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내적치유

[스크랩] 분노와 상처에 매여있는 자들을 위한 용서의 필요성

힐링&바이블센터 2006. 5. 6. 14:17
조이스 마이어의 간증(용서의 능력) | Inner healing 자료
2005.09.16

저는 제가 그것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 때부터 시작해서 18세에 가출할 때까지
성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언어적으로, 정서적으로
무서운 학대와 폭행을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네댓 명의 남자들에게 학대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거절을 당하였고, 버림을 받았으며, 배신을 당하고,
이혼까지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해서 제가 경험을 나누기 전에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저의 아픔을 나누는 것이 조금이라도 저의 부모님을 욕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가정에서 받았던 학대로 인해 온통 두려움에 휩싸여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분노와 협박으로 지배하고 다스렸습니다.
저는 정직하게 저의 상황과 문제에 대해 털어놓고 싶었지만,
몇 번의 그런 시도들이 오히려 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만 했습니다.
그런 저의 시도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적인 대응,
그의 광기와 폭언은 저에게는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것이었기에
그 후로는 아버지의 명령은 어떤 것이든 거절하지 못했고,
그의 말에 즉각적으로 복종하는 법만을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주말이 되면 인사불성이 되도록 폭음을 했고,
종종 저를 술집에 데려가서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놀았습니다.
아버지는 화난 얼굴로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고,
집에 들어와서는 이유 없이 어머니를 때리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의 남동생에게도 폭언을 퍼붓고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너무나 저속하고 추악해서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저주의 말들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로 인한 근친상간 때문에 제 자신이 항상 더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저를 성폭행하는 고통 중에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아버지와 저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드렸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추궁했지만 아버지는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가 열네 살쯤 되었을 어느 날,
어머니는 식료품 가게에 들렀다가 예상보다 일찍 집에 돌아오게 되었고,
아버지가 저를 성폭행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곧장 밖으로 나가버리셨고,
두 시간 후에는 아무 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한 얼굴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랜 세월, 아니 실제로는 30년이 지난 뒤, 어머니는 저에게 그때 자기 자신은
부끄럽고 수치스런 그 문제를 감히 눈으로 대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저와의 관계와 아버지의 무서운 폭력 등
오랜 학대로 정신적인 파탄과 붕괴상태가 되었습니다.

저는 열여덟 살 때 아버지가 일터에 나가 있는 틈을 타서 가출을 했습니다.
가출한 뒤 저는 저에게 관심을 보여준 첫 번째 남자와 곧바로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제 남편도 저처럼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속이는 협잡꾼이요, 도둑이요,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놀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결혼생활을 5년간 했습니다.
우리는 둘 다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정상적인 양육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두 사람이 서로를 돕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21살 때 아이를 한 번 유산하고, 22살 때 다시 임신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갖자마자 남편은 저를 떠나서 다른 여자와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여러 가지 고통 속에 저는 정신이상이 될 뻔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커서 몇 시간 동안을 우두커니 앉아서 벽을 바라보거나
창밖을 내다보곤 하면서,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이런 저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저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의 삶은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저의 삶의 어떤 것도 안정된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에 대한 아버지의 성폭행과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어머니의 정신병은 날로 악화되었습니다.
갑자기 난폭하게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람들을 협박하기도 하고, 핸드백 속에 칼을 넣어가지고 다니고,
누구에게나 닥치는 대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술집을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저를 사랑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나는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인생이 엉망이었지만,
제 마음 속에는 아름답고 싶고, 깨끗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혼란과 두려움, 외로움과 실의, 우울과 침체에 떨고 있으면서도
종종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가 아홉 살 때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교회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심한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언젠가는 제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진정으로 저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
저를 데리고 교회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저의 부모님은 두 가족이 살 수 있는 아파트를 갖고 있었는데,
한 방에는 다른 사람이 세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셋방청년의 친구 중에는 데이브 마이어라는 26세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데이브가 셋방청년에게 놀러 왔습니다.
데이브는 저에게 친절하게 대했지만, 저는 아버지와 전 남편에 대한 나쁜 경험 때문에
남자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데이브는 예수님을 잘 믿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6개월 전부터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와 결혼할 여자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여자이기를 바라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데이브는 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고 청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다른 남자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열정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은 점점 악화되어 갔고, 언제나 두려움 가운데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어떤 일도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일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와 결혼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데이브는 저에게 자기와 함께 교회에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제 기도제목의 하나가 진정으로 저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되,
그 사람은 저를 교회에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간절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갈망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저보다 신앙심이 더 좋은 사람이
저를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데이브는 10개월밖에 되지 않는 제 아들에게도 잘 대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아들의 이름을 데이빗이라고 지었습니다.
데이브와 저는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오랜 세월동안 상처받고 망가진 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전 남편에 의한 오랜 학대는 저를 정서적인 불구자로 만들어서,
건강한 관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그대로 닮아서 아버지처럼 혈기를 쉽게 내고,
비판적이고, 부정적이고, 강압적인 여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의 모습은 제가 자라온 환경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자기연민과 폭력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었으며,
우울과 쓴뿌리와 원망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이혼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남편 데이브가
너무나 착하고 마음이 넓고 신앙심이 깊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

저는 아버지와 전 남편에게 많은 학대를 당했지만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되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저를 파괴할 수 있는 그런 무서운 것들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9살 때 예수님을 영접했기에 하나님께서 저를 그러한 것에서 지켜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어렸을 때도 한번도 마음이 편안하거나 행복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끊임없는 두려움 가운데 살면서 자신의 인생을 즐길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결혼한 후 어느날, 남편 데이브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얘기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일곱 형제자매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그들은 가정에 너무나 사랑이 많아 어린아이 때도 그렇게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돈 많은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술로 인한 간질환으로 죽었기 때문에
홀로 된 어머니가 일곱 자녀를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예수님을 철저하게 믿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은 온 가족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한 번도 행복했던 기억이 없었지만
진실한 신앙의 어머니를 둔 데이브의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였던 것입니다.

저의 첫 번째 남편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사랑해야 할 줄도 몰랐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전혀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뒤에 훌륭한 인격과 신앙을 가진 두 번째 남편 데이브가 저를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마음이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완벽함이나 죄 없음에 기초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그분을 제외한 그 어떠한 것에도 기초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분의 일이나 임무가 아닙니다.
그분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요, 그분 자신이 바로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행위가 선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여기서 제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됨으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불안이나 공포나 염려가 존재하지 않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의 온전한 성숙의 분량에 이르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6절-19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속죄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큰 사랑으로)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일서 4장 9절-11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로마서 8장 35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로마서 8장 38절,39절)

위의 말씀 중에 요한일서 4장16절의 말씀은 저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믿어야 한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은 불완전한 제가 아니라, 그분 자신에게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실패할 때에라도 그분은 여전히 저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하며, 또한 조건이 없습니다.
당신이 실패할 때에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계속해서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은 당신에게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존재 자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죄를 짓고 실패할 때,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며 정죄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벌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귀의 목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뜨려 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한 감정의 치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저는 사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의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고,
그 아들 예수의 피로 우리 죄를 씻고 구원하심으로써
그의 엄청난 사랑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순전한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마음의 상처에 대한 치유의 시작인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토록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만 있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납하셨으며,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기 시작할 때
비로소 당신 자신을 용납할 수 있고, 당신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그 즉시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지 않고는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줄만 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 진리는
우리에게 엄청난 기쁨과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저는 당신에게 “나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릴 거야!”
라는 결단을 하실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크게 소리 내어 말하십시오.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고백하는 것을 자주 반복하십시오.
밤에 잠을 잘 때나 하루 종일 그렇게 반복해서 고백하십시오.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가리키며 “○○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성령님(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저의 경우에는 남편이 저에게 읽어보라고 권한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치유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책은 어렸을 때부터 성폭행을 받아온 한 여성의 간증이었습니다.
저자의 양아버지가 저자를 어떻게 성폭행했는가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에 이르렀을 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쓰라린 기억들과 상처와 분노와 증오가
다시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방바닥에 던지면서 소리쳤습니다.
“나는 다시는 이런 책 안 읽어!”

그러나 성령님은 그 책을 계속 읽게 하시고
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친척들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도 남편과의 부부관계에 아무런 문제를 겪지 않은 한 목사 사모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모님은 친척들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훌륭한 목사가 될 청년을 만나게 하시어 사모가 되어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모님은 저와 같이 어렸을 때부터 성폭행을 당해왔지만,
결혼 후 부부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저는 그 사모님과는 반대로 어렸을 때 겪은 성폭행 때문에
결혼 후에도 남편과 부부관계를 갖거나 그런 문제를 극복하는 데 많은 문제를 겪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저는 그 친구와 대화하는 가운데,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앙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성폭행을 14살 때부터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 이미 좋은 신앙의 친구들을 오랫동안 사귀어 왔고,
적극적인 기도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를 폭행하는 사람이 자기를 괴롭힐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덮어 주시고, 보호해 주셔서
그것이 장차 자기 남편과의 부부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때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에게 계시해 주신 대로,
자기는 언젠가 목사가 될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그녀를 수치로부터 보호해 주었고,
그 문제로 인해 묶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기도를 통해 저의 믿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 자신이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까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 같은 사람도 구원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배우기 전까지는
당연히 수치심으로 인한 무서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수치감은 자기 거절을 불러일으키거나 어떤 경우에는 자기 증오까지 야기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기 손상을 포함한 자기 학대로까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보배요, 용납받은 자입니다.

어떤 집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자매가 집회를 인도하고 있는 목사님에게 “저는 제 자신이 너무나 미워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단호한 어조로 그녀를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미워할 권리가 없어요.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그리고 당신을 자유케 하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그분의 독생자를 죽게 하시고, 당신을 대신해서 고통을 받게 하신 겁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미워하거나 거절할 권리가 없어요.
다만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당신에게 주시고자 했던 그 모든 것들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이에요!”

그 자매는 목사님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그 말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증오와 거절과 정죄와 심판까지 담당하셨기 때문에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당신 자신을 거절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며 저를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팔로 자신을 감싸 안으며 힘껏 껴안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을 용납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주님의 도우심으로 나는 날마다 새롭게 발전해가고 있다.”

또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고 거절만 당하고 살아온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거절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었습니다.
누구나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거절과 멸시를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생애를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신실하게 순종하심으로써
거절당하는 것에 좌절하지 않고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하는 것은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거절은 우리에게 상처를 가져다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절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합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결국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되어버립니다(엡6:6, 골3:22).
즉 사람의 기분에 따라 우리의 기분이 좌우되는 사람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거절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지 않고 살려고 한다면
결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거절도 당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결코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우리 혼자서 감당하려 하지 말고,
주님께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를 치유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실망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들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치유하시는 은혜를 누리십시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그 상처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며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예레미야서 30장 17절)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다.”
(시편 27편 10절)

주님의 도우심으로 당신은 거절을 극복할 수 있으며,
그분 안에서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을 학대하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문제는
내적 치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입니다.

이 일은 치유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실제로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당신이 쓴뿌리와 증오, 용서치 않는 마음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정서적으로 결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탄은 당신을 파멸시키고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귀가 당신을 해치기 위해 보낸 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을 가지고 당신에게 유익이 되도록 바꾸십니다.

최근에 저는 한 여성으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는데, 내용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학대를 당하도록 만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잘 압니다.
그렇지만 만일 당신이 학대를 당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저를 도와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학대받은 것 때문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픔과 상처를 사용하셔서
상처받은 다른 영혼들을 자유케 하는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저는 제가 처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노력했던 그 시간들을 기억합니다.
어느 날 밤 저는 제가 사랑으로 충만해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증오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오랫동안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증오심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증오심을 퍼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체험 이후로 저는 아버지를 다시는 증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저에게 행한 일 때문에 아버지를 증오하며 살았고,
아버지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아버지를 향한 비참한 느낌과 나쁜 태도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했지만 어떻게 할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은 저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이 당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로 선택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용서할 수 없을 때 당신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자유를 누리십시오.

그럴 때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는 _________가 저에게 ______________한 것을 용서합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기로 선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 문제를 올려드립니다.
저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온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옵시고, 제 안에 있는 상처들과 고통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제가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도 그렇습니다.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저는 제 가정 안에서도 비정상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 외에 달리 행동할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저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자신의 행위가 저에게 정서적으로 얼마나 무서운 영향을 끼칠 것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의 생애의 대부분을 허비해야 할 정도로
자신의 행위가 저에게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삶, 마귀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그릇된 욕심과 정욕을 채우는 삶, 그리고 자신의 행동의 결과는 조금도 생각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악영향으로 인해 저는 성격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저를 판단하고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를 거절하지도, 판단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44절)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장28절)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로마서 12장 14절)

하나님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성경구절들로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원수들을 용서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들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도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 잘못을 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그들을 회개의 자리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저지를 해악과 잘못이 얼마나 큰가를 진정으로 깨닫게 해 줍니다.
당신의 원수들을 위해, 당신을 학대하고 조롱하고 혹사했던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축복을 비십시오.

그 누구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는 진정으로 축복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학대를 받은 희생자로서 당신이 당신을 학대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면
당신은 로마서 12장 21절의 말씀을 역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당신을 학대한 사람에게 심판이 아닌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원수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 것은 용서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제가 원수 같았던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한 후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15년 동안 계속해서 저를 성폭행해 왔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라는 생각에서

“15년 동안 저의 아버지는 저를 성폭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치유하고 계십니다.
저는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과거에 상처를 안고 있었고,
마귀의 세력에 끌려 다녀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저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계셨고,
당연히 저를 도와주셔야 했지만, 너무 두렵고 불안한 나머지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 문제를 대처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 문제를 비밀로 한 것 같습니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이것입니다.

1. 용서하기로 선택하라.
2.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내려놓으라.
3.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
4.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축복하라.
5. 하나님께서 당신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고 계심을 믿으라.
6. 기다리라.

보복과 복수는 다른 사람이 야기한 손해에 대해 되갚아주려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상처가 제거되거나 사라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입은 손상도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보복의 행위는 오히려 더 큰 상처와 손상만 가져올 뿐입니다.

보복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저는 잘 압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 일에 저의 정력을 헛되이 낭비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상해 주실 것을 믿고 제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헛될 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제 안에는 항상 쓴뿌리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에게는 항상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고,
저 자신에게는 항상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동안에도
과거의 학대로 인한 정서적으로 심한 기복현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하나님의 방법을 알지 못했던 저는
저의 상처를 죄 없는 아이들에게 마구 쏟아놓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괜히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쳤습니다.
저는 성질이 나쁜데다가 조금도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어디에도 만족을 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대단히 몰인정했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받은 그대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학대를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 자식들을 이렇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문제를 지닌 엄마 밑에서 자란 큰 아들은
성격적인 문제와 정서적인 불안감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항상 싸움의 영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이좋게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의 문제를 치유해 주셨고 큰 아들도 치유해 주셔서
지금은 우리의 사역인 [말씀 안에서의 삶]을 위해 훌륭한 일꾼으로 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들로서, 좋은 친구로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한 동역자로서 저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함정에 빠질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상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상처를 쏟아놓기 쉽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성은 단순히 어떤 남자가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남성을 증오합니다.
어떤 소년은 자기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평생을 여성들을 증오하고 학대하며 보냅니다.
이것은 빚에 대한 보복행위입니다.

이런 행동은 결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산다 할지라도 자신의 빚이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어떤 내적 만족감도 결코
제공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빚을 청산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방법,
곧 하나님의 방법밖에는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남편은 친절하고 원만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숙한 크리스천 남편을 주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저는 남편의 협력으로 목사가 되어
TV방송에도 나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사역은 밖으로 드러나는 사역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저의 사역을 돕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인 저를 키워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저의 집회가 열리면 남편은 집회의 모든 행정을 맡아봅니다.
저는 무대 전면에 나타나지만
남편은 무대 뒤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저의 집회를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던 그것으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나 가치감이 확고합니다.
그는 자존감이 너무 확고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슨 일을 맡기시든지 불평 불만하지 않고 기쁨으로 수행합니다.
남편은 아내인 제가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을 성취할 수 있도록
저를 돕는 일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는 저를 돕는 일을 통해서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어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은 제가 TV나 강단 위에서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도록
모든 재정문제, 준비상황, 행정적인 문제, 섭외 등 뒤에서 하는 일을 묵묵히 수행합니다.

저는 남편 데이브에게 아내인 저와 함께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자고
수없이 부탁해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그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거기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요. 나는 내 자리를 알아요.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지킬 것이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고한 안정감을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남편은 우리의 사역에 참으로 중요한 일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아내를 보호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할 일은 아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돌봐야 하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남편은 항상 “하나님은 나에게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아내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에는 복종하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받은 은사가 바로 하나님의 은사이며,
저로 하여금 하나님이 부르신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사에
복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임을 하나님은 그에게 깨닫게 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남편은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제가 그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남편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남편은 제가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남자입니다.
그는 또한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자신의 삶에 가장 만족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가 행복하다고 말할 때 그 행복이란 문자 그대로의 행복을 의미합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생을 즐기고 누릴 줄 아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이런 기쁨은 그가 하나님께 순복한 결과요,
하나님이 의도하지 않은 그 무엇이 되려고 발버둥치지 않은 결과라고 믿고,
남편 또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와도 경쟁하려 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 자신이 얼마나 훌륭하고 잘난 사람인가를 증명해 보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하려는 욕구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가치와 존귀함을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됩니다.

남편은 그가 하나님께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인 저와 비교해서 세상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은
그에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를 이미 용서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관계는 아직까지도 긴장 가운데 있었고 불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행위가 저의 삶에 얼마나 무서운 파멸을 가져다주었는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저의 부모님들과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지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은 쉽지만은 않은 문제였습니다.
저는 두 번 정도 저의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이 문제를 가지고 직면하려 해보았지만,
한 번도 성공을 거두질 못했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아버지와 대면할 때마다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무서운 분노와 비난과 원망만 오고갔습니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눈에 드러나지 않게 은밀하게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기 20장 12절, 십계명 제 5계명)
계명에 관해서 저를 계속 다루어 오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 그분들을 방문도 하고, 전화도 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 그분들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도 하나님은 저에게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다시 들었을 때,
저는 그분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네 마음으로 그분들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이 저에게 무엇을 해 주었다고 제가 그분들을 공경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부모가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입히시고, 먹이시고, 공부시켜 주신 것에 대해 제 마음속으로부터 공경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분들을 위해 외적인 선물, 전화, 방문 등을 해드렸지만,
하나님은 저의 마음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에게 남은 것이라곤 고통과 상처뿐이었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감사와 사랑의 감정을 갖기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년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해서 똑같은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생명을 주신 저의 부모님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은 저를 낳아주셨고, 먹이시고, 입혀주셨으며, 공부를 시켜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 것을 인해 저는 저의 부모님을 공경합니다.”

저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저의 부모님이 제 인생에서 담당해 주신 귀한 부분들을 진정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주일 후, 우리 사역 본부가 전국적으로 새롭게 시작한
[말씀 안에서의 삶]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관해
한 가지 중요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가족들이 그 프로그램을 보고,
저의 부모님들에게도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도록 설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에게 그 프로그램이 어떤 채널로 방송되고 있는지를 물어오셨고, 저는 그분들께 제가 어렸을 때 여러 가지 학대받은 것에 대해 방송에서 언급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기회에 부모님들에게 말씀드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학대받고 고통당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저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미국 전국과 전 세계에 저와 같이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여
큰 상처와 고통 속에 처참하게 신음하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빛을 비춰주는 것이 저의 일생의 사명이기 때문에
그런 여성들을 위해 아버지가 저를 학대한 사실을 부득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저의 방송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렸을 때,
제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적인 학대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면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고, 불효녀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전 세계에서 성적인 학대를 받고 고통과 신음 속에 창녀가 되거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수천만 명의 여성들에게 희망과 빛을 비춰주기 위해서는
효도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끔찍하고 악몽 같았던 성적 학대에 대해서 말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오랜 기간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이 일이 부모님과의 인연을 끝장낼 수도 있지만,
저는 부모님의 분노보다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여성들을
고통과 눈물과 증오와 절망의 삶에서 구출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저는 성적학대로 인생을 포기하고 처참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수천만 명의 여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양해를 구해야 했습니다.

저의 방송이 나가 부모님이 수치를 당하기 전에,
그분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서 제가 그 부모님의 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대도시로 이사를 가서 익명으로 살아가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를 아는 친척들이 아버지를 욕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아버지는 친척들 보기에도 개망나니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미 모든 친척들에게 버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미 외톨이가 된 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끊어질 인간관계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면 수치를 당하지 않고도 살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살아온
전 세계의 수천만 명의 여성들의 삶은 누가 변화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저와 같이 성적인 학대를 당하여 절망과 눈물 속에 살아왔던 여성 이외에
누가 그 여성들에게 빛을 비춰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부모님께 불효자라는 책망을 들을 각오를 하고
부모님을 찾아뵙고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미 부모님을 용서했고 십계명에 따라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졌지만
제가 이런 사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부모님께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와 같은 처지에서 고통과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남편과 제가 부모님께 모든 것을 말씀드리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용히 앉아서 제 말을 듣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제 남편과 저에게 아버지가 저에게 행했던 일에 대해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있는지를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돌이킬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성적인 학대에 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성적인 학대가 실제적으로 얼마나 무서운 파멸을 가져다주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적으로 학대받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면
제가 텔레비전에서 어떤 것이든 말해도 좋다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제는 진정한 아버지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이제야 비로소 자기 딸과 손자들과 증손자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남편 데이브는 그때 아버지께 오늘이 자기 생애의 최고의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저 자신을 꼬집으며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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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서너 살 때부터 열여덟 살 때까지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살아온 여성,
여성으로서는 가장 끔찍하고 악몽적인 고통을 당하며 비참하고 불행하게 살아온 여성을
이 시대의 가장 빛나는 보석 같은 여성으로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의 솜씨와 섭리는 놀랍기만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녀에게
“18년간이나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면서 그냥 당하고 있었느냐?”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모택동이나 김일성같이
악령이 충만한 악마의 화신이었으며 무시무시한 가정의 폭군이었습니다.
그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형벌과 고문을 가했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의 힘으로 그 폭군의 무시무시한 폭력에 대항한다는 것은
죽음 같은 고통을 당할 각오가 없는 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그녀에게
“그렇게 고통스러우면 진작 가출을 하지 왜 집에 그대로 있었느냐?”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그녀는 집을 떠나면 갈 곳이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십대 초반의 소녀가 가출을 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녀는 18세가 되어서 과감히 지옥 같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버립니다.

어떤 분은 “그런 아버지는 법적으로 처벌하여 그러한 악랄한 아버지들에게 경종을 울려야지
왜 용서해 주느냐?”라고 말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딸들을 차례로 성폭행한 아버지가 딸들의 고소로 감옥에 들어간 일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 자신을 성폭행한 계부(繼父)를 살인한 김부남 여인의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악랄한 아버지들은 법적으로 처벌하거나 복수를 하면
그런 류의 짐승 같은 아버지에게 경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조이스의 아버지의 경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딸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가를 절실히 느끼고 참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이스는 여성목사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직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목사라는 직책상 아버지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보다는
용서하는 편을 택한 것은 현명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조이스가 성적인 학대를 당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을 아버지의 동의 하에 부득이 공개하였는데,
아버지는 비록 자신의 동의 하에서이지만
자신의 치부가 온 세상에 공개되는 것 자체가 이미 스스로에게 큰 형벌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여성으로서 가장 끔찍하고 악몽 같은 세월을 살아와서
마음이 찢길 대로 찢기고 반항과 증오심과 세상에 대한 저주와 복수심과 절망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던 폐인 같던 여성에게 믿음이 훌륭하고 이해심이 많고 너그럽고 성실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 남성을 보내주셔서 남편으로 삼아 주시고,
남편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 시대의 보석같이 빛나는 여성으로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의 솜씨는 감탄스럽고 놀랍기만 합니다.


위의 글은 [슬픔 대신 화관을](조이스 마이어, 베다니 출판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자료출처 : 누리사랑넷

 

출처 : Enoch's Ministries (내적치유와 축사사역)
글쓴이 : 향기나무 전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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