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치유란?
1)내적치유는 인간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여 자신도 모르게 상처에 묶여서 눌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상처를 치유하여 자유 한 삶을 살게 하도록 하는 사역으로 현재 교회에 가장 필요한 사역이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역입니다.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대리자, 하나님과 같은 권세로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보살피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이러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오직 사람에게만 영을 주셨다. 영을 가진 영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영에서 나오는 권세, 힘, 생명력으로 환경을 이기고 이 사명을 감당하는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영으로 혼과 육, 환경을 지배하며 다스리는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영으로 늘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를 늘 소유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참으로 영적 존재인 사람은 주께서 내안에, 내가 주안에 늘 교제함으로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과
(요15:4-10), 하나님 하신 일을 우리도 하는 존재(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인 것이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의 영성이 잠들어버리게 되었고, 이 세상은 오직 육과 이성이 다스리는 세상이 되었다. 죄가 다스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창15:13-14,1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리니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나님의 선민, 택한 백성,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죄로 관영한 세상의 죄를 물리치는 사람으로 선택받은 신분이라는 것이다. 죄와 싸우고 죄를 물리칠 신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는 그렇게 할 힘이 없다. 능력도 없다. 이러한 능력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택한 백성에게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고 말씀하신다.(출29:45-46)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이제부터 하나님을 우리 중에 모시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시고 이 세상에 가득한 죄와 사망을 물리치고 생명과 축복을 만들어 가는 존재로 선택받았다는 것이다.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 하겠느뇨
이렇게 택한 백성일지라도 죄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로는 그들 중에 거하실 수도 없고, 그들을 쓰실 수가 없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피를 요구하셨다. 메시야의 피를 대신할, 모형의 피인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뿌림으로 이들은 하나님을 섬겼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담보하여) 하나님을 그들 중에 모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섬김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이었고, 조건적이었으므로 그들은 세상에 만연한 죄와 싸워 이길 수도 없었고, 하나님을 그들 중에 영원히 모실 수도 없었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사귐도 없었다.
요일1:3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크리스챤은 아담 이후로 이제야말로 제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을 가장 깊은 속에 모시게 된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게 되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었던 사람이 다시 영이 살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귀는 영적인 사람이 된다. 영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며, 영이신 하나님을 닮아 간다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죄와 싸워 이기고, 저주와 싸워 이기고, 환경을 지배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우리 속에 모시고 늘 교제함으로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신분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안에 모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벧전1:16) 하고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피 뿌림 받고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부터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룩해져야 한다. 우리 영-혼-육의 모든 더러움을 계속 씻어내야 한다. 이것이 성화의 길이요, 이것이 바로 내적 치유이다.
2)사람들은 과거보다는 현실을 더 중시한다. 그러나 과거-현재-미래는 다 연결된다.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미래는 현재로부터, 현재는 과거로부터 쌓여져가는 것이다. 시간은 사건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과거의 사건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재의 밑에 쌓여 있다. 깊숙이 쌓여 있다. 과거는 우리의 깊숙한 곳에 무거운 짐으로 우리를 날아오르지 못하게 얽어매고 있다.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눈에 보이는 부분만이 나무가 아니라, 밑의 뿌리로부터 나무이다. 뿌리로부터 윗부분이 지탱된다. 뿌리가 우리의 과거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나는 과거가 쌓이고 모여서 된 것이다. 과거의 사건들은 나무의 뿌리처럼 어떤 형태로든 현재의 나와 연관을 맺고 있다. 비록 겉으로 보이지 않고 안에(내적으로) 감추어져 있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바로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내일과 연결되는 것이다. 인간이 받는 모든 상처는 크건 작건 모든 것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잠재의식에 가라앉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바꾸어야 하며, 현재를 바꾸기 위해서는 과거를 치유해야한다.
내적 치유는 과거의 치유이며, 이것은 오늘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며,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를 치유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 속에 깊숙이 계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밑에 쌓여 있는 과거를 치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다.
날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인간의 가장 깊은 부분인 영에 쌓여 있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내적 치유이다. 아무리 급해도, 가지에 영양주사를 놓아서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영양으로 맺은 열매가 좋은 열매이다. 자연스럽게, 단계적으로 나오는 열매를 맺게 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치유도 내적 치유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과거는 지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다 같이 바로 앞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건드릴 수 없지만,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신 성령님은 과거를 건드릴 수 있다. 깊은 곳에 계신 성령님은 과거를 이끌어내어 치유할 수 있다. 주님이 보실 때,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계속 우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주님은 과거를 고치실 수 있다. 내적 치유는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치유의 과정에 내가 내 자신을 들어냄으로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건강한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 크리스챤은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과거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존재이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뿌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쓰라린 기억을 포함한 정서적, 심리적인 상처들은 우리 자신이 저지른 죄, 또는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죄로 인한 피해 때문에 마음에 생기게 되며,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에서는 사라지지만 무의식, 잠재의식에 남는다. 세상의 상담에서는 “과거는 흘러간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앞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해도 잠재의식 속에 있는 상처가 건강한 미래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 잠재의식은 엄청난 능력, 맹목적인 능력이다. 인간이 가진 진정 놀라운 능력이 여기에 감추어져 있다.
육체도 상처나 아픔을 기억한다. 감정도 기억이 있다. 감정의 기억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이성의 기억보다, 이성이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더 깊이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사건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때의 감정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의 기억용량은 이런 것보다 훨씬 더 크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의 아픔들이 아직도 우리의 아주 깊은 부분에 기억되어 있다. 참으로 인간의 내적인 기억용량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크다. 이러한 것이 사건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이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성품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사람의 공통적인 정서가 생겨난 것이다.
정서와 기억과 같은 우리의 내적인 부분이 영적인 부분과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은 다시 하나님의 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부모, 사회, 환경과도 역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즉 인간은 깊게, 넓게, 높게 연결되어서 사는 존재이다. 내적 치유는 이 모든 연결 관계를 치유하는 것이다. 과거와 나와의 관계, 미래와 나와의 관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부모와 나와의 관계, 조상과의 관계 등에서 그 동안의 상처로 말미암아 비뚤어져 있는 부분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며, 조절하고 조정하고, 정리 정돈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비뚤어져서는 제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나의 의식으로는 이것을 길들이고 좋은 방향으로 바로잡을 수 없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하여금 이것을 길들이고, 이것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게 하는 것이 바로 내적 치유이다. 그러므로 내적 치유는 우리 안에 임마누엘 하시는 성령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만 하고, 또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구원은 일회적이고 순간적 이지고,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내가 변화 받는 것은 지속적으로 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구원은 거져 주어지는 것이지만, 성화는 우리를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변화하려는 나의 의지가 만나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성령님께서 우리와 임마누엘 하시는 것이다.
안에 들어있는 잠재의식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 성품이고, 정서이다. 그러므로 성품의 변화는 즉 내적 치유이고, 성령의 열매이다. 이것은 내 힘만으로도 아니고, 가만히 있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에게 내 깊은 것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마음을 열어놓아야 한다. 열쇠는 우리가 가진 것이다. 우리와 하나님이라는 두 인격체의 의지가 만나야 된다. 그곳에 치유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구할 때, 그곳에 치유가 일어난다. 사람이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육신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사회의 문제, 밖으로 표현되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그 근원이 인간성품의 문제, 잠재의식의 문제이다. 이것은 또 죄의 문제이다. 즉 모든 문제는 죄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고, 죄의식이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처가 모든 아픔의 근원이 된다.
눅17:37 ..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상처가 있는 곳에는 마귀가 모이게 되어 있다. 마귀는 우리의 상처를 그냥 두지 않는다. 자꾸 와서 건드린다. 피와 고름이 흐르게 만든다. 마귀는 상처에서 나오는 피와 고름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나쁜 병균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밖으로 표현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근원이 되는 죄의 문제, 상처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것이 바로 내적 치유이고, 예수의 구속사역이고, 성령의 치유의 역사이다. 죄 사함과 회개와 속죄가 모든 문제의 해결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치유, 사랑을 쏟아 붓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상처투성이인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요, 이것은 즉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쏟아 붓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고, 그 이유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처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보혈은 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의 묘약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이러한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다.
3)내적 치유는 어떤 심리학적 원리나 치유기술을 성경에 접목시켜 치유하는 방법이 아니다. 분위기, 감정도취로 인한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감정의 변화가 아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치유하는 영적 치유이며, 이것은 성품의 변화로 나타난다.
4)일회적인 기도에 의한 신유체험, 감정적 체험으로 울음이나 기쁨이나 마음에 평화가 임함으로 해결되는 분야가 아니다.
내적 치유는 한두 번으로 끝낼 정도의 얕은 부분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해야만 치유되는 깊은 부분을 다루는 것이다. 내적 치유는 평생을 두고 계속되어야 한다. 너무 급하게 모든 것을 끝내려는 욕심, 한 두번에 모든 것을 치유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기대는 많이 하나 욕심은 버려야 한다. 살아 있는 한 호흡을 끝내지 않는 것처럼, 식사를 끝내지 않는 것처럼 내적 치유를 계속하는 개념을 가지라.
고후6:1 ...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내적 치유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받는 것보다, 잘 활용하고, 간수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신다. 중요한 것은 이제 시작된 내적 치유를 귀하게 여기고 지속하는 것이다. 가꾸고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는 흘러넘치게 더 흘러 들어온다.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 은혜를 더 주신다. 있는 자에게 더 주시고,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 더 주신다. 받은 은혜를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시고 더 은혜를 쏟아주신다.
5)내적 치유는 신체의 질병의 치유, 마귀를 쫓아내는 축사사역과 다르며, 무조건 성령 충만하거나 기도를 많이 한다고 되지 않는 사역이다.
내적 치유는 육체적 질병의 치유보다 깊고, 축사사역도 포함되나, 보다 인격적인 사역이고, 부드럽고 따뜻한 사역이다. 거칠고, 권위를 세우고, 힘주는 자세로는 내적치유 사역을 할 수 없다. 또 부르짖기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원리를 알고, 능력을 가지고, 방법을 알고 사역해야하나, 그것만으로도 안되는 사역이다. 기본보다 기술에 치우치는 자세로는 안 되는 사역이다. 기본이 되어야만 하는 사역이다. 목사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사역이다. 누구에게 먼저 사역하기보다, 먼저 내가 치유 받아야 하는 사역이다.
6)기존의 기독교 상담과도 다르다. 물론 여러 방법이 서로 중복되거나 보완하는 면은 있으나 내적 치유는 기본적으로 성경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과 치유에 관한 방법을 발견하여 적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하는 과정 중에 내적 치유의 방법이 들어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이다. 구원받은 자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일어나는 치유사역이며, 치유 받은 자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성령님을 통하여 치유하게 되는 사역이다. 내적치유를 받은 사람은 다른 상처받아 고통하는 사람을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성령님이 그런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7)성경의 가장 큰 치료의 매개체인 복음,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의 사랑, 성령님의 은사를 우리 내면의 치료에 적용하는 것이며, 사역에 있어서 가장 섬세하며 신중하며 보람 있는 사역이며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역이다.
- 배영준 목사 http://new.0675.net/ -
'치유 > 내적치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왜 내적치유가 필요한가 (0) | 2006.05.06 |
---|---|
[스크랩] 내적치유의 상처 정의와 영향 (0) | 2006.05.06 |
[스크랩] 치유가 필요한 현대인 (0) | 2006.05.06 |
[스크랩] 내적 치유 (0) | 2006.05.06 |
[스크랩] 상한 감정의 치유 (0) | 2006.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