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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4. 완전주의를 치유하기

힐링&바이블센터 2006. 5. 6. 13:53
 

 완전주의를 치유하기


완전주의가 신앙 안에서 나타날 때는 더욱 위험한 형태로 나타난다. 믿음 안에서 더욱 완전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완전의 모조품이 바로 완전주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겉으로는 좋게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개인들을 억압하고 상처를 받게 하며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 가는 사단의 또 다른 전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완전주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①꼭 해야 한다는 압박감


“ 나는 좀 더 잘 해야 해”

“나는 좀 더 잘했어야 하는데..”

“나는 좀 도 잘 할 수 있어야 해”

“나는 만족할 만큼 잘 하지 못했어...”

“나는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② 자기 자신을 멸시하는 것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므로 자신을 멸시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나를 기뻐하시지 않을거야”라고 스스로 판단한다.


③ 근심


반드시 잘 해야 한다는 느낌과 자기를 멸시하는 태도는 죄책감과 근심, 그리고 자기 비난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하나님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고 만족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고 깊은 영혼에 근심으로 스며들어온다. 자기 비난과 자기 정죄가 무섭게 자리 잡는다.


④ 율법주의


완전주의자들의 과민한 양심과 철저한 죄책감 밑에는 아주 세심한 행동과 율법주의가 깔려 있다. 율법주의란 외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들과 규칙들, 그리고 제한된 법칙들을 융통성 없이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종의 멍에를 지게 되고 언제나 마음의 평안이 없다.


⑤ 분노


완전주의자는 언제나 만족이 없으며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부족한 마음을 갖는다. 그러면서 언제나 실망시키는 자신과 또한 자신에 대하여 언제나 만족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 분노를 갖게 된다. 자신이 한 것을 하나님을 만족시키기에는 언제나 역부족이다. 이러한 압박감이 모든 자유와 기쁨을 잃게 하고 무서운 분노가 나타나게 한다.


⑥ 부인


그러나 이러한 분노 자체를 부인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노가 완전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에게는 또 다른 최책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냉냉해 지고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용서의 관계, 은혜의 관계를 체험하지 못한다.


⑦ 포기와 냉소


완전주의자들은 결국에는 냉소주의자가 되기 쉽다. 아무리 헌신해도 아무리 봉사를 해도 만족이 없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이 만족하셨다는 마음의 평안이 없기 때문에 자포자기해 질 수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완전주의자들이 치유 받을 수 있을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을 믿는데 있다. 또한 욥의 경우와 같이 완전주의의 치료는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신학을 바꾸는 데서 가능하다. 만약 무서운 하나님, 정죄의 하나님이라는 신관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완전주의로부터 해방받기가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자체이시며 우리의 도덕적 타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은혜의 체험이 없이는 완전주의의 치료를 불가능하다.


욥도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자”였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치유하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스스로 범죄하지 않고 완전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의 병도 치유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하여 왜곡된 말을 하였던 친구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친구를 위하여 빌면서 온전한 치유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초인적 자기(super YOU)와 실제적 자기(real YOU)를 구분하고 찾아내는데 있다. 실제적 자신을 아는 것...이것이 완전주의의 치유이다. 완전주의자는 자신이 실제로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초인적 자아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향하여 부단히 노력해 왔기 때문에 실제적 자기와 초인적 자기와의 구분을 하지 못한다.


초인적 자기는 실망해서도 안 되고 분노해서도 안 되고 연약한 면을 보여서도 안 된다. 그리고 갈등해서도 안 되고 평범한 행복만을 누려서는 안 된다. 더 커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슬픈 감정이나 연약한 감정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 언제나 완벽하게 감정을 처리하고 일을 처리해야 한다. 완전주의자가 지향하고 바라보고 자신인 줄 알고 속고 있는 이러한 초인적 자아가 거짓된 실체임을 발견할 때 완전주의는 치유가 가능한 것이다.


결국 영성에서 말하는 “나의 현주소”를 찾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너무 모르는 것도 문제이다. 나의 실제적인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바라보고 직시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초인적 자아와 실제적 자아와의 깊은 괴리감에서 해방할 수가 있다. 초인적 자아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허상이다. 그리고 실제적 자아를 묶어 노예로 만드는 영적 어두움이다. 만일 초인적 자아와 실제적 자아를 발견하고 너무나 큰 골이 있다고 자인한다면 그 간격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갈등하기도 하고 연약하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사랑하고 인정하면서 받아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초인적 자아로 살아가려고 만들어놓았던 거짓된 의무감, 책임감으로부터 해방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노력으로부터도 자유해야 한다.





출처 : 아버지와 함께 쓰는 신학이야기
글쓴이 : 윤남옥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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