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내적치유

[스크랩] [내적치유]내적치유 사역을 하시는 성령님

힐링&바이블센터 2006. 11. 20. 15:57

내적치유 사역을 하시는 성령님

 

 

크리스 해리슨


** 마 9:35-10:1 모든 무리들에 향한 민망히 여기시는 마음,
그 마음을 우리에게 주셔서 . 우리 모두에게 대한 민망히 여기시는 마음. 우리 모두를 깊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사랑을 전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기도, 가르치고, 함께 하며 보내는 바쁜 시간을 보내는 여러분을 격려하고 강하게 하시고 채우시고 그래서 사역 속에 깊은 기초가 닦이기를 원하심. 진리와 사랑에 대해 다루게 하시는데, 이 사역과 가정 속에서 자유와 진리가 충만해 지기를 원하시며, 사랑으로 가득차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 내신다. 능력있는 사랑,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 죄가 덮임을 받았다고 하신다.


** 롬5:5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 중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심.
번역 중에 생각과 마음을 혼돈해서 번역한 곳이 많다. truth + love mind - think, heart - feel 그래서 하나님은 증거할 사랑의 체험이 있기를 원하신다.
내적 치유는 우리 삶에서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며, 언제나 계속적으로 은혜를 주시기 원하시며,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를 체험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실때, 우리는 그것을 나눌 필요가 있다.


** 고후 1:3-4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가르치고 나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렇게 가르치신다. 만방에 가서 또한 정보를 주는 일만 가지고는 제자를 만들 수 없다. 우리 안에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좋으나, 삶 속에서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을 나누는 것은 더 중요하다. 주라, 하신 그 의미는 오직 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우리가 받은 진리를 나누라고 하시며 더 주시겠다고, 그래서 우리를 더 강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데, 하나님은 같은 레벨에 머물러 있기 원치 아니하시고, 은혜 안에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만일 교회가 성장한다면, 숫자의 문제보다는 내적 성장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중요하다.

사역의 원칙 역시 중요한데, 그것은 목자의 원칙이다.
양들은 목자가 가는 만큼만 가게 마련이다. 목자는 항상 양 앞에서 간다.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 하나님 앞에서 깊은 것을 체험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내가 그러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바울도 나처럼 되라고 말했다. 그래서 목자의 원칙은 하나님의 것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것들을 성도들도 받게 해야 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삼위 하나님은 인격이시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표시가 아닌, 우리 삶을 충만케 해 주시기 원하시며 우리가 그 분께 민감해 지기를 원하시는 인격이시다. 그 분은 성령의 은사를 갖기를 원하신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가정, 재정, 심리적 문제 등.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드러내기를 두려워 한다.
사역자로서 우리는 그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오면, 기도하라, 금식하라고 대답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 문제를 열어 놓고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다루시도록 했을때, 하나님의 어떻게 일하심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줄 알게 되었다.

** 사 61:1-3 예수님께서 사역을 처음 하실때, 인용한 구절.
예수님 사역의 첫번째 목표는 :3의 의의 나무가 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이 나무는 예수님이 진리와 사랑 가운데 심으신 것이다. 이 일,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이다.

첫번째 주제는,
1.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 (경제적, 영적 가난한 자) 좋은 소식은 용서를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는 굉장히 좋은 소식이다. 영원히 동일하신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잘못, 죄, 실패가 다 용서된 것이다. 우리 삶 속의 모든 압력으로 인해, 우리 삶(가정, 사역) 속에서 우리가 한 일때문에 공격, 정죄감, 상처, 의사소통의 깨짐, 관계의 깨짐 받는 일이 쉬운데, 우리는 먼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용서를 잘못 알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는, 감정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진리에 근거한다. 우리가 상처받고 분노하고 울고, 우리 감정 안에 들끓는 것을 가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주 용감하여 상처받고 아파도 그것을 안으로 눌러 버리고 마음 속에 삼켜 버리며, 나는 괜찮다, 좋다고 말합니다. 나는 영웅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괜찮아, 나는 상관없어 하고 말한다.
영웅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 일이 계속되면, 쉽게 화낸다. 모든 상처를 들이 마시고,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2. 두번째는 나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말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나는 절대로 용서 않겠다, 나는 용서를 안하겠다고 맹서를 하면, 하나님 앞에 가서 그 맹서한 것을 깨뜨리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영적인 감옥에 우리 자신을 집어 넣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삶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른다고 했는데, 이러한 결과 문제에서 문제로 이른다.

** 마 18:34-35 우리의 문제는 나는 그로 인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정말 용서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역에서 이런 문제를 갖게 되면, 우리 가정에 그 문제가 들어 오게 된다. '나는 용서할 수 없다.'를 반복하게 되면 그 느낌은 진실이 되는 것이다.

BODY-SOUL-SPRIT (살전 5:23)

MIND

WILL

EMOTION - 이곳이 우리 아픔이 있고, 상처가 나오는 곳이다.

진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이고, 그 용서에 기초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으로, 의지로 선택하므로, 우리의 감정이 변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감정으로는 용서할 수 없지만,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3. 모든 용서는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실지 용서하기 전에 기도로서 용서해야 한다.

첫번째는, (break the vondege) 우리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으면, 우리는 그 맹세를 깨뜨려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이런 맹서를 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요.
이 맹세를 깨뜨리겠습니다. 하고 기도해야 한다.

두번째는, (who) 용서하지 못했던 그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을 통털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을.

세번째는, (reason)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이러 이러한 것 때문에 용서합니다. 하고 그 이유를 기도해야 한다. 그가 죽었던 살았던 누구를 왜 용서하는지 말해야 한다.

네번째는, (focuse me)나를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내가 용서치 못한 것을, 미워한 것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특히, 두번째 (WHO)의 부분에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도 포함해야 한다.

다섯번째는 마18:15- 예수님의 말씀은 형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이 말씀은 공개된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자들 중에 있는 형제들, 즉 우리가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있는지 아는 형제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다. 용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과.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도 용서에 대해 모른다. 늘 노하고 노한다. 그들은 아마 중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목사님들에게도 아주 힘든 시간들을 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과 동일한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갈 수 있다.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을 아는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용서는 우리 자신에게서부터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4. 마18: 형제가 나에게 죄를 범했을때, :22 몇번 용서해야 하는가.
롬12:19 복수는,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쓴뿌리 만을 줄 뿐이며, 우리 자신, 가족을 더 해치는 일일뿐 아니라, 건강까지도 해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하라는 것은, 진정한 용서의 태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네가지에 대해 이미 다루고 용서했음에도, 그를 교회에서 보고, 만나고, 그 상처, 아픔이 감정이 남아 있다.
그래도 다시 용서하고 용서한다. 우리 속담에 용서하고 잊어 버리라고 말하나, 용서하고 잊어버릴 수 없다. 때로 기억하나, 그것이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태도이다.
다시 기억나도 계속 용서하는 것,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태도이다.
이 태도를 하나님은 갖기를 원하신다.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머리에 총을 대시고 용서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가르친다. 용서하므로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문을 여는 것일 뿐이다.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분이 해답을 가지고 계신다.

말레이지아에 있는 오빠로 부터 강간당한 자매에 대한 간증.

용서는 하나님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제일 처음 하셨던 것이 용서였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두번째는 종이 한장을 가지고 용서에 대해 기도하며 어떤 사람을 용서해 주기 원하는지 적고, 왜 용서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적으라. 그리고 용서에 대한 기도를 할 수 있다.
남자, 여자, 권위자, 나라, 민족, 자녀나, 부모, 어떤 사람이든지. 기도는 용서에 대한 태도를 계속 가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는 것이다. 그 분 앞에 우리 마음을 다 쏟아 놓고 그 분이 하시도록 해야 한다.
용서는 대단히 강력한 것이다. 용서에 대한 태도를 가지므로 자유함을 얻게 될 것이다.


** 사61: 에서 예수님이 해 주신 그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적 치유와 회복함을 가져다 주시기 원하시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기를 원하신다.
** 사11:1-3 주 예수님이 바로 이런 분이시다. 여기서 말씀하시기는 성령님께서 예수님위에 강림해 계셔서 지혜와 모략과 재능, 총명을 주신다고 한다.


** 사42:1 나의 영을 예수님 위에 넣었다고 하심. 예수님의 사역 속에 온유함과 힘이 있다고 하시는데, 그 사역은 온유하시며 강력한 것이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 행10:38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독립적으로 행하시지 않았다. 우리 삶 속에서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깊이 체험하시기를 원하신다. 삶과 가정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 삶 속에 조정과 변화를 일으켜야 할 분이 있다. 하나님이 이것을 원하신다.

Ⅲ. 우리는 성령과 함께 성령 안에서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다.

** 롬 8:16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15 우리를 아버지 앞으로 인도하신다. 성령께서는 늘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나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성령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성령은 인간도 교회도 영화롭게 하시지 않으며, 이상한 일을 하시지도 않는다. 그는 늘 예수님 영화롭게 하신다. 성령께서 우리 삶 안에 충만하시면 우리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한다.


2)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든다.

** 히4:12 여기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레마를 말한다. 하나님의 레마가 우리 안에서 사하신다. 그래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레마를 우리 안에 가져 오시면 우리를 활동력있게 하신다 .

3)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이미 오셨다.

** 요14:16-18 도와 주시는 분, 위로자, 동기를 부여하시는 분, 활발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필요로 한다. 성령님은 세상사람들이 받지 못한다. 세상이 필요 것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나가 예수님을 전하게 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성령으로 충만하라,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으라는 것이다. 모든 예수를 믿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을때. 중생, 변화된 사람이라고 우리가 영접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셨을때 말씀하시는 것이다.

** 엡2:1- 우리는 죽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의 영적인 상태가 죽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도적은 와서 훔치고 죽이고 파괴한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생동하게 하신다.

** 엡5:18-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 우리가 성령과 함께 하면 나타나는 역사가 있다. 한번 충만하게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충만해 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 충만의 첫째 증거는 :18에 의하면 우리 마음 속에 새로운 노래,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노래에 대해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고 감동되는 것은 혼이 하는 일이다.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기도하신다.

4) 그분은 긍정적으로 살게 한다.
우리가 부정적으로 살면 성령을 식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항상 불평하고 중얼거리면 이것으로부터 빠져 나가기가 힘드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로 인해, 우리를 상처주는 사람, 우리를 공격하고 용하는 사람으로 인해.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계속 부정적인면 가운데 놔 두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기 때문에 광야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기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도 어렵다.
우리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 일에만 매진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항상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기를 원치 않으시며, 성령으로 충만해서 흘러 넘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했을때, 나타나는 두번째 증거는 긍정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황이나 문제에 갇혀 있기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말하지 않고 고난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 시62:8 주님 앞에 우리 마음을 다 토해 놓기를 원하신다. 그 분은 우리에게 조용하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고통을 그냥 삼켜 버리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강하게 하신다. 이런 기도를 어떤 사람들은 하기를 어려워 한다. 그들이 자라온 가정은 울면 야단치고 혼내고 울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부정적인 열매를 가져오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져온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들은 이렇게 되기 원치않지만, 그 속에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 삼상 1:15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심정, 아픔을 다 쏟아 놓았다. 제사장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 애2:19 주님 얼굴 앞에서 물처럼 마음을 쏟아 놓으라고 하신다. 가둬두지 말고. 이것이 우리를 얼마나 도와 주는지 모른다.


성령이 충만하므로 나타나는 세번째 증거는,
** 엡5: , 4:1-3 :3에서는 이미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고 하신다.
먼저는 하나되게 하신 가정을 지키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됨을 주신다.
하나님만이 결혼 중매를 잘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은 우리의 결혼을 救贖하시는 분이시며, 새롭게 하셔서 하나되게 하신다. 하나님이 맺어 놓은 것을 아무도 끊지 못하신다고 하신다.
어떤 관계이든지 하나님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우리는 힘써 지켜야 한다.
성령님께서는 한번도 가정, 교회를 분열시키지 않으신다. 인간이 사단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어떤 분은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부모님이 어떻게 의사소통해야 하는지 모르는 가정, 깨어지고 파괴된 가정)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조상대대로 이어진 가정일 수도 있다. 성경에서는 교회를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삶은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신다.
예) 딤전 5:1-2 온전한 가정의 삶이 교회로 와서 교회를 이룬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족이어야 한다. 교회는 관계 가운데서 이루어 진다. 서로를 제자화하며, 생명과 성장함이 있어, 영적인 생산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생명이다. 만일 교회 안에 문제가 많으면,해결되지 않은, 다뤄야 할지 모른느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우리가 그것들에 대한 표본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교회 안에 여러 어려움들이 일어난다. 어떤 교회에서는 분명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문제가 생긴다. 그 때는 그 가족을 보라. 동일한 문제가 그 가정안에 있음을 보게 된다. 그 문제를 교회로 가져 온 것이다. 순기능적 가정은 그 영향력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온다. 역기능적 가정의 문제를 가지고 온 경우, 그 책임을 그 자신에게 묻기가 어려워 진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가족 생활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도와 주시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가족 속에 문제가 있다면, 그저 종교적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삼상1:2 사무엘서의 한나는 행복한 여인이 아니었다. 엘가나는 두명의 아내가 있었고,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아내가 둘이다. 만일 남자가 두 아내를 갖는다면, 누가 첫부인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결혼을 시작하신 분이시다. 모슬렘, 불교도, 흰두교도등도 결혼을 하는데, 하나님의 결혼의 방법은 한남자에 한여자인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오직 한번에 한여자만 사랑하게 만드셨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결혼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이다.


첫번째 부인은 한나는 심정을 토하는 기도 끝에 낳은 아이, 사무엘을 성전에서 기르게 한 뒤, 이년에 한번씩 사무엘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사무엘의 잘못도, 부모의 잘못도 아니었다. 엘리는 굉장히 좋은 제사장으로 영적인 사람이긴 했으나,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며, 사무엘을 이런 배경하에서 자라게 되었다.


** 삼상 8:1-3 동일한 일이 대를 이어 일어나는 것을 본다. 사무엘은 정말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아버지 노릇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자라온 배경이 그러했기 때문에. 표본을 보고 산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의 표본을 보기 원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교회에 오도록 하기를 원하신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기 원하시며, 실제로 성령님께서 교회에 오셔서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 것을 체험하고 증거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부어 주시고 치료하시고 위로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슴은 우리 삶에서 오래도록 상처받은 것을 회복시키시고 치유하기를원하신다. 우리는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야 한다.


** 고전2: 우리 몸은 성령의 거하시는 전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때, 종으로만 만들지 않으시고, 나쁜 것으로만 만드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는 구속함을 받을 필요가 있고, 그것을 통해


** 고후4:7 성령은 우리 안에 있는 보배와 같은 분이시다. 계2:, 3: 을 통해서는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편지를 보는데, 그 편지에서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성령님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성령님께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들으므로, 성경을 읽으므로, 묵상하므로 들을 수 있다.


** 시 46:10 에는 너희는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것을 들을지어다. 주위 환경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잠잠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의 잠잠함. 하나님의 평안함. 노함, 상처, 거절당함 등은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 레마로 듣는 것을 어렵게 한다. 우리 안에서 계속 누르기 때문에 먼저 우리 안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문제를 무시하고, 열심히 일만하면서, 그러면 이 문제가 없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 열어 놓아 속사람을 만지시기를 구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를 우리 삶 가운데서 실제로 일어나게 하고, 해결함을,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를 입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면, 그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는다. '네가, 당신이 잘못이야. 당신의 책임이야.' 서로 서로에게 그렇게 하므로 상처를 받고, 싸우게 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누군가 책망할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선조때부터 이런 것이 일어난 것 뿐이다. '만약, 내가 자라면, 절대로 아버지와 같이 되지 않겠다.' 그렇게 자기 생각을 훈련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서 좋은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꼭 자기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좋은 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고 자란 것은 오직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버지, 자기 어머니처럼 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성령님만이 이것을 치유하시고 그분의 사랑으로 채워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들, 분노, 두려움, 걱정, 원망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안에 성령의 민감함에 대해 아주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옳은 일을 하고, 사람들이 구원받고 교회에 오기를 바라고 충성되이 섬기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사단이 말하기를, '그것은 네 잘못이야, 네가 잘못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삶 속에 하나님의 치유와 능력, 회복, 겸손케 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 고전2:11, 12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는 누가 알리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한 것은 우리 눈과 귀로는 보고 듣지 못한다고 하신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계시해 주신다고 하신다. (:12) 성령 충만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민감하게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알기 위해서이다. 크리스가 교회를 개척할때, 그 마음 속에 분노와 좌절, 유혹과 원망과 두려움 등이 있었고,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아직 혼자였고) 어떻게 설교할지를 배우기는 했으므로, 실제로 멧시지를 전하며 목사의 역할을 하기는 했다.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교제했다. 마음을 나누는 것을 모르는채. 하루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엇하고 있느냐?' 나는 성장하지 못하고, 움츠러들며, 그저 매주 설교를 생산하고, 심방하고 좌절하고 있었다. 내가 읽고 듣는 것처럼 실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는데, 내 삶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들으면서 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치유를 받기 시작하며, 그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음 속의 문제를 다루는 가르침을 듣고 실제적인 것들을 그의 삶 속에 적용하자, 그 많은 문제점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많은 부담감과 갈등이 벗어졌고, 그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네가 잘못이다. 네가 잘못이다.'라고 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우리를 도와주시고, 치료하시고, 도와주시기 원하시는 것이다.


** 고전2:13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는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적이며 중요한 것이다.


Ⅴ. 두려움은 성령이 교통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1. 하나님은 우리가 무서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는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성령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시지 않는다.
롬8:15, 딤후1:7,
** 성령의 역사를 두려워 하는 이유 **
① 새롭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에
② 우리 자신의 개인적 불안 때문이다.
③ 우리가 정확지 않은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방법, 잘못된 지식, 정보 등
성령은 선하시며, 하나됨의 영이시다. 항상 그 분은 예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하시며, 그는 항상 성도들을 하나로 만드신다.
④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갖지 않은 때문. 기도, 묵상등을 하지 않은 분은어렵다.
⑤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기 원하신다.

시34:4, 요일4:18 성령만이 온전한 사랑의 원천이 되신다. 치료하시고 온전케 하시며 억지로 열도록 강요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약 아들에게 그렇게 하시면, 아들은 전부 도망가게 될 것이다. 그 분은 우리를 인도하 시고 도와 주시기 원하신다. 그래서 그 분의 사랑 앞에 우리를 열기 원하신다. 그럴때 우리는 안전한 것이다. 남편, 아내 사이에도, 교회에서도. 그래서 하나님의 치유와 능력이 흘러 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가정과 사역과 선조들과 나라 안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일 뿐이다. 아무도 이것을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우리 부모들이 고통을 당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저지하는 것, 아픔과 고통을 저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이 모태 안에서 아이를 창조하실 때, 쓴뿌리와 거절당한 아이를 만드시지 않았다.
아이가 고난 당하는 가정 안에서 태어나면, 그 상황을 다스릴 수 없고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내려 가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회복시키고, 치료하시기를 원하신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소망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할 수있다. 다른 나라로 간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L.A.의 두란노에서도 사역을 했는데, 그곳에서도 동일한 문제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우리는 좋은 가르침을 받는다. 브루스, 론과 같은 좋은 가르침을 듣지만, 이 가르침을 실제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실제 우리 삶 가운데 적용하고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삶을 살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

** 욜2:25-32 25절-27절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회복 28-29 성령의 역사 성령의 부어주심 성령의 역사에는 지름길이 없다.
성령의 가장 깊은 역사는 하나님과 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 = 치유, 회복을 가져다 주심 이것은 우리가 항상 바라는 것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가 항상 일할 수 있게 된다.


Ⅵ. 성령의 개인적(인격적) 사역 - 목사로서 꼭 해야 하는 사역 → 성도들과의 일대 일의 사역 모든 목회의 일들을 하고 있으나, 항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으나 그 문제를 무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한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정. 그들이 나를 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 나는 나 자신의 배경 때문에 두려워 했다.
2. 나는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 가까이서 말하는 것에 대해 어려웠다.
나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치유가 임하기 전까지 이로 인해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돌보고 도울 수 없었다.
1) 사랑은 사역의 원칙이다. 이것은 기본적이며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깊이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지식이 아닌 체험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둘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때, 아주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역이 의무가 되고 직업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하지 않거나, 이웃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지 않으면, 상처를 받게 된다. 나는 정직하게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사람 사랑하심에 대해 알기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통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도 부담을 느끼고 빨리 교제를 마치기 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며, 이것은 우리로 어렵게 만든다. 내 안에 어려움과 갈등이 많을때, 나는 사람들과 교제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변화시키므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교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치유와 회복은 중요하다.


** 엡5:1-2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같이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는 말씀을 행하기 위해 먼저 있어야 할 것이 4:32 용서에 대한 것이다.


** 마18:2-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살려면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된다고 말씀.

(child-like) 어린아이의 모든 긍정적인 부분
- 순진하다.(innocent) 가르침을 잘 받는다. 쉽게 인도함을 받는다. -


** 고전12, 14에는 성령님의 은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성령 안에서 사랑이 모든 사역의 근본원인이라고 말씀하신다.
13:11(childish)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막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어린이의 유치한 반응에 대해 말하며, 이것은 우리 가정과 사역에 방해가 되며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반응을 버렸다고 했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버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있는 유치한 어린아이가, 친밀한 관계 안에서의 상대(부부, 같은 팀, 가족, 사역안에서의 관계 등)가 어떤 상처나 연약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마치 단추를 누른 것과 같이 튀어나와 반응하게 한다. 컨트롤할 사이도 없이. 이 어린아이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행동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말하고, 행동하게 하며, 그래서 수치스럽고 더 갈등하게 한다.
우리는 영적, 정서적, 육체적, 의지적으로 이미 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마음안에는 상처입은 어린아이가 있어서 그 상처로 반응하게 만든다.


1. 조종하게 한다.
이것은 부모관계가 좋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게 나타나며, 엄마에게 달라 붙어서 엄마와 함께 있는 것에 안정감을 두고, 엄마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방해하여 물을 쏟고, 엉뚱한 장난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등의 일을 하여 그 다른 사람을 내쫓는 일을 하므로 자기 목표를 달성한다. 좀 더 크면, 자기의 목표를 기어코 달성하기 위해 부모나 상대를 조종하는 것이 더 강화된다. 더 크면, 이성관계에 있어서도, '진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 결혼 후에도 자기의지와 상대 배우자의 의지가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킨다. 서로 분노하며, 화내며, 자매는 눈물로, 사랑받지 못한 인정받지 못한 어린아이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상대를 조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치유가 없이는 이러한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동의한 사람이었다. 사도바울은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한 일을 벗어 버렸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둬가시도록 요청할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신다. 우리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어린아이를 데려 가기 원하신다.
** 호10:12 --묵은 땅을 기경하라.
우리는 딱딱한 땅을 부숴버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직접 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은사가 있어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게 하셨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볼 때, 그것은 참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땅이 아주 단단한 것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너무 아파 그것을 손대고 싶지 않다. 쓴뿌리, 거절, 어린아이의 뿌리가 있다. 그것을 전혀 손대지 않고 남겨 둔 것을 볼 수 있다. 그 땅을 보고, 그것을 기경할때, 그 땅이 아주 좋은 한번도 쓰지 않은 기름진 땅, 쓰레기와 모든 돌을 뽑아 내면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땅인 것이다.


**호10:12의말씀과 같이 우리 땅을 기경해야 한다. 기도하기 시작할 때, 성령께서 그 어린아이를 가져 가신다. 그리고는 우리를 빈 상태로 놔 두지 않으실 것이다. 성령의 사랑과 능력이 채워질 것이다. 성령께서 가져 가시도록 기도하자. 사랑의 뿌리로 대신 심으시도록 또한 기도하라.

출처 : 대명교회(大名*大明*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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