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상담심리 자료실

[스크랩] 준비된결혼이 아름답다,^^(2편)

힐링&바이블센터 2006. 7. 31. 22:15
 

제목: 준비된 결혼이 아름답다 2편 홍일권 저  생명의 말씀사  


1장 :  배우자 선택의 지혜


1. 배우자를 찾기 위한 준비

  특히 여설들 가운데는 배우자를 찾는 일에 너무 소극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남성들 중에도 역시 여성을 찾는 일에 소극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수록 덛욱 그러 합니다.

  자신의 사고, 인격, 연령 직업 등 여러면에서 결혼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한 시기가 왔다고 느껴질 때는 우선 배우자를 찾는 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1) 우선 내가 원하는 배우자 상을 상세하게 종이에 기록 하십싣오.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를 종이에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일이 매우 중요 합니다. 최소한 20여 가지 이이상의 소원들을 기록하세요. 이런 방향의 직업, 이런 방향의 꿈, 가치관, 종교, 학벌 정도, 체구, 가문, 지위나 재물, 성격, 적성, 취미 등 다방면에 생각나는 모든 것을 기록해 보십시오. 내가 순수하게 바라는 것들을 그대로 옮겨 적으십시오. 어떤 이는 10가지, 어떤 이는 20여 가지, 어떤 이는 30여 가지가 나올 수 있습니다.


2) 그런 후 매일 성경 (창세기, 룻기, 곤리도전후서, 베드로전후서등)을 읽으면서 그 기록한 종이를 주님 앞에 내어놓고 기도해 보십시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 하는 가운데 혹시 나의 욕심으로 기록된 것이 있다면 수정하거나 삭제하세요. 그러면서 매일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 하십시오.

  기도 중 유의할 사항은 나보다 더 훌륭하고 더 유능하고 더 잘 생기고 더 위대한 사람을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단지 나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을 달라고 기도 하십시오. 기도의 동기와 목적을 선하고 아름답게 하십시오. “저는 이런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만 주님께서는 어떤 댛상을 원하십니까?”하며 자주 구체적으로 여쭈어 보십시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는 일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자를 충분히 아십니다.

  물론 주님께서 즉시 구체적으로 “이런 사람을 찾으라” “저런 사람은 만나지 말라”하는 음성을 직접 들려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기도할 때 주님은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배려하십니다. 마의 미숙한 판단력과 분변력과 선택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부족한 내생각을 그분의 뜻에 맞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욕심은 점점 제거되고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더 귀한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적합한지 점차 배우게 됩니다. 더욱 가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시며, 외적인 면보다 중심을 볼 수 있도록 도우시고 그 외에도 여러모로 도우시며 깨닫게 하십니다.

  혹시 교제 가운데서 실수들이 일어났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능히 큰 불행에서 막아 주시거나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3) 이젠 배우자를 찾기 위해서 부모나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배우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로 표현 하십시오.

  배우자의 필요성을 주변 사람에게 알리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알리는 것과 전혀 알리지 않고 기도 하는 것과는 어느정도 차이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만큼 배우자를 찾는 일에 늦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배우자를 찾는 일에 본인의 의지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결코 사람의 의지를 무시하는 분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의지가 그분의 말씀과 뜻 안에서 아름답게 움직여 주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뜻에 순종할 때 더욱 아름다운 결과를 알게 됩니다.


4) 그런 후 본인도 찾도록 노력하십시오.

  배우자를 찾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자존심이실추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를 찾는 일은 부모나친구의 소개, 상사나 선후배의 소개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자신이 직접 찾아야 합니다. 결혼 성사에만 마음을 두지 마시고, 진지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대상자를 찾는 일이  필요 합니다.

  먼저 가까운 주변에서 적합한 인물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장단점이 노출되기 때문에 그만큼 위장된 모습이 적습니다.

  교회 안에서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는 것을 굳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찾으십시오. 그러나 예배와 헌신에 전혀 지장이 없도록 분명히 하십시오. 교회에도 부정적인 말이 생기자 않도록 하십시오. 지혜롭고도 아름답게 처신하십시오.

  경건한 성경 공부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가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교회에서 마련한 건전하고 신뢰성이 있는 결혼상담소를 찾는 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출석하는 교회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건전한 기독교 기관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일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결혼상담소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급한 자세보다 항상 여유있는 자세를 취하십시오. 몇 년 늦게 결혼하는 것이 인생에 불행을 안겨다 주지는 않습니다. 아니 가령 배우자를 전혀 찾지 못하고 홀로 남는 인생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매사에 주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인도를 따르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또 다른 행복이 예비되어 있으니까요. 다른 사명을 깨닫는 것도 큰 은혜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여러번 노력하고 시도했지만 결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자신의 더 의미있고 귀중한 일들을 성취시켜 가기 위하여 당분간 결혼을 허락하지 않고 남기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허락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결코 반항 하거나 절망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범사에 감사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훗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결혼을 허락지 아니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테니 말입니다.

  메사에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십시오. 인생을 밝고 아름답게 보며 가꾸는 훈련이 필요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결국 가치 있는 뜻을 실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5)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므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좋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이나 학력 혹은 성격 등이 나와 너무 큰 차이를 가진 사람을 구하고 찾는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환경, 비슷한 성격, 같은 신앙관을 수유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면에 나와 동일한 사람을 찾겠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또 과일이나 상품을 고르듯이 나보다 특별히 멋지고 뛰어난 사람만 고르겠다는 것도 허왕된 욕심입니다.

  만일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오! 주님 저는 이런 배우자가 필요합니다. 체형이나 얼굴도 예쁘고 멋있어야 하고 가정의 재물도 많아야 합니다. 학교는 서울의 일류대학 정도의 졸업자여야 합니다. 또한 키는 170cm 이상이어야 합니다. 성가대 지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래도 잘 불러야 하며, 자동차와 아파트를 제공해 주는 자여야 합니다. 또한 병도 하나 없는 자여야 합니다. 현재 긱장도 좋아야 합니다. 저에게 천사처럼 대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재능과 애교와 유머가 풍성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희생의 사람을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100점짜리 배우자를 예비해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물론 이 기도는 과장된 이야기이고 이런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외형적인 부분에 치우쳐 배우자를 선택하려는 유혹을 누구나 받기 쉬운 것은 현실적인 사실입니다. 자신의 부족하고 모난 부분이 많으면서도 내가 만나 사귀어야 할 대상은 완벽하고 천사같은 존재이기를 기대하기 쉽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욕구만 채우기 위해서 기도한다면 주님 앞에서 열납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물거픔 같은 소원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 적절한 사람, 나랑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달라고 기도하며 계속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독특하고 뛰어난 인물, 위대한 인물을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살기에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예비해 주실 것입니다.

2.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


  창세기24장에는 이삭이 배우자 리브가를 얻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배우자를 찾는 몇 가지 과정을 주목해 보십시오.


1) 아브라함이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범사에 복을 받았듯이 부모는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얻어야 합니다. (1절)

  사람의 행복에 결정적인 경험을 미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느냐 여부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건을 보지 않고 아브라함을 택하셨지만 그 후에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사랑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독자 이삭을 바친 것을 비롯하여 줄곧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고 매사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되 외로운 노년기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창24:1) 하나님께서 집을 세워주시지 아니하시면 세운자의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십시오.

  부모가 아름다운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 자식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모로서 자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기초적인 결혼 준비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좋은 신부감을 만나 결혼하기를 원했습니다. 부모는 아브라함처럼 자녀의 결혼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를 갖고 그분의 적절한 때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녀가 훌륭한 배우자를 얻도록 원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시기와 기회를 적절히 파악하여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결혼 준비의 출발입니다.

2) 아브라함이 종에게 이삭의 아내를 잘 택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을 설명해 주었듯이 부모는 자녀에게 배우자 선택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를 해주어야 합니다.(2-3절)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부모는 자녀의 행복한 결혼을 위해 어떤 대상자를 구해야 할지 그 방향을 조언해 주어야 합니다. 어떤 특정 인물을 꼬집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류의 사람을 택해야 할지 조언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조언은 자녀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도, 강요도 아닙니다.

  특히 “택하라”라는 단어에 주의 하십시오. “얻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입니다.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지 기계처럼 타의에 의해서 100퍼센트 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의지나 감정 등을 전혀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일방적 주권적 선택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랗서 부모는 자녀의 의지를 존중해 주면서도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그 길을 분명히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같은 부류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을 선택하도록 돕는 일도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3)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앞서서 예비해 놓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핧지니라”(창24: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의 방향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분명히 예비하고 계심을 굳게 신뢰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종도 그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맹세했습니다.

 

4) 무엇인가 나누며 섬기겠다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l (10절)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의 배필을 얻기 위해 종을 떠나 보낼 때 자신의 약대 열 필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보낸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곧 섬김의 자세를 의미 합니다. 이것은 순수한 동기에서 준비된 것이지 선물 공세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만일 배필을 얻으려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 중에 어느 것도 나누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이기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물 공세를 통해서 배우자를 얻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큰 잘못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경계하며 오직 순수한 길, 바른 섬김의 길로 가야 합니다.


5) 찾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12절)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순적히 잘 만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배우자를 만나는 일은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6) 주님께서 정하신 배우자를 만나야 합니다.(14절)

  배우자를 선택 하는 일은 사람들의 의지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위하여 배우자를 정하신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을 위해서, 혹은 주변 친구, 후배, 자녀를 위해서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인물을 정하시는 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해 정해 놓은 배우자는 가히 흠모의 대상이 될 만한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미리 예쁜 여인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졌기에 예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의 뛰어난 외모를 보고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미남, 멋쟁이, 미인, 다리도 예쁘고 키도 크며 늘씬한 사람을 갈구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갈구하는 것을 죄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입니다. 나에게 가장 적합한 자를 가리킵니다.

  좋은 배우자, 알맞은 배우자,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첫째가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부모님의 신앙과 사랑, 보살핌, 기도 덕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잘나서 훌륭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부모님 앞에서 부끄럽고 교만한 생각입니다.


7) 계속 하나님의 뜻을 감지해야 합니다. (21절)

  21절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성급하게 결정짓지 않았습니다. 계속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내게 정해 놓은 자처럼 보여도 계속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나를 위해 예비하신 배우자인지, 또한 그렇게 이끌고 계시는지 그분의 인도와 섭리를 섬세하게 끝까지 주목해야 합니다.


8) 하나님이 정하신 자를 발견하고 분명한 확신이 설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고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26-27절)

  왜냐하면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신 인도가 아니면 그런 복된 일을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의 손길에 감사하며 경배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아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복된 배우자를 만나는 일이야 말로 진정 하나님의 은총에 속합니다.


9) 최종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부분은 상대편의 반응입니다.(58절)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만일 당신이 배우자를 발견했다고 기뻐할지라도 상대방이 반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배우자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언제나 배우자 선택, 결혼 문제는 서로 한 마음이 되며 적극적인 일치를 이룰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우자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일방적인 기쁨, 일방적인 선택, 일방적인 사귐, 일방적인 결혼은 위험합니다. 쌍방간에 온전한 합의가 이루어질 때 진정 아름다운 결혼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10) 신성한 결혼이 이루어진 후 이삭은 아내 리브가를 사랑했으며 위로를 얻었습니다.(67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더디어 이삭과 리브가의 황홀한 결혼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결혼식은 이제 또 다른 시작 지점입니다. 결코 완성이 아닙니다. 미완성의 두 사람이 미완성의 사랑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 섬김, 희생이 필수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고 위로 받을 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유익한 약혼


  연애로 사귀든지 중매를 통한 사귐이든지 데이트가 무르익어 가면 결혼을 하기로 마음에 결정하게 됩니다. 양 가정에 인사가 오고 간 상태입니다. 전정 서로 결혼하기로 결정 했다면 이제 약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합니다., 약혼이 서로에게 꼭 필요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곧 서너달 안에 곧 결혼할 배우자라면 굳이 약혼식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6개월 이상 혹은 1년 이상의 긴 기간이 남아 있다면 약혼하는 것이 서로를 위하여 더 나을 것입니다.

  약혼식은 그 행사 자체의 의미보다 식을 치른 후에 서로의 마음을 안정 시켜 주는 효력이 어느 정도 있는 듯합니다. 만일 많은 시일이 남았는데도 약혼식을 하지 않고 교제 한다면 혹시나 둘 사이가 깨지지 않나 하는 불안감이 자주 교차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약혼식을 치를 때는 너무 성대하게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가까운 가족끼리 간략하게 치르는 것이 좋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약혼식을 성대하게 치른 어느 예비부부가 뜻하지 않게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 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약혼식을 너무 성대하게 치른 것에 대하여 무척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니 약혼식을 치르지 않는 것이 나았을텐데 하며 막심한 후회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사라이 완벽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얄 약혼식을 했다면 이제부터 더욱 자신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서로 존경하고 아끼며 성숙해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십시오.

  결혼의 그날까지 갖추어야 할 부분들, 예를 들어 모난 성격들을 스스로가 다듬도록 노력하는 일, 경제적으로 아끼며 지혜롭게 사용하는 일, 결혼 선배를 통해서 조언을 듣는 일, 결혼에 대한 좋은 책자들을 구하여 읽으며 기본적인 결혼생활의 지식을 터득하는 일, 아름다운 정서 관리, 재능과 취미를 살리는 일, 영적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 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약혼식 후에는 이전보다 더욱 진지하고 즐거운 교제가 되도록 서로 노력하십시오. 사귐의 방법을 다양하게개발하십시오. 어떤 이는 공원에만 가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영화만 즐기려 합니다. 진지한 대화가 결여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커피숍과 노래방만 좋아 합니다. 이것도 지혜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영적이라고 오직 교회나 기도원 혹은 성스러운 음악회만 찾아다닙니다. 이것 역시 지혜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양한 것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등산, 바닷가 여행, 음악회, 연극, 영화, 그룹 성경공부, 스포츠, 대공원 놀이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기회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놀이 중심의 사귐을 가지지 아니 할 수는 없으나 놀이 그 자체로 만족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오히려 그보다 대화를 소중히 여기며 많이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 경제관, 우주관, 세계관, 직업관, 환경관, 성경관, 결혼관, 도덕과, 윤리관, 교육에 대해, 취미나 기호에, 신앙에 대해, 선교에 대해 다양하게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십시오. 여행을 많이 하지 못하는 것보다 대화를 진지하게 많이 하지 못한 것이 더욱 후회스러울 수 있습니다.


4. 약혼한 사이의 성관계 문제


  성문화 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남자 고등학생의 16.2%가 성경험이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같은 또래의 여자 친구와 지속적인 성관계를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학생들의 성 개방 풍조가 위험수위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학생도 증가 했습니다.

  한국과 비교도 안 되는 미국의 경우는 18세 이전의 성경험 지수가 무려 남자가 70% 여자가 50%에 이릅니다. 이것은 곧 미래 결혼을 통해 얻은 유익을 그만큼 손실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손실이 얼마나 큰지 이혼율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혼율이 50% 즉, 열 쌍이 결혼하면 다섯 쌍이 이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주의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젠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순결 교육 못지않게 남학생들을 위한 체계적인 성교육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반 세속적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결혼전의 성교를 간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살전4:3; 엡5:3), 성관계는 결혼을 전제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부분입니다. (고전7:2-5), 약혼한 사이에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성이 개방된 시대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회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며 온 세상이 변해도 하나님의 질서 정연한 법칙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잘못 사용하면 거기에 따라오는 고통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는 이들을 위하여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부부성생활의 목적은 우선 출산(창1:28)과 즐거움입니다. (창5:15-20), 더 중요한 것은 둘이 한 몸이 됨으로써 육체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이고 아울러 그 연합을 통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영적 관계의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곧 신부된 그리스도인이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합니다.


5. 연애와 중매, 어느 것이 좋을까?


  결혼 적령기에 이른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연애를 통해 결혼에 이르는 경우가 있고, 가족이나 친구, 선배나 다른 사람들의 소개로 중매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어떤 사람의 경우 중· 고등학교 때부터 알게 되어 결혼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드문 경우는 초등하교 때부터 알게 되어 결혼한 경우입니다. 연애 결혼 중 가장 흔한 경우는 대학시절에 혹은 직장생활에서 서로 알게 된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연애결혼이 실제 결혼생활에서 중매결혼보다 나은 이점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앞서 연애결혼과 중매결혼의 차이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애결혼은 비교적 사귀는 기간이 길기 마련입니다. 보통 1년에서 수년이 됩니다. 긴 사귐을 통해서 얻는 것도 많지만 잃는 것도 있습니다.

  만일 대학교 2학년 때 연애를 시작했다면 그 후 결혼하기까지 대충 3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 합니다. 그때까지 잃기 쉬운 것을 생각해 보면 우선 학업에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학문을 연마하는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귐을 갖기 위해서는 커피, 음식, 간식, 입장료, 선물 등 경제적으로 드는 돈이 만만치 않습니다. 또 이 긴 사귐 가운데서 발생 하는 장애물 들이 있습니다. 중매가 아니기 때문에 의외로 그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이나 가족 배경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뭇할 수도 있습니다. 즉, 제 삼자를 통해서 그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1년 이상의 긴 사귐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얻는 것은, 낭만적인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교제를 통해서 얻는 즐거움이 대단히 큽니다. 또한 긴 기간에 걸쳐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서로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격려와 힘이 됩니다.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결혼을 하게 되면 그만큼 자부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년들은 중매보다 연애결혼을 훨씬 선호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세대와 미래의 세대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어쩌면 사귀는 대상의 한계가 무너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연애와 중매,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찬성할만한 것일까요? 선택에 앞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매결혼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찬성할만한 것입니다. 물론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가치기준을 흑백 논리처럼 둘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연애가 적합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중매가 적합할 수 있습니다.

  중매의 단점은 너무 성급하게 서두fms다는 것입니다. 중매자의 말을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상대방을 깊게 사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낭만적인 사귐의 시간이 적어 즐거움이 축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말 좋아서 결혼하기 보다 자칫 의무감으로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연애 시절을 재미 있게 가지지 못한 아쉬움을 갖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중매의 장점은 사귀는 동안 경제적, 시간적 소모가 적다는 것입니다. 중매자를 통해서 이미 객관적인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사귀기 때문에 큰 실수가 적습니다. 낭만적인 감정은 적을 수 있으나, 외적인 것보다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의지하는 마음이 짧은 기간이지만 강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매로 사귀다가 혹시 서로 헤어지더라도 사귄 기간이 짧기 때문에 연애보다 책임이나 실수가 적습니다. 중매자가 있어 약간의 부담은 되지만 그만큼 조심하게 됩니다. 또한 결혼 후에는 연애결혼도 그렇지만 중매결혼자들은 허물이 많이 발견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람으로 알고 잘 인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말입니다.

  무엇보다 상대를 제대로 아는 데 필요한 시간은 중매보다 연애가 3배 이상 더 걸립니다. 이는 객관적인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중매자의 도움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실 연애냐 중매냐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이든 사귐을 가지는 당사자의 마음을 그대로 열어놓는 진실한 자세와 하나님이 도우심을 덧입는 것입니다.


6. 지혜로운 배우자 선택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어쩌면 세상의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신중하고도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것입니다. 배우자 선택에 관한 내용은 제가 앞서 발간한 책 사랑과 결혼에 대한 137가지 조언에서 다른 부분이 있어 여기에서는 간략히 배우자 선택에서 주의할 사항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1) 나의 깊은 생각과 판단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따르지 말라,

  우선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앞서 자신의 의지가 분명하게 반영 되도록 해야 합니다. 즉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본인이 상대자를 볼 때 호감이 들어야 하며, 필요를 느끼고 계속 사귀며 대화하고 싶은 감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만일 가족이나 다른 사람이 좋다고 거기에만 마음이 쏠려 결혼했을 때는 역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혼은 본인 스스로가 선택하고 또한 선택한 것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의 안목으로 성격, 외모, 가정 배경 등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일지라도 자신이 보고 생각하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배우자를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2) 외형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고 선택하지 말라.

  결혼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재산이나 학벌, 직위, 외모, 체구 등 외형적인 것들을 전혀 보지 않고 결혼하기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현실적으로 상다안 매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런 외적인 것들을 배우자 선택의 중심으로 삼고 결혼 한다면 잠시 세상적인 혜택은 누릴 수 있을지 모르나 진정한 행복은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실례로 한 가지 통계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내가 미인인 남편이 그렇지 못한 남편보다 파경에 이르는 비율이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멋있는 신랑, 뛰어난 외모를 지닌 미인 신부를 선택한 것이 가정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누구든지 결혼을 하고 나면 “미”라는 조건이 상대방을 충족시키는데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함의 마음과 인격과 삶이 상대방을 움직이며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외모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결혼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혹시 이 “미”라는 부분을 꼭 보아야 한다면 어느 한 부분만 보지 말고 사람 전체를 놓고 볼줄 아는 눈을 키웠으면 합니다.

  심성이 고운 것은 대단한 “미”에 속합니다. 아마 미스 대회라면 “진”에 해당하는 사항일 것입니다. 인격, 됨됨이, 성품, 진실성, 믿음, 성실성, 온유함, 인내심 등 이러한 것들은 배우자 선택 조건에서 진주처럼 빛나는 귀한 것들입니다. 재물이나 학벌, 명예 따위는 후차적인 선택이어야 할 뿐입니다.


3) 자신의 감상적인 확신을 성령의 인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의 참된 뜻을 발견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에서 나온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확신으로 잘못 이해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그 남자 그 여자를 나의 편으로 끌어드리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임이 너무나 분명해! 나는 확신하고 있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때로는 한두 번 기도해 보고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사랑을 고백하며 내 사람으로 확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편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두 사람의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흔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확신이 과연 내가 단순히 이기적으로 만들어 낸 다짐의 확신이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온 진정한 확신이냐를 선명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릇된 확신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4) 건강 문제를 정확하게 점검하라

  건강이 결혼의 행복을 좌우하는 일차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건강에 대하여 진지한 대화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질병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결혼의 행불해을 결정하는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혹은 의사의 검진을 통해 질병을 알고 결혼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혼의 행복이 좌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건강 문제를 체크하지 못하고 결혼하여 고통을 겪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서로의 행복을 위해 한번쯤 건강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만일 대화나 종합 검진을 통해서 어떤 질병이 발견되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서로 헤어져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질병 때문에 이별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그 질병이 고질적이고 치명적인 질병이라면 일단 기도 가운데 결혼을 보류하는 것이 바라직 합니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말입니다. 특별한 질병을 지닌 당사자도 결혼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병세가 호전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호전의 가능성이 전혀 없으면 당연히 교제를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5) 동정심 때문에 결혼하지 말라.

  사람은 누구나 상대의 나약한 모습, 병든 모습, 갇힌 모습, 지극히 가난한 모습, 궁지에 처한 모습 등을 보면 자연히 동정심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배우자 선택에서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부모가 없는 고아, 특별한 장애인, 특별한 어려움의 사연이 있는 경우 동정심이 일어나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여기까지는 잘못이 아닙니다. 마땅히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약한자의 편에 서는 것 자체는 아름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인생의 기로 앞에 동정심 하나만 가지고 쉽게 결정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어떤 경우엔 나의 동정심으로 선택한 결혼이 그 사람의 평생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적절한 인도에 따라 그 사람의 인품, 성격, 상호애정, 가치관, 믿음, 가정 배경, 은사와 재능, 성에 대한 바른 생각, 성경적인 사고 등 그 사람 전체를 보고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여 결정해야 합니다.

  동정과 애정의 혼돈이 흔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잠시 생각하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동정과 애정을 어느 정도 구분하여 이해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혼란스러운 부분은 서로를 향한 “애정”입니다. 즉 “사랑이 없는데 결혼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와 “ 충분한 사랑을 내 마음에 갖지 못했는데도 결혼해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랄이 일어나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생길 것입니다.

  좀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이성을 만나 사귀는 동안 서로에게 애정이 자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애정, 그 사랑이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양쪽에서 완전한 사랑만 생각하고 사귀며 그때를 기다린다면 결코 결혼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엔 결혼전에 완전한 사랑이라고는 도무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결혼 후에도 완전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사상입니다. 단지 완전한 사랑을 갖도록 더욱 노력핻야 할 뿐입니다.

  만일 어떤 남자가 처음 여성을 보더니 겉모습만 보고 반하여 “나는 그 사람을 위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내어주리라. 끝까지 사랑하리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과연 그 사람의 강렬한 사랑이 평생토록 지속될 수 있을까요? 아마 부정적일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서로에게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또한 완전한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100% 마음에 드는 사람 100% 만족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완전한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와 서로를 향한 애정입니다. 그 애정이 다소 성숙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열 수 있고, 서로를 아끼고 존경할 수 있는, 마음과 말과 행실에 호감이 가고 어느 정도 정을 느끼며, 그대로 신뢰할 만한 사랑이면 결혼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생각하는 것들이 결코 교과서적인 해답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서로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이 70%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대화 가운데서, 기도 가운데서 애정이 더욱 분명하게 느껴진다면 더욱 아름다운 부부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60%의 사랑을 가지고 결혼했을지라도 결혼 휴 부부의 뜨거운 섬김과 노력의 결과로 90%이상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노력 할수록 자라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말입니다.


6) 성적 충족을 목적으로 결혼하지 말라

  결혼 제도는 성적 충족 한가지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적 충족은 여러 가지 결혼의 목적 중에 한 가지일 뿐입니다. 성적 욕구를 성취시키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고 결혼 한다면 결혼 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당장 생각만큼 충족되지 못할 때 불화와 부도덕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하나 되기 위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진정한 연합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선한 비전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해, 자녀를 양육하여 그분께 드리기 위해, 서로 섬기며 참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상대방을 선택하고 결혼한다면 이는 아름다운 결혼이 될 수 있습니다.


7) 책임과 의무를 충분히 인식하라.

  어떤 사람이 A라는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그 A라는 사람을 일평생 책임지겠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선택하여 얻는 유익과 즐거움을 논하기 전에 나의 책임과 의무가 강하게 동반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해야 합니다. 결혼 후 그의 외모와 능력이 부족해도그를 위해 모든 면에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감이 주어집니다. 그 책임은 한가지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입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일단 부부가 되면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책임이 따릅니다. 경제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하며 순종해야 할 책임, 성적인 책임, 건강의 책임, 기도의 책임, 대화의 책임, 자녀 양육의 책임, 서로의 고통을 평생 동안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 주어야 하는 책임, 양가 부모에 대한 섬김 등 다양한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는 것입니다.

 

7. 그릇된 확신


  일반적으로 그릇된 확신은 이런 유형들입니다.


1)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에서 오는 확신입니다. 즉,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며 상대편을 자기 자로 재어 보며 선택하려 할 때 그릇된 자기 확신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에게 돌아오는 유익을 물질적으로 계산하여 선택하려 할 때 그릇된 확신이 올 수 있습니다.


2) 기도가 충분치 못할 때 그릇된 확신이 옵니다. 드물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원에서 단기간에 걸쳐 간절하게 기도할 때 자신의 뜻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한 두 번의 기도로 음성을 들려주거나 확신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적인 선택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에 대해 l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도우심을 날마다 구체적으로 간구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그분이 나의 마음을 전적으로 주장하시도록 매 순간 의지해 나가십시오. 정결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마음으로 충만해 지도록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3) 너무 스두를 때 그릇된 확신을 불러일으킵니다. 내 편에서는 매우 조급할지라도 오히려 하나님은 “기다리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성급하게 결혼식을 성사 시키려 할 때 파생되는 문제들은 실로 엄청나게 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한 번 더 기도해 보며 한번 더 생각해 보며 점검해 보는 여유를 가지십시오. 물론 그렇다고 될 대로 되어 버리라는 포기형이나 마냥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이성에 대한 무관심과 늑장으로 일관해서는 안됩니다.


4) 자신의 내면의 감정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분석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무시할 때, 그릇된 확신을 갖기 쉽습니다. 심령 깊은 곳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화가 있는지 분석해 보십시오. 또한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선택해 나가는 부분들 가운데 특별한 장애물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어떤 특별한 충돌이나 혐오감, 질투, 방해, 불안 등 부정적인 현상들이 나타나며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아직 성령께서 내적 확신을 주시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이해 반해 성령께서 주시는 확신은 어느 한쪽에서만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에서 일치를 이룹니다. 서로를 섬기는 자세를 갖게 합니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평안을 제공해 줍니다. 불만, 질투, 충돌, 무질서, 어느 한쪽에서의 거절이나 자만 같은 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서로가 하나되어 가기 위한 준비가 아름답게 진행 됩니다. 만나는 것이 두렵지 않고 기쁩니다. 자신의 의지 보다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겸손한 자시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를 위한 배우자로 예비하셨음을 진심으로 알게 됩니다.

  성령으로부터 온 확신은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없습니다. 비록 결혼이 늦어질지라도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8. 불신자와의 결혼이 가능할까?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일까?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연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도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과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부정적인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결과를 빚고 맙니다. 누군가가 불신자와 죽어고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현재 당신이 사귀고 있는 불신자와 곧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슬픔을 제공해 주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불신자와 결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일까요? 결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불신자와 결혼했을 때 평생동안 돌아오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고통들이 따르게돌지 모르겠습니다. 신자와 결혼했을 때 평생 동안 돌아오는 유익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두 종류의 결혼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큽니다. 어쩌면 이 말이 하나의 환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이해가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불신 남편을 전도하면 된다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어떤 부부 가운데는 결혼 후에 부인의 전도를 받아 함께 신앙생활하는 행복한 부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부부를 보고 전체를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불신자와 결혼합으로써 지금도 고통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결혼전에 가졌던 믿음마저 잃어버리는 예가 비일비재합니다. 날마다 밤이면 술취한 남편을 맞이해야 하고, 폭력에 시달리는 부인도 있습니다. 춤바람에 파경을 맞는 부부도 있습니다. 부부 가운데는 숱한 문제로 밤잠을 못 이루며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담배 연기와 술과 노름 등으로 고통 당하는 부인도 있습니다. 급기야 이혼에 직면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단 한번의 선택이 이렇게까지 될 줄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결코 다수를 따라가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 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고전10:5)

  물론 결혼에 있어서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이 특정인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호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음부된 여인을 얻기 위해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사서 사랑했던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호3:1-2) 그러나 그 결혼의 의미는 일반적인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보이시기 위한 의미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선택은 성경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가능합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은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음이 분명 합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자녀 이삭의 배필을 위하여 자기 종에게 가나안 족속을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라 시대에 우상을 섬기는 이방 족속과 연혼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적이 있습니다. 지도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것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결집하여 결론을 내리기보다 성경 자체의 방향에 주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고통은 그만큼 줄어들고 기쁨과 유익은 증가하게 됩니다.


9. 독신이 좋을까?


  독신이 좋은가? 결혼하는 것이 좋은가? 이 질문은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던져 본 질문입니다. 독신이란 말 그대로 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홀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에게 아주 자유롭고 편리한 삶의 방법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무척 외로울 것으로 생각 됩니다. 독신에 관한 일반적인 관점은 긍정적 요소도 있고 부정적 요소도 있습니다. 성경 전반적인 흐름은 독신을 독려하기보다 오히려 겷혼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결혼제도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도 일치 합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에 비추어보아도 더욱 그러 합니다.(창2:18)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일은 상호보완 관계로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임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런 원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에게 독신으로 살도록 이끄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독신으로 부릏심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남성들이 독신이 되는 비율은 매우 적지만 여성들은 독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경우가 흔한 일입니다. 독신은 무조건 선호할 것도 아니지만 무조건 거부해야할 부분도 아닙니다.

  결혼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결혼을 해야할 사람이 있는가하면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더 멋진 삶을 실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행복을 더 누리거나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행복을 덜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을 하는 것이 성공이고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실패라는 의식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기준 삼는 것도 문제입니다.

  결혼을 하지 말아야할 사람이 결혼을 하여 가정 파탄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드물긴 하지만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끔찍스런 가족 살인 사건이 일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홀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매나 형제가 있습니다. 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이에게는 축복이 됩니다. 홀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경우 더 귀한 사명을 이루게 하는 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점검해 보아야 할 사항은 홀로 살도록 부름을 받았는지, 아니면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도록 부름 받았는지를 정확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홀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는 경우 이런 부분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독신이냐 결혼이냐 하는 절대적 가치 기준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보면서 기도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1) 홀로 살고픈 욕구가 강렬하게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기도 할수록 더욱 홀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 난다면 그는 혼자 살도록 부르시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 가정보다 어떤 일(사역) 자체를 월등하게 소중히 여기고 그 일에 매진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픈 마음이 일어날 때 독신의 은사를 소유했을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보통 결혼을 하여 자녀를 기르게 됩니다. 어떤 기간에는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가까이서 친히 돌보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이를 잘 기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특별한 사명을 위해서 부르심을 입은 소수의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사역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정을 가지게 되면 남편이든 아내든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이중 고뇌를 감수해야 하기에 여러모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수의 사람이지만 독신으로 머물기를 원핫히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3) 성적인 욕구가 매우 적어 혼자 살면서도 흔들리거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상당한 자제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입니다. 성생활 자체에 집착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 성적인 욕구를 많이 느끼지 않을 때, 독신으로 부르심을 입었을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만일 성적인 욕구가 별로 없는 여성이 성적인 욕구가 많은 남성과 결혼했을 경우, 그 부부는 성적인 불만이나 이견으로 어려움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부분들을 정확하게 점검해 보십시오.


4) 나의 속 마음은 결혼하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시기를 놓쳐 버리게 되거나 아니면 여러 번 청혼을 해보았지만 마음에 흡쪽 하게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성사가 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안타까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무조건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 어떤 이에게는 일반인의 판단으로 전혀 안된다거나 혹은 너무 늦었다고 하는 시기에 의외로 적절한 사람을 붙여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든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면 얼마든지 배우자를 소개 받거나 사귈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도해 볼수록 혼자 살아가는 것이 좋고 거기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면 독신으로 부르심을 입은자 인줄 알고 그 위치에서 맡은 일에 충실하면 됩니다.


10. 독신주의에 빠질 위험


  내가 홀로 살아감으로써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는 순수 신앙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하나된 모습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무엇인가. 특히 성결 면에서 우월감을 갖게 된다면 위험 합니다.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에 비해 내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더욱 거룩한 존재로 여긴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자신의 자로 결혼한 사람들을 세속적인 존재로 구분해 버린다면 여기에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릇된 거룩성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많은 독신자들이 독신주의나 영적인 거룩의 교만성에 빠지기보다 오히려 겸손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밤낮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아 갑니다. 몸된 교회를 위해서도 남다른 헌신과 기도의 눔물을 바치며 생활 합니다. 말없이 봉사하며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안에서 무엇인가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반인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수고와 고난 가운데 주님의 위로를 진정 갈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독신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연스런 삶입니다. 하지만 독신주의는 잘못된 것입니다. 즉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가낭 훌륭한 삶, 가장 높은 수준의 삶으로 단정짓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홀로 살도록 부름을 받은 자에게는 독신자로서 긍정적인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주님을 위해서 전심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용한다면 그 활용성은 굉장히 큽니다. 개척의 힘을 발휘하기가 쉽습니다.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선교지에서 맡은 일에 더욱 몰두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위로보다 주님의 위로와 능력을 더욱 갈구하며 체험할 수 있습니다.


11. 어떤 성격의 소유자를 원하는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성격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합니다. 성격을 따로 파악하지 못하고 결혼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성격 때문에 파경에 이른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내향적인 스타일의 성격과 외향적인 스타일의 성격 중 어느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은 의미 없습니다. 두 가지 성격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고 자신에게 적합한 성격을 찾는 일이 필요 합니다.

  예를 들어 나의 직설적인 표현을 잘 받아 주는 성격의 소유자가 있는 반면에 부드러운 것만 받아주는 성격의 소유자가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의견이라도 다 받아 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장점이 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단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것이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것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너무 약한 것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사귈 때 그 성격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세심하게 점검해 보십시오.


1) 차분한 스타일의 성격 소유자와 사교성이 많고 아주 활발한 스타일의 성격 소유자 중 어느 편이 나에게 잘 어울리겠는가?


2) 업무를 수행할 때 아주 강력하게 일을 추진하는 대범하면서도 모험적인 사람을좋아 하는가. 아니면 느리더라도 여유있고 조용하게 일을 추진 하는 사람을 좋아 하는가?


3) 사교성이 뛰어난 다변의 사람의 원하는가. 내실에 충실하며 조용한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 하는가? 즉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사람을 원하는가. 꼭 필요한 이야기만 적절하게 해주는 사람을 원하는가?


4) 앞에서 강력하게 리드해 주는 사람을 원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협력해 주는 스타일을 원하는가? 즉,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나의 의견을 많이 따라 줄 사람을 원하는가. 대부분의 일을 직접 앞에서 강력하게 이끌어 가는 사람을 원하는가?


5) 자신의 감정을 직선적으로 바로 표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아끼며 유연하게 표현해 주는 사람을 원하는가?


6) 권위적인 스타일을 좋아 하는가. 아니면 민주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가?


7) 자신에게 많은 자유를 주는 사람을 원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가까이서 세심하게 관찰하며 돌보아 주는 스타일을 원하는가?


8) 희로애락의 감정을 아주 강하게 표현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많이 조절하며 조금씩 감출줄 아는 스타일을 좋아 하는가?


12. 배우자 선택의 10가지 지침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하나의 모험일 수 있습니다. 이 모험은     보통 모험이 아니라 특별한 모험입니다. 단 한번의 선택이 서로의 평생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반면에 매우 불행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혼 전 연인들은 매우 흐린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감정만 가지고, 느낌만 가지고 그것이 사랑의 전부인양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배우자를 선택하기 전에 미리 정기적인 성경 읽기와 묵상 그리고 배우자 선택을 위한 기도를 진지하게 하는 것이 우선 되도록 하십시오. 기도하면서 배우자를 만나면 그 마음이 맑아지고 양심이 깨끗해져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실수가 줄어듭니다. 그런 후 다음 10가지 정도의 지침을 참고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결정하십시오. 그러면 배우자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근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먼저 발간한 책 “사랑과 결혼에 대한 137가지” 조언과 일부 비슷한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 인격이 아름다운가?

  제일 수종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지 재물이나 명예가 아닙니다. 여기서 인격이 좋아야 한다는 말은 특별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곧 신뢰할 만한 성품을 소유한 사람 인간 됨됨이가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뜻합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솔직하고도 조화롭게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친 까다로움, 깊은 우울증, 신경성 불안 및 비정상적인 행동이나 잘못된 품위를 지닌 사람이 아닌지 잘 살펴보십시오.  


2) 참된 사랑이 있는가?

  아무리 인격이 좋아도 서로를향한 참된 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부족한 인격을 보충하고도 남지만 인격으로 사랑을 보충하기란 불가능 합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도 남습니다. 이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사랑은 희생적일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닙니다. 하지만 결혼 전 사랑은 에로스 사랑이기 때문에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단지 외적인 면에서가 아닌 내적인 면에서 서로 존경하고, 신뢰할 만한 사랑을 느낀다면 무난할 것입니다. 아울러 ‘사랑의 테스트’부분을 참고 하십시오.


3) 연령은 어느 정도 맞는가?

  오래전 한 통계에 의하면 신랑이 신부보다 세 살에서 다섯 살 정도 더 많은 경우에 가장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적으로 3세에서 8세차이가 무난합니다. 그러나 연령이 비슷하거나 많은 차이가 난다할지라도 충분한 사랑이 전제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연령도 국경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연령의 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4) 학벍은 어느정도 맞는가?

  학벌에서 너무 많은 차이가 날 경우 서로의 인식에 차이가 생겨 결혼생활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한 남편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부인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 졸업한 부인이 초등학교 나온 남편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물론 이것은 극적인 표현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비슷한 수준에서 남편이 약간 높은 수준의 경우가 조화를 이루는데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최근 들어 학력이 낮은 사람들의 이혼율 보다 학력이 높은 사람들의 이혼율이 더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5) 건강한가?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다른 것은 중요시 하면서 건강을 가장 소흘히 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무조건 날씬한 몸매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주의가 요청됩니다. 특히 두 가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신체적인 유전 질병과 정신적인 유전 질병입니다. 신체적읹 유전 질병에는 신장, 얼굴형태, 머리 빛깔, 같은 외형적인 것과 색맹, 혈우병, 간질 같은 내형적인 병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유전 질병에는 백치, 저능아, 자폐증, 정신질환, 등 신경계통의 여러 가지 병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진실하고도 진지한 대화나 건강진단서 발급, 전문가의 도움 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6) 가정적인 배경이 어떠한가?

  훌륭한 인격과 행복한 결혼은 부모나 그 윗대의 배경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통계조사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 배우자의 어린 시절에 어떤 가정 배경을 갖고 성장 했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부모와 조 부모의 인격과 삶, 그리고 부부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당시 환경이나 여러 가지 사건의 파악이 필요합니다. 이는 양가정의 어른을 만난 자리에서 지난날에 대하여 특별히 기뻤던 일, 슬펐던 일 등 깊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파악할 점으로 그 부모가 과거에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 왔고 현재는 어떠한 상태인가? 사사로운 충돌이 잦지 않았는가? 모친과 부친의 애정이 아름다웠는가? 화목했는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아름다운가? 형제간의 우애심은 어느 정도인가? 등을 알면 도움이 됩니다.


7) 성격이 어늦 정도 맞는가?

  성격을 인격과 조금 구별하여 이것도 반드시 구별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성격은 살면서 조정하면 쉽게 해결될 것 같지만 사실 그 과정이 너무 어려워 잦은 마찰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과 외향적 성격의 사람이 만나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같은 성격의 사람을 만나면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그렇게 선을 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의 성격을 바로 파악하는 동시에 자신이 좋아하는 성격의 스타일을 분명히 알도록 하십시오. 앞에서 언급한 성격 점검을 참조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격은 단번에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여러차례 만나 교제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 성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인성검사가 서로에게 기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8) 신앙관이 어느 정도 맞는가?

  신앙관이 다를 경우 서로에게 불편과 불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형태의 신앙이 있는데 극한 대립이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한 신앙으로 화합할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물론 사랑은 신앙을 뛰어 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도 신앙으로 인하여 손상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더욱 지혜롭습니다. 건전한 신앙으로 가정과 교회를 동시에 중요시할 수 있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믿는 신앙이 아름답습니다. 교파는 동일하면 좋지만 다를 경우도 서로 이해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9) 특히 두뇌나 재물, 지위, 외모만 보고 배우자를 결정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가?

  결혼은 사람의 인격(됨됨이)과 사랑이 중심이지 결코 외적인 것들에 의하여 장래가 결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여섯가지를 중심에 새기도록 권유하고 싶습니다.

(1) 외모를 보기전에 마음을 보라.

(2) 재물을 보기 전에 성실을 보라.

(3) 지위를 보기 전에 겸손을 보라.

(4) 신장을 보기 전에 성숙을 보라.

(5) 두뇌를 보기 전에 진실을 보라.

(6) 학벌을 보기 전에 인품을 보라.


10) 미래의 꿈과 가치관이 어느정도 일치하는가?

  미래에 대한 꿈과 삶의 가치관이 달라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남편은 개인 사업을 그렇게도 원하는데 부인은 그것을 극히 싫어하는 경우, 남편은 부부가 함께 직장 생활을 하여 경제를 꾸려 나가기를 원하는데 부인은 극구 직장 생활이가 가정 밖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 부인은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직장 생활이나 가타 일을 하고 싶은데 남편은 가정에서 자녀만 보살피라고 강요하는 경우 등 여러 가지의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감안해서 많은 대화를 하여 가능한 어느 정도 비슷한 방향의 사람을 택하여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똑같은 꿈을 가지고 똑같은 성격에다 똑같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대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정도의 비슷한 방향의 꿈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면 더 좋다는 말입니다.

  그 외에도 결혼과, 가정관, 자녀교육관, 국가관, 경제관, 등에 대하여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 하면서 이 부분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지혜를 총동원 하여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힘써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어느 한쪽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이것이 최상의 결론일 수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간혹 우리의 소원보다 당신의 주권적인 명령으로 어떤 사람을 사랑하라고 인도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중에 어떤 이에게는 장애인을 사랑하고 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어떤 병자를 사랑하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나이 모습이나 형편과 비교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결혼 대상자로 삼으라는 세미한 음성을 들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점검하는 일, 나아가 그 뜻에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일이 중요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 뜻대로 순종하는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13. 사랑의 테스트 12가지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간혹 상대편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고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그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상대편의 애정이 풍부하니까 내편에서 애정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과연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얼굴이 예쁘고 멋있으니까 그 매력에 빠져 사랑하는 것이 아닌지 분명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과 낭만적인 매력(반함)의 차이점을 기초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들을 점검해 보십시오.


1) 외모만 보고 그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의 마음과 전체를 보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는가?

  그 사람 전체를 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나 키, 재물 등 어느 한 가비만 놓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 사랑은 그 사랑은 변할 수 있는 위험한 것입니다. 그 사람 전체를 보고 사랑하고 픈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인격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결혼을 보류해야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외모(얼굴, 몸매)를 하나의 포장지에 비유한다면 보이지 않는 인격체는 내용물에 해당합니다. 만일 내용물에 관심과 사랑이 가기보다 포장지에 관심과 사랑이 더 간다면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집보다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귀중한 것처럼 사람의 외모라는 집보다 인격체라는 내적 모습이 훨씬 더 귀중합니다. 거기에 매력을 가지고 사랑을 갖게 된다면 아름답고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습니다.


2) 그를 위해서라면 나의 소유 중 무엇이든 주어도 아깝지 않은가?

  만일 연인이 서로 사귀는 가운데 음식값을 내는 것이 아깝고, 커피 값, 공원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아까울정도일 때 결혼한다면 위험할 것입니다. 내것이 희생되는 데도 불구하고 아깝지 않고 그대로 주고 또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면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좋은 것이나 귀중한 것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나서 함께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상대도 그럴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별로 없다면 서로의 관계는 아직도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아직 신뢰할 만한 사랑을 지니지 못한 증거입니다.


3) 그와 떨어져 있을 때 그를 또 만나고 싶은 열망이 일어나고 그를 만났을 때는 기쁨과 자유, 안락감을 느끼는가?

  서로 사랑한다면 서로 만나 곁에 있을 때 완전한 충족은 아닐지라도 어떤 행복감, 기쁨, 위로, 안정감감 등 서로 격려가 되며 기쁨의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담감이 아니라 편안함과 자유스러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떨어져 있을 때는 또 만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날 것입니다. 만일 전혀 만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관심이 너무 없다는 증거이지요. 만일 진정한 배우자라면 서로를 향한 일체감으로 갈망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보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일어날 것입니다.


4) 의심가지 않을 정도로 신뢰감이 일어나는가?

  신뢰성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게 될 때 간혹 사기를 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주고, 물질을 주고, 결혼 후 내 몸을 내어주어도 전혀 의심가지 않을 정도로 신뢰할 수 있습니까? 상대편이 하는 말들에 공감이 가고 신뢰심이 가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어떤 말에 의심이 가고 어떤 행동에 의구심이 생기며, 그가 이야기한 직장 생활이나 가족들, 교회 생활에 대해 의심이 간다면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 결혼할 만한 사랑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5) 누구보다도 그 사람을 아끼고 자랑할 만한가?

  결혼 전 사랑이 불완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진실로 사랑한다면 자랑하고픈 욕구가 생깁니다. 그 사람과 결혼식을 갖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하여 누구에게든 떳떳하게 이야기하고 싶고, 나와 함께 결혼할 사람임을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랑은 결혼할 만한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내가 그 사람에 대하여 남에게 숨기기만 하고 전혀 말하지 않는다면 아직 너무 미숙한 사랑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애인이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면 그 교제가 아직도 무엇인가 불안하고 무르익지 못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 아끼고 사랑한다면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기꺼이 소개하고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6) 우정인가, 동정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예정을 갖는가?

  우정이나 동정으로 데이트를 시작하다가 나중엔 그 우정 이상의 애정으로 어느 정도 발전한 후 결혼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는 충분한 애정이 없음애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여 사랑하도록 이끄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보다 훨씬 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된 고멜의 경우입니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음탕한 여인을 사랑하고 결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결혼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온갖 죄악으로 방탕한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여 구원하신다는 아가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실례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7) 그의 말과 행위가 진실한가?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속이지 않습니다. 모든 면에 털어놓고 이야기 합니다. 과장하지 않습니다. 정한 약속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어기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말에 책임집니다. 혹시 실수로나 경험부족으로 잘못할 일이 있을 때는 그대로 고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진실한 관계로 하나될 때 행복한 결혼으로 꽃필 수 있을 것입니다.


8) 시기심과 미움을 멀리하고 서로 화해를 잘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결코 시기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칭찬과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만일 상대가 지닌 재능과 은사, 지식 등 모든 면에서 한 부분이라도 시기심이 일어난다면 아직도 서로의 사랑이 성숙되지 못한 증거입니다. 시기심보다 오히려 칭찬과 격려, 기쁨을 줄 수 있는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나올 때 그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이 될 것입니다.

  간혹 고제 기간에 사소한 이견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언짢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속에 묻어두기만 합니까? 아니면 털어놓고 화해를 합니까? 화해를 잘하는 연인이 결혼 후에도 화해를 잘할 것입니다. 화해할줄 모르는 사이는 진실한 사랑이 없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9) 그의 가족들을 존경해 주는가?

  그 사람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의 가족들을 존경하고 섬길 마음의 자세를 지니게 됩니다. 그가 존경하는 부모님을 나도 존경하고 그가 사랑하는 형제들을 나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결혼은 분명히 둘이 하나되는 것이지만 그 가족들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 사랑에 의문이 가기 마련입니다.


10) 장래를 생각하고 이야기할 때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이기주의적인 모습이 드러나는가?

  결혼은 어느 한편만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양쪽을 위한 것입니다. 둘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혹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자기 편리 위주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습니까? 상대를 중시으로 이해하고 위해주는 마음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고 있습니까? 나 혼자만의 행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상대가 행복하고서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11) 궁핍과 지식 부족, 하력 부족, 나의 약점 등을 그대로 받아주고 있는가?

  결혼은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충해 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족한 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내편에서도 확인해야 하고 상대편에서도 확인해야 합니다. 결혼 전에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이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장점 보다 단점이 더 많이 보일 수 있습니다. 단점을 조금씩 알아가며 그 단점을 받아줄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면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12) 특별한 어려우을 고백할 때에도 그의 마음과 관심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가? 아울러 그 고민을 함께 안고 기도해 주는가?

  순간적으로 반하는 사랑은 어떤 상황에 따라 관심과 사랑이 커졌다 작아졌다하며 변동이 심합니다. 하지만 참사랑은 지속적으로 일관된 관심, 일관된 사랑이 유지되면서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나의 삶이나 가정에 어려운 점들이 있다면 솔직하게 고백해 보십시오. 건강 문제라든지, 집안 문제라든지 숨기지 말고 진지하게 이야기 해보십시오. 나의 특별한 고민들을 내어놓고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 어려운 고통의 소리를 듣고 있는 상대편의 반응에 주시 하십시오. 갑자기 냉담하다든가, 갑자기 싫은 표정을 짓는다거나, 전혀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 결혼하는 일을 보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도우십니다. 그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기도로 도움을 요청해 보십시오.

  만일 상대방이 그러한 깊은 고통까지 다 이해하고 받아주며 여전히 관심과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모든 고민들을 털어놓아도 잘 받아주며 이해해주고 위로해 줄뿐만 아니라 기도해 준다면 그 사랑은 진실한 것입니다. 서로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가능성이 큽니다. 서로 진실하게 기도하고 있는지 아울러 점검해 보십시오. 서로 기도해 주는 깊이만큼 서로의 사랑도 진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14. 아름다움의 진정한 기준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은, 그 사람의 외형적인 부분들을 보고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남자가 여자를 보는 외형적 기준은 얼굴의 생김새가 예쁜가, 이목구비가 뚜렸한가, 키가 큰가, 몸매가 아름다운가, 다이어트가 잘되었는가, 눈이 예쁜가 등등입니다. 신체 외에 학벌, 재능, 경제, 가문 등이 있습니다. 혼수 예물은 어느 정도인가 등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보는 외형적인 기준은 얼굴이 잘생겼는가, 체격이 큰가, 멋있는 근육을 소유했는가, 어떤 능력을 소유했는가, 건강한가, 한 달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 학교는 어디 나왔는가, 어떤 아프트 혹은 어떤 자동차를 소유 했는가, 그의 현재 지위가 무엇인가 등등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다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외형적인 부분에만 치우친다면 결혼의 중대한 결함을 낳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평생을 함께하는 배우자라면 이런 외형적인 것들을 결혼 여부나 아름다움의 일차적인 기준으로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귀중한 부분은 이런 것들입니다. 아름다운 성품, 성숙한 사랑, 희생정신, 마음 자세, 정직성, 성실성, 자립심, 인내심, 덕스러움, 무난한 성격, 결단력, 지구력, 건전한 인관관계, 질서, 예절, 양부모에 대한 섬김의 자세, 신앙심, 기도생활, 미래의 비전 전인적 건강상태, 가치관 등 이런 부분들을 일차적으로 파악한 후 이차적으로 다른 조건들을 살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내형적인 아름다움은 눈으로 당장 보이지 않지만 평생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환경이나 때에 따라 변하기 쉬우며 오래가지 못합니다. 인정한 행복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으며 우리 스스로가 섬기며 헌신하며 평화를 만들어가도록 노력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5. 배우자 선택은 모험이다.


  이상적인 배우자상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찾으며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만 환상적인 배우자상을 추구하지는 마십시오. 모든 면에서 100퍼센트 마음에 와 닿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 한 편이 좋으면 다른 편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70페센트만 좋으면 가능합니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어쩌면 모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만나 결혼을 시도해야 하니 모험이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 90페센트가 좋아 보여도 10퍼센트 부족한 면을 보고서 전혀 결혼의 모험을 걸어보지 않겠다는 것은 곧 결혼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을지도 모릅니다. 결혼의 성사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모험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16. 평생의 반려자란?


  지금가진 외모가 어떠하든, 지금가진 재산이 어떠하든, 지금가진 지식이 어떠하든, 지금가진 명예가 어떠하든, 지금가진 집이 어떠하든, 지금가진 직위가 어떠하든, 지금가진 재능이 어떠하든, 평생 변함없이 서로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평생의 반려자입니다. 단지 상대방의 외모에 이끌린 순간적인 감정적 사랑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 사랑은 가장 성숙한 사랑으로 결혼 전 에로스의 삭랑만으로 불가능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소유할 때 가능합니다. 일명 아가페 사랑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우린 이러한 삭랑을 완전하게 가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노력해도 역부족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며 서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때 거기에 근접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음 받기만 한다면 서로의 사랑은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를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아침에나 점심때나 저녁때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올해나 내년이나 그 후년이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현재나 10년 후나 50년 후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만 아니라 그 후에도 영원한 것입니다.



17. 전폭적인 지원과 축복을 받는 결혼식


  그도록 바라던 결혼식을 올리는 날, 이 날에 가족과 친척과 동료들의 축하를 받을 때 마음에 감동과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만일 부모의 축하가 빠지거나 친구들의 축하가 빠진다면 그 결혼식은 첫 발을 내 딛는 부부에게 아쉬움과 부담으로 남을 것입니다.

  결혼을 원하는 사람은 배우자 선택이나 결혼식 그리고 집을 마련하기 위한 모든 준비에서 자신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야 하지만 아울로 가족과 친지들과 동료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룬 예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도록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만일 두 사람 사이가 좋을지라도 양가정의 부모가 심하게 만류한다면 그것은 무척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이럴 때는 할 수만 있으면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양해를 구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지지를 받는 결혼 자체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양 가정의 장기적인 화합을 위해서는 무척 필요한 부분입니다. 한편으로 어떤 이는 전혀 환영과 지원을 못했지만 결혼 후에 행복한 가정을 이룬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와 온 가족들의 강한 만류를 뿌리치고 장애인을 선택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룬 경우도 있습니다. 매우 의미 있는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심오한 부분, 수준 높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생각을 놓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가족의 찬성을 받아 내도록 충분히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씁 드리는 것입니다.

  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너무 강한 반대가 일어날 경우, 그 문제를 주님 앞에 내어 놓고 진지하게 기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훌륭하고 경건한 상담가나 선배 혹은 스승 지도자의 조언을 들어보십시오. 그런 후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18. 연애 기간 중의 다툼


  연애 등 중매 등 사귐을 갖다가 간혹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사소한 다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다툼도 직설적인 감정의 다툼이 있고, 스스로만 삭이는 스타일의 다툼도 있습니다. 속으로만 속상해 하는 것이지요 드물지만 어떤 사람의 경우는 그 다툼이 격렬하기도 합니다. 이런 다툼, 불화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도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두세 번 만나 다툼이 전혀 없이 그 사람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른 판단일 수 있습니다. 다툼은 분명 좋은 것은 아니지만 성격 차이가 심한 사람의 만남일수록 자주 방생할 수 있습니다. 감정상 사소한 다툼이 한번 일어났다고 당장 그 사람과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것은 성급한 결정일 수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 중에 어떤 이는 결혼 전에 사소한 다툼의 경험을 많이 했을 뿐만 아니라 격렬한 다툼이 한두 번 있었지만 그들은 결합하여 현재 행복한 부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툼을 무작정 용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이 문제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소한 다툼이 있을지라도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서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즉, 용서가 있다면 사귐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화해가 빠르게 찾아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서로 심각한 사이에 이른 것으로 간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 격렬한 다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다툼 후에도 충분한 용서와 화해가 오고 간다면 사귐을 계속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편이 분명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는커녕 나에게 잘못을 떠맡긴다면 더 큰 상처를 입기 전에 그 사람은 그만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용서’ ‘화해’라는 말은 쉽지만 실제적으로 그렇게 용서를 고백하고 상처를 충분히 싸매어 주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일단 용기를 내어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며 화해를 요청해 올 경우 처음엔 그 용서를 받아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화해의 요청이 진심인지 아니면 무엇을 노리기 위한 하나의 제스처에 불과한지 분석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용서와 화해가 나의 마음의 상처를 충분히 녹여 줄 수 있는 깊은 공감이 가는 화해인지 점검해 보십시오.

  또 한 가지는 다툼의 성격을 규명해야 합니다. 실수로 일어난 다툼인지 고질적인 다툼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단순한 셩격 차이에서 빚어진 다툼인지, 아니면 어느 한 쪽의 지나친 이기주의에서 파생된 다툼인지 파악해 보는 일입니다. 그 다툼이 상식선에서 이해가 되는 다툼인가? 아니면 상식을 초월하는 다툼인가? 단순한 이견에서 나온 우발적 충동적인 다툼인가, 아니면 악질적이고 고질적인 감정의 다툼인가? 마음에 깊은 상처로 자리잡는 다툼인가? 아니면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다툼인가?

  만일 다툼을 걸어오는 쪽의 다툼 성향이 너무 고질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다툼이라면 교제를 그만 두는 것이 서로의 미래를 위해서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며 나의 잘못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면 서로 노력하는 가운데서 얼마든지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다툼이 자주 일어나는 사귐이라면 사귀는 기간을 충분히 길게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6개월 이상, 일년 이상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사귐을 가지십시오. 서로 노력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다툼이 현저하게 줄어들거나 멈추게 된다면 아름다운 결혼생활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툼이 오래 가며 개선 보다 오히려 사귈수록 더 빈번해지고 심해진다면 두 사람은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교제를 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입니다.

  아무튼 결혼 전에 용기 있는 용서와 충분한 화해가 이루어진다면 행복한 결혼이 가능 합니다. 처음에는 물론이고 나의 단점이 노출되고 어려운 장애물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감정이 더욱 굳게 유지 될 수 있다면 행복한 결혼의 날은 결국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서사대 기독학생회 카페
글쓴이 : 이송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