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과 모압(출애굽기-신명기)
왕대일 교수(감신대 신학과, 구약학)
1. 모세의 오경(mosaic Pentateuch)
전통적으로 신앙공동체는 오경을 "모세 오경"(Mosaic Pentateuch)이라고 부른다. 오경의 말씀과 가르침, 계명과 법도 등을 모세가 전해주었다고 기억하거나 모세가 기록, 저술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경은 "모세 오경"이기보다는 "모세의 오경"(mosaic Pentateuch)이다. 오경의 기록자가 누구이던지 간에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오경은 모세의 삶, 모세의 공생애를 오경이 펼치는 이야기와 말씀의 틀로 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오경을 "모세 오경"이 아닌 "모세적인 오경"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오경 가운데서도 출애굽기-신명기는 모세의 일대기를 전한다. 출애굽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이야기와 말씀은 모두 모세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때 창세기는 모세의 뿌리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모세는 레위의 후손이고, 레위는 야곱의 아들이며, 야곱은 이삭의 아들이자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브라함은 노아와 아담의 자손이라는 것을 장엄한 서사시조로 들려주고 있다. 창세기의 골격이 족보인 것을 기억하자.
출애굽기-신명기는 모세의 공생애를 전한다. 모세는 사명을 좇아 살았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40년을 살았다. 모세가 애굽의 궁정을 뛰쳐나갈 때가 40세이었고(행 7:23), 하나님의 산(시내산,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가 80세이었으며(출 7:7; 행 7:30), 가나안 언저리 모압 땅의 비스가산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될 때가 120세이었다(신 34:7). 출애굽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긴 이야기와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비스가산에서 그 사명을 다할 때까지인 모세의 공생애 40년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오경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모세의 공생애이다. 모세의 전 생애를 기록하려고 했던 것이 결코 오경의 의도가 아니다. 공생애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기적적으로 살아난 탄생과정을 전하는 데만 초점이 아니다. 어린 시절을 포함한 성장기에 대해서는 아주 짤막한 에피소드만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공생애가 마감하면서 모세의 생물학적 인생도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것은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서에 예수의 생애가 수록되어 있지만, 예수의 전생애를 기록하고자 했던 것이 복음서의 의도가 아니다. 오경이나 복음서는 오로지 모세와 예수의 공생애를 펼쳐 보이는 데만 관심하고 있다.
2. 시내산과 모압
출애굽기-신명기의 두 축은 시내산과 모압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시내산과 모압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출애굽 1세대)은 모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출 19:1∼민 10:10). 모압에서 이스라엘(출애굽 2세대)은 하나님이 주셨던 말씀을 회상하며 해석하는 모세의 연설을 듣는다(신 1∼34장). 출애굽기-신명기가 강조하는 이야기의 축은 각각 시내산과 모압에서 선포되었던 말씀이다. 이 두 축을 놓고 앞에서는 애굽을 떠나 시내산까지 가는 여행이 소개되고(출 1∼18장) 뒤에서는 시내산을 떠나 모압까지 가는 여행이 끼여든다(민 10:11∼36장).
오랫동안 기독교신앙은 애굽에서 시내산까지 가는 여행(출 1∼18장)을 오경의 중심 사상으로 간주하였다. 억눌린 자의 해방과 구원을 이스라엘 신앙의 모판으로 단정하였다. 시내산에서 모압까지 가는 여행(민 10:11∼36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의 진면목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해방과 구원이 오경의 신앙을 여는 들머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경이 말하려고 하는 첫 번째 궁극적 경험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출애굽기-신명기에서 히브리인의 해방과 해방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건은 애굽에서 시내산까지, 시내산에서 모압까지 가는 여행 속에 담겨 있다. 이 여행은 진정 구원과 해방의 여행이다. 그러나 이 여행이 오경의 신앙이 털어놓고자 하는 궁극적 과제는 아니다. 이스라엘의 여행은 그 다음을 전하기 위한 예비적, 전제적 조건일 뿐이다.
오경에서 우리는 시내산에서 벌어진 사건(출 19:1∼민 10:10)과 모압 평원에서 벌어진 사건에 주목해야 한다(신 1∼34장). 오경에서 가장 긴 말씀이 이 두 단락에 수록되어 있다. 이 단락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건이다. 시내산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출애굽 여정을 회고하고 출애굽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왜 하나님이 야곱의 후손을 애굽의 압정에서 해방시켰는지, 그 이유를 들려주신다(출 19:1∼6).
모압 평지에서 듣는 모세의 연설(신 1∼34장)은 시내산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회상하면서 다시 해설하는 말씀이다. 시내산 이후 모압까지 40여년간을 유랑하면서 광야를 헤쳐왔던 출애굽 제 2 세대에게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려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그 삶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신명기가 시내산의 말씀을 회상하고 있다면, 그래서 신명기가 시내산에서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소리를 다시 들려주고 있다면 결국 출애굽기-신명기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은 시내산 사건이 차지하게 된다. 신명기(申命記)는 시내산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회상하여 설교조로 되풀이하고 있는 말씀이다. 결국 오경의 중심은 시내산에서 듣는 하나님의 말씀(시내산 법전)이다(출 19:1∼민 10:10).
3.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 시내산에서 일어난 일
왜 하나님은 출애굽의 여정을 시내산으로 이끌었는가? 시내산의 지정학적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내산에서 울려 퍼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초하룻날, 바로 그 날, 그들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은 르비딤을 떠나서, 시내 광야에 이르러 광야에다 장막을 쳤다. 이스라엘이 그 곳 산 아래에 장막을 친 다음에,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 가니, 주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 가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출 19:1∼6).
이스라엘이 시내산 자락에(문자적으로는 시내산 아래에) 장막을 치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문자적으로는 시내산 위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이제부터 모세는 산 위로 오르는 사람이다. 모세가 산 위로 오른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이다. 모세가 산 아래로 내려온다. 하나님의 말씀을 산 아래의 이스라엘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이제부터 모세는 중재자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서 있다. 산 위에 계신 하나님과 산 아래에 머물고 있는 백성 사이를 오간다. 성(聖)과 속(俗) 사이를 오가고 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중재자로 삼아서 펼치신 말씀이 무엇인가? 그 말씀에 담겨 있는 뜻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경험한 자들과 언약 맺기를 원하신다(출 19∼24장). 그리고 난 다음에는 언약을 체결한 백성들에게 성막을 건축하여 봉헌하기를 기대하신다(출 25∼40장).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출애굽기에 수록된 증언의 순서에 주목해야 한다. 해방과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최초의 근원적 경험이다(출 1∼18장). 거기에 근거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해야 하는 언약공동체가 되라고 주문하신다(출 19∼24장). 이 것은 출애굽 신앙이 증언하는 두 번째 근원적 경험이다. 이 두 경험에 기초해서 이스라엘은 세 번째 근원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막 공동체의 건설이다(출 25∼31, 35∼40장).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산 위로 올라오게 해서 성막의 청사진을 펼쳐 보이시는 40일간(출 24:18; 25:1∼31:18) 산 아래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은 모세의 실종신고를 낸 후 아론을 시켜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을 세우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출 32:1). 그래서 성막 건축은 한 동안 중단되게 된다(출 32∼34장).
성막이 건축된 후에는 하나님은 시내산 아래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신다(레 1∼10장). 그 예배공동체에게 하나님은 정결한 가정을 이루라고 지시하신다(레 11∼15장). 그런 다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결한 사회를 건설하라고 명령하신다(레 17∼26장). 거룩의 체험이 정결로 정결한 삶이 그런 모든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행 지침을 내리신다(민 1:1∼10:10).
4. 하나님의 하산(下山)!
출애굽기 19:1-민수기 10:10이 전하는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은 성막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내산 위에 계시는 하나님이 시내산 아래에 있는 백성들에게 성막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나에게 예물을 바치게 하여라. 누가 바치든지, 마음에서 우러나와 나에게 바치는 예물이면 받아라....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 내가 너에게 보여 주는 모양과 똑같은 모양으로, 성막과 거기에서 쓸 모든 기구를 만들어라 (출 25:1∼9).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생각해보자. "나"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어디인가? "그들" 이스라엘이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겠다"는 말씀에 담겨 있는 참 소리가 무엇인가? 성막은 시내산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시내산 아래에 세워진다. 광야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 자손들 한 가운데에 세워진다. 성막을 건축하라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막 건축과 함께 산 위의 하나님이 산 아래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신다(출 25:22).
내가 거기에서 너를 만나겠다. 내가 속죄판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할 모든 말을 너에게 일러주겠다(출 25:22).
"거기에서" 곧 성막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만나시기를 원하신다. 성막(출 25-31, 35-40장)은 예배공동체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성막은 작은 우주이다(비교, 시 78:69).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7일을 쓰셨지만, 성막을 짓기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는 데에는 무려 40일을 사용하셨다(출 24:18)! 다음 두 구절을 비교해서 읽자.
천지창조 성막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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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1 출애굽기 39:43
창세기 2:1 출애굽기 39:32
창세기 2:2 출애굽기 35:1∼3(비교, 40:33∼34)
창세기 2:3 출애굽기 39:43
성막은 하나님의 하산을 증언한다.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려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부정한 세상 속에 들어가 "거하시려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성막은 이동식 성소이다. 성막은 성전이 아니다. 출애굽기 19:1-민 10:10을 둘로 가르는 분수령은 레위기 1:1이다. 레위기 1:1 이하에서부터 하나님은 산 위가 아닌, 산 아래 성막(회막)에서 말씀하시게 된다. 성막이 만들어진 이후부터 모세는 더 이상 산 위로 오를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성막과 함께 이동하고, 성막과 함께 캠핑하며 움직이는 사람들이 된다.
"모세의 오경"이 가르치려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모세의 오경"은 성막(미쉬칸, tabernacle)에 "거(居)하시는"(샤칸, to tabernacle)을 증언한다. "성막에 거하시는"(tabernacling) 하나님을 증언한다. 우리 속에 들어와 "거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요한복음 1:14은 바로 이 성막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개역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표준새번역 요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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