일치성은 그로 하여금 어떤 경험들은 수세대 동안 거듭 반복되어 심령 속에 새겨져 있다고 믿게 하였다.
이 우주적 경험은 우리에게 심상(心像, image)으로 확실하게 되거나 표현되는데 융은 이를 원형(原型, archetype)이라 불렀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원형이란 어떠한 것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기본 모형이다. 그것은 나중에 형성되는 이미지에 대한 하나의 귀감이거나 본보기이다. 융은 그의 연구의 일부로 탄생, 죽음, 권력, 신, 악마, 대지 등의 예를 들어 여러가지 원형을 구별하여 논했다. 인간사의 전형적이고 반복적인 무수한 경험만큼이나 많은 원형들이 있다.
이 여러가지 원형 중에서도 몇 개는 우리 삶에 특히 중요한 것으로 융에게는 생각되었다. 그것들은 보다 충분히 발달되고 세력이 있는 것들로 그 중에는 퍼소나(persona), 아니마(anima)와 아니머스(animus), 그림자(shadow)와 자신(self)이 포함된다.
퍼소나(persona)란 원래 배우가 다른 얼굴이나 역할을 청중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다. 융도 같은 의미로 퍼소나란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나타내 보이려고 사용하는 가면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연기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때 그때의 상황이나 타인들의 요구에 맞추어서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적응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역할을 하고 여러가지의 가면을 쓴다. 판사가 법정에서 쓰는 가면과 점심시간에 여류 명사 앞에서 쓰는 가면은 종류가 다르다. 회의 석상이나 가정에 돌아가 가족과 있을 때는 다시 바꾸어 그때 그때의 상황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도록 적응하여 남들이 그에게 기대한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그런 수법을 쓰는 이상은 다른 가면을 쓴다는 것이 그다지 해로운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현대 생활의 복잡한 사건들에 대처하기 위해 융은 퍼소나가 유용하며 필수적이기까지 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퍼소나는 매우 해로울 수도 있다. 만약 어떤 한 사람이 그 퍼소나가 진정한 자기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단순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자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 결과 그 사람의 자아는 오로지 퍼소나와만 동일시되어 성격의 다른 국면들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은 진정한 자신(self)으로부터 소외되어, 팽창한 퍼소나와 축소된 다른 성격의 국면들 사이에 긴장이 생긴다. 이런 현상은 심리적 건강을 방해한다. 융은 그런 사람들이(대개 중년기 무렵에)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그들 자신마저 기만하여 거짓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한 성격이 목표로 하는 것은 퍼소나를 축소시키고 나머지 성격을 개발시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역할이 속임수이다.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보면, 후자는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속인다. 건강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자기 내면의 본질을 안다.
연관된 한 쌍의 원형(archetype)으로 아니마(anima)와 아니머스(animus)가 있다. 우리 각자는 생물학적으로 심리적으로 다 이성(異性)의 특질과 성격을 갖는다. 생물학적으로는 양성(兩性)이 모두 이성의 호르몬을 분비한다든가 하는 것이고, 심리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남성적 혹은 여성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성격이 남성적 요소(아니머스 원형)를 포함하고 남성의 성격이 여성적 요소(아니마 원형)를 포함한다.
이 원형들은 남녀가 수없이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각 성(性)이 이성(異性)의 성격을 약간 받아들이는 과정상의 경험에서 발달되었다. 이런 원형들을 통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이성을 이해할 수가 있다. 우리는 그 속성 중의 어떠한 것을 좋아할 소인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것이 이성과 적응하여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원형들의 심리적 건강을 위해서 우리 각자는 양쪽을 모두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말은 즉 남녀 모두 동시에 자기의 성별(性別)에 맞는 능력을 나타내는 한편 남성은 여성적 성격(온화함 같은 것)을, 여성은 남성적 성격(공격성 같은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양성적 본성을 모두 표현하지 못하면 건강한 성격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러한 표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매우 중요한 이성적(異性的) 성격은 발달하지 않은 채 잠복하여 성격의 일부가 억압되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융의 견해에 따르면 심리적 건강을 손상시킬 수 있는 이 편중성은 성격 전체의 충분한 발달과 표현을 저해하는 것이다. 모든 분야가 조화롭게 발달하여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을 희생시키며 성장되어서는 안 된다.
그림자(shadow)는 가장 강력하지만 잠재적으로는 해로운 원형이다. 그것은 인류의 조상으로부터의 원시적 동물 본능을 포함하고 있어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양측이 모두 표현되어야 하는 가장 선한 국면과 악한 국면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특히 문제시되는 원형이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그림자는 사회가 사악하고 죄를 짓는 것이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충동을 포함한다. 그런 까닭에 그림자는 어두운 측면으로서 다른 측면들과 조화롭게 진보되기 위해서는 약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런 동물적이고 원시적인 충동을 억압하지 못하면 사회의 관습이나 법률과 충돌하기 쉽다. 그러므로 문명세계의 인류가 되기 위해 그림자의 힘을 제어해야 하지만 그들을 완전히 억압해 버리면 그것이 가진 바람직한 특질을 감소시키거나 파괴시킬 염려가 있다. 그림자는 동물 본능의 근원일 뿐 아니라 자발성, 창의력, 통찰력, 그리고 깊은 정서 등 완전한 인간성에 필수적인 성격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림자가 완전히 억압당했을 때 성격은 극히 가치있는 과거의 본능적 지혜로부터 완전히 차단당하여 무기력하고 생기가 없어진다고 융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자를 완전히 억압하여 사람의 행동을 세련시키고 그림자가 긍정적으로만 표현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건강한 성격을 갖기 위하여는 여기서도 역시 성격의 한 부분을 배제하고 다른 한쪽 면, 혹은 부분만을 지나치게 억제하거나 발달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우리가 이제껏 살펴 본 바와 같이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조화롭게 섞이고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융의 건강한 성격 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자아(ego)가 그림자(shadow)의 지배력을 조절하여 양면이 균등하게 표현될 때 그 사람은 생기있고 박력있으며 삶에 열의를 갖게 된다. 그리고 정서와 의식이 다같이 강력하므로 정신적 육체적 영역에 모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고 반응할 수 있다. 융은 그림자가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의 동물적 본능의 몇몇 표현이, 창조적인 사람들을 그렇게 생기있고 폭발할 듯 활력있게 보이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림자가 완전히 억압되어 있을 때는 성격이 단조롭고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자기 본성의 어두운 부분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마저 있게 된다. 나쁜 동물적 본능은 억압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자아(ego) 속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위기나 취약기가 오면 지배권을 다시 장악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무의식부의 지배를 받게 되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가장 중요한 원형(原型,archetype)은 자신(self)이다. 융은 그것을 생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했다. 자신이란 성격 모든 부분의 통일성, 완전성, 그리고 전체성을 향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자신(self)이 발달되었을 때 사람은 자기와 세계가 조화로움을 느낀다. 미발달 혹은 불충분한 발달상태에 있는 자신(self)은 성격이 뒤죽박죽된 상태에서 심리적 건강을 충분히 누릴 수 없게 된다. 자신(self)이라는 원형(archetype)은 성격의 모든 부분을 한데 묶어 균형있게 하는 것, 즉 성격의 중심점을 자아(ego)로부터 의식부와 무의식부 중간 지점으로 옮겨놓은 것과 같은, 의식과 무의식 과정의 동화(assimilation)를 이루어지게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무의식으로부터 온 자료가 보다 활동적인 성격의 일부가 된다.
완전한 자아의 인식이나 실현은 어렵고도 인내를 요하는 오랜 작업이며 완전히 성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대부분이 끊임없이 노력은 하나 거의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목표이다. 그러므로 자신(self)은 동기를 갖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목표를 항상 미래에 두어 사람을 앞으로 끌어당긴다.
자아인식(self-realization)을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필요하다. 먼저 자신(self)의 본질을 알지 않고는 자아를 실행할 수 없다고 융은 쓰고 있다. 이것이 자아인식으로 접근해 가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이며 자기에 대한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뿐만 아니라 훈련(discipline), 인내력, 지속성 등 고된 작업이 필요하다.
또 한가지 자아 인식을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여러 부분이 충분히 나타나 발달하는 것인데 그것은 중년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융의 일생에서와 같이 우리는 인간의 발달 단계에서 중년기가 심리적 건강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격의 발달
많은 심리학자들은 프로이드를 따라 인간의 성격 발달은 5살 전후에 끝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성격형과 본질은 유년기나 아동 초기의 경험에 의해 결정되며, 그 이후에는 성격이 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몇몇 학자들은 성격은 청년기까지 계속 발달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으나 5세 때에든 15세 때에든 어린 시절에 형성된 것이 일생 동안 우리의 본성이라는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성인 초기나 중년기, 노년기에는 이미 형성된 성격을 다듬거나 확고히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융은 처음으로 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하고, 성격 발달은 일생동안 계속되며 35세에서 50세 사이에는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이 견해는 현재 위기의 중년기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뿐 아니라 이 변화기를 앞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적어도 우리는 아동 초기의 경험 속에 갇혀 있으라는 선고를 받은 것은 아니다.
융은 성격 발달을 아동기, 청년 및 성인 초기, 중년기 그리고 노년기의 4단계로 기술했다. 그는 아동기(childhood)가 성격 형성에 있어 특히 중요한 시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유아의 행동은 본능에 의하여 지배되므로 심리적 문제는 있을 수도 없고 사실상 있지도 않다. 왜냐하면 문제란 의식부에 자아(ego)가 존재해야 생기는 것인데 이 시기에 자아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아는 배를 채우고 배설하고 잠자는 것에 관심이 집중될 뿐이다.
자아(ego)는 아동기에 처음 원시적인 방식으로 발달하기 시작하나 독특한 자신(self)이나 주체의식은 없다. 아동의 "성격(personality)"은 부모의 성격을 반영하는 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부모는 어린이를 대하는 행동을 통해서 성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오히려 완전한 발달을 저해하기도 한다. 예컨대 자식이 자기 분신(分身)이기를 원하여 자기 성격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수가 있다. 혹은 자기 결점을 대리 보상받기 위해 자기와 완전히 다를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성격 발달의 제 2단계인 청년 및 성인 초기(youth and young adulthood)는 일정한 성격 형태와 내용이 발달하는 사춘기(puberty)에 시작된다. 융은 사춘기를 "심리적 탄생기(psychic birth)"로 불렀는데 많은 문제와 갈등, 또한 적응의 시기이다. 현실 세계가 청년에게 아동기의 행동과 환상(fantasy)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요구를 한다.
청년기(adolescence)부터 성인 초기에 다가오는 첫 임무는 직업에 대한 준비와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맡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교육 초점이 맞춰지고 난 후 직업을 갖기 시작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민다. 활력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외부로 향하고 태도는 대개 외향적이다. 의식이 지배적이고 인생의 목표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여 자기의 위치를 공고히 다지는 것이다. 성인 초기는 성공한 이에게는 도전의 시기이며 새로운 전망과 새 영역과 성취의 연속이다. 젊은 성인은 인생의 자극에 대해 매우 열광적인 열의를 쏟는다.
그러나 40대쯤에는 중년기(middle age)가 닥쳐와 우울증과 성격 변화를 유발한다. 중년기에는 대부분 생의 요구에 비교적 잘 적응하여 상당한 만족감을 맛보는 시기이다. 직업상으로나 사회적ㅗ가정적으로나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다.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몰아치고 갈구하던 시기에 대한 성과가 나타나 안정감을 갖고 인생을 즐기기 시작할 수가 있는 시기이다. 이것이 융이 고된 시련을 경험하던 바로 그 상황이었고, 그의 환자 중 3분의 2도 인생에 있어 똑같은 단계에 처해 있었다. 인생의 중간점에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어째서 마침내 성공을 했는데도 절망과 비참함과 무가치함을 느낀단 말인가? 융은 자기의 환자들에게 귀를 기울여 그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모험과 인생의 자극적인 맛과 열망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하고 삶의 의미를 잃은 채 공허와 무감각만을 느꼈다. 융은 인생의 시기(자신과 자기 환자들의)를 분석할수록 그런 격렬한 성격 변화는 불가피하고 범세계적인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중년기는 성격상에 있어서 필연적이고 유익한 변화를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과도기이다.
얄궂게도 융은 중년기를 맞은 사람들이 인생의 요구를 충족시켰다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변화를 경험하는 원인을 찾아냈다. 인생의 전반기를 준비 활동으로 많은 정력을 소비하나 40대 쯤에는 그 준비가 끝나버려 인생과의 도전이 충족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아직도 정력이 남아 있으나 소비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다른 측면에 재투자 되어야 한다.
융은 인생의 전반기는 외부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기술했다. 인생의 후반기는 이제껏 게을리 해왔던 주관적 내면세계에 헌신해야 한다. 성격의 태도면에서도 내향적이 된다. 이전엔 의식부에 집중되던 것이 무의식의 경험을 깨달음으로써 조절된다. 흥미는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데서 종교적ㅗ철학적이며 직관적인 쪽으로 옮겨지고, 자아(自我)를 인식하는 과정이 시작되기 위해 예전의 편중성(의식부에의 집중)은 성격의 모든 부분의 조화로 대치된다.
중년에는 젊은 시절의 가치관-금전과 특권, 명성, 지위를 계속 갈구할 수가 없다. 그것들은 이미 의미를 잃어버렸으므로 새로이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영혼은 파산하고 인간은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융은 이런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우리 삶에서의 하나의 가치인 종교의 침식 때문에 점차 어려워진다고 믿었다. 새로운 가치와 신선한 동기,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이 필요하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의식부와 무의식부를 조화롭게 통합하고 자신의 내면의 존재를 경험한 사람은 긍정적인 심리적 건강, 즉 융이 개별화(individuation)라고 부른 상황을 성취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성격 성장의 마지막 단계는 노년기(old age)이다. 융이 노년기에 대해 저술한 바는 거의 없지만 일생의 초기와 마지막 기간에 대해 저술한 것이 있다. 노년기나 아동기는 무의식부가 지배적이어서 성격은 완전히 그 속에 잠긴다. 나이든 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도 미래를 향한 목표가 필요하다. 사후(死後)의 삶에 대한 약속(목표)에 집착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의 설득으로 무마하는 것도 역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죽음의 불가피성은 어느 정도 그 자체가 하나의 목표로서, 즉 우리가 바라보며 노력할 목표로서 다루어야 한다. 우리의 심리적 건강은 여기에 있다.
존재의 개별화를 이룬 사람
융의 건전한 성격론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자. 우리는 이미 심리적 건강을 위한 몇몇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의 임무는 통일된 전체를 형성하기 위해 그런 개념들을 한데 모으는 것인데 본질적으로 그것은 어떻게 개별화 과정이 진행되는가 하는 것이다.
개별화에 첫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던 자신(self)의 부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일은 중년까지는 일어날 수 없다. 융은 개별화 과정을 독특한 개인, 하나의 동일체적 존재(homogeneous being)가 되어가는 것으로 규정지었는데 그것 역시 자기 자신이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별화를 '자신답게 되는 것(coming to selfhood)' 혹은 '자아인식(自我認識, self-realization)'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별화는 본능적인 것으로서 노력을 한다 해도 거의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다(융은 완전히 개별화된 성격으로서 예수와 석가를 예로 들었다). 개별화를 위한 노력으로서 우리는 생애 전반기에 지침이 되었던 행동, 가치, 사고 방식을 버리고 무의식부(無意識部)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는 융이 했던 것처럼 보류나 억제 없이 대담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무의식과 대결해야 한다. 무의식의 소리를 인식 속으로 끌어들여 그것이 말하는 것을 듣고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 촉각을 세워 꿈과 환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무의식부의 자발적인 흐름대로 맡김으로써, 그림, 글짓기 혹은 다른 형태의 표현방식 속에서 융이 말한 "창조적 상(creative imagination)"을 연습해야 한다. 무의식은 진정한 자신을 우리에게 표출해준다.
그러나 이 무의식의 힘이 우리 삶에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 그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표현을 받아들여 무의식적 과정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의식과 무의식의 힘은 동등한 협력자가 된다.
개별화된 인간에게는 성격의 어느 영역도 의식부나 무의식부에 의해서, 특정한 기능이나 태도에 의해서 혹은 원형(原型)의 어느 것에 의해서도 한 측면만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모두가 조화로운 균형상태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성격의 의식적 측면에 대한 강조가 약화되었다는 것이 건강한 사람의 삶은 이성적 요소의 지시를 덜 받는다는 뜻인가? 융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인 것 같고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성(理性)에 입각한 원칙에 따라서만 생활하는 것은 우리가 완전한 인간성을 획득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융은 "인간은 이성만으로 된 창조물이 아니며, 또 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를 이성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무의식의 비이성적 힘은 계속 무시당하기에는(생의 전반기에 성공하려고 노력할 때 그러하듯), 너무나 중요한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개별화에 두번째로 요구되는 것으로는, 성인 초기의 물질적 목표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성격 특성들을 포기하는 것이 포함된다. 인생 전반기의 목표가 후반기에는 무의미해지며, 태도와 기능도 마찬가지이다. 성인 초기에는 한가지 태도(외향성 혹은 내향성)와 한가지 기능(감각, 직관, 사유 혹은 감정)이 지배하고 있었고 다른 것들은 부수적이었던 것을 상기해보라. 인생 전반기에는 그렇게 필수 불가결했던 성격의 편중성이 후반기에는 전혀 적절하지 않게 된다. 개별화되면 어느 하나의 기능이나 태도가 우세하지 않다. 모든 것이 표현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래야 한다. 성격의 이러한 측면들이 모여 균형을 이룬다.
예를 들어 이십대에 외향적이었다면 중년기에는 내향적인 특징도 의식하게 된다. 행동이 사유(思惟) 기능에 의해 지배되었었다면 감각, 직관, 감정기능 역시 의식하게 될 것이다. 전에는 상반되게 존재하던 특성이나 특질이 이젠 모두 표현되는 것이다.
융은 한가지 태도나 기능이 우세한 것을 심리형(心理型, psychological type)이라고 칭하였다. 이 심리형이 한 사람을 타인들로부터 구별하는 주된 기준이 된다. 그런데 개별화되면 이율 배반적으로 그 사람은 소위 사유형(思惟型)이나, 외향성 또는 내향성 감정형으로 분류될 수 없게 되어 개인을 구별하는 이런 범주는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개별화된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사한 점들이 있다.
중년기 성격의 또다른 변화는 원형(原型) 본질의 변화이다. 개별화 기간 동안 퍼소나(persona), 그림자(shadow), 그리고 아니마나 아니머스(anima/animus)에 변화가 생긴다. 사실상 개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우선적인 변화는 퍼소나를 분해하거나 몰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들, 우리가 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들은 중년기에도 계속된다. 즉 다른 많은 사람들과 아직 접촉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대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표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퍼소나의 하부까지 도달해서 퍼소나가 덮고 있는 순수한 자신(self)을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개별화된 인간으로서 우리는 파괴적이기도 하고 건설적이기도 한 그림자의 전체를 깨달아야 한다. 파괴성, 야기심 같은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충동들, 즉 우리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그것에 흡수되어 그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단순히 그 존재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전반기에 우리는 퍼소나의 도움으로 우리들의 어두운 측면을 덮어 둘 수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좋은 면만을 알려 주고 싶어했다. 그림자는 다른 이들에게 매우 효율적으로 숨겨졌기 때문에 자기에게까지도 그 존재는 숨어버린다. 개별화가 성공적으로 일어나기 위해 이러한 것은 변화되어야 한다. 이것이 지기(知己, self-knowledge) 과정의 일부이며 이것 없이 자아인식(self-realization)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에 열정과 자발성과 활력을 주는 것이 그림자의 동물적인 경향이므로 그림자에 대해 좀 더 많이 깨닫는 것은 우리 성격에 보다 깊은 차원을 형성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격의 한 부분을 다른 것들과의 보다 큰 조화를 이루도록 이끌어간다. 본성의 좋은 면만을 인식하는 것은 성격 발달의 편중성을 초래한다. 성격의 여러 상반된 성분처럼, 이런 차원의 양쪽 측면이 개별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 전에 표현되도록 해야 한다.
개별화 과정의 다음 단계에선 심리적 양성화(psychological bisexuality)라는 말이 필요하다. 남자는 아니마(여성적) 기질을, 여자는 아니머스(남성적) 기질을 표출하게 되어야 한다. 개별화 과정의 모든 단계가 모두 어려운 것이지만 자기의 양성적 특질과 특성을 인식하는 것은 분명히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이전의 자아상(自我像, self-image)으로부터의 커다란 변화, 가장 급속한 이탈을 의미한다.
우리 본성의 양면성이 표현되어, 독점적이고 지배적인 어느 한 부분을 대치하여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양성적(兩性的, bisexual) 본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누구나 의심할 여지가 없는(혹은 인정하는) 창의력의 새로운 원천을 열게 되고 또한 아동기에 받았던 영향으로부터 궁극적으로 해방되는데 기여하게 된다. 융은 아니마와 아니머스가 자유롭게 표현될 때에야 비로소 남성은 어머니로부터 여성은 아버지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와진다고 저술했다.
융은 다른 이론가들처럼 건전한 성격의 특성을 나열하여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한 사람의 상세한 초상화를 만들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단편적으로 그의 글들을 모아 제작해보면 하나의 사진은 아닐지라도 개별화된 인간의 인상적 그림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영상이 떠오른다. 내가 융의 이론 체계 속에서 특징들을 추출하여 정리해 본 것 뿐이며 그가 명백하게 진술한 것은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개별화된 사람들은 중년기 이후를 맞아 그 시기에 겪게 되는 성격 본성의 변화로부터 생기는 최대의 고비를 뚫고 나간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self), 야망, 삶, 소망, 그리고 목표에 대해 명상하며 여러 해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무의식부가 표출되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이전엔 억압되었던 본성의 일면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 개별화된 인간은 최고 수준의 지기(知己)를 성취하게 되는데, 즉 그것은 의식부와 무의식부 양쪽 수준에서 모두 자기를 인지하는 것이다.
지기(知己)와 함께 자신의 수용(acceptance of self)이 가능해진다. 개별화된 사람은 자기 탐구(self-exploration) 시기에 자기에게 드러나는 것을 수용한다. 그들은 자기의 본성-장점과 약점, 성스러운 면과 악마적인 면을 받아들인다. 각각 다른 상황에서 다른 퍼소나를 쓰지만 오로지 사회적 편의를 위해서만이다. 개별화된 사람은 연기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역할과 진정한 자신(self)을 혼동하지 않는다.
개별화된 사람의 세번째 특징은 자아의 통합(integration of self)이다. 성격의 일부분이 전체와 통합되고 조화를 이루어 모든 것, 즉 이성적(異性的) 특성과 아울러 이전에는 지배적이지 못하던 태도와 기능 등 무의식부의 총체가 표출될 수 있다. 생애 처음으로 어떤 국면도, 태도도, 기능도 어느 한가지가 지배를 하던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성격의 모든 부분들의 통합과 표현은 심리적 건강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자기표현(self-expression)을 개별화된 사람의 네번째 특성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인간 본성의 수용과 관대함(acceptance and tolerance of human nature)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집단무의식(인류가 경험한 모든 것의 저장소)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이어서 개별화된 사람들은 인간 상황을 보다 잘 자각하여 관대함을 지닌다.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류적 유산으로부터 전해지는 힘을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다 깊게 통찰할 수 있는 듯하다.
건강한 사람은, 융 자신의 일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지(未知)와 불가사의의 수용(acceptance of the unknown and mysterious)이 특징이다. 그들은 더 이상 이성(理性)만으로 된 존재가 아니므로 무의식적 비이성적 요소들을 의식 속에 받아들일 수 있다. 그들은 꿈과 환상에 주의하여 관찰하며 한편으로는 이성이나 논리를 사용하면서 무의식부의 힘으로 그러한 의식의 과정을 조정한다. 이러한 미지와 불가사의의 수용은 투시력에서부터 신앙에 이르기까지 초자연적이며 영적(靈的)인 현상도 포함한다.
건강한 사람은 보편적 성격(universal personality)을 가졌다고 융은 말했다. 더 이상은 성격(태도, 기능, 원형의 모든 측면에서)의 어느 한 면이 지배적이 아니므로 개개인의 독특함은 사라진다. 그러한 사람은 더 이상 어느 특정한 심리형(心理型)에 속하는 사람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25세에는 지극히 남성적이고 외향적이며 감정형(感情型)이었던 사람도 일단 개별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면 그런 독특한 성질을 잃는다. 그런 성질들이 이후로는 지배성을 잃으므로 어떤 특정한 심리형으로 그를 분류하기는 불가능하다.
[개인적 논평]
융의 이론은 다른 어느 건강한 성격이론과도 다르다. 이성(理性)과 논리의 의식적 요소를 강조하는 20세기의 이론과는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논란의 여지도 많고 초월주의, 초자연주의와 종교의 혼란스러운 혼합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대체로 융의 업적은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에서보다 종교, 역사, 예술, 문학 분야에서 더 많은 인정을 받아왔다.
융은 살아가는 의미의 부재(不在), 과거나 자연과 일맥 상통하는 뿌리나 연결의 부족 등 20세기 후반기의 존재적 특성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상태에 대해 저술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과 과학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보다 넓고 영혼적이며 철학적인 가치에 대한 안목을 잃었다.
이런 면에서 융의 위치는 극단적이 아니고 온건하다. 그는 이성을 단념하거나 무의식의 통제에 굴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성을 발휘하되 무의식의 힘을 좀 더 잘 인식함으로써 조절하여야 한다. 이런 상반된 부분들 간의 균형과 통합에 그 관건이 있다.
이제부터는 특정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융의 외향성, 내향성이라는 개념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단순한 의식부 안의 분류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아는 바와 같이 실제로 이것은 융도 인식하고 있던 것이어서 세계를 지각하고 반응하는 것을 보다 완전하게 설명하기 위해 사유, 감정, 감각, 직관이라는 기능군을 도입했다.
나에게는 여덟 가지 심리형으로 태도와 기능을 조합시킨 것이 다양한 인간의 행동을 총괄하기에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융의 심리형은 일반적인 의미로만 적용이 가능한 것 같다(그리고 이런 것은 아마 어떤 이론이든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연구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융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이론은 대부분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가 개인 무의식에 축적된 개인적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한 것처럼 내게도 여겨진다. 결국 과거에 직면해서 맞섰던 경험과 자극을 받아 생기는 변화 외에 무엇이 학습되는가? 그 경험들은 의식적으로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존재나 행동의 영향력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정신분석이나 인간 성격 연구를 한, 다른 사람들도 언젠가 한 번은 의식에 있었으나 더 이상은 의식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경험들에 의해 본성이 영향받을 수 있다는 증거를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집단 무의식이라는 사실은 내게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원시 조상들의 기억에서 우리 인간들이 항상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활동할 소인(素因)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런 견해는 지적(知的)으로나 정서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기는 하나-그것은 나의 흥미를 자극시켰다-나는 그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다. 인류의 진화는 어떤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이 특징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어느 시대에든 인간은 탄생과 죽음, 어머니상(像), 혹은 일종의 신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이 경험들이 융이 제시한대로 새로운 각 세대로 끊임없이 전하여지는 것인가?
융은 자기와 환자들의 환상과 꿈 속에 공통된 주제와 상징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것이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에서도 공통됨을 발견하였다. 이런 사실들은 경험의 보편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긴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 유전된다는 결정적 증거는 되지 못한다. 인간은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 매 시대마다 유사한 경험을 겪고 유사하게 반응한다는 것만을 지적할 뿐이다.
내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융의 이론 중 한 가지는 중년기에 일어나는 성격의 변화를 의식한 점이다. 중년기의 남녀와 상담(counseling)할 때 나도 융이 설명한 것과 같은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본다. 그 사람들은 삶이 진부하고 무의미하다고 불평하며 젊은 시절에 느꼈던 활력과 열정과 흥분을 갈망한다.
중년기의 추이에 대한 발달심리학 저서들을 살펴보면 그 시기가 보편적이며 불가피한 성격 변화기라는 융의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의 주관적 본질적 내부를 향하게 되고 이제는 부적절해진 가치와 의미를 대신할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찾는 시기이다.
융의 건전한 성격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다른 이론가들만큼 분명하지는 않다. 따라서 융이 보는 건강한 사람은 어떠한지 정확하게 그려보기가 더욱 어렵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격 특징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 그들이 자기 자신을 알고 받아들인다는 것, 타인 또한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관대하다는 것, 자신과 성격 전체를 통합해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일방적이고 다소 모호한 특성들 이상으로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다른 이론가들은 이보다 자세하게 건강한 성격을 묘사하여 제시했다.
융의 심리적 건강이라는 개념은 선택된 몇몇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분명하다. 자아의 인식이란 성공적으로 무의식과 충분히 대결할 여지가 있는 영리하고 충분히 교육받은 사람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융의 환자들은 모두 이 범주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대중들은 발달의 최상 상태를 놓칠 운명에 있다.
융의 이론의 궁극적 성격이 무엇이고 평가가 어떠하든간에 가장 선동적이고 도전적이었던 이론 중의 하나였음은 명백하다. 그의 저서들은 읽기가 어려운 반면, 넘치는 역사 의식과 인간 성격의 감추어진 측면에 깊은 경의를 가진 그가 놀라운 천재임을 보여준다. 융의 통찰이 인간의 일반적 본질을 보여주는지 자기의 본질만을 보여주는지 앞으로 두고 볼 문제이다. 당분간 그는 인간 성격이라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도록 하나의 흥미로운 형태와 모양들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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