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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도 바오로의 전도여행

힐링&바이블센터 2008. 4. 14. 21:17

 

 

사도 바오로의 전도여행

 

 

■ 제1차 전도여행  <49-49년경>


제1차 전도 여행기는 사도 행전 13-14장에 쓰여 있다. 바르나바와 그의 사촌 요한 마르코(골로 4,10)와 바오로는 안티아키아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셀류기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르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가 살라미스와 총독부가 있던 바포에서 전도하였다. 키프로스는 바르나바의 고향으로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었으며, 바포에서는 총독 세루기오 바울로를 개종시켰다.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유다인 마술사의 눈을 멀게 하였다.

바포에서 배를 타고 밤필리아 지방 베르게로 갔는데 이곳에서 마르코는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매우 위험한 여행 끝에(2고린 11,26)  그들은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가서 많은 유다인과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개종시켰다. 그러나 유다인의 저항에 부딪쳐(사도 13,45)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그 도시를 떠나 이고니온으로 갔다. 그러나 이방인 들과 유다인들이 지도자들과 함께 바오로 일행을 돌로 쳐죽이려 하자 그 낌새를 알아채고 남쪽으로 피신하였다(14,1 -7).

리스트라에서는 앉은뱅이를 고쳐주자 주민들은 그들을 사람 모습을 한 신들로 여겼다. 그런 데 안티오키아와 이고니온에서 온 유다인들이 군중을 선동하여 바오로를 돌로 쳤다. 그 다음날 데르베로 가서 많은 신도를 얻었다. 얼마 후 그들은 다시 리스트라, 이고니온, 비시디 아의 안티오키아, 베르게와 아딸리아 등 거의 같은 길을 되돌아오면서 그들이 세운 교회를 방문하고 원로들을 세운 뒤에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1. 예루살렘 사도 회의(49년경)

제1차 전도 여행 결과 많은 이방인들이 입교하자 그들에게 예수 신앙만을 요구할 것인지 유대교의 율법 준수까지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소집되었고, 이 회의에 예루살렘 있던 사도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참석하였다. 이때의 합의 사항은 갈라디아서 2장 1-10절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의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고, 예루살렘 거주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며, 예루살렘 모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방계 교우들을 상대로 모금 운동을 펴기로 약속한다는 내용이다(1고린 16,1-4 : 2고린 8-9장 : 로마 15,25-28). 사도 행전 15장 1-29절에도 사도 회의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만 그 결정 사항들이 사뭇 달라 회의에 참석한 바오로의 발언(갈라 2,1-10)에 더 신빙성을 둔다.

2. 안티오키아 사건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에 따르면 예루살렘 사도 회의 후에 베드로가 안티오키아 교회를 방문하였는데, 당시 그곳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유대인들이고 또 일부는 이방인들이었다. 그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함께 모여 공동체 회식 겸 성찬을 거행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두 부류의 신자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게 여겨 손수 공동체 회식 겸 성찬례를 집전하였다. 이런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로 알려지 자 소동이 일어났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해선 안된다는 규정을 베드로가 어겼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를 찾아와서 그의 행동을 나무라자 그만 베드로는 겁을 먹 고 이방인 교우들과의 회식 겸 성찬을 사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베드로의 영향을 받아 안티오키아 교회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심지어 바르나바조차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끊기 시작함으로써 안 티오키아 교회가 양분되었다. 이에 바오로는 그곳 교우들 앞에서 공공연히 베드로의 잘못을 꾸짖고 유대인 이 이방인과 식사해서는 안된다는 율법 규정 때문에 교회 일치가 파괴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바오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도 회의의 규정에 따라 교회 일치의 논리를 전개하였 던 것이다. 한편 예루살렘 사도 회의와 안티오키아 사건은 제2차 전도 여행 다음에 있었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1) 키프로스에서 일함 13, 4
    실라미스 13, 5
    바포 13, 8-11
    총독의 회심 13,12
    개명 13, 9. 10
2) 베르게(마르코는 떠남) 13,13
3) 안티오키아에서 전도함 13,14-41
4) 이고니온 13,51
5) 리스트라(바오로가 돌로 맞음) 14, 8-19
6) 데르베(마지막 성을 방문) 14,20
7) 돌아오는 여행 14,21-26

■ 관련성서구절

사도행전 13장 4-12절
4 바르나바와 사울은 성령께서 보내시는 대로 셀류기아로 내려 가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섬으로 건너 갔다.
5 그들은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의 여러 회당에 들러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 그 때 요한 마르코도 그들을 따라 다니며 일을 도왔다.
6 그들이 섬을 다 돌고 마침내 바포에 이르렀을 때 한 유다인 마술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바르예수라고 하는 거짓 예언자였고
7 총독 세루기오 바울로의 시종이었다. 총독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어서 바르나바와 사울을 청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였다.
8 그리이스말로 엘리마라고도 하는 그 마술사는 총독의 개종을 막으려고 두 사도를 방해하였다.
9 그러나 바울로라고도 불리는 사울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그 마술사를 쏘아 보며
10 "기만과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악마의 자식아, 너는 나쁜 짓만 골라 가면서 하는 악당이다. 언제까지 너는 주님의 길을 훼방할 셈이냐?
11 이제 주님깨서 손으로 너를 내리치실 것이다. 그러면 너는 눈이 멀어 한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고 꾸짖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안개와 어둠이 내리덮쳐 그는 앞을 더듬으며 손을 잡아 줄 사람을 찾았다.
12 이 광경을 처음부터 보고 있던 총독은 주님께 관한 가르침에 깊이 감동되어 신도가 되었다.

 

■ 제2차 전도여행  <50-52년경>


제2차 전도 여행기는 사도 행전 15장 36절부터 18장 22절에 나온다. 바르나바와 요한 마르코는 키프로스 섬으로 가고, 바오로와 예루살렘 출신의 유대계 그리스도인이요 로마 시민인 실라(사도 15,22. 32. 40 : 16,37)는 이미 제1차 전도 여행을 한 터키 남부 지역을 다시 찾아갔다. 아마도 다르소의 치드누스 강을 따라 북상하여 47㎞ 지점에서 길리기아 관문을 통과한 다음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로 갔을 것이다. 바오로는 리스트라에서 디모테오를 제자로 삼고(사도 16,1-3), 이어서 오늘날의 터키 수도인 앙카라 주변을 지나가던 중 갑작스런 발병이 계기가 되어 갈라디아 지방에 이방인 중심의 여러 교회를 창립하였다(갈라 4,13-15 : 사도 16,6). 트로아스에 이르러 교회를 세운 다음(사도 16,8-10 : 20,6-12) 밤에 계시를 받고서는 에게 바다를 건너 그리스의 항구 도시 네아폴리스에 닿았다(사도 16,6-11).

그리고 바오로는 그리스 북부 지역 마케도니아에 필립비, 데살로니카, 베레아 교회를, 그리스 남부 지역 아카이아에 고린토 교회를 창설하였고, 네아폴리스에 닻을 내린 다음 에냐시아 국도를 따라 15㎞ 내륙으로 들어가 필립비에서 전도하였다(사도 16,13-15). 필립비 교회는 바오로가 유럽 대륙에 세운 첫 번째 교회이며, 바오로의 생계와 전도를 물심 양면으로 후원하였다. 필립비 전도 말기에 바오로는 점쟁이 노비에게서 점귀신을 떼어 준 관계로 감옥에 갇혔고, 그 기회에 간수의 가족을 입교시켰다. 필립비를 떠난 바오로는 암피볼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마케도니아의 수도 데살로니카로 가소 전도하였다. 바오로는 관례대로 안식일에 유대교 회당에 가서 설교하여 많은 시민을 입교시켰으나, 우대인들이 그의 전도를 반대하자 바오로 일행은 올림푸스 산중에 있는 75㎞ 떨어진 베레아 마을로 피신하였다(사도17,1-10 : 1데살 2,13-16).

바오로가 베레아 마을에서 전도할 때 데살로니카에 사는 유대인들이 와서 훼방하는 바람에 바오로는 실라와 디모테오를 베레아에 남겨 두고 홀로 아테네로 갔으나(17,10-15), 당시 정치적, 경제적으로 몰락하였지만 문화적으로는 수준이 높은 아테네에서의 바오로의 설교는 거의 성과가 없었다(사도 17,16-34)l. 실라와 디모테오가 아테네로 오자 바오로는 데살로니카 교회 형편을 알아보고 그곳 교우들을 재교육하기 위하여 디모테오를 데살로니카로 보냈으며(1데살 3,1-5), 바오로는 실라를 데리고 아테네에서 남쪽으로 89㎞ 떨어진 고린토로 가서 18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큰 교회를 세웠다(사도 18,1-17). 그리고 디모테오가 고린토로 와서 데살로니카 교회의 실정을 보고하자 바오로는 데살로니카로 편지를 써 보냈는데, 이것이 곧 '데살로니카 전서'이다. 이는 바오로의 편지들 중에서 첫 번째 편지일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를 통틀어 제일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고린토 전도 말엽에는 유대인들이 바오로를 아카이아 총독 갈리오의 법정으로 끌고 가서 고발하였다. 갈리오 총독은 당대의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형으로서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 함부로 종교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다9사도 18,12-17). 델피에서 발견된 금석문에 의하면 갈리오는 51~52년 아카이아 총독으로 재직하였고 바오로 역시 같은 때에 고린토에 체류하였으므로 바오로의 연표들 가운데서 가장 확실한 연대이다. 사도 바오로는 겐크레아 외항에서 배를 타고 아시아 지방의 수도 에페소, 이스라엘 총독이 상주하던 가이사리아,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를 거쳐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사도 18,18-22).

1) 시리아와 길리기아 15,41
2) 리스트라에서 디모테오가 합류함 16, 1-3
3) 프리기아와 갈라디아 16, 6
4) 트로아스에서 본 환상 16, 9
5) 필립비에서 리디아와 간수의 회개 16,13-34
6) 데살로니카 교회 설립 17, 4
7) 베레아 사름들의 성경 공부 17,11-12
8) 아테네 아레오파고 법정에서의 설교 17,16-33
9) 고린토에서 환상을 봄. 교회 설립 18, 1-18
10) 에페소에 잠깐 들림 18,19-20
11) 안티오키아로 돌아옴 18,22

■ 관련성서구절

갈라디아 4장 13-17절
13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전에 내가 병을 앓았던 것이 기회가 되어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14 나의 신체조건이 여러분에게는 괴로운 짐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나를 외면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천사와도 같이, 또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15 그 때의 여러분의 그 감격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그 때 여러분은 만일 할 수만 있었다면 눈이라도 뽑아서 나에게 주지 않았겠습니까?
16 그런데 이제 내가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나를 원수로 여기는 것입니까?
17 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열성을 보이는 것은 결코 선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나에게서 떼어 내어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열성을 품게 하려는 술책입니다.


■ 제3차 전도여행  <53-58년경>


사도 행전 18장 23절부터 21장 16절은 제3차 전도 여행기이다. 바오로는 제2차 전도 여행 때 설립한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을 돌본 다음 아시아 지방의 수도 에페소로 가서 27개월 가까이 활약하였다(사도 19,8-10 : 20,31). 안티오키아에 돌아온 바오로는 그곳에서 잠시 머문 뒤에 다시 세 번째 선교여행을 떠났다. 제3차 선교여행에서는 먼저 갈라디아와 프리기아를 거쳐(18,23), 에페소에 이르렀다. 에페소 는 소아시아주의 수도로서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 이 곳은 특히 기원전 5백년경에 활동했던 자연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의 고향으로도 유명하였다.

또 이 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아르데미스 신전이 있으며(19,27), 미신과 마술이 성행하였다 (19,19). 바울로는 에페소에서 약 3년간(19,10에는 2년;20,31에는 3년) 머물면서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유다인에게 여러 차례의 시련과 온갖 굴욕을 받았으며(20,19 참조) 죽을 고비까지 겪 었으나 기적적으로 구출되기도 하였다. 바울로는 이 곳에서 얼마 동안 옥고를 치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갈라디아서, 첫번째 고린토서(현재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가 아니라 그 전에 쓴 것으로 분실된 편지를 말한다, 1고린 5,9 참조)와 현재의 고린토 전서 및 세번째 고린토서(분실된 서간, 2고린 2,4.9;7,8.12 참조)를 썼다. 또 에페소에서 옥살이를 할 때에 필립비서(필립 1,12 이하)와 필레몬서(및 골로사이서?)를 쓴 것 같다. 이렇게 긴 여행을 한 다음 다시 귀로에 올라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고린토 후서를 쓴 다음, 즉시 고린토에 가서 석달 가량 머물렀다. 거기서 그의 사상의 결정판인 로마서를 썼음이 거 의 확실시되고 있다(57년말이나 58년초).

그리고 다시 필립비와 드로아(20,6), 아쏘(20,14)를 거쳐 뱃길로 미딜레네, 키오스 섬, 사모스 섬을 통과하여 밀레토스에 도착하였다(20,15). 이 곳에 잠시 체류한 뒤에 배를 타고 띠로(21,3), 프톨레마이스(21,7), 가이사리아(21,8)를 거쳐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함으로써(21,15) 기나긴 선교여행을 끝마치게 된다. 세 번에 걸친 기나긴 선교여행의 노선과 행적은 주로 사도행전의 보고와 바오로가 자신의 편지에서 가끔 말한 내용들을 종합하여 구성한 것이다.

1) 갈라디아와 프리기아를 방문함 18,23
2) 에페소에서 2년 6개월을 지냄 19
3)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20, 1-2
4) 드로아에서 설교함 20, 6-12
5) 에페소 원로들에게 권면함 21, 1-4
6) 띠로 21, 1-4
7) 가이사리아 21, 8

■ 관련성서구절

골로사이 4장 13절
13 나는 그가 여러분을 위해서 또 라오디게이아와 히에라폴리스에 있는 교우들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 호송(58∼63년경)


세번째 선교여행을 끝낼 무렵, 바오로는 해외 교회에서 거두어들인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갔는데(로마 15,30-31 참조), 예루 살렘 모교회는 헌금을 고맙게 받았고 또 그를 환영하였다. 당시 모교회를 이끌던 야고보는 바울로에게,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그 가 모세율법을 배척한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으니 정결예식에 참여하라고 권하였다. 바울로는 이에 응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정결예식을 행한 뒤 성전에 들어갔다. 그 무렵 아시아에서 온 유다인들이 바울로를 보고 군중을 선동하여 그가 율법과 성전 및 유다인들을 반대하고 이방인들까지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고발하여 큰 소동이 일어 났다. 이에 로마 파견대장은 군대를 보내어 바울로를 체포하였으며 바울로는 군중에게 자신을 변호하였지만 군중은 오히려 그를 죽이라고 요구하였다. 백인대장이 소동의 이유를 알기 위해 바울로에게 매질을 하려고 하자 그는 자신이 로마시민 임을 알렸다. 그리하여 파견대장은 그를 결박하지 않고 곧 의회를 소집하였으나 의회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유다인들 40 여 명이 바울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자 그는 결국 호위를 받아가며 가이사리아의 펠릭스 총독에게 압송되었다.

바오로는 가이사리아에서 소요자, 성전 모독죄로 총독에게 고발되어 그 곳에서 2년간 감금 상태에 있었다. 총독 페스도가 유다 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바울로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려 하 자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여 황제에게 상소하자 총독은 이 상소 를 거절할 수 없었다. 바오로는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하였다. 일행 중에는 아리스다르코와 루가도 있었다. 그들 은 소아시아의 해안지방과 그레데 섬을 거쳐 항해하다가 폭풍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 멜리데 섬에서 석달 동안 지냈다(사도 28,11).  61년 1월 말경에 그들은 시칠리 섬에 들렀다가 보티올리에 닿아 거기서 신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아피아 가도를 따라 61년 봄 로 마에 도착하였다. 로마에서(사도 28,16-31)는 경비병의 감시를 받으면서 다른 죄수들과 따로 지낼 수 있는 허락을 받아 손님도 맞이할 수 있었다. 바오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유다인들과 로 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같다. 로마의 클레멘스가 고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에 의하면 그가 스페인에 가서 선교하였다고 한다(로마 15, 24.28 참조).

바오로가 상경하여 성전에서 체포되기까지의 경위는 사도 행전 21장 17-36절에 적혀 있다. 아시아 출신 해외 유대인들이 나지르 서원 제사를 바치려고 성전에 온 바오로를 알아보고 민족과 종교의 배신자로 규탄하고 그를 폭행하였다. 다행히 성전 북부에 주둔한 로마군인들이 구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안티바드리스를 거쳐(사도 23,31) 지중해변 가이사리아 총독부 감옥으로 이송되어 미결수로 2년 동안(58~60) 갇힌 몸이 되었다(사도 23,12-24,27). 바오로는 총독의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되자 로마시민권을 내세워 황제에게 상소하였다.

(사도 25,1-12) 그리하여 바오로는 로마로 압송되었는데, 사도 행전 27장 1절-28장 15절에 압송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60년 가을 (사도 27,9) 가이사리아를 떠나, 그레데 검을 거쳐(사도 27,8-12) 항해하다가 파선하여 구사일생으로 멜리데 섬에 상륙하여 겨울 석 달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사도 28,11). 61년 봄 다시 배를 타고 시실리 섬을 거쳐 나폴리 만에 있는 보디올리 포구에 닿아 육로로 로마에 도착하였다. 로마에서는 경비병 한 사람의 감시를 받기는 하였지만(사도 28,16) 셋집을 얻어 자유롭게 손님을 맞아들이면서 2년 동안 지냈다(사도28,30-31). 사도 행전의 바오로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58년 봄 고린토에서 로마서를 쓸 때부터, 바오로는 예루살렘과 로마를 거쳐 스페인에 가서 전도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로마 15,24. 28). 글레멘스 1세 교황(90/92~101)이 95년경 고린토 교회로 써 보낸 편지(5,1-6,1)를 보면, 바오로가 스페인에 가서 전도한 후에 다시 로마로 와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64년 7월 19일 네로 황제가 로마시에 불을 지르고 나서 여론이 좋지 않자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4년 동안(64~68) 모질게 박해하였는데, 이 박해 때 바오로와 베드로가 순교하였을 것이다. 테르톨리아노에 따르면 베드로와 바오로는 네로 박해 때 순교하였는데, 베드로는 예수처럼 십자가형을 받았고, 바오로는 세례자 요한처럼 참수형을 당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바오로는 로마 남문 밖 교외에 있는 지하수가 세 줄기 솟아나는 트레 폰타네에서 순교하고, 그 근처 현재의 바오로 대성전 자리에 묻혔다고 한다. 바울로가 언제 죽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네로 황제가(54-68) 로마 대화재를 빌미삼아 일으킨 박해 때인 67년경 참수 순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관련성서구절

사도행전 28장 16-31절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 갔을 때에 바울로는 경비병 한 사람의 감시를 받으면서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17 사흘 뒤에 바울로는 그 곳 유다인 지도자들을 불렀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바울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겨레에 대해서나 조상들이 전해 준 관습에 대해서 거슬리는 일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로마 사람들의 손에 넘어 갔습니다.
18 로마 사람들은 나를 심문했지만 사형에 처할 만한 죄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를 놓아 주려고 했습니다.
19 그러나 유다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카이사르에게 상소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동포를 고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20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뵙고 말씀드리려고 오시라고 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희망해 온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21 유다인 지도자들은 바울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아직 유다에서 당신에 관한 편지를 받은 일도 없고 또 형제들 가운데서 이 곳에 찾아 와 당신의 소식을 전하거나 당신을 헐뜯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22 그렇지만 당신의 종파가 어디서나 사람들의 반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의 생각을 직접 들어 보고 싶습니다."
23 그들이 날을 정해 두었다가 그 날이 되자 여럿이 바울로의 숙소로 찾아 왔다. 바울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고 증언하였으며 또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글을 들어 예수에 관해서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하였다.
24 바울로의 말을 듣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끝내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25 그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한 채 흩어지려 하자 바울로가 이렇게 한 마디 덧붙였다. "성령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당신들의 조상에게 하신 말씀은 지당합니다.
26 들어 보십시오.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여라 너희가 듣고 또 들어도 알아 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 보지 못함은
27 이 백성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탓이니,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되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 서서 마침내 나한테 온전하게 고침을 받으리라' 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28 그러니 하느님의 이 구원의 말씀이 이방인들에게로 돌아 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이 구원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30 바울로는 셋집을 얻어 거기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 오는 사람을 모두 맞아 들이고



출처 : 화타 윤경재
글쓴이 : 화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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