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고통과 압제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신다.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모든 애굽의 학문과 풍습을 익히며 성장하였고, 그후 미디안 광장에서 40년간 유랑 생활을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훈련시키고 연단 시키셨음을 알 수 있다.
본 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해 모세를 부르시고 선택한 사건들을 열거하고 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바로와 일차 접견을 하게 된다.
1. 창세기와의 연결점(출1장)
출애굽기 전체 성격을 파악하려면 서론인 1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박해받는 것과 창세기를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는가?
1) 70인의 번성
창세기와 깊은 연관성을 출1:1-7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출애굽기 1장의 내용은 1-7절과 8-22절로 나눌 수 있는데, 1-7절은 야곱의 혈족으로서 애굽에 내려간 이는 모두 70인이었다. 이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출12:40) 생육이 중다(衆多), 번식, 창성. 심히 강대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출1:7). 이것이 출애굽 사건의 동기를 제공했으며, 애굽이 학대를 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출애굽기 1장은 창세기와 연결되며, 출애굽의 배경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의 성취를 위해 이스라엘 애굽으로 보내셨다.
2)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70인이 심히 강대해진 것의 의미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성취이다. 그리고 야곱에게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이 밝히신 약속, 즉 이스라엘이 큰 민족을 이루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창46:3)을 이루셨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의 약속으로 출애굽을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은 꼭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깨닫게 해준다.
2. 모세를 선택하심(출2-4장)
강대해진 이스라엘 백성을 누가 인도하여 출애굽시킬 것인가가 난점이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선택하여 그 큰 역사의 주인공으로 이끄신다. 그렇다면 모세의 성장 배경은 어떠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
1) 모세의 생애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수난과 어려움을 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로의 딸의 양자로 궁중에서 40년간 모든 애굽의 학문과 풍습을 익히며 성장하였다. 그리고 출애굽이라는 민족적 대과업을 앞두고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유랑 생활을 통한 연단의 기간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민족의 지도자로 준비시킨 것이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할 사명을 부여한다(출3:10). 그때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출3:11)라는 겸손과 함께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4:10)라고 변명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 형 아론을 통해 돕게 하고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을 하신다.
2)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지도자 교육
40년간의 목동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체적 교육 내용과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세가 부르심받았을 때, 모세는 거듭 거듭 사양한다. 그러나 행7:22에 보면 말과 행동에 능한 자로 모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태도에서 40년간의 교육을 통해 모세가 얼마나 낮아졌으며 겸손해졌는가를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묘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을 뜻한다.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히 느끼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삶이 필요하다.
3. 바로 앞에 선 모세(출5,6장)
본 장에서는 모세와 아론의 요구에 의해 이스라엘이 해방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고통과 노역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을 위한 요청을 하게 된다. 그 요청에 대한 바로의 응답은 무엇이며,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1) 모세와 함께하심
모세의 요청에 대해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출5:2)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다분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분에 대해여 도전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이는 자신의 교만과 완악함(출7:14)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바로에 의하여 부과된 여러 가지 무거운 짐과 고역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건져 주시겠다(출6:6)고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출6:7)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출6:8)고 약속하셨다.
2) 이루시는 하나님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롬8:35)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넉넉히 사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과 고통 가운데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언약의 신실하신 분임을 깨달을 수 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서 강력한 나라(물리적인 강력함이 아니다)이기를 원하셨다. 이 강력한 하나님 나라에 세상의 나라인 애굽이 위험을 느끼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이 갈등에서 승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의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즉 세상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지도력의 근원적인 힘은 하나님에게서 유래한 것이어야 함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의 이름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출3:13에서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이 모티브의 서곡을 장식한다. 적어도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 사람의 본질을 나타낸다. 스스로의 내면적이 보이지 않는 핵심을 겉으로 내어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이름인 것으로 이해한다. 출3:14에 "나는 스스로 있는자니라"는 하나님의 대답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말하는 것이며,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을 규정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분, 또 달리 표현하면 누구도 하나님의 본질을 꿰뚫어 알 수 있는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내 보여 주며, 그분이 자신의 계획을 알리시기 전에는 아무도 알 사람이 없다. 그는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므로,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 가에 따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즉 앞으로 행해질 이스라엘에 대한 계시에 따라 하나님이 알려질 것을 나타내 준다.
2. 개혁주의의 표징 두 가지
본문은 개혁주의를 나타내는 두 가지 표징 가운데 하나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부분이다. 개혁주의는 중세 로마 가톨릭의 종교적 압제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켰지만 하나님의 권위 앞에 사람들을 붙들어매는 이중적인 작업을 하였다. 로마 가톨릭으로부터의 해방은 '열린 성경'으로 대변된다. 당시의 가톨릭은 일반 민중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함으로써 특정한 사람들만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루터의 독일어 성서 번역 이후 각국어로 성경이 번역되어 민중들이 쉽게 성경에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은 급기야 가톨릭의 사제들만이 누리던 배타적인 권리를 이제는 일반 민중들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이런 현상은 만인 제사장설의 확장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민중의 해방만을 목표로 한 것은 인본주의적인 사고 방식에 젖어 있던 사람들을 철저히 하나님의 면전으로 돌아오게 하는 신앙의 대각성 운동이었다.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고 하나님의 위엄을 느낀 것처럼, 사람들은 성경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엄위하신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위를 칼빈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성경이 가라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라는 곳에서 멈춘다." 열린 성경과 타지 않는 떨기나무라는 개혁주의의 2대 상징은 바로 개혁주의 정신을 가장 잘 들어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3. 언변이 없어진 모세
모세는 하나님의 소명을 계속해서 거절하며 자신이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라고까지 변명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론을 대변인으로 삼아서 가라고 하신다. 모세가 주저할 때마다 그것에 추가되어 모세의 사명이 분명해지고 하나님의 뜻이 명확해 진다. 모세의 궁중 교육을 통하여 받았던 훌륭한 언변의 기술이 이제는 광야 40년 생활을 통하여 사라지게 되었다. 광야 목동 생활 전체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이 된다. 모세는 실제로 입이 뻣뻣하게 되었다. 그는 본래 애굽의 최고의 학식을 쌓고 언변에도 뒤떨어지지 아니하는 자였다. 그러나 40년의 광야 생활은 그에게 입술의 어눌함을 안겨 주었다. 이에 관하여는 촘스키(chom-sky)의 언어 사상 형성설을 생각하여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결정한다는 하나의 가설이다. 이 가설이 모세에게 실제화된 것이다. 40년간 말을 사용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그의 훌륭했던 사상과 학식도 소멸되어 갔다. 하나님이 그의 입술을 둔하게 하신 것을 암시적으로 반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것은 합당한 변명이 될 수 없었다.
4. 출6:3의 간단한 석의(釋義)
출6:3에 대한 현대의 견해는 문자적 해석에 따르지 않는다. 즉la(엘)과 hrhy(야훼)의 성격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앨리스(Allis)는 "여호와를 안다"라는 표현이 출애굽기에 여러 번 사용(출6:7; 출10:12; 출7:5; 출14:4, 18)되었음을 지적한다. 이 경우의 뜻은 단순히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여호와의 본질과 성격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전능의 하나님과 여호와라는 이름이 동시에 사용될 때에는 두 이름의 성격을 대조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즉 여호와는 구속의 하나님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낸다.
즉 창세기의 족장 때와는 달리 출애굽 사건으로 그분의 이름이 분명히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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