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금지된 것들을 하지 않는 것’을 성결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생각이다.
성결을 위한 요구 사항은 개인들에 따라서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떤 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아무리 사소한 경우라 할지라도
결코 획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이 참성결이다.
온전한 순종이 성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일에서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신앙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한다.
온전한 순종의 생활이 곧 성결(거룩함)이다.
사람들은 ‘성결’이라는 말을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피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성결이 특별한 교파들에 속한 사람들의 일이라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은 성결이 어떤 극단적 상태라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결하게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는데,
은연중에 그들은 성결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암시했다.
언젠가 나는 외도(外道)를 하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그의 죄를 지적하면서 그를 회개로 이끌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사실 이성(異性)에 약합니다. 하나님이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보다 더 이해심이 많으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덮으려고 이런 식으로 말한다.
정직한 사람들 중에도 일부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거듭 패배했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죄를 이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죄에 익숙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교훈은 너무나 명백하다.
성경은 성결을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고 거듭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거룩하셨으며,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셨다.
팔복(八福)의 말씀은 그분의 뜻을 분명히 드러낸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선언하셨다.
이 말씀에서 마음의 청결은 단순히 ‘불순한 생각들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고,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마음이 둘로 나누어지도록 허락하고 악에 굴복할 때 죄가 생긴다.
승리의 신앙생활을 하려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이렇게 표현하셨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2-24).
거룩하다는 것은 충성심이 나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산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누구 못지않게 깊이, 그리고 철저히 시험을 받으셨지만,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다.
그분이 죄를 짓지 않으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신성(神性) 때문이 아니라,
목표를 향한 그분의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한 가지 목표만을 가지셨다.
그분은 이것 이외의 어떤 다른 목표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악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이것이 진정한 성결이다.
목표를 향한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이 바로 거룩함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우리의 거룩함
신자의 성화가 발전하려면 그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이 목표는 다름 아닌 예수님이 품으셨던 목표이다.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목표이다.
이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어서 더욱 거룩해질 수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은 거룩함이다.
우리는 그분처럼 거룩해져야 한다.
그분의 거룩함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땅에서 약 50년을 살아왔지만 단 한 해도 온전히 거룩했던 적이 없다.
한 해 정도가 아니라, 한 달도, 한 주도, 아니 단 하루도 거룩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50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니고, 1,000년도 아닌 영원 전부터 살아계시지만
단 한 순간도 거룩하지 않으신 때가 없다.
내가 하나님처럼 거룩한 것이 그분의 뜻이다.
그분은 나에게 불가능한 것을 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화를 잘 내는 것이 나의 약점이니까 하나님이 이해해주실 것이다”
또는 “내가 이런 죄에 자꾸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이 이해해주실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배운 것인가?
그분이 죄를 용납하시면서 “그래, 너의 경우는 괜찮다”라고 말씀하신다고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그분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은혜롭고 자비하고 사랑과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으셨다.
만일 그분이 우리의 성결을 불가능하게 하셨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성경은 성결이 우리에게 가능하도록 하나님이 어떻게 준비해놓으셨는지를 가르쳐준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전 1:30).
우리는 본래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 가지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룩함이라는 것을 굳게 붙든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단지 나를 죄의 결과들에서 구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분은 또한 죄 자체로부터 나를 구하기 위해 돌아가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로부터의 구원’에 관한 모든 것들을 다 성취했다.
즉, 의(義), 칭의, 성화, 그리고 영화를 모두 성취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의 모든 것을 제공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의롭게 하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성결 곧 성화의 책임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칭의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물이지만
성화는 그들이 이루어야 할 일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그러나 고린도전서가 분명히 밝히듯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다.
나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것만큼 나를 낙심하게 만든 것도 없다.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려고 노력해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좌절감을 안겨주는지를 알 것이다.
당신은 “나는 절대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그것은 죄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정말로 옳게 살고 싶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안 되어 똑같은 죄를 범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이
“이것은 나의 약점이다. 나는 내 약점에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여기서 구해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금은 조금 참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전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거룩함을 향한 선택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들을 분명히 밝힌다.
그는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3-5)
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그분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겠다는 분명한 목적 때문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전에는 결코 성결의 문제에 있어서 발전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나를 거룩하게 만들려고 선택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나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거룩해지는 것뿐이다.
만일 다른 선택을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라고 말한다.
킹 제임스 버전(King James Version: 흠정영역 성경.
1611년 영국의 왕 제임스 1세의 명령에 의하여 만들어진
영어 성경 역본)은 ‘여길지어다’를 ‘레컨’(reckon‘ ∼로 간주하다, ∼로 판단하다’)
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긴다’는 말에는
확고한 내적 결심이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하나님이 나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선택하셨다”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옛 본성에 대하여는 죽은 것이다.
나는 나의 옛 본성에게 길을 열어주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내가 죄에 대하여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거룩함을 향한 선택’은 우리를 압도하는 ‘위기 체험’이 아니다.
그것은 날마다 우리에게서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날마다 우리는 우리가 거룩함을 위해 선택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날마다 나는 이미 죽은 옛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나는 새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런 날마다의 선택이 바로 성결의 비결이다.
성결을 위한 능력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그의 놀라운 기도를 이렇게 끝맺는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18-23).
이 기도에 나타난 영광스러운 진리는 성결의 위대한 원리를 잘 말해준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중에서 다시 살리시는 데 그분의 무한한 능력을 사용하셨다.
마찬가지로 그분은 나를 영적 사망의 무덤에서 다시 살리기 위하여 똑같이 무한한 능력을 사용하셨다.
이 기도에서 바울은 우리의 성결과 관련된 몇 가지 진리들을 말한다.
·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데 큰 능력이 사용되었다.
· 그리스도를 땅에서 올리셔서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시는 데 역시 큰 능력이 사용되었다.
·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모든 이름 위에 그리스도를 뛰어나게 하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머리로 세우시는 데 큰 능력이 사용되었다.
이 세 가지 진리들은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죄와 허물 가운데 죽었을 때,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다시 살리신 성령님이 나를 영적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신 능력이 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데,
이는 심지어 지금도 나로 하여금 영적 영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통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모든 다른 능력들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꿇게 만든 능력이
역시 나의 삶 속에서 모든 적대적 세력을
내 발아래 꿇게 만들 수 있는데,
이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면서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성결을 위해 우리를 선택하셨을 때 하나님은 단순히
“네가 성결해지도록 너를 선택했다.
그러므로 열심히 노력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내가 너에게 능력을 주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내가 너의 성결을 샀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 나는 네게 거룩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네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신다.
날마다 우리는, 성령님이 무덤에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것처럼
우리를 죄의 무덤에서 일으키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님이 그리스도를 땅에서 들어올려서
하늘의 보좌에 앉히신 것처럼 또한 성령님은
우리를 땅에서 끌어올리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신다.
성령님이 모든 능력들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꿇게 하고
그분을 승리자가 되게 하신 것처럼 또한 성령님은
우리의 모든 적들을 우리의 발아래 꿇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오늘’은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승리의 날이 될 수 있다.
극심하게 시험(유혹)을 당하지만 내 안에 그것을
이길 힘이 없음을 깨닫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그 능력이 지금 나를 죄의 무덤에서 살릴지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 우편에 앉히신 능력이 지금 나를 하늘의 영역으로 옮길지어다.
그리스도를 승리의 통치자가 되게 한 능력이 지금 나를 승리자로 만들지어다”라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이 영광스러운 진리들을 붙든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으며,
그 성결이 가능하도록 자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이제 그 능력을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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