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웃음치료

[스크랩] 웃음의 본질

힐링&바이블센터 2006. 8. 5. 19:48
웃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웃음은 종교의 본질이다.심각함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며,종교적인 것이 될 수도 없다.심각함은 에고(ego)의 부분,그것도 매우 병든 부분이다.반면에 웃음은 에고의 부재(不在)이다.
그렇다.그대의 웃음과 종교적인 사람의 웃음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그대의 웃음은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이다.그러나 종교적인 사람의 웃음은 자기자신에 대한 웃음이거나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웃음이다.

종낫?삶의 축제가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심각한 사람은 불구자가 되어 간다.그는 장벽을 만든다.심각한 사람은 추추고 노래할 수 없다.그는 축제를 즐길 수 없다. 그의 삶에서 축제의 차원이 사라질 때,그는 메마른 사막이 된다.
그대는 사막처럼 메마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그대는 종파분자일 수는 있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 그대는 기독교인, 힌두교인, 불교인, 모하메드교인이 될 수 있다.그러나 그것은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아무 관계도 없다.

그대는 무엇인가를 믿는다.그러나 실제론 아무 것도 모른다. 그대는 이론을 믿는다. 이론의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사람은 심각해 진다. 반면에 이론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사람은 웃기 시작한다.
존재계의 모든 놀이는 너무 아름다워서 웃음이 아니고는 거기에 응답할 길이 없다. 오로지 웃음만이 유일한 기도이며 감사의 표시이다.

심각함이 사라진다해도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다. 사실,심각함이 사라질 때,인간은 더욱 더 건강해지고 전체적으로 된다. 그러나 웃음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웃음이 사라지는 순간,그대는 찬란한 색깔을 잃어버리고 우중충한 무채색이 된다. 그때,그대의 에너지는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그대는 삶을 비극으로 만들어 왔다. 그대는 웃을 때조차 진정으로 웃는 게 아니다. 그대가 웃음을 가장할 때,그 웃음은 억지웃음이다. 그 웃음은 가슴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그 웃음은 그대의 중심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다. 그대는 단지 주변을 웃음으로 색칠하고 있을 뿐이다. 그대는 웃을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웃는다. 그러나 진정한 웃음은 이유가 없다.

사람들은 웃음조차도 비지니스로 생각한다. 웃음마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되었다. 사람들의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다. 그들의 웃음은 순수성을 잃었다. 그대는 순수하게 웃을 수 없다. 그대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웃을 수 없다. 그리고 그대가 순수하게 웃을 수 없다면, 그대는 엄청나게 중요한 가치를 잃는 것이다. 그대는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잃고 있다.
자,웃어라! 웃음은 그대의 본성이다.


어린아이의 웃음을 관찰해 보라. 그의 웃음은 존재의 중심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아기가 태어날 때,아기가 배우는-어쩌면 배운다는 표현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기는 웃음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첫번째 사회활동은 웃음이다. 웃음에 의해 아기는 사회의 일원이 된다. 그 웃음은 매우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것이다.

웃음은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첫번째로 일으키는 존재의 불꽃이다. 그 밖의 다른 것은 후에 온다. 아기가 웃을 때,엄마는 행복감에 젖는다. 왜냐하면 아기의 웃음은 건강함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웃음은 첫번째 사회활동이며,기본적인 사회활동으로 남아야 한다. 인간은 평생동안 웃음을 유지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면,그대는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황은 그대에게 성숙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울지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사실,웃을 수 없는 사람은 울지도 못한다. 웃음과 울음은 항상 함께 한다.

눈물이 말라버린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 그들의 눈엔 광채와 깊이가 없다. 그들의 눈엔 수분이 없다. 눈물이 없으므로 그들은 울 수도 없다. 사람들의 웃음이 불구인 것처럼 울음 또한 불구이다. 웃을 수 있는 사람만이 울 수 있다. 만일 그대가 울 수 있다면,그대는 웃을 수도 있다.그대는 살아 있는 존재이다. 죽은 사람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다. 죽은 사람은 심각할 뿐이다. 죽은 사람의 심각해지는 기술은 그대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다.

웃음은 그대 내면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이다.그러나 서서히 모든 사람이 웃음을 잃는다. 처음에는 자연스럽던 것이 점점 더 부자연스럽게 된다. 그대는 웃음을 촉발시키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 누군가가 그대를 간질러 주어야 한다. 그럴때에만 그대는 웃는다. 이것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농담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유태인들은 세상에서 최고의 조크(joke)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어떤 인종보다도 불행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유태인들은 조크를 만들어 내냐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유태인들은 고문받고 살해당해 왔다. 그들의 삶은 너무나 불행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냉소적인 감각을 창조해야만 했다. 그것은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는 장치가 되었다. 그들은 가장 재미있고 심오한 조크를 갖는 민족이다.
우리가 웃는 것은 웃음을 촉발하는 어떤 이유가 있을 때 뿐이다. 조크가 말해진다. 그러면 그대는 웃는다. 왜냐하면 조크는 그대 안에 어떤 자극을 만들기 때문이다.

조크의 메카니즘은 갑작스런 변화에 있다. 이야기가 한쪽 방향으로 진행되다가 돌연 변화가 일어난다.그 변화는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분이 고조되고 그대는 깜짝 놀랄 순간을 기다린다.그런데 돌연 그대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매우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전개된다.
조크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만일 조크가 논리적이라면 웃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크가 논리적일 때,그대는 결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학적인 삼단논법이 될 것이고,그대는 벌써 결말에 도달해 있다.
조크에는 돌발적인 변화가 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것이 웃음을 유발하는 이유이다. 조크는 교묘한 심리적 전술이다.

나는 조크를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들 모두가 심각한 종교인이 될까봐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그대는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대가 가끔씩 종교와 철학,이론과 체계를 잊고 대지의 품에 안기도록 그대를 간질러야 한다. 나는 그대를 계속해서 대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점점 더 심각해 질 것이다. 그리고 심각함은 암세포처럼 성장한다.

웃음은 건강을 가져다 준다. 이젠 의학조차도 웃음은 자연이 인간에게 제공한 가장 우수한 약이라고 말한다. 아플 때 웃을 수 있다면 그대는 곧 건강을 회복할 것이다. 그러나 건강할 때조차도 웃을 수 없다면 그대는 곧 건강을 상실하고 병들게 될 것이다.
웃음은 그대 내면의 근원에서 그대의 표면으로 에너지를 날라다 준다.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할 때,웃음은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진정으로 웃을 때,그대는 얼마동안 깊은 명상의 상태에 있게 된다. 생각이 멈춘다. 웃음과 생각을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웃음과 생각은 변증법적으로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그대는 웃거나 생각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동시에 둘 다 할 수는 없다. 그대가 여전히 생각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 그 웃음은 표면적인 웃음일 뿐이다. 그것은 절름발이 웃음이 될 것이다.

진정으로 웃을 때,마음이 사라진다. 웃음은 무심(無心)의 경지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문 중의 하나이다.
나에 관한 한,춤과 웃음은 가장 쉽고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이다. 진정으로 춤출 때,생각이 멈춘다. 그대는 하나의 소용돌이가 된다. 모든 경계와 구분이 사라진다. 그대는 존재계안으로 용해되고,존재계는 그대 안으로 용해된다. 그대가 진정으로 춤출 수 있다면,-그대가 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춤이 그대를 소유하고 다룬다면-생각은 멈춘다.
웃음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그대가 완전히 웃음에 소유당할 때,생각이 멈춘다. 그리고 그대가 한 순간만이라도 무심의 경지를 엿볼 수 있다면 그 '힐끗 봄'은 앞으로 더 많은 보답이 있음을 약속할 것이다.
웃음은 무심의 경지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관문이다.

그대는 촛불을 응시하거나 하나의 점에 집중할 수 있다. 또는 만트라(mantra)에 집중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그대는 잠이 옴을 느낄 것이다. 그대는 잠에 빠져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사라질 때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잠과 삼매가 그것이다.
생각이 멈출 때,거기엔 두 가지의 가능성이 남는다. 그대는 사토리(satori)로 들어가거나 잠에 빠진다. 그대는 잠에 빠질 가능성이 더 많다. 왜냐하면 그대는 오랫동안 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일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 잠은 그대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활동이다. 잠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는 활동은 없다.
그러므로 그대가 만트라를 반복하는 TM류의 명상법을 행한다면, 만트라가 무념(無念)의 상태로 그대를 이끌어갈 즈음엔 잠이 그대를 사로잡을 것이다. 나는 TM을 일종의 진정제라고 부른다. 마하리쉬(Maharishi)와 그의 방법은 미국인들에게 크게 어필한다. 미국엔 불면증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불면증은 거의 보편화된 질병이다.

40세가 넘은 후에도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는다면,그것은 그대가 실패자임을 의미한다.그대는 사업이나 정치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성공을 거둔 모든 사람들은 불면증에 시달린다.그럴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위궤양에 시달린다. 불면증과 위궤양은 성공의 보증수표 같은 것이다.
만트라를 반복하는 TM류의 명상법은 미국적인 마음에 크게 어필한다. 왜냐하면 똑같은 만트라를 반복함에 의하여 마음은 싫증을 느끼고 쉽게 잠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수면제 역활을 한다.
그러나 웃음은 다르다. 그대는 잠에 빠질 수 없다. 어떻게 웃으면서 잠에 빠질 수 있겠는가? 웃음은 무심(no-mind)과 무념(no-thought)의 상태를 가져다 주면서도 잠에 빠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선원(禪院)에서는 모든 승려들이 웃음으로 아침을 시작해서 웃음으로 하루 일과를 끝맺곤 했다. 웃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대 또한 그렇게 해볼 수 있다.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경험이 될 것이다. 그것은 약간 미친 짓처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주변에는 심각한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가 행복할 때,그들은 항상 이유를 묻는다. 그러나 그대가 슬플 땐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슬픔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모든 사람이 슬프다. 그러니 슬픔에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 혹시 그대가 슬픔을 설명하려해도 사람들은 별로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슬픔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슬프다.그러니 긴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아무 이유도 없이 웃는다면,사람들은 그대를 경계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대가 약간 돌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친 사람만이 즐겨 웃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서만 그대는 이유없이 웃는 사람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만일 그대가 기혼자라면 아침 일찍 갑자기 웃는 것은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대의 배우자는 그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 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 보라!웃음과 더불어 일어나고 웃음과 더불어 잠자리에 드는 것은 아름다운 경험이다. 이유를 묻지 말라. 거기엔 아무 이유도 없다.
그대는 여전히 똑같은 침대,똒같은 집에 있다. 부인은 여전히 바가지를 긁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지난 밤에는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지 않은가? 이것은 기적이다! 이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우유배달부가 문을 두드린다. 똑같은 소음이 들린다. 이것은 웃을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어느날엔가,우유배달부가 문을 두드리고 부인이 잔소리를 한다해도 그대는 거기에 없을 것이다.죽음이 그대를 데려 갈 것이다.그러니 죽음이 그대를 쓰러뜨리기 전에 맘껏 웃어라.시간이 있을 때 실컷 웃어라!

이 우스꽝스러운 세상을 보라! 똑같은 날이 되풀이된다. 그대는 평생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대는 슬리퍼를 끌고 목욕탕에 들어가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무엇을 위해서?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준비를 마쳐도 갈 곳이 없다. 그대는 옷을 입고 사무실로 달려 간다. 무엇을 위해서? 단지 내일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기 위해서?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관찰해 보라. 그리고 웃어라. 잠에서 깨는 순간,눈을 뜨지 말고 먼저 웃어라. 그다음에 눈을 뜨라. 그러면 하루종일 웃음이 계속 될 것이다. 아침에 웃을 수 있다면 그대는 하루종일 웃을 수 있다. 웃음은 연쇄효과를 일으킨다. 하나의 웃음은 더 많은 웃음을 가져 올 것이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불평하고 화를 내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것은 연쇄효과를 일으킨다. 그것은 그들의 기분을 하루종일 우울하게 할 것이다.

웃음으로 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정상적이다. 그들은 그대보다 더 정상적이다. 그들은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면 하루종일 웃음이 치밀어 오름을 느낄 것이다. 세상에는 우스운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신은 이 우스운 세상으 보고 웃다가 죽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만든 인간들,그리고 온갖 불합리한 것들, 세상은 정말 코메디와 같다. 신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만일 그대가 웃음 뒤에 침묵할 수 있다면, 그대는 존재계 전체가 웃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대와 더불어 나무와 돌,별들의 웃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선승(禪僧)들은 웃으면서 잠자리에 든다. 하루가 가고 드라마가 다시 막을 내렸다. 웃으면서 선승은 말한다.
"안녕! 내일 아침 또 살아남는다면 다시 그대를 웃음으로 맞으리라!"
웃어라!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웃음으로 하루를 끝내라! 그러면 그대는 처음의 웃음과 마지막의 웃음 사이에 더 많은 웃음이 일어남을 알게 될 것이다.그리고 더 많이 웃을수록 그대는 더 종교적인 사람이 된다.    -오쇼-
출처 : 문화레크리에이션협회
글쓴이 : 황인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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