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o and Juliet Overture Fantasy
Pyotr Ilich Tchaikovsky [1840∼1893]
작품 배경 & 해설
옛날 이탈리아 베로나의 몬테규와 캐플렛 두 집안은 오래도록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러나 로렌스 사제의 중재로 일시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몬테규 집안의 아들 로미오와 캐플렛 집안의 딸 줄리엣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두 집안 사이의 결혼이란 불가능한 일. 이러한 딱한 사정을 안 로렌스 사제는 두 사람을 위해 한 가지 계략을 생각해 내었다. 그것은 줄리엣에게 잠자는 약을 먹여 죽은 것처럼 위장하여 묘지에 운반하도록 하고 로미오를 불러 두 사람을 맺어 주려는 것. 그러나 불행히도 이 계획을 로미오에게 알리려고 한 친구는 로미오와 길이 엇갈리고 소문으로 줄리엣의 죽음을 전해들은 로미오는 줄리엣 옆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고 만다. 얼마후 잠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로미오가 죽은 것을 보고 자신도 따라 죽고만다. 이것이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러한 비극적인 줄거리의 바탕위에 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장중하게 시작된다. 이 선율은 극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도사 로렌스를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거칠고 격앙된 반목의 테마가 폭발하는데, 이것은 몬테규와 캐퓰러트 두 가문의 피비린내 나는 격투의 장면이다. 이윽고 격투의 소란이 진정되면서 잉글리쉬 혼과 비올라에서 우아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이것은 로미와 줄리엣의 청순하고 덧없는 사랑의 테마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것을 "러시아의 모든 음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마"라고 절찬하고 있다. 음악은 반목의 테마와 사랑의 테마가 서로 얽혀 비극적인 색채를 차츰 짙게 하면서 파국을 향하여 전개되어 나간다. 차이코프스키의 독특한 색채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이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은 파국의 장면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청순하고 아름다운 사람의 테마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하프의 분산화음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인데, 차이코프스키가 이 작품을 작곡하게된 배경은 당시 러시아 5인방의 리더인 발라키레프(1837-1910)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당시 국민음악 창조를 목적으로 결성된 5인방의 멤버는 발라키레프, 큐이,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보로딘 등 쟁쟁한 젊은 작곡가들이었고, 차이코프스키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발레키레프가 차이코스키에게 이 곡의 작곡을 권유했을 당시의 상황을 차이코프스키의 친구이며 또 그의 전기를 쓰기도 했던 카슈킨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발라키레프와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나는 산책을 무척 좋아했다. 어느날 세 사람이 함께 산책하러 나갔을 때 발라키레프가 차이코프스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곡을 권유했다. 5월의 아름다운 어느날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던 언덕의 그 초록빛 숲과 높다란 전나무들. 발라키레프는 차이코프스키의 재능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암시하는 소재를 차이코프스키가 충분히 소화하여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라키레프 자신도 이 테마에 크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것이 마치 완성된 음악인 것처럼 면밀하고 정확하게 그 구성을 설명해 나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젊은 차이코프스키의 환상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차이코프스키는 그해(1869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환상적인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하여 다음해 3월에 초연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많아서 상당한 부분을 수정했고, 그후 11년이 지난 1881년에 다시 손질을 하여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형태로 출판했다. 따라서 이 곡의 스코어는 1869년의 제1고, 1870년의 제2고, 그리고 1881년의 제3고 등 세 가지가 있는 셈이다. 차이코프스키는 표제음악적인 작품이라 하더라고 그 표제성에 별로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표제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나 인상을 전달하려는 방袖막?처리하는 수가 많은데, 먼저 분위기를 선율로 나타낸 다음 그것을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교묘하게 증폭해 나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표제성이 더 강하게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그의 특성이며, 동시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구성 및 해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적 관현악곡의 작품 중에는 이 로미오와 줄리엣 이외에 햄릿, 프란스카다 리미니, 템페스트, 만프레드등 세익스피어, 바이런, 단테 등의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한 명곡들이 많다. 차이코프스키는 문학자들의 작품 가운데서 특히 세익스피어를 애독했던 모양이어서,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음악을 7곡이나 작곡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내용적으로 뛰어나고, 일반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은 환상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이 로미오와 줄리엣은 차이코프스키가 모스크바에 정착한 3년째 되는 1869년(29세)에 완성하여 그 이듬해 3월에 그의 은인이자 친구인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차이코프스키에게 이 세익스피어의 대 비극을 바탕으로 한 표제음악을 쓸 것을 권한 사람은 '러시아 5인조'의 한 사람인 발라키레프였다. 차이코프스키의 친구인 카시킨에 의하면 발라키레프 자신도 이 제재에 마음이 끌렸는지 그는 마치 잘 알고 있는 작품을 이야기하듯 면밀하게 그 구상을 이야기했다. 그 것이 계기가 되어 젊은 차이코프스키의 환상은 불붙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수 개월 동안 차이코프스키는 숙고를 거듭하다가 9월에서 11월 중순 사이에 이 곡을 완성시켰다. 초연 때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5인조들로 나가고 있는 '발라키레프적(的)'작품으로서 이 곡을 매우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53세의 생애를 끝마칠 때까지 이 그룹의 '6번째' 인물은 되지 않았다. 초연 후 차이코프스키는 발라키레프가 지적한 몇 군데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이 곡을 2회에 걸쳐 수정하여 지금과 같은 결정반을 만들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전기를 쓴 바 있는 쿠닌은 이렇게 쓰고 있다.
"만약 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없었던들 1870년대의 표제적 교향 작품은 물론이요, 만년 시대의 웅장한 교향곡도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곡은 4개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처음 서주 부분은 안단테 논 탄토 콰지 모데라토, f#단조, 4분의 4박자. 소나타 형식의 주부는 알레그로 지우스토 b단조의 제1주제와 Db장조의 제2주제가 나타난다. 그리고 전개부에 들어가면 이미 나왔던 각 주제가 얽혀서 격렬히 전개된 후 재현부는 총주에 의한 제1주제로 시작되어 제2주제가 뒤따른다.
레코드는 카라얀의 연주가 다소 담백한 표현이지만 정공법으로 베를린 필을 구사하여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음악으로 완성시켰는데 박력면에서 다소 약한 듯 싶다. 그런데 그의 교묘한 연출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어 작품이 가지는 로맨틱한 극성을 더욱 깊게 하고, 깊이와 폭넓은 연주를 들려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스케일이 클 뿐 아니라 드라마틱하게 이 곡을 이끌어 나간다. 또한 각 주제의 콘트라베이스를 확실하게 잡아, 쉽게 스토리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명연이라 할 만하다. 뮌시의 녹음은 조금 오래되었지만 대단한 열연이다. 박력면에서 이렇게 힘찬 연주는 없으며, 중후하고 심포닉한 보스톤 심포니의 연주도 놀랍다.
당시 16세이던 레너드 화이팅과 15세이던 올리비아 핫세를 캐스팅 해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은 개봉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화제에 올랐다. 특히 줄리엣 역의 올리비아 핫세는 특유의 청초한 이미지와 청순가련한 연기 덕에 일약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했다. 1968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촬영상과 음악상(니노 로타)을 수상한 화제작.
Pyotr Ilich Tchaikovsky [1840∼1893]
이 작품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인데, 차이코프스키가 이 작품을 작곡하게된 배경은 당시 러시아 5인방의 리더인 발라키레프(1837-1910)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당시 국민음악 창조를 목적으로 결성된 5인방의 멤버는 발라키레프, 큐이,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보로딘 등 쟁쟁한 젊은 작곡가들이었고, 차이코프스키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발레키레프가 차이코스키에게 이 곡의 작곡을 권유했을 당시의 상황을 차이코프스키의 친구이며 또 그의 전기를 쓰기도 했던 카슈킨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발라키레프와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나는 산책을 무척 좋아했다. 어느날 세 사람이 함께 산책하러 나갔을 때 발라키레프가 차이코프스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곡을 권유했다. 5월의 아름다운 어느날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던 언덕의 그 초록빛 숲과 높다란 전나무들. 발라키레프는 차이코프스키의 재능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암시하는 소재를 차이코프스키가 충분히 소화하여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라키레프 자신도 이 테마에 크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것이 마치 완성된 음악인 것처럼 면밀하고 정확하게 그 구성을 설명해 나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젊은 차이코프스키의 환상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차이코프스키는 그해(1869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환상적인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하여 다음해 3월에 초연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많아서 상당한 부분을 수정했고, 그후 11년이 지난 1881년에 다시 손질을 하여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형태로 출판했다. 따라서 이 곡의 스코어는 1869년의 제1고, 1870년의 제2고, 그리고 1881년의 제3고 등 세 가지가 있는 셈이다. 차이코프스키는 표제음악적인 작품이라 하더라고 그 표제성에 별로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표제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나 인상을 전달하려는 방袖막?처리하는 수가 많은데, 먼저 분위기를 선율로 나타낸 다음 그것을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교묘하게 증폭해 나가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표제성이 더 강하게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그의 특성이며, 동시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구성 및 해설
이 로미오와 줄리엣은 차이코프스키가 모스크바에 정착한 3년째 되는 1869년(29세)에 완성하여 그 이듬해 3월에 그의 은인이자 친구인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차이코프스키에게 이 세익스피어의 대 비극을 바탕으로 한 표제음악을 쓸 것을 권한 사람은 '러시아 5인조'의 한 사람인 발라키레프였다. 차이코프스키의 친구인 카시킨에 의하면 발라키레프 자신도 이 제재에 마음이 끌렸는지 그는 마치 잘 알고 있는 작품을 이야기하듯 면밀하게 그 구상을 이야기했다. 그 것이 계기가 되어 젊은 차이코프스키의 환상은 불붙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수 개월 동안 차이코프스키는 숙고를 거듭하다가 9월에서 11월 중순 사이에 이 곡을 완성시켰다. 초연 때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5인조들로 나가고 있는 '발라키레프적(的)'작품으로서 이 곡을 매우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53세의 생애를 끝마칠 때까지 이 그룹의 '6번째' 인물은 되지 않았다. 초연 후 차이코프스키는 발라키레프가 지적한 몇 군데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이 곡을 2회에 걸쳐 수정하여 지금과 같은 결정반을 만들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전기를 쓴 바 있는 쿠닌은 이렇게 쓰고 있다.
"만약 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없었던들 1870년대의 표제적 교향 작품은 물론이요, 만년 시대의 웅장한 교향곡도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곡은 4개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처음 서주 부분은 안단테 논 탄토 콰지 모데라토, f#단조, 4분의 4박자. 소나타 형식의 주부는 알레그로 지우스토 b단조의 제1주제와 Db장조의 제2주제가 나타난다. 그리고 전개부에 들어가면 이미 나왔던 각 주제가 얽혀서 격렬히 전개된 후 재현부는 총주에 의한 제1주제로 시작되어 제2주제가 뒤따른다.
레코드는 카라얀의 연주가 다소 담백한 표현이지만 정공법으로 베를린 필을 구사하여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음악으로 완성시켰는데 박력면에서 다소 약한 듯 싶다. 그런데 그의 교묘한 연출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어 작품이 가지는 로맨틱한 극성을 더욱 깊게 하고, 깊이와 폭넓은 연주를 들려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스케일이 클 뿐 아니라 드라마틱하게 이 곡을 이끌어 나간다. 또한 각 주제의 콘트라베이스를 확실하게 잡아, 쉽게 스토리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명연이라 할 만하다. 뮌시의 녹음은 조금 오래되었지만 대단한 열연이다. 박력면에서 이렇게 힘찬 연주는 없으며, 중후하고 심포닉한 보스톤 심포니의 연주도 놀랍다.
당시 16세이던 레너드 화이팅과 15세이던 올리비아 핫세를 캐스팅 해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은 개봉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화제에 올랐다. 특히 줄리엣 역의 올리비아 핫세는 특유의 청초한 이미지와 청순가련한 연기 덕에 일약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했다. 1968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촬영상과 음악상(니노 로타)을 수상한 화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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