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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힐링&바이블센터 2009. 1. 24. 09:57

영화(榮化)

12-1. 영화(榮化)의 의미

영화(榮化, glorification)란 넓은 의미로는 성도가 죽을 때의 영혼의 완전 성화와, 부활 때의 몸의 완전 구속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엄격한 의미로는 부활 때의 몸의 완전 구속을 의미한다. 죤 머리, "(영화란) 신자의 죽음에서 영혼의 완전 성화를 가리키지 않고, 마지막 날에 죽음 자체의 파멸을 포함하여 죄의 모든 결과들로부터의 구속을 가리킨다."

신자는 죽을 때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해진다. 소요리문답 37문답, "신자들은 죽을 때, 그 영혼들이 완전히 거룩해지며 즉시 영광 안으로 들어가고." 누가복음 23:43,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린도후서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빌립보서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히브리서 12:23, ". . .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이것은 순간적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의 최종적 단계는 몸의 구속(救贖), 곧 우리의 몸이 영광스런 부활체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8:23,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성도의 부활의 몸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가졌던 범죄할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몸이 아니고, 다시 범죄할 수도 없고 다시 죽을 수도 없는 몸이다. 누가복음 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부활의 몸은 썩지 아니하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영적인 몸일 것이다(고전 15:42-44, 49). 그 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를 닮은 몸일 것이다. 로마서 8:29,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빌립보서 3:21, "그가 . . .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런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로마서 8:18-23에 증거한 대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바라며 탄식하고 있다.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다. 그 곳에는 눈물도, 사망도, 애통도, 아픈 것도 없을 것이다. 그 세계는 현재의 이 세계가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일 것이다(계 21:1-5).

 

12-2. 완전한 구원의 영광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로 말미암아 이미 법적으로 거룩하여졌고(고전 1:2; 히 10:10) 도덕적으로 완전하여졌다(히 10:14). 그것이 칭의(稱義)의 진리이다. 성화란 법적으로 이루어진 그 거룩과 의를 인격과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비록 성화가 이 땅 위에서 매우 서서히 이루어지고 심히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구주 예수께서 우리 위해 이루신 완전한 의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완전한 의인으로 간주될 것이다. 미래의 영광은 우리의 불완전한 성화의 정도에 근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완전한 의에 근거한다.

영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법적으로 이미 이루어진 구원에 내포된 것이다. 로마서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은 성도들의 영의 구원만 완성한 것이 아니고 육의 구원도 원리적으로, 법적으로 이미 완성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영광스런 몸의 부활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다.

마태복음 8: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로마서 8:29, 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3:20, 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의 거룩한 삶의 결과를 단순히 '영생'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부르심의 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로마서 6:22, 23,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갈라디아서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브라베이온, prize)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에 대해 은혜로 주실 상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영화롭고 완전한 구원에 비교될 수 없다. 성화는 더 나은 구원을 만드는 무엇이 아니다.

 

12-3. 상급에 따른 내세의 영광의 차등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성도의 선행과 봉사에 따라 은혜로 내려주실 상(賞)은 성도가 내세에 누릴 영광에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성화의 교리에서 논의한 대로 성도가 장차 받을 상에 차등이 있다는 점에서, 성도가 누릴 미래의 영광에 차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인리히 헤페는 그의 개혁파 교의학이라는 책에서 역사상 개혁파 신학자들 가운데 이런 점들을 언급한 피스카토, 부칸, 코체유스 등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Heinrich Heppe, Reformed Dogmatics Set Out and Illustrated from the Sources <Baker, 1978>, pp. 709, 710).

피스카토는 영생과 천국의 영광을 구별하며, 의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은사의 분량에 따라 차등하게 천국의 영광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Jo- hannes Piscator, Aphorismi Doctrinae Christianae <1592> p. 108; 헤프, 710쪽).

부칸, "영생의 영광이 모든 택자들에게 동등한 분량으로 공통적일 것인가?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택자들에게 자기의 은사들을 차등하게 나누어주시듯이, 천국에서도 자기의 은사들을 택자들 가운데 차등한 방식으로 주실 것이다"(Gulielmus Bucanus, Institutiones Theologicae <1609> 39. 14; 헤프, 709쪽).

코체유스, "영광에 있어서 개인들에게 차이가 있을 것이나, 질투함이 없을 것이며 가장 큰 영광 곧 머리의 영광이 모두에게 흘러넘칠 것이다"(Johannes Cocceius, Summa Theologiae <1665> 97. 4-5; 헤프, 709쪽), "영광에 있어서 또한 등급들이 있을 것인데, 행위들의 공로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각 사람이 세상에서 맺은 의의 열매들에 일치하는 방식으로이다"(Summa Doctrinae <1648> 16. 647; 헤프, 709쪽).

헤르만 훽스마와 박형룡 박사도 그들의 교의학 저서들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견해를 소개하고 논평하였는데 그들 자신의 견해들도 헤프가 인용한 사람들의 것과 비슷하다(Herman Hoeksema, Reformed Dogmatics, p. 516).

훽스마에 의하면, 아브라함 카이퍼는 영생과 상을 구별하였고 영생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에 근거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지지만 상은 그들의 선행과 봉사에 근거하여 일부의 신자들에게 내리시는 은혜의 선물이라고 보았다(Abraham Kuyper, E Voto Dordraceno, 2. 384-395; 훽스마, 516쪽).

헤르만 바빙크는 성경이 각 사람의 행위에 따르는 상에 대해 말할 때 장차 그가 누릴 영광의 차등함을 가르친다고 말했다(Herman Bavinck, Rereformeerde Dogmatiek, IV, 711; 박형룡, 375쪽). 그는 또 말하기를, "사람은 그에게 주어진 재능을 사용하는 성실성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큰 영예와 통치권을 받을 것이다(마 24:14 이하). . . . 따라서, 물론, 모두가 동일한 복, 동일한 영생, 하나님과의 동일한 교제를 나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과 광휘에 있어서 그들 가운데 차이가 있다. 교회들은 그들의 충성과 열심에 비례하여 그들의 주님과 왕으로부터 다른 면류관과 상을 받는다(계 2-3장)"고 하였다(Our Reasonable Faith <Baker, 1956>, p. 567).

성도들이 내세에 누릴 영광의 차등은 상급에 대한 구절들에서 당연히 추론되지만, 특히 다음 몇 구절은 그 사실을 잘 보인다.

다니엘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마태복음 5:19,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많은 주석가들에 의하면(칼빈, 매튜 풀, 데이빗 딕슨, 매튜 헨리, 데이빗 브라운 등), 이 구절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범해도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라고 본다. 예수께서 강조하신 바는,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이루러 왔으며 율법은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17, 18절) 우리가 율법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도 중요하게 여기며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석가들은 본절의 천국을 주께서 종종 의미하신 신약 교회를 가리킨다고 이해보았다.

그러나 이 구절에 대해 박윤선 목사는 다르게 주석했다: "이 구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곧 진정한 신자들에 한하여서는 율법을 지키든지 못지키든지 구원 문제에 있어서 직접 관계는 없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받을 영광의 크고 작은 문제에만 직접 관계를 가진다. . . . 여기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율법의 일부분을 범한 자라도 천국에 들어가기는 하였다. 그는 다만 천국에서 상급이 적은 것뿐이다. . . .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을 실행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이며 내세에 상을 받는다(단12:3)"(신약주석 공관복음, 174, 175쪽).

누가복음 19:16, 17,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누가복음 19장의 므나 비유는 지상에서의 충성의 정도에 따라 내세에서 누릴 권세와 영광이 다르다는 것을 보이는 것 같다. 이것은 상급의 차등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내세의 영광의 차등을 위해 인용되는 다음의 구절들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고린도전서 15:39-44,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이 말씀은 죽은 자들의 부활체들의 영광의 차등을 말한다기보다, 현재의 몸과 장차 누릴 부활의 몸과의 현격한 차이를 말한다고 보인다.

히브리서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본절의 '더 좋은 부활'도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체들 중에 더 좋은 것이 있고 덜 좋은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의 죽은 자의 부활 즉 회생(回生)보다 오는 세상에서의 부활이 더 좋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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