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내적치유

[스크랩] [내적치유-세미나(1)/크리슨 해리슨 목사]쓴 뿌리...

힐링&바이블센터 2006. 11. 20. 19:12
쓴 뿌리...

 

 

 

크리슨 해리슨 목사


 

이번 주에 하나님 아버지의 치유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있는 몇가지를 나누고 싶고 이 외에 다른 것도 나누고 싶습니다.
에베소서를 먼저 보십시다. 에베소서 3장 16~19에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뿌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계획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는 것입니다. 뿌리는 기반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면 놀라운 기반이 채워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씨앗 처럼 우리 안에 박힙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심겨지면 그것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획은 우리의 삶이 사랑 안에 뿌리가 박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어떤 사람은 그 뿌리가 우리 안에 자라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경우였습니다.
이번 주에 저의 간증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초신자였을 때 굉장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안에 다른 뿌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뿌리들이 저의 행복하지 못한 가정으로부터 왔습니다. 거절의 뿌리, 쓴뿌리, 그런 뿌리들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그래서 복음이 제 안에 심겨졌을 때 옛날 뿌리와 새로운 뿌리들이 마치 전쟁이 있는 것처럼 뿌리들이 자라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제 안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깊은 체험도 없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까지 제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18,19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아는 것, 이것은 정말 우리의 삶을 깊이 있게 변화시키는 그러한 경험입니다.
제가 나중에 다시 한번 뿌리에 대해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로마서 5장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된다고 했지, 우리 정신에 부은 바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말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신으로는 생각합니다. 마음으로는 느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 바 된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들은 “예, 저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느낄 수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알겠는데 그런데 제 가슴으로는 느낄 수는 없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의 이시요,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제가 이번 주에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번 주에 제가 나누고 싶은 제 안에서 실제화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것을 여러분에게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제 경험을 통해서 실제화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러한 것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아주 독특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멋있는 나무, 동물, 새, 곤충을 만드셨습니다. 코끼리도 만드셨습니다. 코끼리의 코에는 2,000개 정도의 근육이 있다고 합니다. 또 개미도 만드셨습니다. 개미가 자기의 몸무게 보다 휠씬 몇배가 되는 것을 나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코에 2,000개의 근육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보다 휠씬 많은 짐들을 나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비들기도 만드셨습니다. 아주 조그만 새인데 아주 민감한 새입니다. 아주 온유한 새입니다. 그렇지만 굉장히 강합니다. 타이완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non stop으로 갈 수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새입니다. 제가 만일 타이완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날아간다면 싱가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합니다. 그런데 비둘기는 non stop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멋있는 종류의 창조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만드셨을 때 독특하게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 26,27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에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어떠한 동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얼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돌아보십시오. 다 얼굴이 틀리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다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습니까? 하나님은 삼위일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세분이 다 하나님이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을 때 영과 혼과 육이 하나가 되게 만드셨습니다. 어떤 동물도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은 우리의 한 부분인데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영이 우리가 영원토록 영생하는 그 영과 동일한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에게 혼이 있습니다. 혼은 우리의 정신과 감정과 의지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혼적인 부분에서도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혼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우리에게 몸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몸에 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우리를 죄인되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죄악된 속성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 된 것이고 그것은 묶여버린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길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죄는 용서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악을 이기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님이 거하시는 전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역시 이런 세가지가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시고 우리도 그렇게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일시적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완전한 몸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몸입니다. 끝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많은 분이 젊은신데 나이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으시죠? 저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가 천국에 가면 나이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몸은 아주 완전해 질 것입니다. 흠도 없고, 우는 것도 없고, 죄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천국에서 완전하게 영원히 가질 몸입니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 땅에서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목적과 계획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나누셨습니다.
이사야 61장이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이셨습니다. 이것을 위해 내가 여기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61장 1~3에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룻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죄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의의 나무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성경 말씀 중에 나무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열매가 많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좋은 나무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할려고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번째로 말씀하신 것이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여기서 어떤 우선권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서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무로 만들어 가시는 순서입니다.
첫번째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소식은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받은 것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가 용서받은 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너무 먼 것같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경험할 수 없습니다.
제가 타이완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대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깊이 만지셨습니다. 제가 전에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교회도 가고, 모임에도 가고, 가끔 전도의 봉사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안에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따르기 원했지만 역시 저는 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자매님도 그 마음 안에 죄책감과 양심이 가책을 많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어떤 벽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죄로 인한 벽이 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지금 달라졌습니다. 그 죄가 씻겨져 갔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죄를 사랑하고, 즐겼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오로지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굉장히 하나님에 대해 민감한 자매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그 계획하심을 깊게 믿고, 위탁했습니다.
우리 안에 죄책감이 있으면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사람의 소리만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가 씻김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영국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교회 개척하는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몇달 동안 어떤 장소에 가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결혼하신 적이 없는 독신이셨습니다. 그런데 항상 얼굴이 너무너무 비참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결코 웃지를 않습니다. 교회 예배에 오시면 항상 앞 자리에 앉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이 설교하시든지 설교를 시작하자마다 조시는 것입니다. 큰 소리를 내면서 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항상 조그마한 개를 교회에 데리고 오셨는데 그 개도 자는 것입니다. 개와 할머니가 자고 있는 것입니다. 할머니도 비참해 보이고, 개마저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루는 제가 다른 목사님과 함께 할머니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와 같이 이야기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저에게 “그것이 정말 사실입니까? 우리가 정말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할머니에게 성경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네, 이것이 정말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나누기 시작하셨습니다. 할머니가 25살 때, 그러니까 50년전입니다. 할머니가 배를 타고 계셨었습니다. 런던에서 뉴욕까지 배로 항해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서 무슨 죄를 범하셨습니다. 할머니가 범하신 죄는 굉장히 심각한 무거운 죄였습니다. 그런데 딱 한번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할머니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할머니의 버릇이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이완에 있는 사람은 죄를 즐기고 버릇처럼 그렇게 하는데 할머니는 그런 분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번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죄책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50년동안 죄책감 속에 살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시간은 결코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시간은 결코 우리의 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만이 치료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머니에게 같이 기도하자고 했을 때 할머니께서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할머니와 함께 기도해드렸는데 우리가 기도한 후에 할머니께서 웃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다음 주일에 교회에 오시고, 안주무시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신 것입니다.
제가 영국에서 다른 부분의 어떤 사역을 하고 있었을 때, 어떤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그 자매님의 문제는 좀 달랐습니다. 그 자매님이 18, 19살의 그리스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자매님을 부르셨습니다. 중국으로 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중국으로 가지않았습니다. 그 가족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결혼도 하지 않고 집에서 가족을 돌보기로 선택했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기도의 자매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된 자매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이 저에게 고백하기를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자주 어떤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집에 그냥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의 모든 삶 가운데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자매님이 아주 자주 교회에 나왔고, 죄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아주 순결한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마음 안에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좋은 교제를 갖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용서함을 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 죄악을 다 소멸시키시고 씻어버리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한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것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위로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말할 때 예수 그리도의 사역은 우리의 전 인격, 영과 혼과 육의 모두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처음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마지막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이사야 53장 3~7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에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다, 다 끝냈다. 모든 것이 다 처리되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 일들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첫번째로, 우리의 죄의 댓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치루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의 댓가를 우리가 치룰 필요가 없고 우리의 죄는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아주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여기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예수님께서 고통, 고난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감정적인 고통, 영적인 고통....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아주 많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고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아픔의 짐이 더 가벼워졌고, 그것이 없어질 수 있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을 맞으신 것이 그냥 몸에 맞은 것, 그것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몸과 영과 혼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 인격이 나음을 입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굉장히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인격이 치유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 각자는 각기 제 길로 가버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계획대로 세우고 우리의 삶을 멋대로 조정해 가면서 주님이 십자가에 가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주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계획이 우리에게 최고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길이 best way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때 거기에만 온전한 성취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뜻 가운데 살아가지 않으면 진정한 충만함이 우리 안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로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뿌리는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자랄 수 있는 흙이 필요합니다. 흙이 없으면 뿌리는 자랄 수 없습니다. 또 흙에 심겨질 씨가 필요합니다. 오늘밤 남은 시간 안에 흙에 대해 보겠습니다.
어떤 쓴 뿌리나 거절감의 뿌리들이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흙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잠언 18장 14절에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누가 일으키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상한 것, 그것이 바로 나쁜 뿌리들이 자랄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흙입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제가 육체적으로 약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압니다. 그 몸에 병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그 병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주 사랑하고, 하나님께 봉사도 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합니다.
제가 일본에 있는 사람을 압니다. 그 사람은 Y.M의 D.T.S 스쿨에 갔습니다. 그리고 전도 여행을 인도로 갔습니다. 그때 휠체어를 타고 있었습니다. 왼팔만 움직일 수 있고 나머지는 마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주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인도에서 6개월 동안 머무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다시 일본으로 오셨을 때는 일본의 시골에서 작은 기독교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에 가서 간증을 하고 그 사람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사업도 하고 계셨습니다. 가게가 있었는데 30여명의 종업원도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아주 좋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그 분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심령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갖게 되면 누가 그것을 일으키겠느냐? 심령이 상하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 컵이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인가 상상해 보십시오. 이 컵의 밑이 깨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보기에는 좋은데 그렇지만 밑바닥은 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에 무언가를 부어 넣으면 어떻게 되죠? 다 밑으로 세나올 것입니다. 이 컵은 어떤 것을 속에 보존시킬 수 없습니다. 컵에 보기에는 좋아보이지만 컵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밑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갖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하기 원하시는 멋있는 좋은 일들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모임에 가고, 교회에도 갑니다. 어떤 특별한 모임을 위해 멀리도 갑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반응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열어드리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굉장히 흥분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렇게 합니다. “이것은 나를 위해 하는 말씀이야, 야 모든 것이 너무 좋다. 아! 하나님 찬양합니다.” 한 밤중에 그렇게 합니다.
그다음날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립니다. 다시 옛날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정말 내 삶이 변하는 것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갖게 되면 우리 삶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자라기가 힘이 듭니다. 변하기가 힘이 듭니다. 성경 말씀에 우리는 변화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믿음에서 믿음으로 우리는 자라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상적인 단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갖게 되면 굉장히 힘들게 됩니다. 영광에서 영광이 아니고, 문제에서 문제로, 위기에서 위기로, 낙망에서 낙망으로, 실망에서 실망으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갖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결과입니다. 우리의 삶에 희망이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지만,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우리가 모임에 오지만 언제나 마음에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상한 심령을 치료하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세가지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에 대해 보기 전에 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을 갖기 전에 같이 기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상한 심령이 있는지 그것에 대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보여 주시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반응할 수 있기를 위해서 같이 기도합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치유하시고, 회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들은 하나님 앞에 반응하는 것에 지쳐있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러다 아무 소용이 없을꺼야, 아마 내 삶에는 아무 변화가 없을꺼야, 난 그냥 이대로 살래’하고 혹시 생각하고 계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파괴적인 생각입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우리를 밑으로 당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점점 이런 유혹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삶은 점점 힘들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치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쉬는 시간을 갖기 전에 같이 기도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치료하심에 대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 위의 글은 '예수전도단 가정 치유세미나' 기간동안 크리슨 해리슨 목사님의 세미나 내용을 글로써 그대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출처 : 대명교회(大名*大明*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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