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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파괴력:
또 다른 상처라는 돌을 던진다
필자는 스스로 오랫동안 참으로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든 장본인들을 기억하며 분노에 떨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상처를 준 이들에게 복수심이 불타고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복수를 하려고 생각했다. 그 복수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첫째...내가 유명해져서 그 사람들 앞에서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나를 상처를 준 사람들이 불행하게 되도록 기대하는 것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천연두를 알고 외모에 대한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 가면 교실까지 따라오면서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에서 놀리는 아이들은 당연히 내가 놀림을 당해야 하고 놀리는 것이 자기들의 권리인양 말의 폭력을 나에게 가하였다. 나는 바보처럼, 당연히 그렇게 놀림을 받아야 하는 죄인인 것처럼 많은 친구들 앞에서 혹은 선생님이 있는 곳에서 그대로 당하여만 하였다. 친지들이 모여서 기분 좋게 파티를 하다가 우연찮게 외모에 대한 흉을 듣게 되는 때도 있었다. 이 때 나는 밖에 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울었고 남의 집 앞에서 몇 시간씩 앉아서 훌쩍 거렸다. 그러한 경험은 어린 나의 마음에 흉기로 긁어놓는 것과도 같이 아팠다. 그것은 나의 소망, 용기, 기쁨 모든 것을 훔쳐가는 행위였고 어두운 그늘에서 자기 비관에 빠지게 하는 보이지 않는 학대였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외적, 내적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상처가 나타난 상처이든지 아니면 감추어진 상처이든지 간에 모두가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 또한 상처를 주는 가해자로 살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내적치유에 관심을 갖고 세미나와 캠프를 인도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가 내가 던지는 돌을 맞고 남모르게 울며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그 돌에 맞으신 분이 부모님이신가? 아니면 친구인가? 아니면 교회 성도들인가? 아니면 나의 남편, 자녀들인가? 수없이 돌을 던져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상처를 주었으면서도 유독 나만이 피해자였다고 생각하는 오해에서 나는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나도 가해자이다. 누가 나의 돌을 맞았을까? 이것도 성령님이 조명해 주어야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날마다 치유하는 가정”을 집필하고 있을 때에 성령님은 나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미움과 원망과 분노를 열어주셨다. 그것은 동생에 대한 질투, 미움, 원망이었다. 나는 성령님이 조명해주시기 전까지는 내가 동생을 그렇게 미워하고 있는지 몰랐다. 내가 어렸을 때에 동생에게 하던 행동들을 주마등처럼 보여주면서 “나는 동생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필자의 아버님은 내가 4살 되었을 때에 스위스 바젤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셨다. 어렸을 때 헤어졌던 나는 아버님을 잘 기억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집 앞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는데 누가 다가와서 물었다. “이희영씨 댁이 여기냐?” 나는 줄넘기를 하다가 방해받는 것도 싫고 알지 못하는 사람의 질문이라 쳐다보지도 않고 “사람을 찾으려면 동회에 가서 알아보세요”하고 줄넘기를 계속했다. 그 분이 몇 년 만에 귀국한 아버님이셨던 것이다.
아버님이 귀국하신 후 난 딸이 바로 동생이다. 우리는 아버님이 석사일 때에 난 딸이고 동생은 박사가 된 후에 딸이다. 그래서 더 똑똑하고 예쁘다고 주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항상 막내아기에게 관심이 가고 사랑이 가는 것인 줄 몰랐던 필자는 동생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마치 카인처럼 동생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동생만 없다면 부모의 호의를 내가 받을 수 있을 텐데...동생 때문에 되는 것이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동생에 대한 질투, 미움 등을 키워나갔다. 다섯 살 아래인 동생보다 내가 힘이 더 있으므로 동생을 교묘하게 괴롭혔다. 그리고 항상 “너는 바보야 그것도 못해”라고 면박을 주고 어머님이 보지 않을 때는 업고 가다가 뒤에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동들은 알게 모르게 동생에게 낮은 자화상을 심어주었고 우울증까지 생기게 하였다. 성령님께서 그 모든 행동들을 드러내어 주셨을 때 내가 던진 돌에 맞아 고통을 당하는 동생으로 인하여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였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제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해 주셨지만 동생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하였다. 후에 딸 다섯이 함께 모일 기회가 있을 때에 동생과 나는 화해하였다. 동생도 그러한 나의 행동으로 고통을 당했던 것을 말해 주었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자신만이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돌들이 오늘도 누구에게 날라 가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과거의 상처에게 굿바이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도 계속 타인에게 돌을 던지게 된다. 왜냐하면 상처를 숨기기 위해, 방어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낳기 때문이다.
주예수영성마을
http://cafe.daum.net/bride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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