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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연구 5 의식법령의 시행(출35-40장)

힐링&바이블센터 2008. 3. 4. 22:05

출애굽기 35장에서부터는 성막 건축 양식이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성막 건축에 대하여 이처럼 자세하게 언급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성막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 거하실 장소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성막 건축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막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1. 성막

 

출애굽기 35-40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시하신 성막의 건축에 대해서 장구하며 세밀하게 나열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막의 구조는 어떻게 나누어져 있으며, 성막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성막의 구조

성막은 지성소와 성소로 나누어진다. 그 사이에는 두께가 거의 30㎝나 되는 두꺼운 휘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고, 그 위에 금으로 만든 그룹들(천사의 한 부류)이 날개를 펴고 있다. 이 지성소에는 1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가 온 이스라엘을 속죄하는 예식을 행하였다.

성소에는 떡을 놓아두는 떡상과 일곱 등잔이 있는 촛대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는 향단이 있다. 그리고 성막 뜰에는 제사장들이 몸을 씻는 물두멍과 번제를 드리는 번제단이 있다.

2) 성막의 의미

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지성소의 모양은 마치 하나님이 거하시는 궁궐과 같이 만들어져 있다. 수많은 천사들이 지성소 안벽에 수놓아져 있는 것을 본다면 그곳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은소인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감히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오직 1년에 한 번씩 몸을 성결케 한 대제사장만이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동물의 피로써 이스라엘의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피를 통해서만 이스라엘을 속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속죄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길밖에 없었다. 이것은 곧 우리 인류의 죄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다는 것을 예표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시적 사역이었던 것이다.

② 거룩한 곳

성막은 특별히 성막을 위해 구별된 레위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성막 주위에는 12지파가 둘러싸고 있었으며, 12지파와 성막사이에는 레위인들이 있었다. 그 이유는 부정한 자들이 함부로 성막에 접근하여 성막을 더럽히지 못하게 함이었다. 왜냐하면 성막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정결하게 구별되어야 했던 곳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의하여 성막이 거룩하여지고, 이스라엘이 거룩하여진다는 원리는 출애굽기와 특히 레위기를 통하여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③ 교제의 장소

성막을 회막(the tent of meeting)이라고 부르는 것(출40:2)을 보아서도 성막이 단순히 제사를 위한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만나 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 회중의 한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과 교제하고 계심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만남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④ 사죄의 은총이 주어지는 곳

성막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이스라엘을 죄 가운데서 치유하는 기능이다. 특히 속죄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죄를 직접 체험하였다. 더구나 대속죄일의 제사는 단순한 속죄의 이상의 의미, 즉 지성소가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施恩座)가 열리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2. 성막의 하나님의 통치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별한 거룩한 곳이다. 이 거룩한 성막은 하나님의 역사와 통치하심이 있다. 그리고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성막은 하나님의 어떤 통치하심이 있는가?

 

1) 직접적 통치의 상징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정좌하심으로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즉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제사장들에게 알려 그의 백성들과 교제하시며 이스라엘을 친히 다스리심을 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성막 안에 거하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선포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성막 위에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있었던 이유와 구름기둥이 떠올랐을 때 이스라엘이 진행하고 멈추었을 때 그곳에 장막을 쳐야 했던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출40:34-38).

 

2)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전진

왕이신 하나님, 백성된 이스라엘 민족, 통치의 규율인 율법,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그 나라의 영토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왕 대신 하나님께 그의 백성을 이끌고 그 땅을 정복하려 친히 진군하시며 지휘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정비하고 군대로써 정돈하고 계심을 우리는 민수기 1,2장에서 �아볼 수 있다. 그 군대를 계수하시고 그 진군 방향과 순서 그리고 동서남북에 각각 진을 치도록 하는 모습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지휘권을 해사하시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성막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구약의 성막을 통하여 제시된 하나님의 나라는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바로 그 나라는 새 예루살렘(계21:10)으로서 우리가 바라는 나라요, 참평화가 있는 나라인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성막의 건설에 대하여 자세하게 언급하며 출애굽기가 성막의 완공으로 끝난다는 것은 우리의 최종의 구원의 완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에 우리의 구원의 목표가 있는 것이다.

1. 율법 개념의 배경과 발전

  율법을 뜻하는 기본적인 단어인 토라(Torah)는 '명령하다, 가르치다, 지시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율법은 항상 언약의 한 표현이었고, 언약보다 2차원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율법을 언약의 한 표현으로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어떤 행동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로서의 그분의 위치에 적합한가를 보여 준다. 백성들이 이를 잘 깨닫지 못할 때에 이를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의무가 제사장들에게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제사장들에게 문의해야만 했다(학2:11-13). 나아가 제사장들이 준 결정 또한 '토라'라고 불리웠다(말2:6,7). 그 후 이런 단일한 결정들은 구전을 통해 작은 교훈집이 되었고, 그것들이 제사장들에 의해 모여져서 후대에 전수되었다. 이런 교훈집은 계시에 의해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은 물론, 가나안 지역에서 통용되던 법률에서 빌어온 몇몇 관습들을 포함한다. 율법서들의 마지막 형성 단계는 모세오경의 형성이다. 후에는 이 모세오경을 '토라'라고 부르게 되었다.

 

2. 공동체 안의 율법

언약의 표현으로서의 율법은 이스라엘 공동체 생활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제사장들은 특별히 율법에 대하여 책임을 진 사람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율법을 가르치는 데 있었다(신33:10). 그러나 선지자들에 의하여 율법은 새로운 국면을 띠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의 형식적인 준수에 만족하며 그들의 할 바를 다한 듯이 오해하고 있을 때, 선지자들은 율법의 내재적 측면에 대해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실제적으로 요구한 것은 언약에로의 복귀였지 새로운 율법의 창조가 아니었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선지자들에 의하여 율법은 조금 더 보편적인 준거 기준을 가지게 외었다. 그것은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라"는 것이었다(미6:8). 바로 이런 요구 대문에 심령에까지 이르는 철저한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3. 율법의 속성

1) 범위

율법은 그 범위가 포괄적이다.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서는 공개되기 때문에 국가가 관계되는 율법과 제사가 관계되는 율법 사이에는 내적인 통일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구약에서는 결의론(決疑論, casuistry:양심의 문제나 행위의 선악을 경전 교회 또는 사회 도덕의 표준으로 규정지으려는 학설)을 찾아볼 수 없다.

2) 인격적 호소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한 것 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호소에 있어서 인격적인 측면을 지닌다. 법률적 경직성보다는 인격적 타당성의 분위기가 율법 해석 구질에 확연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가장 깊은 동기는 응답하는 마음, 내적이고 인격적인 도덕적 결단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3) 무조건적 효력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므로 백성편에서의 완전함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시행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신27:26).

4) 보편적 적용

처음부터 율법은 이스라엘이라는 한계를 넘었다. 율법은 방문객과 이방인에게도 쉽게 확대되고 적용되었다. 심지어는 적도 율법 아래에서 몇몇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4. 율법의 계약적 성격과 협정

계약에서 충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려면 협정과 비교하면 된다. 협정은 동의한 당사자들의 명단, 협정의 상세한 내용, 증인 명단과 날짜가 그 구성 성분이라는 점에서 계약과 다르다. 이 같은 형식적인 차이이외에도 계약과 협정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협정은 당사자들이 유익과 혜택을 기대하고 맺는 것이다. 결국 협정은 물건 중심적이다. 그러나 계약은 인격 중심적이다. 그러나 계약은 인격 중심적이며 신화적으로 말하자면 교환하는 물품에 기인하는 유익 때문이 아니라 친밀해지기 위하여 계약을 맺는 것이다. 협정에서는 협상이 중요하나, 계약에서는 협상이 설자리가 없다. 상위자가 은혜로 도움을 제시하는 것이기에 주도권은 상위가가 쥐고 있는 것이고, 협정에서의 협상에 해당하는 말이 계약에서는 선물이라고 볼 수 있다. 협정과 계약이 모두의무 조항을 두고 있으나 계약에서는 충성이 강조되고, 협정에서는 의무의 외면적 이행이 강조된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은(그 내용인 율법은) 바로 협정이 아닌 계약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즉 이스라엘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을 계약의 내용으로 삼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