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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성령의 성령론

힐링&바이블센터 2009. 1. 24. 10:53

예수님의 성령의 성령론


      서 론

      본 소논문의 목적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 근거한 성령론을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사용한 자료는 신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이 성령님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한정하였다 (실제 조사결과 성육신 전의 예수님이 직접 성령님에 대해 말씀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기존의 조직신학의 성령론보다는 제 한된 자료를 가지고 성령론을 구성함으로 부수적인 한가지 잇점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이 성령님에 대해 하신 말씀으 로만 성령론을 구성한 것은 기존의 조직신학의 성령론과 어떤 점에서 한계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령론을 구성함에 있어서 기존 조직신학의 분류 방식을 이용하되 기존의 지적 선입관을 가급적 배제하고 작업 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신구약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 말씀한 것을 종합하여 주제별로 정리하였다. 본 논지의 이 탈을 방지하기 위해 주석적 논란문제 그 자체는 가급적 다루지 않았고, 반면 성령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이것을 주제별로 배치하여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 어떻게 말씀 하고 계신지를 살펴보려고 노력하였다.

      1. 예수님이 명명한 성령님의 호칭(상징어 포함)

      성경에는 성령님에 다양한 호칭들이 나타나고 있다. 호칭은 그 분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성령님의 호칭을 살펴봄으로서 성령님의 속성을 살펴 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명명하신 호칭만을 다루도록하겠다.

      1.1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눅 24:49)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성령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선물중에 가장 귀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 즉 성령님을 주신 것이다(마 7:11; 눅 11:13). 이것은 구약(겔 36:27; 욜 2:28등)에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마음에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을 상기시켜 준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은 위로부터 오며 능력을 주신다. 이 약속의 성취는 상기 귀절이 보여 주듯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나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성취되어 진다.

      1.2 보혜사(요 14:16, 26, 15:26, 16: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요 14: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5:26)(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더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며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요 16:7)

      원어는 '파라클레토스'이다. 이 동사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부르다', '소환한다'를 의미한다. 신약 성서에서 이것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V.C. Pfitzner, 지미숙역, [요한복음], (서울: 컨콜디아사,1993), p. 263.}}: '위로하다, 또는 용기를 주다, 경고하다, 교훈하다, 충고하다'. '돕는 자'(Helper: TEV), '위로자'(Comforter: AV)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요한은 법적인 용어(심판, 증거)를 즐겨사용하기 때문에 이 파라클레토스를 피고측의 변호인으로 간주할 수도있다. '보혜사'(Counsellor)가 그래도 적절한 번역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예수님의 묘사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한 역할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 Ibid., p. 263.}}. 보혜사로서 성령님은 영원히 성도들과 함께 있으며 예수님이 말씀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신다. 원어적인 의미를 고려하면 보혜사로서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를 돕고, 위로하며, 변호하시는 분임을 나타낸다.

      1.3 진리의 영(요 14:17, 15:26, 16:13)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다. 진리의 영이라는 것은 성령님이 진리의 근원이 되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참된 진리는 성령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세상은 진리를 받지못한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진리의 영이 함께 거하시고 또한 성도들 안에 계신다.

      1.4 물(요 4:14), 생수(요 7:38)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예수님은 성령님을 물로 호칭하셨다.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야곱 우물의 물과 대조하여 사용하신 상징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와 유사하게 예수님은 성령님을 생수라고도 말씀하셨다. 이는 초막절을 맞아 물깃는 행사와 관련된 듯이 보이는 상징어라고 하겠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38)

      예수님은 물, 생수를 사용하심으로 성령님이 우리 몸과 영혼의 갈급함을 만족시켜 주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세상이 주는 것은 야곱의 우물물과 같이 한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하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것이다. 이 생수는 예수님을 믿는 자가 받을 참된 복인 것이다.

      1.5 바람(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8) 바람은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명명하신 것은 아니라 성령님에 대한 유비로서 사용하신 말씀이다. 바람은 그것이 원하는 대로 불기 때문에 그것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 이와같이 성령님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때와 장소에서' 믿음과 생명을 창조한다(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 제5항). 바람이 임의로 불며 소리를 들어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이와같이 성령의 역사는 신비인 것이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알듯이 성령님의 사역이 일어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성령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6 아버지의 성령(마 10:20), 하나님의 성령(마 12:28), 하나님의 손(눅11:20), 주의 성령(눅 4:18)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20)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8)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11:20)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성령, 하나님의 성령, 하나님의 손, 주의 성령이라고 명명하신 것은 성령의 명칭이라기 보다는 성령님의 능력과 출처에 관계하여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2. 성령님의 신성

      2.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렬로 기록되어 있다(마28:19-2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9-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렬로 기록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름이 단수로 사용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동등하게 신성을 가지신 분임을 지지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님이 단순한 어떤 힘이 아닌 하나님(신성)을 되심을 알려준다.

      2.2 성자와 동질의 보혜사(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요 14:16)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아버지게 구하여 보내시겠다는 것을 보아 예수님 자신이 보혜사 이심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된 '또 다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알로스'이다. '알로스'는 '똑같은 것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상복, [성령님 사랑해요], (서울: 도서출판 횃불, 1994), p.51.}}. 따라서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 같으면서도 또 다른 개체적 인격을 가지신 분임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듯이 성령님도 하나님인 것이다.

      3. 성령님의 사역

      3.1 환난중에 대언해 주신다(마 10:20; 막 13:11; 눅12:11-12).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20)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막 13:11)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열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눅 12:11-12)

      성령님은 성도가 환난중에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를 생각나게 하고 가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핍박을 받을 경우 염려치 말고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로 대답하여야 한다.

      3.2 능력을 주신다(눅 24:49; 행 1:8).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눅 24:49)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성령님에 의해 능력을 받기까지 예루살렘 성에 유할 것을 명하셨다. 또한 성령님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온 유대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에 주요 초점이 있다.

      3.3 예배를 예배되게 하신다(요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3-24)

      성령님은 예배를 예배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새시대의 예배는 더이상 장소문제가 아니라 성령안에서, 진리안에서 드려져야 한다{{) David E. Holwerda, 류호준역, [요한복음], (서울: 기독교문서 선교회, 1992), p. 63.}}. 우리의 예배가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한다.

      3.4 성경을 영감되게 하셨다(마 22:43; 막 12:36; 눅 4:17-1921; 요 14:26, 요 15:26)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마 22:43)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막 12:36)

      다윗이 시편 110편 1절이하에 한 노래는 성령님에 감동하여한 것이다. 본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구약 적어도 시편 110편을 성령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는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이 자체만을 가지고 일반화해서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구약 모두가 영감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영감설을 지지하는 예수님의 말씀리라는 점에서 의미있는 구절이라 하겠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구약시대에도 성령님의 감동이 있었다는 점이다. 구약시대에는 특정인물에게 한시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령님께서 역사 하신 것이다(물론 이것은 현재의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는 논증되기에 근거 자료가 부족하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17-19, 21)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글뿐 아니라 이사야의 글이 응하였다고 하심으로 자신이 구약을 성취시키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님에게 성령님이 임하심은 복음전파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이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첨부적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인정하고 계신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보혜사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신다. 즉 예수님의 영광과 사역을 증거하신다.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제자들은 3년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많은 것을 목격하였으며 배웠다. 이제 예수님이 떠나시게 되면 보혜사가 오실 것인데 이 보혜사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행한 모든 일들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셨다. 따라서 이 말씀은 사도성을 가진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4복음서의 기록이 성령님께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즉 우리는 여기서 4복음서가 성령님에 의해 영감되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5:26)(

      진리의 성령님이 오사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4복음서 뿐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신약의 서신서들도 성령님에 의해 영감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3) 진리의 성령님은 제자들을 진리로 인도한다. 성령님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한다고 함으로 성령님은 바로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씀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도행전은 성령님이 사도를 통해서 행하신 사역이시기에

      사도행전의 영감성 또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님이 장래일을 알리시리라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요한계시록을 상기시킨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친히 교회들에게 명하시기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 11, 17, 29, 3:6, 13, 22)라고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요한계시록도 성령님에 의해 영감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3.5 거듭나게 하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요 3:5-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3:5-6)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으로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도덕적, 철학적 어떠한 노력으로도 불가능하다. 왜냐면 육으로 난 것은 결국 육이요 오직 성령으로 난 것이 영이기 때문이다.

      3.6 영생을 주신다(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물로 비유하셨고, 아울러 이 물을 먹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영생을 주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3.7 죄, 의,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신다(요 16:8-11).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요 16:8-11)

      성령님은 죄, 의,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신다.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지않았기 때문이다. 의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이유는 의로우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도리어 핍박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심으로 자신의 결백함(의로움)을 나타내심으로 성령님은 이제 세상의 불의를 책망하신다. 성령님은 또한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이는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과 죽음을 당하심으로 세상 임금이 쫓겨나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신다(요12:32). 이렇게 함으로 성령님은 이제 심판의 확실함을 세상에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3.8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3)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에 믿는 자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성령님은 진리되신 예수님을 증거하시기에 예수님의 말씀과 모순된 것을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3.9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계 2:7, 11, 17, 29, 3:6, 13,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3: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3:22))
      
      성령님은 교회와 함께 하시며 교회에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들로 하여금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을 명하고 계신다.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밧모섬에 있는 사도요한에게 하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승천 후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말씀하고 계신다.

      3.10 영원히 함께 하신다(마 28:19-20;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요 14:16))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계신다. 구약에도 성령님은 특정인물들(왕, 선지자, 제사장등)에게 한시적으로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한번 오신 성령님은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뚜렷이 차이가 난다. 아울러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9-29)

      이 말씀 후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 이후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셨고, 한번 오신 성령님은 영원히 함께 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종합하면 이러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성령님을 통하여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런 점에서 벌코프는 '구속을 적용하는 사역조차도 그리스도의 사역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루이스 벌코프, 권수경외 1인역, [조직신학](하),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88), p. 669.}}. 즉 그리스도는 자신이 생명을 바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공로로 세운 모든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서 지금도 하늘에서 그 사역을 계속하신다는 것이다.

      3.11 예수님과 그의 사역을 증거하신다(요 14:26, 15:26, 16:13, 14).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성령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다{{) 서철원, [성령의 사역], (서울: 한국 로고서 연구원, 1990),p. 14. 여기서 서철원교수는 '예수의 이름으로 보낸다'는 말은'예수그리스도의 권세에 의해 성령을 보내신다'는 말씀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님은 철저히 기독론적인 특성을 나타내게 될 것을 알 수 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한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 이것은 사도성을 가진 신약성경의 영감설을 암시하기도 한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5:26)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서 성령님을 보내신다. 진리의 성령님은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신다. 이점에서 성령님은 철저히 기독론적이다. 성령님이 역사하는 곳에는 바로 예수님이 증거된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3) 예수님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님께서는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한번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령님은 다른 어떤 것을 말씀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신다고 하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적용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 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요 16:14)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마다 예수님이 영광스러워진다.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 아닌 것이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사역이 잠시라도 예수님의 사역과 분리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울러 예수님의 것은 또한 아버지의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것이 모두 예수님의 것이고 성령님은 그것을 받아가지고 제자들에게 알린다. 우리는 여기서 삼위일체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온전히 하나되심을 보게 된다.

      4. 예수님과 성령님과의 관계

      4.1 성령님은 예수님의 사역에 능력으로 함께 하셨다(마12:28; 눅 4:18, 11:2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예수님의 공적 사역은 성령님의 임함과 함께 시작하였다. 예수님에게 성령님이 임하자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 하셨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8)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11:2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 냄으로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4.2 성령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근거로 파송되어진다(요 3:8-15, 20:22).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8)
      상기 구절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중에 하신 말씀이다. 성령님으로 거듭남에 대해서 니고데모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 3:9)라고 질문을 한다. 이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15)
      결국 상기의 문맥가운데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근거로 해서 니고데모가 질문한 성령님을 통한 거듭남이 이루어 질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후 부활하사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비로소 성령을 받아라고 명하셨다. 이전에는 약속상태로만 말씀하셨으나 이제는 친히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명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사역에 따른 귀결로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고 있다.

      4.3 성령님은 예수님이 떠나셔야만 오신다(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7)

      예수님은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실상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신다{{)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은 장소적으로 제한을 받으시지만 성령님은 영으로서 오시기에 이러한 제한을 받지 아니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사 예수님과 그의 사역을 증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떠나셔야만 보혜사가 오시기 때문인 것이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사 대속의 사역을 행하시고 아버지께로 가셔야 만이 예수님과 그의 사역을 적용하실 보혜사가 오시게 되는 것이다.

      5. 성령 훼방 죄

      5.1 성령 훼방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마 12:31-32; 막 3:29;눅 12:10).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막 3:29)

      예수님께서 정죄하신 성령 훼방 죄는 해석상 다소 난제에 속한다. 성령 훼방 죄는 예수님의 이적적 권능 곧 성령님의 능력을 사단으로 말미암은 사술이라 비방하는 서기관들에게 강한 경고로서 답변하신 것이다. 성령 훼방 죄는 성령님께서 부르시며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시는 분명한 일을 거부하고 고의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불신자들만이 범할 수 있는 죄로 알려져 있다{{ ) 김상복, op. cit., p. 15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눅 12:10)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 역시 성령 훼방 죄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성령님의 역사가 분명하게 보임에도 고의적으로 거부하며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결 론

      우리는 상기에서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 근거한 성령론을 구성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요약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예수님께서 호칭하신 성령님의 이름으로는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보혜사, 진리의 영, 물(혹은 생수), 바람, 아버지의 성령(하나님의 성령, 하나님의 손, 혹은 주의 성령)이 있었다. 이를 통해 성령님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으로 성도들을 변호하며 영생을 주시며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살펴보았다.

      2)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하신 신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알 수 있었다. 이점은 아울러 성령님이 단순한 어떤 힘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3) 그리고 성령님의 사역은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곳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성도들을 환난중에 지키시고 변호하시며 진리로 인도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 성령님을 통해서 거듭나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임한다. 성령님은 죄, 의,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 하시며, 아울러 예배를 예배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성령님은 성경을 영감되게 하셨고(자체 구절로서는 부족함이 있지만), 또한 해석자가 되어 주신다. 오늘도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성도들과 함께 하시고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

      4) 성령님은 예수님의 사역에 능력으로 함께 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사역에 근거하여 파송되어 진다.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이루시고 아버지께로 가심으로 성령님이 오시게 되었다.

      5) 성령 훼방 죄는 성령님께서 부르시며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시는 분명한 일을 거부하고 고의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용서받지 못한다. 이상과 함께 관찰된 것은, 구약 즉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 언급한 것은 필자로서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아울러 신약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일반은총적인 면에서의 성령님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성령님에 대한 언급은 주로 기독론적이며, 특별은총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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