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공간/성경공부 자료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함

힐링&바이블센터 2009. 1. 24. 10:22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이란

- 웨슬리 신학을 통해서 본 `그리스도인의 완전론' -

 

                                      성기호 (성결대 명예총장)

    그리스도인이 지상에 사는 동안 완전해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 칼빈과 웨슬리의 입장이 상반(相反)된다. 칼빈은 신자가 살아 생전에 완전케 된다든가 성결케 된다는 것을 부인한다. 한편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신자의 의무이기에 완전해져야 하며 또 완전해질 수 있다고 한다.

    칼빈은 루터가 말한대로 신자는 의인임과 동시에 죄인이기에(simul justus et peccarto) 중생으로 칭의(稱義)를 얻었으나 신자 속에 죄(sin in believers)가 있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는 완전해질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그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순간 즉 죽음의 순간에야 이루어진다고 한다.

    칼빈이 보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죄없는 완전(sinless perfection) 즉 신적(神的) 완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성을 가진 신자가 거룩해져 가는 성화(聖化)의 과정은 죽을 때에야 완성된다고 본다.

    그러나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 또는 성결이란 신자가 신적 완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법을 고의로 범(犯)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제한적 완전을 말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으로 내재(內在, indwelling)하는 죄성(罪性)으로부터 깨끗하여져서 죄를 짓지 않게 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완전 또는 성결이라고 부르는데 중생(重生)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결도 하나님의 은혜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둘째 번의 은혜로 본다. 중생이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과 같이 성결도 믿음으로 받는 순간적 은혜라 한다.

    칼빈은 신자의 생전에 완전 또는 성결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지만,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이루어주실 하나님의 약속이며 도달해야 할 신자의 의무라고 가르친다. 기독교 역사상 다른 어떤 교리적 논쟁보다 더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어왔던 그리스도인의 완전 또는 성결에 대해 웨슬리가 쓴 "그리스도인의 완전"(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이란 저서를 중심으로 그가 보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해 본다.

    웨슬리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믿게 되기까지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그가 23세가 되던 해인 1725년에 테일러감독(Bishop Taylor)의 "거룩한 삶과 죽음의 법칙과 훈련"(Rules and Exercises of Holy Living and Dying)이란 책을 읽는 동안 동기(動機)의 순수성(purity of intention)이 필요한 것을 깊이 느끼고 그 자신의 삶 즉 그의 생각, 말, 행위 일체를 하나님께 바쳐 거룩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웨슬리의 완전한 헌신과 성결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The Imitation of Christ)이다. 1726년에 웨슬리는 이 책을 읽으며 종교의 내적 본질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기까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동기와 감정의 단순함을 통해 마음과 말, 그리고 행동이 깨끗해야 하나님의 동산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2년 후인 1728년에 웨슬리는 로우(Law)의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과 "중대한 소명"(Serious Call)이란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반쪽만 바치는 헌신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자기의 몸과 생명, 그리고 전 재산까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죄인된 인간을 위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주신 분께 우리를 온전히 바치는 것이 마땅한 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의 삶과 진리의 유일한 표준인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완전 즉 성결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1729년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를 따르되 그리스도의 마음을 부분적으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소유하고 그가 행하신대로 따르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요한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는 그들이 옥스포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성결 즉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졌었다. 1729년에 그들이 성경을 읽을 때 사람이 거룩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을 깨달았고, 1737년에는 거룩함은 믿음으로 얻는 것임과 중생 후에 성결의 은혜가 뒤따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웨슬리는 1725년 이후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추구해 왔고, 1730년 이후에는 성경 한 권만을 주 교재로 삼아 연구하는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 a man of one book)이 되어 성경이 가르치는 바 그리스도인의 완전 즉 성결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이 때로부터 웨슬리는 성결에 대하여 설교하고 글을 써서 자기의 확신한 바를 세상에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웨슬리는 1733년 1월 1일에 옥스포드의 성 마리아 교회에서 "마음의 할례"(The Circumcision of the Heart)에 대하여 설교하며 성경이 가르치는 바 거룩함을 소개했다. 즉 죄의 씻음을 통해 영혼과 육체의 온갖 더러움에서 정결함을 입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해져야 할 것을 설교하였다.

    하나님께 바쳐야할 마음의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는 동기의 순수함은 물론 모든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과 온전한 헌신이 요청된다. 율법의 완성이요 계명의 목적인 사랑-온전한 사랑을 실천함으로 그리스도와 한 영으로 주와 합하여지며 이 때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성취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735년 말 미국으로 건너가기까지 요한 웨슬리는 그 동생 찰스와 함께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사랑의 필요성을 함께 확신하였고, 1736년에 사반나에 머물 때에나, 1738년 초에 귀로에서 읊은 시가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사랑으로 채워지기 간구하는 내용이었다.

    1738년 8월에 독일에서 그라딘(Arvid Gradin)과 긴 대화를 나누면서 "믿음의 완전한 확신"(Full assurance of faith)에 대하여 그의 간증을 들었는데 그때까지 웨슬리가 들은 가장 확실한 정의(定義)이었다. 그라딘이 웨슬리의 요청에 의해 라틴어로 기록해 준 믿음의 확신이란 `그리스도의 피안에서 하나님께 대한 굳건한 신뢰이며 그의 은총에 대한 확신이다. 마음의 최고한 평정이며 평온이며 평화이니 육체의 모든 욕망으로부터의 해방과 내재의 죄까지 포함한 모든 죄로부터의 단절이다'라는 것이다.

    웨슬리는 그의 동생과 함께 1739년에 "찬송과 거룩한 시"(Hymns and Sacred Poems)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그 책 24페이지와 122, 125, 153페이지 등에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들의 마음에 채워지기를 간구하는 내용과 온전히 거룩하게 하사 주의 소유를 삼아주시기 비는 기도문이 수록되어 있다. 웨슬리가 거룩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지기를 소원하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웨슬리가 그리스도의 완전에 대하여 처음으로 소개한 전도지가 "감리교도의 특징"(The Character of a Methodist)이라는 것인데 "내가 譴?얻었다함도 아니요"라는 말을 서두로 하여 친구들과 비감리교도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조심하며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에 대하여 묘사하는 글을 썼다. 1739년 말에 쓴 이 글에서 감리교도란 하나님을 사랑하되 온전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되 그 말과 행동에 있어서 정결하고 사랑할만하며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랑의 대상을 말함에 있어서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감리교도라고 말한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완전에 대하여 알기 쉽게 또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알기 쉬운 해설』(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이라는 책을 1766년에 출판했는데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을 낳는 뿌리가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만 인간의 비뚤어진 사랑이 바로잡혀질 수 있다고 진술하였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음과 같이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고 그리스도인의 완전 즉 성결에 도달하게 된다고 가르쳤다.

    땅에는 완전한 것이 없다는 반대에 부딪히면서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어떤 의미에서 불완전하며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것인가를 밝혀야 했다. 특히 1740년 말 경에 런던의 감독인 깁슨(Gibson)박사와 화잇홀(Whitehall)에서 대화하는 중에 웨슬리는 자기가 확신하는 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하여 숨김없이 또 꾸밈없이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깁슨 박사는 웨슬리와의 대화를 끝내며 당신이 말하는 완전에 대하여 세상에 공표하여도 좋을 것임을 권고받자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완전"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써서 발표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설교에서 `불완전한 완전'(a perfection that is imperfect)에 대하여 그 정의(定義)를 내렸다. 완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바이며,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일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신 명령과 그외에도 그리스도인의 온전을 추구하라는 성경 말씀을 무시할 수도 없고, 한편으로 완전이라는 개념이 오해를 유발시키는 것을 피하여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그가 말하는 완전의 의미를 소개하게 되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라도 불완전한 면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할 수 없고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서 불완전하다고 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쓸 수 있는 전지(全知)와 무오(無誤)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 인간적인 완전 즉 `불완전한 완전'을 추구함이 웨슬리의 과업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젖먹이라 하드라도 그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만큼은 완전하다는 것이 웨슬리의 입장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며 장성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것을 주장한다.

    비록 솔로몬이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을지라도 이 말은 율법시대에 속하는 말이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는 사실일지언정 은혜아래 있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즉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연약성이나 무지로부터 유래하는 잘못을 실수(mistake)라고 부르고,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로 범하는 것을 죄(sin)라고 구분한다면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의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털끝만큼도 잘못이 없다거나, 불꽃같으신 하나님의 눈에 허물이 없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의 인도 속에서 고의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성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실수 또는 무지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는 것도 율법의 위반이며 그리스도의 속죄가 필요함에는 틀림없으나 웨슬리는 이러한 실수를 죄로 부르지 않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라도 그가 범한 실수와 허물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의 죄(trespass, 또는 잘못)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침에서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이라는 것이 무죄적 완전(sinless perfection)이 아닌 제한적 완전임을 알 수 있다.

    웨슬리는 자발적인 죄와 비자발적인 허물 또는 실수를 다음과 같이 구별한다. 부패한 육신의 상태로 어쩔 수 없이 범하는 허물과 실수는 사랑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성경적 의미에서 죄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러나 죄든 실수든 간에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이 필요하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 하드라도 비자발적인 잘못을 배제할 만큼 완전치는 않다고 인정한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웨슬리의 표현은 교회 내에서도 많은 오해를 불러오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인은 완전해질 수 있는가?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존재한다면 그는 죄를 짓지 않는가? 등에서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반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완전이라는 말을 신적인 완전 또는 천사적인 완전으로 해석한다면 아무도 완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인간의 유한성 내지 연약성을 가진 채 온전한 헌신과 온전한 사랑을 바치려는 동기적인 순수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은혜로 그가 아는 바 하나님의 율법을 고의로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완전은 제한적 완전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제한적 의미를 간직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살아있는 동안 신자가 이루어야 할 의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완전하라" 또는 "온전하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완전이 신자가 죽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완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죽으라"는 의미와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칼빈이 해석하는 대로 무죄적 완전 또는 신적 완전의 개념에서 그리스도의 완전을 말하는 것이라면 육체를 떠난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는 성도들을 향하여 주신 "온전하라"는 명령은 죽음 이전에 도달해야 할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칭의(稱義) 이후에 주시는 성결의 단계를 지칭한다고 보아 잘못이 없다.

    웨슬리가 1766년에 처음으로 출판했고, 1977년에 4판을 인쇄한 "그리스도의 완전"이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11가지로 요약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주제에 대하여 웨슬리가 1764년에 밝힌 요약이다. )7) Wesley, 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 p. 106.

1. 완전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거듭거듭 완전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이것은 칭의 이전에는 올 수 없다. 왜냐하면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가 "완전한데 나아가야"하기 때문이다(히 6:1).
3.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죽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생존하고 있는 완전한 자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빌 3:15).
4. 그것은 절대적 완전이 아니다. 절대적 완전은 사람에게나 천사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만 속한다.
5.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인간을 무오자(無誤者)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에 머물러 있는 한 아무도 무오일 수 없기 때문이다.
6. 그것은 무죄(sinless)라는 것인가? 이런 용어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가치없는 일이다. 그것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7.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다(요일 4:18). 사랑은 완전의 본질이다.
8. 그것은 진보의 여지가 있다. 극치점에 이른다거나 더 이상 진보가 없는 정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정반대로 사랑에 완전해진 자는 더 급속도로 은총 중에 성장한다.
9. 완전한 자도 실수할 수 있고 또 완전을 잃을 수도 있다.
10. 완전해지기 전과 후에는 항상 점진적인 역사(gradual work)가 있다.
11.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순간적인가 점진적인가에 대하여는 생명의 정지 순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가 정지하는 순간도 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완전을 점진적인 면과 순간적인 양면을 갖는 것으로 이해한다. 웨슬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완전 또는 성결에 대하여 최초로 교리의 현저한 특징을 진술하였고 이를 강조한 부흥사요 설교가요 교리의 주창자가 된 것이다.

("목회와 신학" '9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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