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공간/성경공부 자료실

성결

힐링&바이블센터 2009. 1. 24. 11:53
제7장 성결과 동의어들


1. 성결(거룩, Holiness)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결은 한문번역이고, 우리 말로는 거룩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성결이나 거룩은 번역상의 차이일 뿐 사실은 같은 말이다. 성결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성서적 용어이다. 성결의 성서 어원적 의미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광휘이다. 이는 영광과 같은 뜻이며 빛의 충만, 영광의 충만을 의미한다. 둘째는 성별이다. 이는 구분되었다는 뜻이다. 셋째는 정결이다. 이는 깨끗함을 뜻한다. 정결은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을 뜻한다.

그런데 성결이란 단어를 하나님께 사용할 때와 다른 피조물에게 적용할 때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인간에게 적용할 때는 광휘의 개념은 없고 성별과 정결의 개념만 있다. 하나님의 성결은 절대적 성결이라하고,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의 성결을 상대적 성결이라 한다.

2. 제2의 은총

이 말은 칭의, 중생과 비교할 때 주로 사용된다. 칭의, 중생이 첫번째 은총과 축복의 경험이고 변화라면, 성결은 그 후 두번째로 경험하는 은혜와 축복이요, 또 다른 온전한 변화가 자신 안에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할 때 첫번째로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선언하신다. 이것이 칭의이고, 칭의와 동시에 중생이 일어난다. 중생한 신자가 자기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죄의 뿌리 즉 악한 본성을 발견하고, 두 번째의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정결함을 받는다. 이것이 성결이다. 요약하자면, 행동으로 범한 자범죄는 칭의에서 용서받고, 타고난 악한 본성으로서의 죄 즉 운죄는 성화에서 정결함을 받는다.

3. 성령세례

성령세례를 성결과 동일시하는 해석상의 근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1)성령세례의 체험은 모두 순간적이다. 2)둘 다 이차원적인 은혜의 체험이다. 3)성령세례는 정결케 하는 세례이다. 성령세례는 성결케 되는 구체적 방법을 뜻한다. 성령세례의 순간 그는 완전한 성결의 체험을 하게 된다.

4. 악한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음

초대교회의 어거스틴부터 아퀴나스, 루터, 칼빈, 그리고 웨슬레 모두가 일치하는 것은 준생한 자 안에 아직도 죄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 본성의 교리"라고 한다. 즉 은혜로 인하여 거듭난 사람에게 거룩하고 의로운 새 본성이 주어진다. 하지만 악한 옛 본성은 변화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자들은 이 옛 본성은 일생동안 사람에게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웨슬레는 옛 본성이 살아있는 동안에 온전히 사라지거나 변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성결의 한 내용이다. 원죄가 온전히 사라지거나 변화되어 성령에 의한 새 본성만이 내 안에 존재하게 된다.

5. 마음의 할례

웨슬레는 1733년 1월 1일에 옥스포드 대학교의 성 마리아 교회에서 대학교 전체를 상대로 "마음의 할례"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였다. 그 설교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이상과 목표로서 성결을 제시한다. 성결을 마음의 할례로 표현하는 것은 신자들의 마음에서 무엇인가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생래적인 죄를 제거하고 거기서 해방되는 것이다.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하나님으로만 기뻐하고, 하나님만으로 행복하고, 하나님을 향한 삶으로서의 새 출발이 곧 마음의 할례이다.

6. 마음의 정결

하나님께서 사람을 깨끗하게 하실 때에 그 사역의 주체적인 대상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란 단순한 감정이나 생각만이 아니라, 의지, 정서, 지성 등을 모두 포함하는 속사람 전부를 나타내는 성서적 표현이다. 성서에서 사람이라는 표현은 곧 그의 마음을 의미하며, 이는 전 인격적 총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마음을 정결케 한다는 것은 죄인을 온전히 깨끗케 한다는 말과 같다. 이 말은 우선 도덕적 정결을 의미하며 또한 "의도의 순수성", "동기의 순수성"을 의미한다.

7. 온전한 사랑

이 용어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교리에 대하여 오해와 비난이 일어나자, 웨슬레가 그를 설명하기 위하여 가장 즐겨 사용한 말이다. 완전한 사랑은 성결에 대한 적극적 설명이다. 온전한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웨슬레가 자주 인용한 성경은 요한일서이다. 그 중에서도 요일 4:16-18절을 많이 인용한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다른 것을 목적으로 하고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요 기쁨이어야 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쁨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웨슬레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완전한 사랑에 의하여 우리의 생활이 전적으로 지배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때에는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하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은 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죄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바로 성결의 적극적인 면이다. 사랑은 언제나 동적이기 때문에 성결은 자라고 동시에 활동적이다. 여기에 기독교 윤리의 근거가 있따.

8. 완전한 성화

성결과 성화는 그 어원이 같다는 점에서 가장 가까운 동의어들이다. 구약성서의 "카도쉬"라는 히브리어 단어와 신약성서의 "하기오스"라는 헬레어 단어는 성서에서는 성결과 성화 두 단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성결과 성화는 동일한 사항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두 용어를 약간 다른 관점에서 사용한다. 즉 성화는 인물이나 사물이 거룩하게 되는 행위 또는 과정으로 정의하고, 성결은 성화의 결과로서 이루어진 상태로 정의한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이라면, 성결은 그 결과로서의 거룩해진 상태를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어를 사용할 때 "성화를 경험했다." 또는 "성화의 은혜를 체험했다."라는 것이 보다 올바른 표현이 된다.

성화가 일반적으로 구원의 전과정을 의미하고, 또 성서에서도 중생한 성도들에게도 사용되고 있으므로, 웨슬레는 거기에 "완전히" 또는 "전적으로" 드으이 낱말을 덧붙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보다 완전하고 높은 구원의 단계를 강조하고자 했다. 완전 성화를 정의하면 "완전히 헌신한 성도에게 믿음을 통하여 모든 죄로부터 그 마음을 정켤케 하고, 성령에 의하여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9. 그리스도인의 완전

웨슬레의 성결 운동에 대한 가장 큰 오해와 비난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용어에서 기인한다. "완전"이라는 단어가 바로 걸림돌이 되고 만 것이다. 완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은 성서가 의미하는 완전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에서 말하는 완전은 어떤 물건이 처음의 의도나 계획에 일치할 때에 씌여지는 단어이다. 맥도날드가 이 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즉 "우리는 어떤 물건이 계획된대로의 목적에 이바지하게 될 때, 그 물건을 완전한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 물건이 다른 목적을 위해서는 쓰여지지 않을지 모르나, 그 물건을 고안한 사람의 목적대로 일을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그 물건은 완전한 것이다."

웨슬레는 "완전에 관하여"라는 설교에서 완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1)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2)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
3)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장)를 맺는 것
4)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도덕적 형상의 회복)되는 것
5)내적 외적 의, (이것은 마음의 순결에서 오는 생활의 성결이다.)
6)하나님께서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성화시키는 것
7)하나님께 대한 완전히 헌신 하는 것
8)예수를 통하여 찬미와 감사의 하나님께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계속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
9)모든 죄에서의 구원

조종남 박사는 웨슬레의 기독자의 완전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1)이것은 종교의 진수이다.
2)이것은 동기와 사랑 안에서의 완전이다.
3)이것은 순간 순간 주를 의지함으로써 유지되는 완전이다.
4)이것은 전도와 봉사의 원동력이 된다.

한영태 박사는 여기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한다.
1)이것은 절반의 크리스챤이 아님을 뜻한다.
2)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뜻한다.
3)이것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상태를 뜻한다.

10. 완전한 구원

이 용어는 성서에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성서 구절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중요한 구절은 "평강의 한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그리고 그 성서 구절들 중에서 중요한 단어는 "온전히"라는 단어이다. 여기서 "온전히"라는 말은 첫째 윤리적인 의미를 지닌다. 즉 모든 죄(내적, 외적)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의미한다. 둘째로 이 말은 구원의 정도 또는 단계를 의미한다. 둘째로 이 말은 구원의 정도 또는 단계를 의미한다. 웨슬레의 구원관은 궁극구원 즉 영화를 향한 종말론적인 목표를 향하여 계속 상승하는 점진적인 성장과정과 그 중에 중생과 성화라는 두 순간적인 요소가 있다. 이 과정 중에 완전한 성화는 현세 구원의 가장 정점이라는 뜻에서 완전한 구원이라고 한다.

11. 가나안의 안식

이 용어는 복음적 안식, 신앙의 안식, 그리고 뿔라의 안식등으로 불린다. 웨슬레가 성서적 성결의 경험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한 데서 부터 이 용어는 유래하였으며, 옛날 감리교도들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며, 현재도 영국감리교회 찬송가 562장에 그대로 수용되어 있다. 이것은 첫째로 신앙의 두번째 경험 즉 성결의 경험을 확실히 가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것은 사탄의 종, 죄의 종된 신분에서 해방됨을 의미하낟. 곧 중생의 경험이다. 두번째로 이 용어는 신앙의 광야의 시련 상태가 끝나고,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있음을 가리킨다. 중생한 신자가 점진적 성화의 과정 중에 겪었던 유혹, 시련, 때로는 실패와 후퇴는 끝나고, 이제는 복음이 약속한 평안과 화평을 누리는 승리의 단계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이 용어를 사용함에 문제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요단강을 건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은 성도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들어간 가나안은 성도가 미리 맛보는 천국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바른 해석이다. 성결한 자가 이 현재적 천국을 가장 확실하게 맛보는 자이다.

12. 성령 충만

성령 충만은 성령 세례와 사실상 같은 말이다. 그러나 개념상의 구분은 있다. 성경 세례가 성결케 되는 체험적인 방법이라면, 성령 충만은 그 성결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어덯게 성결한 삶을 계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성령 충만을 유지하면 된다. 요약하면 성경 세례는 성령을 주셔서 내적 정결과 사랑의 충만을 주시는 최초의 경험이고, 동시에 성령 충만이 이루어진다.

결론

성결이란 중생한 후에 이차적인 은총을 받아 변화되는 것이며, 이 은총은 성령 세례의 경험이다. 이를 통하여 육체의 소욕 곧 악한 죄성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마음의 할례를 행하며, 그 결과로 더러운 마음이 정결하게 된다. 내적 외적 모든 죄가 사라진 빈 마음은 동시에 성령이 주시는 온전한 사랑의 충만을 이룬다. 이것을 완전 성화의 순간이라고 한다. 이 완전 성화를 경험한 성도는 이제 성결한 상태에 있게 되며, 온전한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인격을 갖추게 된다. 그는 현세에서 구원이 가장 온전한 데까지 이르렀으며, 가나안의 안식을 누리며 산다. 이러한 삶을 계속하기 위하여서 언제나 성령 충만한 신앙이 필요하다. 이것이 성결이요, 성결인의 모습이요, 그리고 성결인의 삶이다.


'사역 공간 > 성경공부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슨의 성결론  (0) 2009.01.24
요한웨슬레의 성결  (0) 2009.01.24
예수님의 성령의 성령론  (0) 2009.01.24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0) 2009.01.24
성령충만의 실제성 연구  (0) 2009.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