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내적치유

[스크랩] [치유복음]견고한 진을 파하라

힐링&바이블센터 2006. 11. 20. 15:57
견고한 진을 파하라

 

 

40대 중반 이상인 사람들은「나바론의 거포」라는 세계 제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이 거대한 대포는 전략적인 요충지에 배치되어 그곳을 항해하는 연합군의 선박을 무자비하게 침몰시켰다

  이 거포는 외부에서는 도저히 파괴시킬 수가 없었다. 해변의 암벽을 깎아서 만든 천연 요새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심한 공중 폭격을 감행해도 끄덕 없었다. 마침내 연합군은 특공대를 조직하여 거포가 배치되어 있는 내부에 침투하여 거포를 폭파시킬 수 있었다.

  사람 속에도 외부에서는 도저히 격파시키지 못하는 암벽 같은 천연 요새가 있다. 성경은 이것을 견고한 진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3-5).

 

  견고한 진을 말하는 헬라어 오키로마는 원래 군사 용어로서 견고한 요새를 의미한다. 이 말이 구약에서는 성읍( 19:7; 8:14), 견고한 성( 34:13), 궁전 또는 궁궐( 49:27; 1:4, 7, 10)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견고한 진은 상징적인 의미로는 "사람이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삼하 22:2).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10:29).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가 의지하는 견고한 진 즉 반석이자 산성이다.

  그러나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견고한 진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견고한 진이다. 초대교회 당시의 역사학자인 필로는 견고한 진을, 인간이 쌓은 바벨탑을 염두에 두고 "잘난 체하는 인간 이성의 요새"이라고 표현했다. 사도 바울도 필로의 표현을 염두에 두고 견고한 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이 의미하는 견고한 진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인간의 모든 이론과 생각을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진리가 담긴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철학적인 체계를 말한다. 인간의 이러한 지식은 마치 견고한 성읍이나 요새같이 단단하여 잘 무너지지 않는다. 나바론의 거포 같이 어지간한 외부의 공격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견고한 진은 마귀의 좋은 서식처이다. 견고한 진 자체가 마귀는 아니지만 견고한 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지식이나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마귀가 발판을 삼아서 은닉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좋은 처소란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어릴 때 자기 아버지와 아버지의 동생인 삼촌이 가방 공장을 동업으로 운영했다. 아버지는 주로 외부의 영업 분야를 담당하고 삼촌은 내부 관리나 경리 부분을 담당했다.

  그런데 삼촌이란 사람이 술수를 써서 돈을 자꾸만 빼돌려 마침내 공장을 망해 버리고 자기 아버지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이후 아버지는 힘들게 재기했지만 삼촌은 빼돌린 돈을 다른 사업에 투자하여 부유하게 살았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떤 결심을 했는가? "그때부터 나는 절대로 사람을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여러분도 혹시 이런 말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지 않는다." "내가 당하면 너도 당하게 만든다." 실연한 사람이 "절대로 남자 또는 여자 사랑하나 봐라"라고 속으로 다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사고방식이 굳어져서 이런 사고방식 아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것들이 바로 개인적인 견고한 진이다. 내가 경험한 몇 가지 일들을 통해 현상을 일반화하여 하나의 체계적인 사고로 굳어진 것이 바로 견고한 진이다.

사람은 저마다 이런 견고한 진을 갖고 있다. 이런 것은 그 사람의 괴퍅한 성품이나 이해못 할 일들로서 본인이 알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본인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적인 체험이 많고 믿음이 좋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부부사이가 화목하지 못한 사람들, 매일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서도 궂은 일은 도무지 하지 않으려는 사람, "나는 매일 죽노라"고 하면서도 남이 조금만 헐뜯고 비방하면 분개하여 어쩔 줄 모르는 사람,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섬기지 못하는 사람,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 선다고 하면서도 입에 재갈을 물리지 못하여 "수군거리고 비방하여" 형제의 가슴에 상처를 내는 사람들, 신앙이 좋다고 하면서도 약속 제대로 못 지키는 사람, 주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부도날 수표를 천연스럽게 발행하는 사람.

  왜 그럴까? 모두가 나름대로의 "견고한 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과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 예수님께 복종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옛사람의 성품(방어기제)과 새사람의 성품(그리스도의 마음)

 

  내적 치유의 측면에서 대표적인 견고한 진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간단히 표로 살펴보자. 방어기제란 자신의 견고한 진을 보호하기 위한 잘못된 변명, 정당화, 구실을 말한다.

 

  -옛 사람의 방어기제  |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새사람

 

-바리새주의: 율법주의, 형식주의, 전통주의, 완벽주의, 일 중독 등 |

-성령과 은혜 안에서 자유함을 누림, 외모보다 마음을 깨끗하게함( 23:26)

 

-사랑과 인정(認定)의 결핍: 증오,  분노, 좌절, 억압, 우울증 |

-주안에서 용서, 용납, 화목, 하나됨( 4:30; 3:12-14), 주안의 사랑 끊을 자 없음( 8:35-39

 

-거부감: 자기 비하, 열등감 |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 1:12; 벧전 2:9; 139:24)

 

-투사-내 눈에 비친 다른 사람의 잘못이 곧 내 잘못인데 남을 비난함 |

-내 잘 못 회개( 27:19; 고전 10:11)

 

-전이-A에 대한 감정을 B에 전가시킴. )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남편에게 전가시킴) |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것( 23:7)

 

 

내적 치유 대상의 견고한 진들

 

세상의 사조

 

   -다윈의 진화론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free sex"). 

  오늘날 미국의 교육이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부정하여 무신론자들을 양산했다. 프로이드의 프리 섹스는 오늘날 이혼과 가정 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다.

 

   -New Age 운동("내가 신이다")와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 상대주의와 체제 및 형식 부정). 

  뉴 에지 운동은 동방 종교들--불교, 도교, 힌두교 등-과 같이 절대 유일신인 하나님은 부정하고 인간은 누구나 수양을 통해 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한국에도 퍼져 있는 단, 기훈련 등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던니즘은 절대적인 신앙 표준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상대적인 진리로 격하시키고 권위와 전통을 부인한다.

 

   -세상의 학문과 문화. 문과 문화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반 은총이지만 모두가 타라한 인본주의 학문과 문화, 특히 마귀의 영향을 받은 대중문화는 신앙 생활에 심각한 견고한 진을 형성한다.

  오늘날 TV, 영화, 게임, , 만화나 인터넷과 같은 대중문화 수단을 통해 인본주의와 마귀적인 요소가 심각하게 침투되어 있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조차 이들에게 부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배우, 가수, 유명한 사람 철학인), , 음악, 영화, 연극과의 솔 타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일부 십대 소녀들은 자기들이 우상 시 하는 가수의 일거수 일투족에 민감하여, 좋아하는 어느 가수가 죽었을 때 인생의 의미를 잃고 자살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한 스포츠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은 스포츠 시즌이 끝나면 심각한 후유증을 앓는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견고한 진들'이다.

  이런 것들이 정도에 지나치면 중독증세를 일으키고 거부되었을 때 심각한 금단 현상을 일으켜서 건전한 정서생활은 물론 신앙생활을 방해한다.   

 

  신상언씨가 쓴「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는 가히 이 분야의 예언적인 서적이다. 오늘날 사단은 영화, 음악, 연극, 미술 등 대중 문화의 전분야에 침투하여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사단적인 사상을 불어 넣고 있다. 사단이 더럽힌 대중문화를 하나님의 문화로 회복시키기 위한 우리의 대안은 "기도하고, 지금, 가서,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제안한다.

  대중 문화와 마찬가지로 민속 문화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민속 문화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속 문화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문화의 형태를 빌러 사단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특히 농경 사회인 우리나라도 농경 문화권인 가나안 족속들과 마찬가지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나 기우제가 각 지방마다 있다. 이런 제사들은 곧 사단의 무리들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또한 각종 탈춤은 귀신 잔치하는 모습을 연상한다.

  우리는 민속 문화 보호나 창달이라는 미명 아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제 3세계의 카니발 행사는 대부분이 사단의 사주 아래 행해지는 귀신 잔치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종교적 혼합주의나 (잘못된) 교리나 전통

      

  -배금주의와 무속주의(기복신앙)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 가고 이 세상에 살면서 복 받는다는 기복신앙은 잘 살아보세라는 개발 구호와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IMF의 한파로 인해 더 이상 이런 가짜 복음은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다. 고통과 인내를 통과하여 참 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야 한다.

 

  -업적주의(종교의 "바리새화").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에 더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전통주의 

  예수님보다 '장로들의 유전'을 더 강조하고 중시하는 전통주의 사상은 배격되어야 한다. 칼빈이나 웨슬레보다는 성령의 새로운 기름 부음과 가르침에 더 귀를 기울이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죽은 정통

  고백은 바르나 바른 삶이 따르지 못하며, 화석화 된 교리에 묶여 성령의 새로운 사역을 대적하기 쉽다.

 

  -불건전한 신비주의 

  건전한 정통을 무시하고, 몰현세적, 이기적, 반사회적이고, 체험 중심적인 개인주의적 신앙인을 양산하기 쉽다.

 

  한국의 혼합주의. 신앙은 기독교식, 복은 불교식, 삶은 유교식이라는 혼합주의 종교는 배격되어야 한다.

 

 

내적 맹세(inner vow)        

 

  "다시는 xx 사랑하나 봐라" "다시는 내가 당하나 봐라" "다시는 사람 믿나 봐라"와 같이 스스로 분명하게 또는 마음속으로 맹세하는 말을 말한다. 내적 맹세는 결국 자기의 안전을 보호하여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예수님보다는 자기의 맹세를 믿겠다는 말이다

  그 결과 내적 맹세가 나의 성경이 되고 하나님이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내적 맹세가 그 사람의 견고한 진이 되어 인간 관계를 가로 막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 막는다.

  어떤 자매가 젊은 시절에 연애를 하다가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그녀는 배신의 아픔을 이기기 위해 "다시는 남자를 사랑하나 봐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와 결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지 않고 친밀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적 치유를 통해 수년 전에 남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올무가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치유를 받은 그녀는 이제 남편에 대해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었다.

 

  내적 맹세의 해독은 사람을 신뢰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가 어렵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도 어렵게 된다(요일 3:21 참조). 또한 과거의 상처를 인해 비록 하나님의 사역일지라도 주저 하고 망설이는 것을 본다.

  그러나 진정한 신자라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개방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내가 사람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더라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에 순종하여, 하루에도 일곱 번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용서는 곧 용납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3:13-14).

 

 

기타 맹세나 서약들

 

  또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적대적인 어떤 학교나 어떤 사교 단체나 종교 단체에 자신이 서약했거나 부모가 서약하거나 헌신한 경우 내적 치유를 통해 이를 무효화시켜야 한다.

  절에 이름을 올린 경우에는 이름 무효화시켜야 한다. 어떤 형제가 정신 집중이 잘 되지 않고 혼미하여 기도했더니 환상으로 그 형제의 옆에 불상이 보였다. 어릴 때 부모들이 그 형제의 이름을 절에 올려서 그것이 견고한 진이 된 것이다. 꾸준한 치유와 기도를 통해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이런 것을 안 어떤 메디컬 닥터는 의사가 되기 위해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기독교에 반하는 내용이 나올 때 속으로 주기도문을 외웠다고 했다. 우리가 어떤 사교나 하나님 외에 것에 충성을 맹세하면 그 맹세가 견고한 진이 되어 우리의 영적 생활을 방해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또는 이념이나 사상에 심취한 경우나 철학사상에 심취한 경우도 나의 마음을 개방하여 그것과 멍에를 같이하게 된다(고후 6:14-15; 16:19).

  특히 허무주의 철학에 빠진 사람들, 가수들 중에서도 죽음, 허무를 주제로 부른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인생도 그렇게 마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형제는 니체의 허무주의 철학에 심취한 후 회심하여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때 심취한 허무주의로 인해 사고가 빈발하고 재앙이 연속적으로 잇따랐다. 나중에 내적 치유를 통해 허무주의를 통해 형성된 견고한 진을 허문 후에야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다. 기억하라, 인간이 만든 모는 학문이나 철학의 견고한 진의 배후에는 악령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국 내적 치유의 기본 원리는 내가 맨 것을 내가 푸는 것을 말한다( 16:18-19; 18:18).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6:18-19). 

  '매고 푼다'는 말은 일차적으로  복음을 통해 죄에서 벗어나서 자유케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과거에 내가 형성한 견고한 진을 파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 잇는 것이 된다. 이것은 인간적인 의지나 노력으로 깰 수가 없다( 7:14-25 참조). 오직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만 깰 수 있다. 그럴 때 죄악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강을 누릴 수 있다. 막힌 곳이 뚫리면 성령의 생수가 흘러 시원함과 자유함을 느낀다.

 

      

저주

 

  여기서 말하는 저주는 잘 되지 못하게 악담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말에 씨앗이 있다는 말이 있다. 부정적으로 내뱉은 말이 올무가 되어 고탄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내린 저주(self-curse) 

  '나는 왜 이렇게 못 생겼을까?' '내 눈을 왜 이렇게 작을까' '내 눈은 왜 이렇게 클까?' 스스로 내린 저주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막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떤 자매는 영문을 모르게 다리게 통증이 나서 잘 걷지를 못했다. 내적 치유를 통해 그 원인이 밝혀졌다. 그 자매는 대학 시절 기숙사에 지냈는데, 그녀의 롬메이트가 가진 늘씬하고 예쁜 다리와 비교하여 못생긴 자기의 다리를 저주하고 원망했다.

  그녀는 자기의 다리를 원망하고 저주한 죄를 회개한 결과 다리의 건강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다른 사람이 내린 저주

  귄위의 질서 상에 있는 사람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목회자가 교인에게 내린 저주는 치명적이다. 나는 어릴 때 자라면서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거나 속을 썩이면 노골적이로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욕설을 해대는 것을 보았다. 그 저주가 어디 갈까. 이런 저주의 말을 타고 귀신이 역사하여 그 사람을 괴롭게 한다.

         

  -사단이 내린 저주

  무당이나 박수들이 내린 저주를 말한다. 이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다. 성경에 보면 발락이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지만 하나님의 간섭으로 축복으로 끝난 기록이 있다( 22).

  한국의 궁중 이야기에 보면 저주에 관한 기록이 많다. 특히 장희빈이 민중전을 저주하기 위해 짚으로 만들어서 화살을 쏘면서 저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나 남미에서는 원수를 갚기 위해 무당을 사서 저주굿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종교의 영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방해한 집단이 누구인가? 그들은 다름 아닌 유대주의의 일파인 바리새인들이었다. 바리새인라고 하면 성경에서 예수님이 너무나 책망하신 집단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은 형편 없는 율법주의자들이자 형식주의자들이라고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한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말씀을 열심히 상고했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구제했고, 십일조를 철저히 했으며, 전도도 열심히 했다.

  이들은 안식일을 열심히 지켰으며, 자기들이 구약 성경을 해석한 "장로들의 유전"을 통해 613개의 자질구레한 율법을 정해 놓고 그것을 준수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바쳤다. 이들은 자기들이야 말로 가장 성경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자기들의 가르침에 도전을 주고 율법주의와 형식주의를 책망하자 마침내는 제사장의 무리들과 공모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마태복음에 바리새인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마태가 마태복음을 집필할 당시인 A. D. 5-70년대에 당시 어린 아이 같은 기독교를 가장 대적한 집단이 바로 장로의 유전과 격식을 존종한 바리새인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연구 보고도 있다. 

  또한 사도들의 사역을 가장 방해한 집단들도 십자가와 함께 할례를 주장한 유대주의자들과 바리새인들 및 제사장의 무리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학식 높고 교양 있고 기품 있고 전통 있는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이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을 제일 방해한 사람들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전통, 성경해석법, 교양, 학식이라는 견고한 진을 통해 역사하는 '종교의 영'(spirit of religiosity)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나는 모든 종교 집단 전체가 종교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록 거듭난 신자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히게 하는 삶을 살면서도 죄를 지으면 본인도 모르게 마귀의 종노릇을 하듯이, 교단이나 종교 단체 내에서 말씀에 바로 서지 않고 소속한 단체의 전통이나 교리체계나 교권을 성경이나 예수님 보다 우위에 두거나, 또는 자기 열심이 지나쳐서 하나님의 의보다는 특정 교단이나 단체의 의를 높일 때 자신도 모르게 종교의 영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교회의 역사가 이런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한다. 교회는 항상 성령의 새로운 사역을 겪은 이전 세대가 성령의 새로운 사역을 담당하는 현 세대를 핍박하고 배척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을 핍박했고, 종교개혁자들은 재세례파와 같은 급진주의자들을 핍박했으며, 이후 성공회는 웨슬레의 부흥운동을 핍박했고, 20세기 초의 주류교단들은 오순절 성령운동을 핍박했다. 최근에는 일부 오순절 주의자들이 또 다른 성령 운동을 핍박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성령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중의 하나가 각 나라에서 역사하는 종교의 영이다. 이 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종교적 전통과 자신들의 성경해석법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했듯, 성령의 새로운 사역을 핍박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의 영에 사로 잡혀 과거 그곳에서 역사 하신 성령의 사역에 집착한 나머지 현재 이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대적하여 본인도 모르게 마귀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내 생각과 이론과 전통을 사로 잡아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 그럴 때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되어 종교의 영에서 벗어나서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10:5-6).

출처 : 대명교회(大名*大明*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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