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말 뚝(출애굽기 27:19; 35:18)
성막은 광야에 세워졌습니 다. 광야는 기후가 좋지못합니다. 날씨가 변화무쌍한 곳이 광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광야에 세워진 성막은 40년동안 한번도 사고를 당했다는 기록이 없습 니다. 40년동안 성막을 향하여 폭풍우도 쳤을 것이며 그러나 성막은 움직이거나 넘어지지 않고 견고하게 이겨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진 을 치고 있는 곳 중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이 성막이였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생각하면서 지은시가 시편91편입니다. 시편 91:1 '지존자의 은밀 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편 91:7,9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 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여기에 지존자 의 은밀한 곳이란 ? 곧 전능자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를 말합니다. 그리고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한다는 것은 그룹천사들의 날개아래 거 한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성소의 천장은 4색실로 짠 그룹천사가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소안의 제사장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 고 천사의 날개아래 있기 때문에 모든 질병과 위험에서 완전하게 보호를 받았으며 편히 쉴수가 있었습니다.
이 성막은 그리스도를 말해주 는 것입니다. 성막안에 있는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안의 제사장이 영원한 보호를 받았듯이 그리스 도 예수안에 있는 성도는 이 땅위에서 또한 영원히 보호와 평화를 누릴수가 있게된 것입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를 헤칠자가 없습니 다. 그것은 성막의 견고성에서도 볼수가 있습니다. 성막의 견고성은 지난주에 공부하셨듯이 뜰의 울타리와 성소의 울타리를 단단하게 세웠기 때문입니다. 성소의 울타리만 해도 조각목에 금을 입혀서 무려 48개에 달하는 널판에(한개의 널판에 두개의은받침을 받침) 96개의 은받침위에 세워졌으며 또한 밖으로 조각목에 금을 입힌 4개의 띠를 띠우고, 안으로 역시 조각목에 금을 입힌 1개의 띠를 띄웠기 때문에 견고하기가 이를데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렇게 견고하게 세운 벽위에다가 네겹으로 지붕을 올려 놓았기 때문에 어떤 조건의 기후나 아무리 억센 비바람도 방지할수가 있었습니다.
말 뚝
이렇게 성막을 견고하고 안전하게 붙들어 주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말뚝과 줄입니다. 그것들은 성 막 주변에 깊숙히 박혀서 줄을 맬수 있도록 해주는 노출되어 있지 않는 말뚝과 이 말뚝에 줄을 단단하게 묶어서 성소의 지붕과 성막뜰의 울 타리를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켜 주는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그래서 성막은 말뚝과 줄의 역활로 40년동안 사막의 어떤 강풍이나 폭풍이 성막을 사정없이 몰아쳤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막 자체가 안전하고 견고했기 때문에 성막안에 있는 제사장은 안전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신자들도 그처럼 안전한 것입니다. 말뚝의 사명을 가진 사람은 정직해야 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제자리를 지킬수 있는 사람이여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얻어쓰고 갚기 싫어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어느날 대중목욕탕에 갔는데 거기서 빚주인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대낮에 용빼는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벌거벗고 도망을 할수가 없어서 꼼짝못하고 잡혀서 돈을 갚아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직하지 못하면 나중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되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는 용빼는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도망할수가 없습니다.
1) 안전한 이유 ?
이 천막의 말뚝을 영어성경은 *핀* *못* *말뚝*등 여러가지로 사용합니다. 이사야22:23-24절에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단단히 박힌 못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2:23-24 못이 단단한 곳 에 박힘같이 그를 견고케 하리니 그가 그 아비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그 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항아리까지리라
예수님은 잘박힌 단단한 말뚝과 같습니다. 이 말뚝에 나를 메고 살면 결코 길을 잃 어버릴 염려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양의 특성중에 하나는 미련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련하다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초원에 양들을 풀어 놓으면 제각 기 마냥 흩어지기만 합니다. 목자가 피리를 불지 않으면 한없이 흩어지고 돌아올줄을 모릅니다. 양들은 한 여름철에도 떨어져서 눕지 않고 서로 붙어 서 눕는다고 하니 얼마나 단순한 짐승인지 상상이 됩니다. 미련하고 아둔한 짐승이 양입니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 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그러나 양의 또하나의 특성은 양은 미련하지만 양이 사는 것은 목자의 음성을 들을줄 안다는 것 입니다. 양은 미련하여 제갈길로 가다가도 목자의 음성이 들리면 그 소리를 듣고 순종하는 것이 양입니다.
요한복음 10:4-5 '자 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 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미국 시골에 가면 목장에 소나 양들을 키우는데 울타리를 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시골 에 가면 미국처럼 넓은 땅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짐승을 줄로 메고 말뚝에 묶어 놓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제각기 딴 길로 가버리고 말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마치 울타리 없는 목장과 같고, 말뚝에 메여있지 않는 짐승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정욕을 헤메이며 따라 살다가 고통을 받고 결국에는 멸망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있는 인생은 울타 리가 있는 목장과 같고 말뚝에 메여 있는 짐승과 같아서 주인의 보호와 돌보심 가운데 인도함을 받을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울타리와 같고 말뚝 과 같습니다.
(복음성가) 멀고 험한 이 세상길 정처없는 나그네 길.
말뚝의 사명이란 ?
자신을 알고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말뚝임을 알고 무슨일이 있어도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합니다. 제자리를 지킨다는 것 은 남을 탓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교회에서 세례식을 하는데 목사님께서 한사람씩 차례대로 세례문답을 하였습니다. 그중에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한분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십니까?* *예 믿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누구 때문 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까?* *그야 물론이죠, 집에 있는 못된 며느리 년 때문이죠....* *내 며느리는 죄를 많이 짖는 사람이랍니 다...
아직 말뚝의 사명을 깨닫지 못한 할머니이십니다. 주님은 이웃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기 보 다 먼저 나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을 때 비로써 교회를 굳세게 하는 말뚝이 될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에 게 이러한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시급한 일입니다.
줄
성막에서 말하는 *줄*은 성막의 여러 부분들은 서로 든든하 게 묶어서 요동하지 않게 하는 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줄*의 의미는 신자들의 유일한 소망이 되고 있는 *사랑*을 말해 주 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호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세아 11: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저희에 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 신자들이 세가지의 줄을 붙들어야 합니다
1) 믿음의 줄을 붙들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 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2) 소망의 줄을 붙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3) 사랑의 줄을 붙들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43- 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 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성도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누릴수도 없고 축복을 받을수가 없습니다. 성도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축복을 모두 놓치고야 마는 것입니다. 또한 소망이 없이는 결코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이 기쁨이 없습니다. 육적인 기쁨은 한계가 있고 완전한 기쁨이 아닙니다. 춘향이가 이도령을 만나야 온전한 기쁨이 있고, 견우가 직녀를 만날 때에 기쁨이 있 었던 것처럼 신자는 하나님을 만나고자하는 소망중에 온전한 기쁨을 누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한줄은 약해서 끊어지기 쉽고 두 줄도 쉬 끊어지기 쉬우나 삼겹줄은 단단하여쉬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믿음, 소망, 사랑의 삼결줄을 붙들어 믿음 에서, 소망에서, 사랑에서 덜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