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 10:11~14)
히 |
브리서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구약 레위기에 나오는 아론 자손 제사장들이 드리는 제사와 흠 없는 자기 피를 하나님께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비교해서 보여 주는 것이다.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가 드린 제사의 차이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 사함을 받고 은혜를 입기 원하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읽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실제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죄에 매여 고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담 때부터 하나님을 떠나 마귀에게 종노릇해 온 인간을, 오늘날도 마귀가 아주 간교하게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피의 능력을 믿는 마음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면 우리는 기도하고 전도하고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쪽에 마음을 빼앗겨버려, 우리 죄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서 흐려져 버린다.
히브리서는 그런 부분들을 자세히 정리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10:11)
구약 시대에 레위 자손이 양이나 소를 잡아 드리는 제사는, 온전히 죄를 사할 수 있는 능력의 제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실 것을 설명해 주는 그림자였기 때문에, 그 제사로는 죄를 온전하게 씻을 수 없었다. 만일 양과 소를 잡아 드리는 제사로 우리 죄를 온전히 씻을 수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고,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했겠는가?
양이나 소를 잡아 드리는 제사가 순간 순간 그들의 죄를 씻기는 했지만, 죄를 영원히 씻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성막 위에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있었다. 밤에는 불 기둥이, 낮에는 구름 기둥이 성막을 덮었다. 그런데 그 외에 다른 하나의 구름 기둥이 성막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제단에서 제물이 불타는 연기가 늘 구름처럼 떠올랐다. 왜 제단에서는 그처럼 늘 제물이 불타고 있어야 했는가? 그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죄를 속하기 위하여 양이나 염소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 제물들이 제단 곁에서 흘린 피는 강물처럼 흘러내렸고, 제물이 타는 연기는 구름처럼 떠올랐던 것이다.
그 제사는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죄가 끝날 때까지이다. 그런데 죄가 끝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양과 소가 죽어 갔던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드린 제사가, 구약 시대의 양이나 염소로 드린 제사와 같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에도,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때마다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필요 없이 단 한 번으로 족한 것은,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한 번의 죄만을 사했다. 양이 흘린 그 피는, 그 사람이 다시 짓는 죄에 대해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다시 짓는 죄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을 잡고, 또 잡고… 그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흘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양이나 염소의 피와 달랐다. 그리스도는 죄를 위해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그 피의 효력은, 양이나 염소의 피와 달리 영원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우리가 지은 죄도 그 피로 능히 씻을 수 있고, 그 후에 지은 죄도 능히 씻을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영원’ 안에 들어 있고,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영원히’ 사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지 않아도 우리를 구원하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귀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예수님의 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죄가 씻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혹은, ‘과거에 저지른 죄는 십자가의 피로 사해졌지만, 앞으로 짓는 죄는 내가 고백해야 사해진다.’라고 생각한다. ‘원죄는 십자가의 피로 사했지만, 자범죄는 내가 사해야 한다.’라고도 한다.
그러한 허망한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자꾸 죄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 빠지게 한다. 그로 인해, 죄를 온전히 해결한 십자가의 능력을 알지 못한 채, 죄 속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여 고통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실제로, 이제 우리가 죄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죄를 일일이 고백해야 죄가 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영원한 속죄가 이뤄졌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저지른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죄는 고백함으로 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 죄값을 다 지불함을 인해 씻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죄가 씻어지는 것은 결코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했기 때문이 아니다. 십자가의 강도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 흘리신 그 피로 우리 죄는 이미 다 해결되었다. 하나님께서도 그 피가 우리 죄를 사한 것을 보시고, 이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다. 우리 죄를 기억지 않는다고 하신다. 우리를 다시 정죄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사단에게 속아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죄가 씻어질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한 것이 바로 믿음이 없는 것이다. 믿음이란,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루셨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사하신 것을 감사하며 마음에서 쉼을 누리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주님이 우리 죄를 온전히 씻으셨다면, 우리는 정말 감사하면서 쉬어야 할 것 외에 해야 할 일이 없다. 만일 우리가 죄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다 이루어 놓으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나온 것이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구약 시대의 양이나 염소의 죽음과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양이나 염소의 죽음은 그때의 죄밖에 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주 제사를 드려야 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이기 때문에, 우리 죄를 영원히 사하시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박옥수 목사
'사역 공간 > 설교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0) | 2009.12.28 |
---|---|
[스크랩]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0) | 2009.12.28 |
[스크랩] ▒ 예화 100편모음 ▒ (0) | 2009.06.19 |
신명기1장 (0) | 2009.05.19 |
충성된 일꾼 (0) | 2009.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