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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슈트라우스 1세 / 라데츠키 행진곡

힐링&바이블센터 2008. 2. 7. 13:06
Radetzky Marsch, Op.228

Johann Strauss [1804~1849]





Radetzky Marsch

<라데츠키 행진곡>은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대표작으로서 1848년 3월에 작곡되었다. 그때 보수적인 정부에 대해 학생과 노동자 등이 중심이 되어 무력 공세를 취하여 독재자를 영국으로 추방하고 황제를 물러나게 했는데, 슈트라우스는 이러한 혁명에 가담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측에서 그 사기를 고무하기 위하여 일찌기 이탈리아를 정복한 용장 라데츠키의 이름을 따서 이 행진곡을 작곡하였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메테르니히정부의 반종 정책에 이용되어 시민의 눈을 부패한 정치에서 관능적인 왈츠로 돌리게 함으로 "빈을 혁명에서 구한 것은 요한 슈트라우스이다"(정부측의 말이지만)는 말까지 들은 바 있는데, 이 행진곡도 그러한 음악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Strauss, Johann, the Elder (1804~1849)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빈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우며 빈 왈츠의 왕인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다. 이론을 자이프리트에게, 바이올린을 폴리샨스키에게 배우고 파머의 악단에서 비올라 연주자로 활동하였다. 1824년 왈츠 작곡가 라너와 악단을 결성하였으나 1825년 독자적인 악단을 만들어 인기를 얻자 각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났다.

1826년부터 자작곡을 연주하여 빈 군중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1833년 유럽에서 가진 연주여행은 그의 명성을 학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1834년에는 제1빈시민연대의 악장으로 활동하고 1835년에는 궁정무도회의 지휘자로 취임하기도 하였으며 빈 지역의 대중음악을 지배하였으나 1849년 증후열이 원인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초기에는 유명한 기악곡을 편곡하여 연주하였으나 점차 자신의 악풍을 확립하여 서주, 몇 개의 왈츠, 코다로 이루어진 빈 왈츠의 원형을 라너와 함께 확립하였다.

그는 제2박, 제3박의 독특한 리듬의 연주와 더불어 세련된 오락음악의 보급에 공헌하였으며 파리의 춤곡 카드리유를 빈 스타일로 개조, 도입하여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대표작품으로 폴카곡 [사랑받는 안넨], 행진곡[라데츠키 행진곡]이 유명하며 그외 150곡의 왈츠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