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리더십
김경복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10월 / 223쪽 / 10,000원
▣ 저자 김경복
1974년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하여, 부산, 대구, 경기, 서울 등지에서 사업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전력공사 중앙교육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로 32년째 한전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자는 ‘한전의 살아 있는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전 중앙교육원은 사내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 관행을 제거하고, 노사간의 협력과 상생의 문화를 구축하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활력장 같은 곳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내 문화를 주도하는 리더로서, 동서양의 사상,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열의가 넘치는 강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2000)이 있다.
▣ Short Summary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하는 지난 2000년 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Economist)>지가 세계의 석학들에게 인류가 20세기에 반성할 점은 무엇이며, 21세기에 갖춰야할 덕목이 무엇인지 묻는 글을 실었다. 이 물음에 대다수의 석학들이 같은 답변을 제시했는데, 그 답은 바로 ‘지식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었다. 우리 인류가 지난 세기를 너무 겸손하지 않게 살았으며, 다가올 세기는 이를 반성하고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겸손’은 최근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윤리경영’의 핵심이자 리더가 명심해야 할 첫 번째 화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조직에서 외국의 윤리적 가치와 윤리경영 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한 일이며 결국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윤리란 국민성, 역사, 환경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윤리경영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구성원들이 윤리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윤리경영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기업의 기반이 되고 있는 나라의 역사성, 민족성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기업의 전통성과 추구하는 목적을 융합시켜 구성원과 고객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책은 우선 우리의 문화, 역사, 민족성에 대해 고찰해 보고 이에 가장 합당한 동양의 경영 지혜를 찾아 우리 기업 실정에 맞는 ‘윤리경영’과 ‘리더십’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저자는 한국전력 중앙교육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주축으로 동양의 문화와 윤리적 가치는 무엇이며, 인(仁)을 바탕으로 한 윤리경영과 겸손과 배려(봉사)의 리더십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인재, 겸손과 양심이 바탕이 되는 ‘봉사적 리더십’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저자의 평소 소신과 해박한 동양 사상이 책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이 책은 교육 현장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쉽고 간결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또한 다양한 역사․문화의 사례와 해석들을 실어 젊은 세대도 흥미를 가지고 동양의 경영 지혜와 겸손의 리더십을 터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 차례
추천사
프롤로그
제1장 문화의 흐름
연꽃에서 찾은 진리
여성 중심의 촌락 문화, 남성 중심의 도시 문화
인간은 문화적 동물이다
일곱 가지 죄에는 빠지지 말라
검(劍)과 도(刀)의 차이
변방의 지식인으로서의 삶
진시황제와 이사
제2장 윤리경영의 재발견
공자와 춘추시대
공자가 꿈꾼 세상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있는 것
하늘을 우러르는 삶의 자세
윤리적 조직의 힘, 활력
공자, 윤리경영을 말하다
제3장 리더십 아카데미Ⅰ
서양의 리더십, 동양의 리더십
위기 극복의 리더십
여성 리더십의 특장점
현실과 이상의 갈림길에서
주어진 시간의 주인이 되는 법
비전은 확신이다
새로운 4.3.3 원칙을 세워라
결합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
리더십의 바탕, 지혜와 윤리
제4장 리더십 아카데미Ⅱ
반감기(半減期)의 생존법
공격보다 현명한 방어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둘인 까닭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재판장에서 눈물을 흘린 소포클레스
버리는 연습을 시작할 때입니다
잃는다는 것과 버린다는 것
아름다운 퇴장
'서번트 리더십'의 핵심
제5장 몸을 낮추어 마음을 얻는 법
같은 비전을 공유하라
사랑에도 절차가 있다
마음의 추진력
부디 젊은 날엔 짐을 가볍게 하라
에필로그
겸손의 리더십
김경복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10월 / 223쪽 / 10,000원
프롤로그
윤리경영이란 회사 경영 및 기업 활동에 있어 ‘기업윤리’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며, 투명하고 공정하며 합리적인 업무 수행을 추구하는 경영정신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은 미국의 ‘존슨 앤 존슨’이나 ‘GE’같은 기업이 윤리경영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으니까, 그 회사의 시스템이나 윤리헌장을 모방해서 윤리경영 체제를 갖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윤리란 역사와 환경에 따라 다릅니다. 미국에는 미국의 윤리가 있고, 한국에는 한국의 윤리가 있습니다. 기업을 구성하는 사람은 모두 한국 사람인데, 그 사람들한테 미국의 윤리관을 갖추라고 요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농사꾼에게 턱시도를 입혀 농사짓게 하는 것과 같은 난센스일 것입니다. 진정한 윤리경영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기업의 기반이 되고 있는 나라의 역사성, 민족성 등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기업의 전통성, 추구하는 목적 등이 융합되어 구성원과 고객이 더불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뽑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1장 문화의 흐름
여성 중심의 촌락 문화, 남성 중심의 도시 문화
촌락 문화는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큰 가족과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영역이나 이익 따위의 다툼이 적었습니다. 정적 생활을 즐기며 죽은 다음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촌락 문화를 ‘저승 문화’라고도 부릅니다. 저승 문화를 발달시킨 민족은 그 민족의 신화체계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문화이론에는 운반가설(Carrying Hypothesis)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인류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시기에 따라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생활을 하던 때가 모계 중심으로 여성이 그 문화를 주도한다는 이론입니다. 그때만 해도 저녁 풍경은 그지없이 고요하고, 아침 풍경은 평화로웠습니다. 여성 중심의 ‘부드러운 사회’였던 것입니다.
아테네, 스파르타, 로마 등의 도시국가가 생기면서 도시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도시 문화가 발달한 나라의 신화 체계를 보면 촌락 문화의 신화 체계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도시 문화의 특징은 남성들이 무대의 중심에 자리를 잡습니다. 남성의 무대는 벌판입니다. 황량한 벌판에서 싸워 이겨 영웅이 되고, 이 영웅들의 이야기(His Story)가 역사(History)가 되었던 것이지요. 운반가설의 다음 단계는 연장가설(Ground Camp Theory)입니다. 정착 생활 시대는 이동 생활 시대와 달리 논과 밭을 필요로 했고, 사냥 대신 가축을 사육했습니다. 또 다양한 연장들이 필요에 의해 제작되었고, 재산을 보호할 무기도 한층 발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기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연장가설의 이론입니다.
인간은 문화적 동물이다
문화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문화란 인간이 자연 상태를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 문명과 문화를 같이 보는 시각도 있지만, 대체로 문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물질적 소산을 문명이라고 하고, 문학이나 예술, 종교, 도덕과 같은 정신적 소산을 문화라고 말합니다. 문화권역은 국가와 같거나 작은 규모인 반면, 문명권역은 국가보다 크고 세계보다는 작은 규모라 할 수 있습니다. ‘문(文)’자는 본시 무늬가 놓인 모양을 본뜬 그림이 발달한 상형문자로 ‘외견의 꾸밈이나 법도’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회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자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목적이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목적과 이상을 가진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각기 다른 뜻과 의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거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규범적인 틀’이 필요하게 됩니다. ‘문화’의 ‘화(化)’는 ‘사람’과 ‘칼’을 합한 글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자연을 개량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도구, 연장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문화란 인간이 연장이나 칼 등 어떤 것을 사용하든 간에 힘을 매개로 해서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이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힘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카리스마 또는 리더십입니다.
일곱 가지 죄에는 빠지지 말라
지금까지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촌락 문화-도시 문화-국가 문화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영역이 점점 커지면서 문화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문화의 공유하는 가치가 같을 때 응축되는 힘이 더 커져서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문화의 영역이 커지면 커질수록 공유하는 가치가 분산됩니다.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부나 명예, 기술 등을 최고로 치는 부류도 나타납니다. 가치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인간성이 결여된, 인간이 없는 ‘가상’의 사이버 월드에서 공존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사이버 월드를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이버란 전자 통신망과 가상의 현실을 결합한 것으로 가상 세계입니다. 거울과 사이버 세계의 특징은 거기에 인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이미 치유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가뜩이나 힘이 빠진 지도자는 더 큰 힘을 필요로 하지만 힘이 될 자원을 찾지 못합니다. 이때는 이미 참모들도 그들 나름대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의 일원이 되어서 지도자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입니다. 결코 이런 세계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인도의 독립 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인 마하트마 간디(Mohandas Gandhi, 1869~1948)가 살던 세상은 컴퓨터도, 휴대용 전화기도 없던 때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덜 복잡한 세상이었습니다. 인도는 간디가 태어나기 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간디는 영국으로부터 억압을 받는 힘없는 민족의 지도자였으니, 힘센 나라에 항거해야 했고 민족의 장래도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폭력을 쓰지 않고, 영국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는 ‘사티아그라하(Satyagraha:힌디어로 ’진리에 대한 헌신‘, ’진리의 힘‘ 이라는 뜻)’ 운동을 펼쳤습니다. 간디는 미래의 세계를 생각하면, 그 세계가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측했는지, 우리 인간이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곱 가지 사회악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많은 이들의 가치관에 정곡을 찌르는 명쾌하면서도 예리한 지적입니다. 일곱 가지 사회악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력이 빠진 부, 양심이 빠진 쾌락, 인간성이 빠진 지식, 도덕이 빠진 상업, 인간이 빠진 과학, 희생이 빠진 기도, 진실이 빠진 정치.
변방의 지식으로서의 삶
군대에 갔다 온 분들이라면 고개를 끄떡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얘기를 하나 하렵니다. 군대에서는 까닭을 모르는 집합이 꽤 많습니다. 이때 군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가운데를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맨 앞줄이나 맨 뒷줄에 선 사람이 선택될 확률이 높아, 적어도 가운데 서면 본전은 하는 셈이므로 손해 볼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문화라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어느 문화권에 속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문화의 중심부에 들어서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수록 그 문화의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운데 자리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는 대체로 기득권자들이 굳건히 차지하고 있어서 외곽에 있는 사람들은 발 디딜 틈조차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늘 손해만 보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경계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늘 불안하고 고독합니다. 중심부에 들어갈 자리는 없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기엔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용기 있는 경계인이 나타나 변화를 도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화의 울타리를 새롭게 만들어가거나 질서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변방의 지식인(Marginal Intelligentsia)'이라고 부릅니다. 성공하면 혁명가가 되어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되지만, 실패하면 국외자로 전락해서 그 문화의 세계에서 떠나야 합니다.
<주역>에는 ‘개물성무 화민성속(開物成務 化民成俗)’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모든 사물의 궁극을 밝혀 그 쓰임을 다할 수 있게 하고, 백성을 변화하게 하여 풍속을 이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건이 제 용도에 쓰이지 않거나 사람이 너무 똑똑해서 화합을 그르치면 오히려 똑똑하지 아니한 만 못하다는 경구일 것입니다. 앞에 있는 한자들을 모으면 ‘개화(開化)’가 됩니다. 경계인인 변방의 지식인들이 나타나 변화를 꾀함으로써, 사회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면 그것이 개화입니다. 다시 한자들을 따로 빼내면 ‘속물(俗物)’이 됩니다. 문화의 틀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변화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면, 고인 웅덩이의 물이 썩듯이 그 사회도 썩는다는 뜻입니다.
제2장 윤리경영의 재발견
공자가 꿈꾼 세상
공자가 여러 나라의 제후들을 만나서 설득하며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요? 공자는 노나라 태생으로 노나라를 세우고 의례 제도를 만든 주공(기원전 12세기에 활동한 정치가)을 몹시 흠모했습니다. 주공은 윤리적 권한을 갖춘 왕권을 확립하고, 법적 구속이 아닌 예의범절에 의해 사회적 유대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 고대 정치의 선각자였습니다. 이러한 주공을 평생 스승으로 삼은 공자와 제자들이 기록한 <춘추>, <논어>등을 통해서 볼 때 공자 사상의 핵심은 도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자 사상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입니다.
1) 인간과 하늘
2) (옛것을 숭상하고) 기술하여 널리 전파하되, 새로운 것을 보태지는 않는다.
1) 인간과 하늘을 포함한 우주의 이치를 밝히는 것을 철학이라고 합니다. 공자가 인간과 하늘에 관해 언급한 것은 동양의 철학을 언급한 것입니다. 공자는 세상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롭기를 바랐으므로, 그 시대의 인간과 하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공자의 시대보다는 다소 늦었지만 유럽에서도 소크라테스(Socrates)라는 철학자가 나타나, 그 시대의 인간과 하늘을 연구하고 고민한 바 있습니다. 다만 공자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중점을 두었고, 소크라테스는 인간과 하늘의 ‘존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동양에서는 철학이 깊어졌고, 서양에서는 종교가 발흥했습니다.
2) 공자가 옛것을 숭상하고 기술하여 널리 전파하되, 거기에 새로운 것을 보태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공자가 새로운 것을 보태지 않고, 술이부작(述而不作)을 견지한 데는 모든 것이 개악된 현실에서, 일단은 모든 세력이 이해득실을 떠나 군웅이 할거하기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 시대는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보다 훨씬 도덕적인 사회였으므로, 그 시대로 돌아가서 더 좋은 변화를 모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내포한 공자의 중심 사상이 ‘정명론(定命論)’입니다. 모든 사람이 잘잘못을 구별할 수 있는 심성과 자질을 갖추고,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윽박질러 자기 뜻대로 따라오도록 강제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며 모두가 만족스럽게 더불어 살며, 각자 맡은 바 책임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자는 ‘윤리의 시대’를 외롭게 외친 것입니다. 공자는 ‘정명’이라는 사상으로 힘만 가지고 중원의 패자가 되려고 싸움질을 일삼던 군왕들에게 제발 ‘겸손’하자고 제안한 것인데, 결국 쓸쓸한 메아리만 다시 돌아왔을 뿐입니다.
오늘날의 세상도 공자의 시대와 시공만 달리할 뿐, 그 상황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역사가 멈춰 있었던 것일까요? 역사를 반추하고 잘못을 반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을까요?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면 당시에 내뱉은 한숨보다 더 크게 탄식할 일입니다.
하늘을 우러르는 삶의 자세
인의예지(仁義禮智) 중 ‘인(仁)’은 우리 민족의 핵심 가치입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인仁’을 ‘人’과 ‘二’의 합성어로 보았습니다. 즉 ‘두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인’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개념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수한 형태의 관계가 맺어질 수 있는데, 이 다양한 인간관계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바로 ‘인’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인간관계를 다섯 가지로 범주화하고 각각의 최고 덕목을 제시한 것이 오륜입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와 친구의 관계를 대표적인 유형으로 보았습니다. 옛글을 정리해 보면 ‘인’은 ‘모여 살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인’을 윤리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었다는 실례를 하나 들어 보이지요. 6.25 동란 때입니다.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북쪽 주민이 후퇴할 때입니다. 당시 흥남부두에 레너드 라루 선장을 비롯한 47명 정원의 7,600톤급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가 정박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배에 남쪽으로 향한 피난민이 물밀 듯이 밀어닥쳐 1만 4,000여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배는 천신만고 끝에 동해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3일 만에 거제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습니다. 후일 미국 아이젠하워의 대통령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상 구조였다”고 칭찬한 바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재미동포 기업가 안재철 씨와 함께 기네스북에 기록을 신청한 로버트 러니는 당시 일등선원이었는데, “철수 당시 진정한 영웅은 선원들이 아니라 죽음의 극한 공포 속에서 굳건한 용기와 신념을 보여준 피난민이었다”고 등재 소감을 밝혔다고 합니다.
한 배에 같이 탄 1만 4,000여 명은 대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1만 4,000여 명 모두가 하나의 하늘을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 같이 눈금이 같은 양심의 자를 가지고 있었고, 고향을 등지고 내려오는 비운의 가슴속에 이웃을 하느님처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결코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랐던 우리 선조들의 윤리적 가치관이 없었다면 이런 기적은 결코 일어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윤리적 조직의 힘, 활력
문화라는 것은 힘을 매개로 생장한다고 말했습니다. 윤리는 문화와 유사한 부분도 있으나 문화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윤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적 규범’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따뜻하고 바른 기운이 윤리입니다. 윤리는 문화와 달리 리더에게 특별한 힘을 실어주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가운데 자신을 정화하고 겸손함을 길러, 모두의 공감을 통해 함께 힘씀으로써 더 큰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것입니다. 윤리적 조직은 자율 조직이므로 규범, 관례, 기준을 아우르는 핵심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핵심 가치는 조직원 모두가 공유함으로써, 그로부터 활력은 받는 정기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비르투(활력소)를 조직의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말했습니다만, 이런 주장은 패권 시대의 논법입니다. 윤리 시대의 조직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활력소’를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근 미국에서도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채택하고 기업 성과를 올리기 위해, 조직원을 긍정적이고 활력 있게 결집하기 위해 몰입 에너지(Ritual)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구성원을 자발적으로 조직화하는 시스템입니다. ‘활력소’를 공유하기 위해 구성원을 조직화하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은 조직 발전에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나 종교적 의식이나 제전이 지나치면 종교 자체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로, ‘활력소’를 꾸밈으로만 만들면 그 속에는 활력이 들어 있지 않게 됩니다. 윤리적 조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조직원에게 자유가 주어지고 자유로움 속에서 창조를 이끌어내도록 해야 하지만, 방종을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정도를 벗어나서 특혜를 얻으려는 자가 있다면, 조직원 전체가 단호히 응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윤리적 조직의 생명인 조직의 활력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3장 리더십 아카데미 I
서양의 리더십, 동양의 리더십
다음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기원전 256~기원전 195)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고 시운을 잘 타고난 덕분에 초나라의 왕 항우(기원전 232~기원전 202)와 자웅을 겨루게 되었습니다. 한 전투에서 유방이 패하게 되어 항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유방은 네 마리의 준마가 끄는 마차에 처자와 측근 소하를 태우고 다급하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마차에는 재물을 챙긴 짐도 실려 있었습니다. 항우의 추격 속도가 더욱 빨라졌습니다. 짐을 버리지 않으면 곧 항우에게 잡힐 지경이었습니다. 다급해진 유방은 자식을 마차에서 버릴 참이었습니다. 이를 본 소하가 황급히 유방을 제지했습니다.
“안 됩니다!”
“놔라! 이렇게 가다간 항우에게 잡히고 만다. 짐을 덜어야 돼.”
“차라리 재물을 버리십시오.”
“자식은 또 낳으면 된다. 그러나 재물을 버리면 병사를 구할 수 없지 않느냐?”
“짐을 덜기 위해 마차에서 자식을 버렸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물은 또 구할 수 있습니다. 군자가 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리더십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덕입니다. 덕을 자전에서 찾아보면 인품, 사람의 사상, 생활을 통칭하는 것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단순한 정치적 기술이나 출중한 무예를 요구하지 않고, 그것보다는 덕성을 갖춘 사람을 지도자로 섬겼습니다. 즉 참모정치의 전형이었던 것입니다. 책사 제갈량(181~234)을 더욱 유명하게 했던 촉나라 왕 유비(161~223)도 본인은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지만 관우, 장비 등 참모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로 볼 때 유비는 덕이 있었을 뿐 다른 능력은 보잘 것 없었던 듯합니다.
그러므로 동양적 리더십의 성공 조건은 첫째, 리더가 덕이 있어야 합니다. 또 덕을 갖춘 리더는 유능한 참모를 써야 합니다. 참모가 자기 자리를 넘볼까봐 의심하여 유능하지 못하고 덕만 겸비한 참모를 고른다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참모는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똑똑한 것만 믿고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참모에게 리더를 하늘처럼 받드는 충성심이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리더십의 특장점
3년 전의 일입니다. 대구에서 사업소장을 하고 있는데 신입 여직원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키도 훤칠하고 인상도 호감이 가는 명문여대 출신의 재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우연히 그 여직원이 아침 일찍 여러 사람의 책상을 걸레로 닦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기특한 일이기도 했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상황에 궁금증이 생겨, 왜 남의 책상을 닦아주는지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생글생글 웃으며 그렇게 하면 업무 경험이 많은 언니들과 상사들이 친절하게 일을 잘 가르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악하고 예쁜 발상입니다. 직속 상사에게 확인해 보니 아침마다 책상을 닦는 일뿐만 아니라, 회의 때나 고객이 찾아왔을 때 스스로 차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도맡아 한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입사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그녀는 소속 부서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은 동시에 사업장에서 모두의 귀염둥이로 사랑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성 문화가 밴 조직에서 여성이 자기의 지위를 소극적으로 방어한다면 조직의 일원으로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누가 부탁하거나 지시하기 전에 기꺼이 그 일을 해냄으로써 그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오히려 남성화된 조직을 여성스런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사랑방은 남자들의 공간이고, 부엌은 여자들의 공간이었습니다. 옛날 곳간 열쇠는 시어머니의 차지였다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며느리에게 전해집니다. 오늘날의 세대와 견주어 본다면 사뭇 달라진 풍속도 많지만, 서양 사회의 맞벌이 신혼부부는 각각 자신의 재산이나 통장을 별도로 관리하는 반면 우리의 경우 남편의 월급이 곧바로 아내의 통장으로 들어가고, 남편들은 아내에게서 용돈을 받아쓰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옛 풍습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남녀 관계는 서양이 상호 독립적인 것과는 달리 상호 보완적입니다. 심리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단 남자와 여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현상에 상호 의존 관계(Inter Dependance)가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상호 의존 관계의 사회에서 여성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부드러움입니다. 신비로움입니다. 사랑입니다.
여성이 독립적인 서양 사회든, 남녀가 상호 보완적인 동양 사회든 여성의 가장 큰 무기는 여성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부드러움이 가족과 사회를 화목하게 만들고, 신비로움 속에서 변화와 창조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회는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확대되었고, 이에 조직도 평등 관계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차세대 여성 리더십은 당신이 변해야 세상이 보이고, 당신이 변화를 주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변화란 자신이 열지 않으면 절대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과 이상의 갈림길에서
30년 전, 제가 신입사원 입문 교육을 받을 때였습니다. 어느 교수 한 분이 “당신들은 ‘오만 분의 일’일 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한국전력 전체 직원이 5만 명이었으니, 산술적 계산으로는 신입사원 한 사람의 존재는 있으나마나 한 정도였을 것입니다. 아마 그 교수님의 말씀은 이제 조직의 일원이 되었으니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었겠지요. 그런데 그분이 신입사원의 개별적 인격과 개성을 존중했다면 그런 표현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를 계기로 신입사원 교육이 끝난 후 회사를 떠나버린 사람도 있었고, 잔류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 말을 마음속에 앙금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교육은 자유를 기반으로 한 자율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활력이 없다면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연수원 교육은 연수원 정문을 나설 때 모두 잊어버린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연수생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교육은 효과가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신입사원 교육 커리큘럼에 두 가지 요소를 반영했습니다. 하나는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 속에서 ‘나’를 찾는 교육입니다. 첫째, 신입사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교육 일과 후에 연극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신입사원이 100명이라면 10막으로 된 회사와 관련된 연극을 꾸미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막마다 10명이 한 조가 되어, 스스로 머리를 맞대어 각본을 쓰고 전원 출연하는 것을 조건으로 합니다. 둘째, 조직 속에서 ‘나’를 찾는 방법으로 개발한 것이 이틀 동안에 약 200리를 행군하는 것입니다. 행군은 회사의 상징물이 있는 장소에서 시작해서 회사와 관련이 있는 곳에서 끝나면 교육 효과가 더욱 좋습니다. 이때 교육적 틀은 팀별로 점수를 주는 것입니다. 낙오자가 생기면 그 팀 전원이 감점을 받습니다. 힘든 행군 과정도 어느덧 끝이 나고 종착지에 이르면 팡파르를 울리고 자축 파티가 벌어집니다. 이때 그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활화산이 폭발하는 듯합니다.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한 것에 대한 놀라움의 표출이지요.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또 내가 어려울 때 동료가 나를 돕는다는 믿음이 자랑스럽고 뿌듯했을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의 주인이 되는 법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시간이 빠르거나 느리다는 것은 시간을 가진 사람이 조급하거나 나태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존재합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는 바로 나의 몫입니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의 주인은 바로 자신인 것입니다.
과장은 시험을 보니까 실력을 키워 시험에 합격하면 됩니다. 부장은 어떻게 하면 빨리 될까요? “이 분야는 누가 최고야”라는 정도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면 자신이 예기치 못한 시기에 부장으로 승진할 것입니다. 부장에서 그 다음 단계는 또 얼마나 걸리고, 어떻게 하면 빨리 오를 수 있을까요? 전문가로만 계속 남아 있다면 승진을 포기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뭔가 더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이면서 자기의 부하 직원인 몇 사람을 자기와 같은 수준의 전문가로 키워 보십시오. 그러면 승진도 쉽게 하고, 덤으로 부하 직원들로부터 존경도 받게 될 겁니다. 그 다음 단계는 전문가이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든가, 관용, 이해와 같은 것들을 쌓아야 하는데, 이러한 것을 소위 ‘문사철(文史哲)’이라고 말합니다. ‘문사철’은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같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채워줍니다.
비전은 확신이다
현대의 가정 연료로는 도시가스나 LP가스가 주축을 이룹니다. 그런데 50년 전에는 연탄 사업이 대단했습니다. 연탄 사업이 사양 산업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사업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요? 그 당시 ‘LP가스’라는 연료를 생각하고 보다 멀리 내다보며 사업을 진행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업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망했을 것입니다.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것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해마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사업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힘듭니다. 대체로 수익이 줄어들기 시작할 때, 그제서야 다른 전환을 시도하지만 그때는 이미 시기를 놓친 때입니다.
기업에서는 어떤 문제를 혁신하려면, 그 문제를 다루는 부서를 제외하고 타부서의 유능한 직원들을 선발하여 태스크포스팀을 만듭니다. 문제를 안고 있는 조직은 문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제외됩니다. 그런데 테스크포스팀은 임시 조직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바꿀 힘은 없습니다. 어떤 의도에서 뭔가를 10퍼센트 바꾸는 것과 50퍼센트 바꾸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힘들까요? 실제로 경험한 사람에 의하면, 10퍼센트만 바꾸는 것이 50퍼센트 바꾸는 것보다 5배는 더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직의 개혁 문제는 왕왕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어느 외국 책에서 보았는데, 비전이란 “내가 지금 손에 무엇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놓으면 더 좋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쉽고도 명쾌한 해석입니다. 얼마 전 괴테의 <파우스트>를 번역판으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과연 정말로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될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도서관에서 원문을 찾아보니 ‘희망(Hoffnung)'이 아니라 ’용기(Mut)'였습니다. 희망과 용기는 일면 비슷한 점이 있으나, 희망에는 자기기만의 속성이 배어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파우스트>의 내용을 다시 해석하면 “용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용기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무엇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전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그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4.3.3 원칙을 세워라
과장으로 승진했을 때의 일입니다. 평소 각별히 관심을 가져 주신 상사가 저를 찾으셨습니다. 그때 그분에게 배운 것이 ‘4.3.3원칙’입니다. 조직의 간부가 되면 직원 때와는 권한과 책임이 달라집니다. 상사의 의중을 잘 헤아려야 하며, 동료와는 서로 돕는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부하 직원들은 사랑으로 대하고, 훈육을 통해 우수한 조직원으로 성장시켜야 할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분이 제게 들려준 말씀은 상사에게 40퍼센트를 할애하고, 동료와 부하 직원에게 각각 30퍼센트씩 배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100퍼센트를 상사와 동료, 부하를 위해 쓰라고 하는데 그러면 자신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셈이 됩니다. 모든 시간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배려한다면 나는 언제 과장 수업을 하며 모자란 부분을 어떻게 공부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분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렇게 배려하고 나면 저는 없는데요?”
부서장은 한동안 저를 그윽이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이놈아, 회사 생활을 그렇게 하라는 거야. 너의 모자란 것은 근무 시간 이외에 채워야지. 바보 같은 놈들이나 근무 시간에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과거의 조직이 수직적 특성이 있었다면, 현대의 조직은 수평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수평적 조직에서는 권한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조직의 규모도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작고 팀 형태로 유연해졌습니다. 권한이 분산된 수평적 조직을 응축시키는 것은 수직적 조직을 단속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조직원들이 권한만을 주장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도 균열이 생기지만, 세대간의 갈등도 그에 못지 않게 세심히 다루지 않으면 조직에 병이 생깁니다. 오히려 수직적 조직에서 얻어지는 성과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유발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4.3.3 원칙’은 오늘날 더욱 필요하고 강조해야 할 기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세월이 많이 흘렀고, 사회 환경도 많이 변했으므로 이제는 상사에게 40퍼센트를 할애할 것이 아니라 부하나 후배에게 40퍼센트를 배려하고, 상사와 동료에게는 각기 30퍼센트 정도 안배하는 새로운 ‘4.3.3원칙’을 정립해야 할 때입니다.
결함의 오류를 범하지 마라
서양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비계를 설치합니다. 건물 외곽에 긴 나무 기둥을 세우고 널을 걸쳐 사람이 지탱하고 서서 일할 수 있도록 꾸민 것을 비계라고 합니다. 로마 시대에도 개선문이나 대성당을 지을 때 비계를 설치했습니다. 로마 역사를 보면, 로마인들은 건축물이 완성되어 비계를 해체할 때가 오면 독특한 의식을 치렀습니다. 지금의 건물 준공식과 같은 것입니다. 개선문을 예로 들어 비계 해체의식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관계자와 구경꾼들이 개선문 주변에 둥그렇게 모여 서서 보는 가운데 작업부들이 비계를 하나씩 하나씩 제거합니다. 이때 개선문 중앙에 한 사람을 세우는데 그는 바로 공사 감독관입니다. 잘못된 공사는 비계를 해체할 때 그 건물이 무너지게 되는데, 공사 감독관은 그 모든 책임을 지고 무너져 내린 벽돌 아래 깔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사 감독관은 정성을 다해 설계하고 감독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로마제국의 유적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비교적 온전히 유지되어 온 것은 로마 사회가 비계의 해체의식에서 볼 수 있듯이 ‘책임지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 후기에 질서가 문란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병역과 납세 의무를 부담하지 않고는 결코 원로원 의원이 될 수 없었으며, 군대도 마찬가지로 백인대장을 거치지 않고는 군단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공익을 위해 앞장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전형을 이루었던 모범적 사회였습니다.
건강한 사회와 건강하지 못한 사회를 쉽게 구별해 내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는 책임지지 않는 조직이 많습니다.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고 주장만 무성하게 늘어놓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이런 단체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름은 환경단체인데 노동 운동을 주장한다든지, 남녀평등을 위한 여성단체인데 특정 지역의 개발 방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단체가 기승을 부린다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1994년 10월 21일, 한강의 성수대교가 무너졌습니다. 사고가 난 직후 책임 소재를 가리고자 공사 감독자를 확인해 보니, 순환근무제를 실시해서 착공부터 준공까지 공사 감독자가 여러 번 교체되었습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구분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의 비계 해체의식과 비교해 보면 크게 다르다는 것이 느껴질 것입니다. 무언가 빠진 것 같지 않습니까?
제4장 리더십 아카데미 II
반감기의 생존법
한 직장에 장기간 근속하게 되면 직원 시절 상사로 모셨던 분을 과장이나 부장이 되어서 임원으로 모시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이렇게 재회한 선배들을 보면 대체로 두 부류로 분류됩니다. 첫 번째 부류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발전한 경우입니다. 업무에 대한 판단도 예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것은 물론 폭넓은 식견으로 부하 직원들이 제대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익히는 데 게을리 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존경스럽고 다시 모시게 된 것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경우입니다. 업무 스타일도 옛 방식 그대로이며, 회식 자리의 농담조차 이전에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억지웃음을 지어야 할 정도입니다. 같이 있기조차 피곤하고 실망스럽습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스피드에 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합니다. 최근에 이러한 시대에 조응하기 위해 ‘Half Life'라는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반감기입니다. 반감기 이론은 디지털 시대에 맞춰 각종 증명서에 유효 기간을 두자는 것입니다. 초․중․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은 25년, 대학은 10년, 기업에서 체득한 지식은 5년만 지나면 절반은 쓸모 없게 되어버립니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그 흔한 운전면허증을 제외하곤 유효 기간이 지난 증명서만 잔뜩 가지고 있는 꼴입니다. 어디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검증 받을 능력’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주역> 계사전에 보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궁하면 변화를 꾀하라. 변화함으로써 난관을 헤쳐 나아갈 수 있다”는 구절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경구 같습니다. 즉 위기가 심화되면 변화의 기미가 보이고,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이 생기고, 결국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이미 이력서에 학력란을 없앤 지 오래라고 합니다. 현재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를 중시하는 디지털 시대의 시스템을 갖춘 것입니다.
공격보다 현명한 방어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기원전 201)은 페니키아의 식민도시 카르타고와 로마제국간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로마의 숨은 장군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전쟁 당시 집정관을 지낸 파비우스 막시무스입니다. 파비우스는 적의 사기가 높기 때문에 정면 대결을 피했습니다. 그 대신 보급기지가 멀리 있다는 단점을 이용해 적의 군량이 떨어지고 사기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 후퇴했습니다. 파비우스의 후퇴는 콧대 높은 로마제국 원로원들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습니다. 로마 시민들도 적을 지치게 하는 지연 전술에 치중하는 파비우스를 겁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파비우스는 원로원과 시민들의 비웃음은 안중에 두지 않고 또다시 지연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러자 보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던 적의 사기가 서서히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로마 시민들은 파비우스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친 적을 공격해서 이탈리아 반도 밖으로 내쫓아버린 장군들에게 갈채를 보냈습니다.
파비우스가 높이 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1884년 영국의 시드니 웹이 설립한 페비언 협회에서였습니다. 페비언 협회는 파비우스의 비겁함이 나라를 살렸다고 해서 파비우스를 기리고 그 유지를 받들고자 하는 모임입니다. 사회개량주의자들의 이 모임은 1906년 노동당으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노동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용자와 전쟁을 하게 될 경우에 파비우스의 방어 전략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파비우스는 첫째 적이 원하는 장소에서, 둘째 적이 원하는 시간에, 셋째 적이 원하는 전투 방법으로 싸우지 않음으로써 슬기롭게 적의 공격으로부터 적을 방어했습니다.
버리는 연습을 시작할 때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몇 번씩 이사를 하게 됩니다. 자식이 성장하고 며느리가 들어오니, 집 규모도 그만큼 커져야 하니까요. 이때 부부가 자주 다투는 진풍경을 보게 됩니다. 남편은 입지 않는 낡고 헤어진 옷가지를 쓰레기장에 버리고, 아내는 책꽂이에 잠만 자고 있는 해묵은 책들을 쓰레기장에 쌓아 놓습니다. 당연히 짐을 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새집으로 이사를 와서 짐을 풀고 보면, 쓰레기장에 버린 옷가지와 책들이 그대로 따라와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버린 것을 챙긴 것이고, 남편은 아내가 버린 것을 싸들고 온 것입니다. 가족 모두가 짐을 덜어야 한다는 생각은 절실한데, 실제로 버려지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그렇게 어렵습니다. 하찮게 되어버린 물건을 버리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자기에게 익숙해진 습관을 바꾼다거나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이제까지 모으고 쌓는 습관에 익숙해 있었다면, 지금부터 버리는 연습을 시작할 때입니다. 버리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기 때문에 미리 연습기간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어느 연구 자료에 의하면, 버리는 습관에 익숙해진 사람은 늙어서 죽을 때도 가족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고, 아주 평화롭게 하늘로 떠난다고 합니다. 반대로 늙어서도 젊은 시절의 습관을 바꾸지 못하고 모든 것을 움켜쥐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버릴 줄 모르는 사람은 몹쓸 병이 들더라도 쌓아 놓은 것에 애착이 많아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합니다. 구천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넋들이 많은데, 그들은 모두 버릴 줄 몰랐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성장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그 죽음이 그만큼 고통스럽고 자연스럽지 못할 뿐입니다.
잃는다는 것과 버린다는 것
잃는다는 것과 버린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버린다는 것에는 의지가 담겨 있지만 잃는다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삶이 각박해지고 이웃이 사라지면 세상은 험해집니다. 자연히 세상이 싫어지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살한 사람을 보고 “세상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세상이 그 사람의 것이 아니었잖습니까? 또 “생명을 버렸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자살을 선택했으므로 ‘버린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생명’은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한 산물도 아니고, 또 ‘생명’은 생명이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족과 같은 공동체의 것이므로 ‘잃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입니다. 잃는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없어지는 것입니다. 정신이 없어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정신을 잃는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말하며,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주체가 빠져나간 껍데기일 뿐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통계 자료에 의하면, 40대 이후부터 고령층으로 올라갈수록 연평균 자살율이 급격히 상승한다고 합니다. 주체가 없는 상태에서 부지불식간에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좋게 변했다고 말하지만, 목숨을 잃은 그 사람들에게 세상은 나쁘게 변한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기에 그들이 정신을 잃어버리는지 전부 이해할 수 없지만 안타까운 심정이 먼저 앞섭니다. 아무쪼록 중년 이후 나이든 사람들은 수시로 열어보듯, 가끔은 자신의 가슴을 열어 거기에 정신이 온전히 있는지, 주체가 빠져나가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제5장 몸을 낮추어 마음을 얻는 법
같은 비전을 공유하라
깃발을 한자로는 ‘기’라고 합니다. ‘旗’는 상형문자입니다. ‘旗’는 사람이 깃발 아래 서 있는 모습입니다. 깃발을 들고 서서 사람을 깃발 아래로 부르는 모습입니다. 깃발을 들고 사람을 부르면 그 깃발 아래 모이는 사람들은 같은 생각,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이라고 합니다. 깃발은 외로운 사람이 더불어 살 사람을 부르는 신호입니다. 깃발이 푸른 창공에서 무시로 흔들리면 그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거기서 사랑이 손짓하기 때문입니다. 깃발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깃발 아래 모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공감’이 있을 때 흔들립니다. 창공의 깃발은 바람이 흔들지만, 사람이 든 깃발은 사람과 사람의 공명으로 흔들립니다. 깃발은 우리 인류의 발명품 중 가장 아름답고, 또한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깃발을 흔들거든 망설일 것이 없습니다. 어서 그에게 가십시오. 그리고 깃발을 같이 흔들면, 거기서 영근 사랑이 우수수 떨어질 것입니다.
사랑에도 절차가 있다
온전한 사람은 빚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빚이 많습니다. 늘 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어서 아직 베푼다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베푼 사람이 부모인 경우에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 때문에 무엇을 받았는지조차 까마득합니다. 취직해서 월급을 받아도 자기 여자 친구에겐 예쁜 선물을 하지만, 부모에게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부족한 것이 생기면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생떼를 부립니다. 젊은 남녀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보아야만 ‘의무’라는 단어에 비로소 익숙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빚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해 보게 됩니다. 이때 빚이 많이 쌓인 사람은 빚의 무게를 헤아리지 못해 쉽게 빚의 덫을 헤쳐 나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빚의 덫에 갇혀 성장을 포기하고 다시 어린아이로 회귀하려는 환자도 생깁니다. 자신의 빚을 줄이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그릇으로 성장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에필로그
우리는 꽤 오랫동안 윤리를 잊어버린 채 살았습니다. 힘을 매개로 한 문화의 시대를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살면서 문화를 윤택하게 했던 ‘칼’이 녹슬고 있으니, 윤리로써 새로운 사회를 일으키려고 합니다. 윤리적 사회는 ‘눈금’을 같이하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구성원 모두가 같은 선상에서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 더불어 잘살기 위해서는 ‘겸손’이 가장 중요한 미덕입니다. 서로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칼의 시대’의 눈금과 때를 말끔히 지워야 합니다. 이런 때 용서하는 마음은 ‘칼의 시대’의 더께를 떼어내는 데에 유용한 처방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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