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명절,생활지혜,시사,이것저것/핫이슈

최초 흑인 영부인 미셸은 누구인가?

힐링&바이블센터 2008. 11. 5. 15:03

 

최초 흑인 영부인 미셀은 누구인가?

1. 미국은 버락 오바마란 역대 최초의 흑인 대통령과 함께 역대 최초의 흑인 영부인 미셸 오바마를 맞게 됐다. 남편 오바마가 ‘검은 케네디’로 불린다면 미셸은 미국민의 연인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에 비견된다. 미셸에게 거는 미국민의 기대가 오바마에 못지않다는 방증이다. 일단 언론에 비친 그의 모습은 솔직 당당한 여성이다.

지인들은 그를 두고 “공석이나 사석이나 똑같은 모습이다” “가식이 전혀 없다” 라고 평가한다. 하버드 로스쿨 지도교수였던 데이비드 윌킨스는 “보통 학생들은 어떤 결정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거나 논리적 기교를 부리지만, 미셸을 언제나 뚜렷한 입장을 밝혀왔다”고 회고했다.

미셸은 시카고 사우스사이드의 ‘침대가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전업주부로 자식들에게 헌신했으며 아버지는 시청 수도국 직원이자 민주당 지역구 위원장으로 과묵하고 엄격했다.

평범한 가정 출신에 흑인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딛고 백인과 특권층 자녀가 많은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로스쿨 등을 거쳐 성공한 그는 남편 오바마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직접 선거운동에 뛰어들 정도로 맹렬 여성이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 오바마를 만나 결혼한 미셸은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로펌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사회사업의 길로 뛰어들기도 했다.

오바마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부인 미셸은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셈이다.

어두운 성장기를 보낸 오바마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도 때로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현실적인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조언도 서슴지 않는 그녀다.

일각에선 남편 오바마를 닮은 그의 직설화법을 걱정하지만 영부인의 역할이 바뀌면서 남편의 그늘에 자신을 감춰왔던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현대가 요구하는 영부인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남편을 조용히 내조하는 것은 물론, 때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대중과 교감하는 다양한 영부인상에 그가 얼마나 부합할지, 앞으로 미 언론은 미셸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까지 주시할 것이다.

 

 

2. 미국 최초의 흑인 영부인이 된 미셀 라본 로빈슨 오바마는 전형적인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남편 오바마에 뒤지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낸 인물이다.

또 "퍼스트레이디 후보로서 대중 앞에 서는 일보다 내게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며 가족의 가치와 열정이 적절히 이뤄진 자신의 가치관을 끊임없이 밝혀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 모으기도 했다.

미셸은 1964년 1월17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수도국의 펌프기사 겸 민주당 지역 선거구 지도자였던 아버지 프레이저 로빈슨과 슈피겔사의 비서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시카고 남부 사우스 쇼어에서 성장, 1981년 휘트니 M 영 마그넷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했다. 사회학을 전공한 미셸은 1985년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를 마친 후 1988년 하버드 로 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법률회사인 시들리 오스틴에 입사해 마케팅과 지적재산권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던 미셸은 1989년 여름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버락 오바마를 만나게 된다.

"처음 버락을 만났을 때 우리가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홀어머니와 외조부 밑에서 성장했고,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후배 변호사인 버락의 적극적인 사회활동과 열정, 끈질긴 구애에 끌린 미셸은 1992년 결혼한다.

이후 미셸은 시카고 시장 자문관으로 활동한 뒤 1993년 젊은층의 공공기관 취업을 돕는 '퍼블릭 앨라이스'라는 비영리단체인 시카고 지부를 출범시켰다. 이 외에도 시카고 대학 학생과의 책임자(1996년) 등을 거치고 2002년 시카고 대학병원에서 지역업무담당 책임자로 근무하며 2005년 부원장으로 임명돼 약 3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전문직 여성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 했다.

오바마의 뒤에서 묵묵히 내조하던 미셸은 2007년부터 남편의 선거 유세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후 유세 초기에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보수세력들의 집중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지난 2월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가 연승을 거두자 "성인이 된 뒤, 처음으로 미국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발언, 애국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하나의 국가'라는 주제로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사로 나선 그는 그동안의 '화난 흑인 여성, 애국심이 없는 용의주도하고 승부욕에 찬 기센 여자'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미국의 가치는 여러분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곳, 여러분이 하겠다고 한 말을 지키려 일하는 것, 사람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과 의견이 같지 않아도 존엄성과 존경심을 갖고 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행사장을 꽉 메운 수만명의 참석자들로부터 환호와 갈채를 받았다.

특히 남편 오바마의 학창 시절과 만남, 그리고 결혼 과정, 함께 해온 가치와 인간애, 두 딸의 어머니로서의 역할 등 오바마의 아내로서 또 인생의 동반자로서 자신이 헤쳐나오고 있는 현실을 솔직하게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80㎝의 키에 세련된 외모, 품위있고 절제된 언행으로 제2의 '재클린 케네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셸은 미국의 최초 흑인 퍼스트 레이디로 오바마를 훌륭히 내조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버락과 미셸 오바마는 말리아(9)와 사샤(7)라는 두 딸을 두고 있으며 미셸의 오빠인 크레이그 로빈슨은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농구 코치로 일하고 있다.

 

미셸은 행동파 퍼스트레이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못지않은 청중 동원 능력과 장악력을 과시한다. 미셸은 ‘끝내기의 달인’이다. 망설이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남편 쪽으로 끌어당긴다. 특히 오바마가 ‘흑인이냐 아니냐’며 헷갈렸던 흑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종문제를 피해 다녀야 되는 오바마와 달리 그는 은근히 ‘인종감정’을 자극한다.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미국흑인학을 공부한 그는 “미국 언론은 미국 흑인공동체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미셸을 ‘나의 반석(盤石)’이라고 부른다. 오바마 부부의 친구들은 미셸이 오바마의 ‘진북(眞北·true north)’이라고 말한다. 어두운 밤 방향을 가리켜주는 북극성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경우 미셸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다. “퍼스트레이디가 되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언론 매체의 질문에 대해 미셸은 굳게 입을 다문다. 또한 자신에게 최고 우선순위는 어머니·아내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유권자들이 지나치게 설치는 퍼스트레이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없는 말도 만들어 내는 게 선거전이다. 미셸과 신디도 가혹한 검증을 받고 있다. ‘미셸은 애국심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대중의 의구심 때문에 도마에 오른다. 애국심보다 흑인 정체성이 더 강한 게 아니냐 하는 문제다. 그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할 때 쓴 학사 논문은 ‘프린스턴 대학 흑인 졸업생과 흑인 공동체’였다. 오바마가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후 미셸(시카고 대학 메디컬센터 부사장)의 연봉이 2004년 12만 달러에서 2005년 32만 달러로 인상된 것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