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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오미와 룻. (룻기 1:1-22절),

힐링&바이블센터 2006. 2. 2. 11:44
나오미와 룻.
룻 1:1-22절, 259.265.276장.&

사사 시대에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정이 흉년으로 인해 모압으로 내려갔습니다. 흉년을 피해 잠시 내려가 있으려던 그들은 그 곳에서 10년을 거하면서 남편과 두 아들이 죽는 환난을 겪습니다. 아들들이 결혼하여 두 며느리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 며느리들은 아직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과부가 된 것입니다.

객지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게 된 여인의 이름은 나오미였는데 그녀는 모압 출신인 두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홀로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고자 합니다. 그러나 두며느리 중 하나인 룻이 기어코 함께하겠다고 함으로써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계속 환난에 처하는 나오미 가정입니다.(1-5절), 1)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이주합니다.(1-2) 사사 시대에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어려움에 처하자 그곳에 살던 한 사람이 가족들을 거느리고 모압으로 이주합니다. 당시의 배경에 대해 언급된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때”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약 삼분의 일이 이방의 압제 아래 있었기에 살기가 매우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둘째는 당시의 상황입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농경사회였던 당시에 흉년은 엄청난 재난이었습니다. 셋째는 장소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유다 지파에 속한 베들레헴 땅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으로 그 이름대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어서 농축산에 적합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사실로도 본문의 흉년이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흉년으로 인해 이방 땅으로 이주한 경우가 종종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12:10절), -이삭도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26:1절),

-야곱도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45:11-13절),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경우에도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간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들도 그 일로 인해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엘리멜렉의 경우도 모압으로의 이주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기보다,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의 결정은 가족의 생존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분명히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2)모압에서 남자들이 모두 죽습니다.(3-5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의와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마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살기 위해 온 가족을 이끌고 모압 땅으로 피한 엘리멜렉은 그곳에서 죽고말았습니다.

2.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나오미입니다.(6-18절), 1)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후에 나오미가 마 침내 모압을 떠납니다.(6-7절), 나오미가 모압의 삶을 정리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이 기근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고향으로 떠나는 길에 두 며느리가 동행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2)며느리들에게 모압에 남을 것을 권합니다.(8-10절),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며느리들의 친정을 가리키는데. “아비의 집‘이라고 칭하지 않고 ”어머니 집”으로 칭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으로 보입니다. 3)돌아갈 것을 재차 권면합니다.(11-13절),

이번에는 그들이 왜 자신을 따라와서는 안되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첫 번째 권면에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간구하 것과 연관됩니다. 자신을 따라오는 것이 왜 소망 없는 길인가를 두가지 가정을 통해서 말하게 한 것입니다.

첫째. 자신은 그들의 남편이 될 수 있는 아이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이를 가질 수 있다해도 언재 낳아 길러 그들의 남편으로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소망을 기대할 수없으니 돌아가서 새로운 가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4)끝까지 나오미를 따릅니다.(14-18절),

거듭된 나오미의 권면으로 오르바는 시모에게 입맞추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오르바와는 달리 자신이 처음에 내린 결정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16-17절에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셌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합니다.

룻의 이같은 믿음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분을 따르겠다는 순교적 신앙이었습니다.

3.베들레헴에 이른 나오미와 룻입니다.(19-22절), 1)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이르자 사람들은 십년만에 고향으로 온 나오미를 맞습니다. (19절), 2)모압에서 고통을 하나님의 징계로 고백합니다.(20-21절), 성읍여인들의 반가운 환대에 나오미는 자신의 비참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20절에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3)돌아온 때는 보리 추수 때입니다.(22절), 팔레스타인의 보리 추수철은 4월 경이므로 그 때를 봄이었던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돌아온 때가 봄이라는 사실에서 이 가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이방 여인인 며느리만 데리고 빈손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처지는 그야말로 절망적(絶望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암혹과 같은 현실(現實)에도

하나님의 돌보심은 계속되고 있었고 전혀 상상치 못한 은혜가 준비(準備)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의 한 복판에서 희망(希望)을 이끌어 내십니다. 사라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떠한 어려움에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 밑에 모든 무거운 짊을 내려놓고 대속의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줄로 믿고 감사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반신 반의는 불 신앙입니다. 믿음 없는 기도를 드리지 말고 믿음의 기도를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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